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州), 720만달러에 산 알래스카]
[알렉산드르 바라노프]
[알래스카 조약]
미국 주(州), 720만달러에 산 알래스카
처음엔 '바보짓' 비난받았죠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51번째 주(州·state)로 편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어요. 실행 가능성과는 별개로, 이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베네수엘라가 40조달러(약 5경원) 규모의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과거에도 자기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을 미국 주로 편입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거대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1776년 독립 당시 미국은 동부 해안에 있는 13개의 주로 출발했어요. 이후 전쟁·매입·협상·병합 등을 통해 오늘날의 영토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순조롭게 미국의 주가 된 것은 아니었고 어떤 곳은 지금도 ‘미국 땅이지만 주는 아닌(준주·準州)’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해요. 오늘은 미국 영토 확장의 역사 속 흥미로운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과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미국의 여러 주(州) 등을 표시한 지도
1㎢당 5달러로 ‘알래스카’ 매입
1867년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거대한 땅 알래스카를 사들였습니다. 알래스카는 미국 북쪽에 있는 캐나다를 지나야 있는 지역이에요. 가격은 약 720만달러였어요. 알래스카의 면적을 고려하면 당시 매우 싼 가격이었답니다. 1㎢당 약 5달러를 지불한 셈이죠.
19세기 전반에 러시아는 아메리카 대륙에 알래스카를 비롯해 여러 식민지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러시아는 동유럽 크림반도에서 일어난 크림전쟁(1853~1856)에서 참패한 후 막대한 재정난을 겪게 됐고, 알래스카까지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미국에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러시아의 알래스카 매각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였는데요. 당시 미국 언론과 시민 일부는 이 거래를 비웃었지요. ‘쓸모없는 얼음 덩어리를 왜 샀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슈어드의 바보짓(Seward’s Folly)' 혹은 ‘슈어드의 얼음상자(Seward’s Icebox)‘라고 조롱했습니다. 알래스카는 춥고 황량해 농사도 어렵고 사람이 살기 힘든 땅처럼 보였거든요.
하지만 1890년대 알래스카 남동부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며 수만 명의 사람이 금을 찾아 몰려들었어요. 이후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알래스카는 미국의 중요한 에너지 자원의 보고가 됐습니다. 또한 알래스카는 냉전 시기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알래스카와 러시아 사이 가장 가까운 곳은 약 4㎞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 시대에 알래스카는 소련을 감시하는 미군의 핵심 거점 역할을 했답니다.
알래스카 지역은 1912년에는 알래스카 준주가 됐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권은 없는 등 제한이 있었어요. 알래스카 주민들은 ‘세금은 내는데 정치적 권리가 없다’며 주 승격 운동을 벌였고, 결국 1959년에 미국의 49번째 주가 됐습니다.


1867년 미국과 러시아가 알래스카 매매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왼쪽에서 둘째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알라모 전투에서 텍사스 반군이 멕시코군에 패배하고 있어요.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
멕시코서 독립했다 미국이 된 ‘텍사스’
오늘날 텍사스는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거대한 주입니다. 그런데 원래 텍사스는 멕시코 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1821년 멕시코는 스페인에서 독립했는데요. 멕시코 정부는 인구가 적은 북부 국경 지역을 개발하려고 미국인 이주를 허용했습니다. 문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미국인이 들어왔다는 점이에요. 1834년에는 3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텍사스에 이주했고, 멕시코 주민은 8000여 명에 불과했어요.
시간이 지나자 텍사스 지역에는 영어를 쓰고 노예제를 지지하는 미국계 주민이 늘어났습니다. 반면 멕시코 정부는 노예제를 금지하고 중앙집권적 통치를 강화하려 했어요. 결국 양측 갈등은 커졌고 1835년 10월 텍사스의 독립을 주장하는 ‘텍사스 혁명’이 시작됩니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바로 ‘알라모 전투’예요. 텍사스 반군은 멕시코군에 맞서 알라모 요새를 방어했지만 13일간의 포위 끝에 결국 거의 전멸했습니다. 약 200명이 희생됐지요. 군사적으로는 멕시코의 승리였지만, 이 사건은 오히려 텍사스 독립 세력의 상징이 됐답니다. 텍사스인들은 ‘알라모를 기억하라(Remember the Alamo)’고 외치며 결집했고 결국 1836년 4월 멕시코군을 격파해 독립에 성공했어요.
