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식보다 휴식이 보약이다]
[삼복더위 보양식의 ‘지존’은 염소?]
보양식보다 휴식이 보약이다
복날이면 삼계탕 집 앞에 줄이 늘어선다. 더위에 지쳤으니 잘 먹어서 기운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강하다. 계절이 바뀌면 우리 몸이 요구하는 영양도 바뀔까.
여름이라 더 먹을 필요는 없다
여름이라고 열량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니다. 추위에 오래 노출되면 몸이 열을 내느라 에너지를 더 쓸 수 있지만, 냉난방 환경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기초대사량은 계절에 따라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 연구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측정한 기초대사량은 겨울과 여름이 각각 하루 1667㎉와 1669㎉로 사실상 같았다. 기초대사량을 좌우한 것은 근육량과 체지방, 나이, 성별이었다. 계절과는 무관했다.
더위에 노출되면 땀을 많이 흘리기는 한다. 수분과 약간의 염분이 땀으로 빠져나가니 그만큼 채워야 한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스포츠음료나 짭짤한 국물 음식으로 따로 보충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갈증에 맞춰 물을 마시고 평소처럼 식사하면 충분하다. 일단 더위에 적응하고 나면 우리 몸은 땀샘에서 나트륨 재흡수를 늘려 땀 속 소금 농도를 절반 이하로 떨어뜨린다. 그러니 평소 나트륨 섭취가 많은 한국인이 복날 국물로 소금을 따로 보충할 이유는 없다. 무더위에 장시간 야외에서 일하거나 운동해 땀을 많이 흘렸다면 몰라도 말이다.
입맛이 떨어져 먹는 양이 줄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더운 환경에서는 음식 섭취가 조금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지만, 그 영향은 크지 않다. 복날 보양식이 생긴 배경을 식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더운 날 뜨거운 음식을 먹는 이열치열은 어떨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 흘린 땀이 증발하면 몸을 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습도가 높은 한국의 한여름에는 땀이 잘 마르지 않으니 효과가 반감된다. 온열질환을 피하는 데는 적절한 냉방이 음식보다 더 효과적이다.
보양식이 필요했던 시절
몸이 특별히 삼계탕을 부르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왜 복날에 뜨거운 한 그릇을 찾을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여름은 농사로 바쁜 철이었다. 가장 더운 날에도 온종일 논밭에서 일했고, 에어컨도 냉장고도 없었다. 땀은 쏟아졌다. 평소 귀했던 닭이나 고기를 복날에 먹는 일은 소진된 몸을 되살리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보양식은 여름을 위한 음식이라기보다 더위 속에서도 밖에서 일해야 했던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었다.
사실 우리가 복날의 상징으로 여기는 삼계탕은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다. 조선시대 복날의 대표 음식은 개장국이었고, 닭은 주로 백숙으로 먹었다. 닭의 뱃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가루 한 숟가락을 넣은 닭국은 일제강점기에 나온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에 처음 등장한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에 따르면 ‘계삼탕’이 외식 메뉴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다. 닭고기보다 인삼을 앞세운 ‘삼계탕’이라는 이름은 1960년대 후반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수삼을 전국으로 유통하고 탕에 통째로 넣을 수 있게 됐다. 1970년대에 삼계탕은 대표적 여름 외식 메뉴로 자리 잡았다. 냉장 유통과 양계 산업, 외식 문화가 함께 만들어낸 현대적 보양식인 셈이다.
칼로리가 부족하고 동물성 단백질이 귀했던 시절에는 보양식이라는 말에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고깃국을 먹고 기운을 차린다는 생각은 다른 나라에도 있었다. 18세기 파리에서는 먹으면 원기를 회복한다고 여긴 고깃국물을 ‘레스토랑’이라고 불렀다. 음식 이름이 나중에는 그것을 파는 장소의 이름이 됐다.
삼계탕 대신 과일과 채소?
