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는 권리 아니다’]
[재택근무의 생산성]
‘재택근무는 권리 아니다’

미국 델은 2024년 전사 직원들에게 재택근무자는 승진에서 제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상당수 직원들이 원격근무를 고수하자 작년 하반기부터는 일정 거리 이내 거주자들은 무조건 주 5회 출근하도록 지침을 강화했다. 아마존도 작년부터 전원 출근제로 전환했다.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경쟁사로 인재들이 떠나는데도 “속도감 있는 결정을 위해서” 정책을 밀어붙였다. 스타벅스는 작년 1월 ‘주 3회 사무실 출근’을 의무화한 지 10개월 만에 출근일을 ‘주 4회’로 늘렸다. “이것이 스타벅스에 올바른 길”이라는 브라이언 니콜 최고경영자(CEO)의 말에는 결연함마저 엿보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흐름이 이어져 왔다. 신작 출시 지연으로 골머리를 앓던 엔씨(NC), 넥슨, 넷마블 등 게임업체들은 2022년 하반기 재택근무를 없앴다. 카카오가 2023년 3월 도입한 ‘오피스 퍼스트’ 근무제도 결국 서로 얼굴 보고 일하자는 것이었다. 한동안 출퇴근 시간을 아꼈던 직원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하지만 회사들은 낮아진 생산성을 회복하려면 유기적인 소통이 필수라 판단했다.
▷이런 변화 속에 재택근무 축소를 둘러싼 기업과 직원 간 갈등은 급기야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는 2022년부터 ‘주 2회’ 재택근무 선택권을 주던 것을 올 1월부터 ‘주 1회’로 바꿀 예정이었다. 그러자 민노총 소속인 이 연구소 노조가 법원에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최근 기각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확산한 재택근무와 관련해 나온 첫 사법적 판단이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은 근로계약서에 ‘근로 장소’에 대한 근로자의 권리가 명시돼 있지 않고, 재택근무 횟수를 줄인다고 해서 근로자들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남양연구소 직원들의 평균 재택근무 횟수가 이미 주 1회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즉, 노조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주장한 취업규칙의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안 소송의 결과가 아니라 해도, 이번 결정은 다른 기업 노사에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는 있다.
▷2019년 10만 명이 안 됐던 국내 재택근무자 수는 2021년 114만 명까지 급증했다. 팬데믹이 끝나자 작년 52만 명으로 다시 줄었다. 직원들에게 사무실 출근을 다시 종용하는 기업은 원격근무의 한계를 명확하게 실감했기에 그런 경영적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특수한 상황에서 일시 시행한 근무 형태를 직원들은 마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겨 왔다. “줬다 뺏는 격”이라며 발끈하는 게 그래서다. 다만 직장인이라면 ‘집에서 일할 권리’를 따지기 전 ‘출근할 의무’부터 지켜야 하지 않나. 법원의 이번 판단도 그런 의미로 읽힌다.
-김창덕 논설위원, 동아일보(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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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의 생산성
파리 특파원 시절 재택근무를 했다. 잠자는 방에서 사무실 공간으로 쓰는 거실까지 출퇴근 시간이 도합 30초도 안 됐다. 출근 준비 안 해도 되고 교통 체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하루 24시간이 28시간으로 늘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길어지니 피로가 누적돼 출퇴근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집이 더 이상 쉬는 공간이 아니었다. 성실하게 출근하는 근태는 하나도 반영 안 되고 오로지 '성과'만으로 평가받는 것도 만만찮은 부담이었다.
▶롯데지주가 주 5일 가운데 하루를 의무적으로 재택근무하기로 했다. '3일 출근, 2일 재택근무'를 채택한 게임 회사도 있다. 굳이 회사 나오지 않아도 '줌'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회의가 가능하다. 재택근무의 생산성이 사무실 근무보다 평균 1%밖에 하락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손정의 동생 손태장 미슬토 회장은 2년 전 방한 강연에서 출근길 인파로 꽉 찬 도쿄의 지하철 사진을 보여줬다. "20세기 사고방식으로 교통지옥을 해결하려 든다면 전철을 복층으로 만들거나 기차 칸 수를 늘려 손님을 더 태우는 해법밖에 없다.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 해법은 사무실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그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트위터 CEO는 직원들한테 "코로나 이후에도 무기한 재택근무해도 좋다"고 했다. 페이스북은 5~10년 내 전 직원 4만5000명 가운데 절반이 근무지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한다.
▶재택근무로 생산성은 별로 안 떨어졌다고 하나 얼굴 맞대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와중에 툭 튀어나오는 의외의 아이디어나 창의성은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미국 프린스턴대 고등과학연구소 시절 자신이 연구실에 나오는 이유가 27세 연하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과 함께 걷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주의 본질, 시간의 본질에 천착한 천재들끼리의 '산책 대화'까지는 아니어도 대면(對面) 근무의 장점은 분명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여럿이 모여 의견을 나눠야 창의적 발상이 떠오른다고 믿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사무실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성과를 냈느냐로 평가하는 성과주의가 확산될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다양한 근무 방식을 받아들일 만큼 기업 문화가 유연한가이다. 좀처럼 바꾸기 힘들었던 경직된 국내 직장 문화가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건 코로나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임에는 분명하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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