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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유영국을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이병철·이건희가 본.. ]

뚝섬 2026. 7. 15. 09:32

[화가 유영국을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이병철·이건희가 본 유영국]

 

 

 

화가 유영국을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한국 추상화 거장 보러 갔다가
아내 김기순 여사의 삶에 감동
서로에게 물드는 게 사랑임을
보여주는 작품 앞에서 공감도
 

화가 유영국이 심장 수술 후 아내 김기순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본 사과나무 두 그루를 그린 그림.'Work'(1977)./서울시립미술관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예술 세계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아내 벨라다. 몇 해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샤갈, 러브 앤 라이프’ 전시에 가서도 그 사실을 실감했다. 벨라와 연인이 된 기쁨을 표현한 ‘생일’, 아내를 향한 뜨거운 감정을 꽃에 둘러싸인 남녀로 표현한 ‘연인들’ 등을 만났다. 벨라는 샤갈이 온갖 고난 속에서도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붙잡아 준 삶의 나침반이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화된 조국을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는 샤갈에게 탈출을 독려한 이도, 유창한 불어 실력으로 남편의 파리 화단 입성을 도운 이도 아내 벨라였다.

 

연일 인파가 몰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를 보러 갔을 때도 올 초 타계한, 화가의 아내 김기순 여사를 떠올렸다. 유영국은 한국의 산을 기하학적 형태와 강렬한 색면으로 표현해 큰 사랑을 받았다. 그도 샤갈처럼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한국 화단의 거목으로 우뚝 섰다.

 

유영국은 결혼 후 고향 울진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술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1955년 전업 화가로 살겠다며 상경한 후 20년간 그림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당당했다. “내 그림은 나 살아생전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 말대로 그림은 파는 게 아니다”라며 “원하는 그림을 그리시라”고 했다. 생계를 직접 꾸렸고 목돈이 생기자 집 마당에 남편 화실을 지었다. 긴 기다림 끝에 1975년 처음으로 작품이 팔리고, 이어서 삼성 이병철 회장이 “추상화도 이 정도면 괜찮다”며 작품을 구입하자 김기순은 그제야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유영국은 2년 뒤 심장병으로 쓰러졌다. 심장 수술과 입퇴원을 수없이 반복하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남편을 아내는 정성으로 돌봤다. 이번 전시 4번 섹션에는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아내와 여행하고 돌아오던 길에 본 사과나무 두 그루를 그린 ‘Work(1977)’가 걸려 있다. 오른쪽 나무는 온통 붉은색, 그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나무는 연노랑·짙은 노랑·주황의 3색이다. 사랑은 서로에게 물드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림은 마치 “아내의 뜨겁고 붉은 마음에 나도 노랑과 주황색으로 물들었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연애편지 같았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저서 ‘살롱 드 경성’에서 “고단하지만 아름답게 삶을 영위했던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 읽힌다”고 썼다.

 

유영국은 생애 마지막 두어 해 붓을 들지 못해 우울해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울진에서 소나무를 가져와 마당에 심었다. 유영국은 별세 한 달 전 ‘유영국-한국 추상미술의 기원과 정점’전을 보러 갔다. 휠체어를 미는 아내에게 유영국이 물었다. “나,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아내는 남편과의 이별이 머지않았음을 알면서도 “그럼요”라며 다독였다.

 

이토록 지극한 사랑은 1943년 8월 31일 유영국을 처음 만난 날 시작됐다. 전시장에 비치된 ‘유영국 저널’ 창간호에 그날을 기억하는 김기순 여사의 생전 인터뷰가 실려 있다. 유영국이 ‘걸어오면서 아주 싱글벙글’하길래 왜 그렇게 웃냐고 물었더니 ‘함께 나온 친구가 놀려서 싱글벙글했다’고 대답했다. 작가 박규리는 ‘유영국,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에서 그 웃음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김기순의 심장 한복판에 들어왔다’고 썼다. 전시장에서 상영하는 동영상 ‘유영국: 무한을 걷는 사람’ 앞에도 관객이 구름처럼 몰렸다. ‘유영국의 생애를 지탱해 온 김기순 여사를 기리며’라는 마지막 문장 앞에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유영국 추상의 선과 색을 즐기러 갔다가 화가와 아내의 깊은 사랑 이야기도 한 편 보고 나왔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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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이건희가 본 유영국

 

미술계 원로에게 들은 얘기다. 1970년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화가 유영국을 찾았다고 한다. 국보급 고미술만 주로 모았던 이 회장이 추상화가 유영국을 찾은 것은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전통 문창살의 선과 면, 가을 산의 색감 같은 한국적 미학의 정수가 유영국 그림 안에 있다고 했다. 그때 유영국이 이 회장에게 그림 값으로 서울 기와집 한 채 값을 불렀다. 이 회장이 “한국 사람 그림이 왜 이리 비싸냐”고 묻자 그는 “한국 사람이 한국 그림을 대접해 주지 않으면 누가 귀하게 여기겠느냐”고 했다. 이 회장은 유영국의 1호 컬렉터가 됐다.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은 서울 자택 거실에 유영국의 ‘산’(1968년 작)을 꽤 오랜 기간 걸어두었다고 한다. 문짝 크기만 한 100호짜리 대작이었다. 수천 점 명화를 보유한 이 회장이 휴식을 취하는 집에 선택한 그림은 ‘유영국’이었다. 평소 “디자인이 국가 경쟁력”이라 강조했던 이 회장은 유영국 특유의 파격적인 비례와 보색 대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부자(父子)가 모두 유영국을 아꼈다.

 

▶오늘(19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국 근대 거장전 ‘유영국(1916~2002): 산은 내 안에 있다’가 열린다. 탄생 110주년 기념 회고전으로, 하이라이트는 그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의 푸르고 붉은 우리 산 그림들이다. 전업 작가를 선언하고 하루 10시간씩 작업에 몰두했던 시절의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오직 선, 면, 색채라는 미술의 본질로 구성한 ‘산’ 연작들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를 ‘한국의 몬드리안’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바로 느낄 수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깔들의 향연 같기도 하다.

 

▶비슷한 또래인 이중섭이나 김환기에 비해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졌지만,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움직인다. 비평가의 해설을 읽지 않아도, 미술사적 지식 없어도, 원초적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흔히 예술가라면 밤새 술 마시다가 문득 ‘그분이 오셔서’ 주는 영감으로 창작이 시작된다고 상상하지만, 유영국은 반대였다. 평생 아침 8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라는 철저한 규칙 속에 살았다. 평생 이성과 논리로 캔버스를 구성했다.

 

추상은 말이 없어 좋다.” 유영국이 이 장르를 선택한 이유라고 한다. 그는 인간의 비극은 말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의 그림에 시끄러운 세상 소음을 끄고 고요를 담았다고 했다. 결국 모든 건 나의 마음이 만든다. 말에 베이고 소음에 갇힌 시대, 감동적인 ‘산’들을 보면서 평온을 되찾는다.

 

-어수웅 논설위원, 조선일보(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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