지금은 다르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훨씬 많고, 부족보다 과잉이 더 흔한 시대가 됐다. 식약처 외식 영양성분 자료집에 따르면 삼계탕 1인분 1000g은 열량 918㎉에 단백질 함량이 115g으로 하루 기준치의 두 배가 넘는다. 여름에 입맛이 떨어진 노인이나 평소 식사가 부실한 사람에게는 열량과 단백질을 보충하기 좋은 한 끼다. 반면 평소 식사가 충분한 사람에게는 단백질 부족보다 과식과 비만이 더 현실적인 걱정거리다. 그래서 “복날 삼계탕 대신 과일과 채소를 먹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말 삼계탕은 낡은 보양식이고 과일과 채소는 새로운 보양식일까. 평소 채소를 멀리하던 사람이 복날 삼계탕 한 그릇 건너뛰고 채소를 먹는다고 식습관이 금방 나아지지는 않는다. 여름 한낮에 식구들과 모여 삼계탕 한 그릇씩 먹는 일이 몸을 해치지도 않는다. 그런 식사는 단순한 영양 공급이 아니라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복날 한 끼보다 평소 무엇을 먹고 지내는지가 건강에는 훨씬 더 중요하다.
복날에는 쉬는 게 먼저다
복날은 무엇을 먹느냐만 생각하는 날이 아니다. 음식문헌연구자 고영은 “복달임의 중심에 음식보다 휴식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마을 사람들이 한낮의 일을 멈추고 뙤약볕을 피하는 것부터가 복달임이었다. 쉴 때 별미를 곁들이기는 했지만 반드시 닭이나 고기일 필요는 없었다. 직접 잡은 민물 생선을 먹기도 했고, 수박과 참외를 나누기도 했다. 버무리나 개떡처럼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음식도 더운 날 잠시 쉬어 가는 즐거움을 더했다.
그렇게 보면 삼계탕 대신 과일과 채소를 먹자는 주장도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수박과 참외는 원래부터 복달임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훌륭한 수분 공급원이다. 수분뿐 아니라 칼륨과 식이섬유도 함께 섭취할 수 있다.
특히 갈증을 늦게 느끼는 노인은 더운 날 물과 수분 많은 음식을 의식적으로 챙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삼계탕을 밀어내야 할 이유는 없다. 한 끼 음식으로 즐기되 국물과 양을 적당히 조절하면 충분하다.
복날 메뉴에 정답은 없다. 삼계탕이든 수박이든 괜찮다. 하지만 음식이 복달임의 전부는 아니다. 너무 더운 날은 바깥일을 줄이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쉬어 가면 된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조선일보(2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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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 보양식의 ‘지존’은 염소?
보신탕부터 흑염소까지
복달임 음식의 흥망성쇠

경기도 하남 ‘까치산장’ 주인 차형자씨가 흑염소 배받이와 갈비 수육을 손으로 찢고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하남에 있는 흑염소 전문점 ‘까치산장’은 중복이던 지난 21일을 앞두고 흑염소탕 가격을 2만원으로 1000원 올렸다. 식당 주인 차형자씨는 “염소 가격이 말도 못하게 올랐다”고 했다. “염소 고기 가격이 지난해보다 30% 넘게 뛰었어요. 2020년만 해도 탕 한 그릇에 1만7000원을 받았는데, 손님들에겐 죄송하지만 이제는 2만원을 받지 않을 수가 없네요.”
염소가 개, 닭, 장어, 민어 등 쟁쟁한 강자들을 제치고 보양식계 지존 자리에 오를 기세다. 인기와 가격이 치솟고 있다. 한국흑염소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산지 염소값(생체)은 1kg 기준 거세·암염소 1만9000원, 비거세 1만7500원이었다. 크게 오르기 전인 2021년 7월 1kg당 거세 1만3000원, 비거세·암염소 1만1000원과 비교하면 평균 52% 상승했다. 염소 한 마리 무게가 평균 60~70kg인 점을 감안하면 마리당 120만원꼴이다. 5년 전만 해도 염소 한 마리 가격은 10만~15만원 정도였으니, 10배 정도 오른 셈이다.
◇개 밀어내고 왕좌 차지한 삼계탕
전통적으로 한국 보신 식문화의 중심은 개장(狗醬) 즉 개고기 국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개고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구하기 쉽고 저렴한 단백질원이었다. 19세기에 발간된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에는 개장국에 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때도 개고기를 싫어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개발된 게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은 육개장이다. 19세기 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육개장은 대구에서 꽃피웠다. 20세기 초까지 ‘대구탕’이라 불릴 정도였다.
서울과 호남에서는 민어가 개고기만큼 인기가 높았다. ‘서울에서는 복중에 민엇국으로 복달임해 온 식습관이 있다. 60세 이상이 되는 분들은 예부터 민어 등 물고기를 쇠고기 대신 즐겨 먹는다(1974년 3월 14일 자 조선일보).’ 민어는 1934년 어획량이 7만4000t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남획으로 급감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복달임 음식 대표 자리에서 밀려났다.