이후 텍사스는 약 10년 동안 ‘텍사스 공화국’이라는 독립 국가로 존재했습니다. 지금도 텍사스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강하게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1845년 텍사스는 결국 미국에 편입됐고 미국의 28번째 주가 됐습니다.
하지만 멕시코는 텍사스를 여전히 자기 영토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1846년 미국과 멕시코는 전쟁을 벌였고 미국이 승리해 오늘날의 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 등도 주로 편입했습니다.
과거 왕국이었던 유일한 주 ‘하와이’
푸른 바다의 휴양지로 유명한 하와이는 원래 독립 국가였습니다. 1778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유럽인 중 최초로 하와이에 도착했어요. 하와이 원주민 부족의 추장이었던 카메하메하 1세는 영국 문물을 받아들여 하와이를 통일하고 왕국을 세웠습니다.
19세기에는 하와이에서 미국 이민자들의 사탕수수 농장이 성장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졌습니다. 그러다 1893년 이들이 미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하와이 왕정을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합니다. 결국 이듬해 하와이 이주 백인들이 하와이 공화국을 수립했어요. 하와이 원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1898년 미국령이 됐지요.
그러던 중 미국·스페인 전쟁(1898)이 발발해 미국이 필리핀을 얻게 되면서 태평양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어요. 특히 미국은 태평양에서 해군 기지를 확보하려 했고 하와이의 진주만은 매우 중요한 군사 거점이 됐답니다. 하와이는 1900년 미국의 준주가 됐죠. 1959년에 정식으로 미국의 50번째 주가 됐는데요. 하와이 주민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답니다. 그래서 하와이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과거 왕국이었던 역사를 가진 주입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정해민 기자, 조선일보(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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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바라노프
모피 장수 출신의 초대 총독… '알래스카 왕'으로 불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의 대부분 지역에서 석유 시추를 허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해요. 약 9만3100㎢에 달하는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은 북극곰뿐 아니라 순록·물새 등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중요한 생태 공간인데요.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 구역에 석유 87억배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요. 많은 환경단체가 생태계를 해치고 원주민을 위협하는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답니다.
북아메리카 북서쪽 끝에 있는 알래스카주는 18세기 러시아 상인들이 개척했지만, 1867년 미국에 매각되면서 이후 미국 땅이 됐습니다. 알래스카를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은 모피 상인 알렉산드르 바라노프(1747~1819)였어요. 그는 잉카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처럼 과감하게 알래스카를 정복했지요. 바라노프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모피 무역으로 시작한 식민지 개척
러시아인들이 알래스카에 본격적으로 정착한 건 18세기 중반입니다.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1672~1725)는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1725년 탐험가 비투스 베링이 이끄는 탐험대를 파견했어요. 탐험대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해협(육지 사이에 껴 있는 좁고 긴 바다)이 있음을 확인했고 훗날 이곳을 '베링 해협'이라 이름 붙였지요.

1799년 러시아 식민지 알래스카의 첫 번째 총독에 임명된 알렉산드르 바라노프의 초상화(사진 왼쪽)예요. 바라노프는 알래스카 남동쪽 싯카섬에 러시아인 정착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알래스카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였어요. 사진 오른쪽이 1804년 벌어진 싯카 전투를 그린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1733년 두 번째로 파견된 베링 탐험대는 1741년 알래스카를 발견한 뒤 해달의 모피를 싣고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이 해달 모피가 아주 부드러우면서 따뜻하다는 호평이 퍼지면서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요.

해달 모피가 풍부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많은 러시아 상인이 알래스카에 모여들었어요. 곧 모피 무역소가 설치됐고 알래스카 남부 코디액섬에는 러시아인들의 정착촌이 건설되었습니다. 러시아 상인들은 알래스카 원주민인 알류트족을 시켜 마구잡이로 해달을 사냥하도록 했어요. 물론 그들에게 모피를 사냥해준 대가는 충분히 지급하지 않았지요.
무리한 포획이 계속되면서 해달의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자, 러시아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더 깊고 위험한 바다로 사냥을 나가도록 강요했어요. 양측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결국 러시아인들이 원주민을 학살하고 사냥 장비를 파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여기에 러시아인들에게 유래한 전염병이 더해지면서 알류트족 인구는 18세기 중반 2만5000여 명에서 19세기 말 2000여 명으로 10분의 1 이상으로 급감했지요.
