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世界-人文地理]

[러일전쟁이 바꾼 운명] [1조달러 클럽에 韓 기업이 둘]

뚝섬 2026. 5. 28. 07:42

[러일전쟁이 바꾼 운명]

[1조달러 클럽에 韓 기업이 둘]

 

 

 

러일전쟁이 바꾼 운명 

 

1904년 2월 3일 자 영국 잡지 '펀치(Punch)'에 실린 삽화. 러·일 양국이 조선 노인의 허리를 밧줄로 조이는 장면인데, '러일전쟁 와중에 조선이 엄중 중립(Strict Neutrality)을 선언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1905년 5월 28일 나는 포연에 휩싸인 대한해협을 바라보고 있다. 어제 오후에 불붙은 해전이 끝났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지휘하는 일본 함대의 완승, 러시아 발트 함대의 전멸이다. 이로써 러일전쟁은 ‘사실상’ 일본의 승리로 결정된다. 일본은 청일전쟁을 치러 승리한 뒤 얻은 요동반도를 러시아·프랑스·독일의 강압에 의해 청나라에게 반납해야 했더랬다. 이른바 ‘삼국 간섭’. 억울한 일본군 장교들은 줄지어 할복했고, 와신상담의 10년을 거쳐 이런 복수를 완성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국제 현실과 향후 세계사를 뒤흔든다. 근대 이후 동양 국가가 서구 열강을 상대로 거둔 초유의 ‘대규모’ 승리였으며 일본 군국주의가 본격적으로 폭주하게 되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의 요인에는, 태평양을 향해 남진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막으려는 영국 간의 ‘그레이트 게임’이 스며 있다. 영국은 ‘영광된 고립’이라는 자국 외교의 원칙까지 깨면서 ‘영일 동맹’을 맺어 일본으로 하여금 러시아를 대신 상대하게 한다. 영국이 수에즈운하를 열어주지 않자, 러시아 발트 함대는 7개월 동안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지나 동아시아를 향해 약 3만3000㎞를 항해해야 했기에 보급 부족, 무더위와 전염병 등에 시달리며 녹초가 돼 있었다. 그들이 대한해협에 이르러 마주한 것은 냉정한 적개심과 싱싱한 전투력으로 충만한 일본 함대였다.

 

만약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조선은 러시아의 식민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러시아 황제는 러시아에 퍼지던 혁명 세력들을 약화시키고 제국을 다잡을 만한 ‘적당히 작은 승리’가 필요했다. 그 제물로 만만하게 본 일본을 선택했다가 대패한 뒤 12년 만에 제정 러시아는 멸망한다. 한반도는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가진들 2, 3, 4위급에 포위돼 있다. 자고로, 지정학상 전쟁터이거나 분할의 대상이었다. 전쟁이 안 난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다음부터다. 중간자론, 조종자론 따윈 허상이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6-05-28)-

______________

 

 

1조달러 클럽에 韓 기업이 둘

 

미국 증시에서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약 1500조원)를 돌파한 기업은 애플이다.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지 42년 만인 2018년 아이폰과 앱 스토어로 대표되는 생태계의 폭발적 성장이 일궈낸 결실이었다. 이 액수는 당시 세계 17위권 안팎인 네덜란드·스위스·사우디아라비아의 한 해 GDP(국내총생산)를 능가하는 규모였다.

 

27일 SK하이닉스 주가가 9.3% 급등하며 ‘시총 1조달러 클럽’에 진입했다. 몇 시간 전 뉴욕 증시에서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이 클럽에 가입했고, 삼성전자는 얼마 전 가입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쾌속 행군이다. 1조달러의 상징성은 간단치 않다. 항상 제값을 못 받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마침내 끝나고 우리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1조 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글로벌 증시에서 지금까지 14개 기업만 허락받은 시총 1조달러의 멤버들은 대부분 AI 동맹들이다. 1위 엔비디아(5조2000억달러)를 필두로 알파벳, 애플, MS, 아마존까지 1~5위는 모두 미국 빅테크들이다. 사우디 아람코나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제외하면 대만의 TSMC, 미국의 브로드컴과 마이크론, 세계 시총 11위와 12위권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거의 모두 AI 반도체 연합군들이다.

 

▶뉴욕 증시에서 시총 10억달러는 1901년 미 철강(US스틸)이, 100억달러는 1955년 제너럴 모터스(GM)가 최초 돌파했다. 1000억달러는 1995년 제너럴 일렉트릭(GE), 5000억달러는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MS)를 거쳐 1조달러 애플, 5조달러 엔비디아로 이어진다. 철강(US스틸)에서 자동차(GM)로, 다시 가전·금융(GE), PC 소프트웨어(MS), 스마트폰(애플)을 넘어 AI 반도체(엔비디아)로 이어지는 계보는 인류 문명과 산업이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거울이다.

 

시총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린 아시아 국가는 한국과 대만뿐이다. 중국, 인도는 물론 일본도 없다. 삼성전자의 이익이 내년엔 일본 100대 기업 이익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라 한다. 한국은 미국을 빼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총 1조달러 기업 2곳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한때 시총 최강 기업이었던 GE나 엑손모빌, 노키아의 추락에서 보듯 증시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지금은 우리가 만든 반도체 없이는 세계의 AI 혁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위기를 견디며 멈추지 않았던 과감한 투자의 결실이다. 이를 소중히 지키고 키워나가야 한다.

 

-이인열 논설위원, 조선일보(2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