삼계탕은 1950년대 이후 외식으로 등장했다. 비슷한 음식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지만, 음식보다는 보약으로 인식됐다. 삼계탕이란 단어는 1910년 일본인들이 작성한 ‘중추원조사자료’에 처음 등장한다. ‘여름 3개월간 삼계탕, 즉 인삼을 암탉의 배에 넣어 우려낸 액을 정력약으로 마시는데, 중류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고 나온다.
요리로서 삼계탕은 ‘조선요리제법’ 1817년판에 나온다. 저자 방신영은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발과 날개 끝과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배 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 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에 물을 열 보시기쯤 붓고 끓이나니라’라고 적었다.

경기도 하남 '까치산장' 흑염소탕./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당시 삼계탕은 부자들만 먹을 수 있었던 약선(藥膳)음식이었다. 닭과 인삼은 비싸고 귀했다. 삼계탕 대중화는 인삼 전매가 풀리고, 양계산업이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다. 닭 배 속에 인삼 가루 대신 수삼(水蔘)을 넣은 삼계탕 전문점이 속속 문을 열었다. 최고의 보양식 타이틀을 바로 차지하진 못했다. 보신탕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신탕이란 이름은 1950년대에 등장한다.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저 식당에서 뭘 파는 거냐’고 묻자 보좌진이 차마 개고기 국이라 답할 수 없어 보신탕이라 부르게 됐다고 알려졌다”고 했다. 보신탕은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해외에서 논란이 됐다. 보신탕집은 서울 4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삼계탕은 때를 놓치지 않고 국민 보양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장어·민어·염소… 보양식 춘추전국
요즘 염소 가격이 치솟는 건 개고기 식용 문화가 차츰 사라지면서 대체품으로 염소 고기가 뜨기 때문.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라 불릴 정도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까치산장 차형자씨는 “흑염소 인기를 체감한 건 3년 전부터”라고 했다. “코로나를 이겨내려면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개고기는 꺼려진다는 거예요. 그런 손님들이 흑염소로 많이 전향하셨죠.”
염소 고기는 미주 한인사회에서 오래전부터 합법적으로는 구할 수 없는 개고기 대체육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김진출(78)씨는 “여기서는 한국에서 염소탕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부터 염소탕이나 염소전골을 먹으며 개고기 수육과 보신탕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고 했다. 염소 고기는 개고기와 맛과 질감이 비슷하다. 갈비나 배받이 부위를 수육으로 먹으면 개고기와 차이가 나지만, 얼큰하고 구수하게 양념해 끓이는 탕이나 무침은 구분하기 힘들다.
염소에 앞서 뱀장어(민물장어)와 갯장어(하모)가 삼계탕의 패권에 도전했다. 박정배 작가는 “뱀장어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먹어왔지만 반으로 갈라 간장양념을 발라 굽는 현재의 조리법은 일제강점기에 소개됐고, 1970년대 육식·보양식 문화가 본격화하며 퍼졌다”고 했다.

경남 고성 포교마을 '나포리횟집'의 갯장어 샤부샤부./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몇 해 전부터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던 갯장어가 뱀장어의 인기를 뛰어넘었다. 양식이 불가능한 데다 여름에만 잡혀 연중 먹을 수 없는 희소성, 양식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뱀장어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프리미엄’ 이미지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개처럼 이빨이 날카롭고 잘 물어 갯장어(개+장어)란 이름을 얻었다. 일본명 하모(ハモ)’도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ハ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갯장어는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사이에서 특히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한반도 남해안산이 일본산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방 이후로 한참 동안 남해안에서 잡힌 갯장어는 일본으로 전량 수출됐다. 전남 여수, 경남 통영·고성 등 남해안 일부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에서 갯장어를 몰랐던 이유다.
한때 잊힌 민어도 2000년대 중반부터 언론에 다시 소개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서해를 끼고 있는 전라도와 충청도, 서해에서 배로 올라올 수 있는 서울에서 주로 먹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민어를 찾으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다. 2014년쯤 민어 양식이 성공하면서 가격이 차츰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여름 대표 복달임 자리를 삼계탕으로부터 빼앗지는 못하고 있다.
박 작가는 “삼계탕은 주재료인 닭과 인삼의 생산·유통이 산업적으로 완전히 정착된 상태”라며 “염소는 물론 어떤 음식도 삼계탕을 끌어내리고 보양식 ‘존엄’ 자리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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