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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회장']

뚝섬 2026. 5. 18. 06:05

'며느리 회장'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의 모델인 북미 부족 ‘이로쿼이’에는 독특한 권력 법칙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남성 추장 뒤의 여성 영적 지주 ‘모앗’이 이방인 제이크를 살려내는 결정을 하듯 이 부족의 전쟁 개시와 종결권은 ‘씨족 어머니(Clan Mother)’로 불린 나이 든 여성 리더에게 있었다. 힘은 총칼이 아닌 식량 배급권에서 나왔다. 전쟁이 부족의 안위를 해친다고 판단되면 군량미 공급을 끊어 싸움을 강제로 멈추게 했다. 모계 리더십의 본질은 가문의 자산을 지키고 분배하는 ‘살림’에 있었다. 살림은 ‘살려 내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국내 재계에서 가업을 승계한 ‘딸 회장’은 대개 범삼성가였다. 한솔그룹의 고(故) 이인희 회장과 신세계그룹의 이명희 총괄회장에 이어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대표적이다. 반면 며느리가 회장 자리에 오른 경우는 대개 창업주나 후계자가 요절했을 때였다. 1972년 등판한 애경 장영신 회장이 시초이고,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대신파이낸셜(대신증권) 이어룡 회장·한진해운 최은영 회장 등이 뒤를 이었다. 미처 준비 안 된 상황에서 등판한 구원투수였기에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해외에선 로레알의 프랑수아즈 의장이나 워싱턴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처럼 가업을 승계한 ‘딸 회장’은 있어도 ‘며느리 회장’은 더 드물다. 서구의 명문 장수 가문이나 글로벌 기업들 역시 철저하게 직계 혈통 중심으로 후계 구도를 짠다. 가문에 합류한 며느리가 그룹의 최고 정점인 회장직을 물려받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며느리 회장’은 혈통의 공백을 메우는 일시적인 대행의 성격이 짙었다.

 

▶최근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경영 성과로 회장에 오른 사례다. 1998년 우지 파동으로 위기에 빠진 시댁 가업에 뛰어들어 남편 대신 경영에 나서 ‘불닭볶음면’으로 K-라면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영업이익률 22%, 해외 매출 비중 80%, 주가 144만4000원이 경영 성적표다. 회장 승진 후 글로벌 확장 경영 등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며느리 회장’은 가문의 정통성과 가업의 명운을 짊어진 오너 경영인이란 점에서 전문 경영인과 차별화된다. 곳곳에 여성 경영인의 진출이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그들이 보여줄 리더십의 본질도 결국 능력이다. 전통 모계 사회의 어머니들이 좋은 씨앗을 골라 거대한 숲을 가꾸었듯 글로벌 시장이라는 거친 땅에 뿌리내릴 좋은 씨앗을 더 많이 심어주길 기대한다.

 

-이인열 논설위원, 조선일보(2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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