◇알래스카 첫 총독은 모피 장수 출신
1799년 러시아 황제 파벨 1세는 알래스카를 개척하고 관리하기 위해 '러시아-아메리카 회사'를 설립했어요. 이 회사는 알래스카 모피 무역을 독점하는 특권을 얻는 대신 러시아 정부에 막대한 세금을 내야 했지요. 당시 알래스카에서 성공한 모피 상인이던 알렉산드르 바라노프가 이 회사의 총괄 경영자이자 러시아령 알래스카의 초대 총독으로 임명됐습니다.
러시아-아메리카 회사는 러시아 정부의 감독을 받았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또 당시 러시아가 프랑스 나폴레옹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바라노프는 알래스카에서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바라노프는 알래스카 남동쪽 싯카섬에 러시아인 정착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알래스카 원주민 틀링깃족과 전쟁을 벌였는데요. 이를 싯카 전투(1802·1804년)라고 해요.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바라노프는 모피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더욱 확실히 장악하고 '알래스카의 왕'처럼 군림했어요.
바라노프는 아메리카 대륙에 또 다른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원주민 탐험대를 파견했어요. 태평양 연안을 따라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진출했지요. 새로 점령한 식민지는 러시아 정부가 아닌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지배를 받았어요. 이 때문에 그는 '러시아의 피사로'라고 불리기도 해요. 잉카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탐험가 피사로처럼 알래스카를 정복했다는 뜻이죠. 바라노프는 1819년 총독 임기를 끝내고 러시아로 돌아가던 중 세상을 떠났답니다.
◇러시아, 알래스카를 매각하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러시아 상인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알래스카의 해달 개체 수는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모피로 인해 얻는 수익도 점점 감소했지요. 당시 러시아는 영국·프랑스 등과 크림 전쟁(1853~1856)을 치르느라 재정 상태가 크게 악화된 상태였어요. 러시아는 결국 미국에 알래스카를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1867년 3월 30일 러시아와 미국이 알래스카(당시 152만㎢)를 720만달러(현재 가치로 약 1억달러·1203억원)에 사고파는 조약을 체결합니다. 당시 미국 여론은 쓸모 없는 땅을 비싸게 산 것 아니냐며 부정적이었어요. 하지만 1890년대 말 알래스카 북부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1960년대 석유가 발견되면서 재평가되었지요. 알래스카는 1959년 49번째 주가 되어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답니다.
[알래스카 매입 반대했던 미국 여론]
러시아와 미국이 알래스카를 두고 매각 협상을 시작하자 미국 언론은 '얼음이 가득한 궤짝이 우리한테 왜 필요하냐'며 비아냥댔습니다. 특히 협상을 이끌던 윌리엄 수어드 미국 국무장관의 이름을 따 알래스카를 '수어드의 아이스박스''수어드의 바보짓' 등으로 조롱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하지만 미국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러시아 세력 확대를 막고 캐나다의 영토 확장도 저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를 강행했다고 해요. 이런 반대 여론 때문에 알래스카 매입 법안은 미국 상원에서 단 1표 차로 가까스로 통과했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조선일보(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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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조약
크림전쟁 후 재정난 빠진 러시아,
미국에 알래스카 거래 제안… 수어드 장관, 720만달러에 매입
'바보 같은 짓'이라 비난받았지만 이후 지하자원 발견되며 가치 폭등… 현재 가치 수조달러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국무장관으로 거대 정유 회사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인 렉스 틸러슨을 지명했어요. 틸러슨은 17년 전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정훈장'을 받을 정도로 러시아와 가까운 인물이랍니다. 틸러슨이 미국의 외교를 이끌게 되면서 그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요.
과거 러시아와 미국은 서로 영토를 사고파는 거래를 하기도 했어요. 당시 미 국무장관인 윌리엄 수어드(1801~1872)가 주도한 이 거래는 향후 두 나라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거래의 주인공은 바로 북아메리카 대륙 북서쪽에 있는 알래스카(Alaska)입니다.
