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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인간관계 최대치는 150명… ] [기독교 성인이 된 부처]

뚝섬 2026. 5. 26. 10:07

[의미있는 인간관계 최대치는 150명… ]

[기독교 성인이 된 부처]

 

 

 

의미있는 인간관계 최대치는 150명… 그 중 5명만이 절친한 사이

 

프렌즈

 

“사람 사이를 가꾸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의 말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큰 두뇌를 갖게 된 까닭은 많은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계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사회적 뇌 가설’이라고 부르죠. 맞는 말 같지 않나요? 우리는 종종 ‘친구가 왜 나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내 말에 혹시 기분 나쁘지는 않았을까?’라는 식의 관계에 대한 여러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살아가니까요.

 

관계를 가꾸는 데는 품이 많이 듭니다. 원숭이들도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데 많은 시간을 써요. 원숭이끼리 친근하게 행동하며 서로 친구 사이임을 확인하는 행동이지요. 사람도 비슷한데요. 말을 섞고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정을 쌓아갑니다. 하지만 원숭이가 하루 종일 털만 골라주며 지낼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도 온종일 사람들과 어울리기만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친구의 숫자가 한없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던바는 ‘던바의 수’라는 개념을 제시했어요. 부모·형제·배우자 등 가족을 포함해 사람이 맺는 의미 있는 관계의 최대치가 150명이라는 내용이지요. 그는 이를 다시 촘촘하게 나눠서 ‘5-15-50-150’이라는 관계의 법칙을 들려줍니다. 먼저 5명은 어깨에 기대서 울 수 있을 만큼 가장 가까운 사이를 뜻합니다. 여기에 10명이 늘어난 15명까지는 일상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관에 함께 가는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다음 50명까지는 파티같이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한 번씩 보는 관계이고, 마지막 150명까지는 결혼식처럼 누구에게나 평생 한 번 정도 있을 법한 행사에 부를 정도의 인연이라 할 수 있어요. 관계의 범위는 300명(지인)에서 1500명(이름만 아는 사람)으로 계속 넓어질 수는 있지만, 이 수준에 이르면 친밀함은 눈에 띄게 낮아져서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해요.

 

그렇다면 5명의 절친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로빈 던바는 사람들이 관계를 가꾸는 데 쏟는 시간의 40%를 가장 가까운 5명에게 쏟는다고 주장해요. 나머지 20%는 그다음으로 가까운 15명에게 쓰고, 이들을 제외한 135명에게는 나머지 40%를 쓴다고 해요. 한때 단짝이었다고 해도 연락과 만남이 뜸해지면 몇 개월만 흘러도 관계가 멀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진실한 우정을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로빈 던바는 몇 가지 핵심 법칙을 안내합니다. 상대와 중요한 소식을 공유하고,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도 그의 편을 들어주라고 말이죠. 친구가 감정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는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도움이 필요할 때는 자발적으로 도와주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서로 신뢰하며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로빈 던바의 관계의 원리는 우리에게 우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 조선일보(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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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인이 된 부처 

디볼트 라우버 공방, 맹인과 걸인을 만난 요사팟, 1469년, 종이에 잉크와 채색, 28.6×20.3㎝, 로스앤젤레스, J. 폴 게티 박물관 소장.

 

고귀한 왕자 요사팟이 백마를 타고 시종들에게 둘러싸여 궁 밖으로 나섰다. 처음에는 지팡이와 개에 의지해 길을 더듬는 맹인과 마주쳤다. 세상에 질병과 고통, 죽음이 있는 줄 모른 채 궁에서 안락하게 자라난 왕자는 천진한 얼굴로 맹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 앞에는 걸인이, 산 위에는 교수대가 보인다. 삶의 실체를 처음으로 목도한 요사팟은 깊이 고뇌했다. 때마침 은수자 발람이 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후 요사팟은 왕위를 버리고 광야로 나아가 고행의 삶을 택했다.

 

듣고 보니, 이 그림은 궁 안에 갇혀 자란 싯다르타 태자가 성문 밖에서 노인과 병자와 죽은 자를 차례로 보고 출가를 결심하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한 장면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는 유럽 옷을 입은 금발의 왕자가, 득도하여 부처가 되는 게 아니라 기독교인이 된다. 이 그림은 15세기 알자스에서 제작된 채식필사본 ‘발람과 요사팟’ 중 한 장면이다. 디볼트 라우버 공방은 인쇄술이 등장하기 직전, 귀족 고객을 겨냥해 서적을 대량 생산하던 곳이다.

 

‘발람과 요사팟’ 전설은 11세기 이후 유럽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널리 퍼져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기독교 성인전 중 하나다. 흥미로운 건 주인공 ‘요사팟’이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 즉 깨달음 이전의 부처를 가리키는 ‘보살’에서 유래했다는 점. 이 말이 인도에서 페르시아어, 아랍어, 그리스어를 거치며 ‘요사팟’이 됐다. 세속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수행자가 되는 부처의 서사가 청빈과 금욕을 강조하는 중세 기독교의 핵심 이상을 구현했던 것. 이렇게 해서 출신지에서 멀어진 부처는 자연스럽게 기독교 성인이 됐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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