◇러시아 모피 무역의 거점이 되다
'알래스카'는 알래스카 원주민인 알류트족의 언어로 '위대한 땅(또는 거대한 땅)'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한반도보다 7~8배 넓은 알래스카에는 약 1만년 전 북동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건너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867년 윌리엄 수어드(왼쪽에서 둘째) 미 국무장관과 워싱턴 주재 러시아 공사 예두아르트 스테클(오른쪽에서 셋째)이 알래스카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이에요. /위키피디아
이누이트족과 알류트족이 살던 알래스카는 1741년 안나 여제의 요청을 받은 덴마크 출신 탐험가 비투스 요나센 베링(1681~1741)에 의해 발견되면서 러시아제국의 영토가 되었어요. 이후 해달이 많은 알래스카로 러시아 모피 상인이 하나둘 이주하기 시작했고, 19세기 초 알래스카는 모피 무역의 거점으로 번성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1853년에 시작된 크림전쟁에서 러시아제국이 오스만제국과 영국·프랑스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에 패하면서 알래스카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어요. 크림전쟁 도중 연합군 함대가 캄차카 반도를 점령하자 러시아제국은 "우리 해군력으로는 시베리아 해안과 알래스카를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답니다. 게다가 과도한 모피 생산으로 해달이 멸종 위기에 처하면서 알래스카의 모피 무역도 전처럼 많은 돈을 벌어주지 못하고 있었어요.
◇720만달러에 알래스카를 매입
이런 상황에서 승전국인 영국이 알래스카를 빼앗으려는 조짐을 보이자 러시아제국은 영국과 사이가 좋지 않던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기로 결정했답니다. 영국에 거저 빼앗길 바에 적은 돈이라도 받고 파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크림전쟁 패배로 정부의 재정난이 심각했던 것도 러시아제국이 알래스카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선 또 다른 이유였어요.
러시아 측의 제안을 받은 앤드루 존슨 미국 대통령과 윌리엄 수어드 국무장관은 알래스카를 사들이기로 했어요. 이런 미국의 결정에도 영국이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과거 미국을 지배한 영국이 알래스카를 차지할 경우 다시 미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1867년 미국은 러시아제국과 협상을 통해 알래스카의 땅 1㏊당 5센트로 환산해 720만달러를 지불하고 알래스카를 사들였답니다(알래스카 조약).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내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왔어요. 당시 많은 사람이 "우리한테 왜 이렇게 큰 얼음 박스가 필요한 거냐"라며 알래스카를 사들인 정부를 조롱했답니다. 알래스카를 사들인 수어드 장관의 결정은 '수어드의 바보짓(Seward Folly)'이라고 불렸어요. 미국 사람들은 알래스카에 '수어드의 냉장고' '다 빨아먹은 오렌지' '북극곰의 정원'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붙이기도 했답니다.
◇'바보짓'이 '역사상 최고의 거래'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래스카는 '위대한 땅'으로 불릴 만한 반전을 선보였어요. 1897년에 금광이 발견된 이후 석유, 석탄, 천연가스, 철 등 각종 지하자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팽팽한 대립을 보인 냉전 시대가 열리자 알래스카는 군사적 요충지로도 거듭났어요. 미국은 시베리아와 가까운 알래스카에 미사일을 배치해 소련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답니다.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된 알래스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사는 주 중 하나로 꼽혀요. 최근에는 잘 보전된 자연환경이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되어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답니다.
현재 알래스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조달러라고 해요. 720만달러에 사들인 알래스카의 가치가 수십만 배 폭등한 것이죠. '수어드의 바보짓'이라 불렸던 알래스카 매입은 오늘날 미국 사람들에게 '역사상 최고의 거래'라는 칭찬을 받고 있답니다. 반대로 러시아 역사학자들은 알래스카 조약을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멍청한 짓'이라 한탄하고 있어요.
[알래스카를 향한 베링의 모험]
덴마크 출신으로 러시아 해군에 소속되어 있던 베링은 1724년 33대의 마차에 짐을 싣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했어요.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시베리아 동쪽 끝이 다른 대륙과 붙어 있는지 떨어져 있는지를 두고 갖가지 추측을 하고 있었답니다. 이에 황제인 표트르 1세가 베링에게 시베리아 동쪽 끝을 탐험해 답을 찾아내라고 지시한 것이죠. 약 9900㎞의 대장정을 거쳐 시베리아 동쪽 끝에 도착한 베링은 시베리아가 다른 대륙과 이어져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뒤 1730년 수도로 돌아왔답니다.
3년 뒤 베링은 "바다 너머에 땅이 있는지 확인하라"는 안나 여제의 지시를 받고 다시 시베리아 동쪽으로 갔어요. 1741년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던 베링은 우연히 알래스카를 발견하였지만, 곧 식량 부족과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답니다. 훗날 태평양을 탐험한 영국 해군 장교 제임스 쿡은 베링의 모험 정신을 기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 해협의 이름을 '베링 해협'이라고 지었어요.
-김승호 인천포스코고 역사 담당 교사, 조선일보(1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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