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굉장한 일]
[그놈의 오빠 타령, 오빠는 죄가 없다]
[한·영은 왜 폭군에 집착하나]
진짜 굉장한 일
살아서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게 굉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나는 늘 그런 느낌을 찾아 헤맸다.
—데니스 존슨의 소설집 ‘예수의 아들’ 중에서
좋은 시를 쓴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마냥 멋진 일로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건 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맞이한 최고의 기분은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급격한 감정 변화는 일상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고, 조만간 그런 시를 다시 못 쓰면 나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종의 금단 증상에 시달리게 된달까.
가장 건강한 정신은 어떤 좋은 일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어떤 나쁜 일에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가만히 관찰한 후 다음으로 넘어갈 뿐이다. 엄밀히 말해서 세상에 굉장한 일 같은 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소한 일상조차 실은 굉장한 것이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아닌가. 클리셰지만 진실이다.
-황유원 시인·번역가, 조선일보(26-05-29)-
______________
그놈의 오빠 타령, 오빠는 죄가 없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총괄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28일 서울 광진구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 앞에서 문종철 광진구청장 후보 지원유세를 하며 웃고 있다. /뉴시스
혈육지간 친오빠가 없던 내 기억 속 첫 번째 ‘오빠’는 장수 오빠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을까. 새로 이사 온 노란 머리의 장수 오빠가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오빠, 오빠” 하며 얼마나 따라다녔는지 모른다. 이름도 얼마나 멋진가. 장수. 오빠가 자취를 감춘 그 빈자리는 동방신기 재중 오빠와 빅뱅의 지용 오빠가 채웠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오빠라는 말을 입에 올릴 일은 줄었지만 듣는 일은 왕왕 있었다. “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면 돼.”
대개 남자들은 오빠라는 호칭에 약한 것처럼 보인다. 소녀시대가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라고 외치고, 아이유가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이라고 목청을 높였을 때 속절없이 마음이 녹아내린 전국의 오빠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한 40대 남성 지인은 “‘오빠’라는 단어를 들으면 일단 뭔가 수지 같은 연예인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설렌다”고 했다.
남자 연예인들을 분류하는 이른바 ‘오빠 논쟁’이 화제였던 적이 있다. 강동원은 오빠인가 아저씨인가. 유튜브에서는 여고생 대상 ‘오빠 테스트’ 콘텐츠가 유행처럼 번졌다. 주로 40대 연예인을 두고 평가하는 건데 이동욱은 오빠, 현빈은 삼촌이란 식이다. 남자들은 이왕이면 아저씨보다는 삼촌, 삼촌보다는 오빠라고 불리길 내심 바란다. 한 40대 지인은 “생각해보니 나도 ‘오빠가’라는 3인칭 화법을 몇 번 쓴 기억이 있다”며 “주로 소주 1병 이상 들어갔을 때”라고 고백했다.
비슷한 류의 오빠·삼촌 논쟁은 최근 선거를 앞둔 정치판으로까지 번졌다. 여당 대표가 불을 지폈다. 그는 초등학생 아이에게 나이 쉰에 가까운 국회의원 후보자를 가리키며 “오빠 해봐요”라고 했다. 이 영상이 퍼지자 대개 징그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30대 여성 지인은 “‘아동 학대’라거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거창한 말 대신 그냥 아저씨가 아저씨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통령을 제외하고 여당 정치인 중 구독자 수 1위라는 그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검색해보니 답을 알 것 같았다. ‘오빠’. 제목에 그 단어가 들어간 쇼츠가 1년 새 10여 건. ‘친절한 오빠’ ‘형님보다 오빠’ ‘아저씨? 노오~ 오빠’ ‘괜찮아유 그냥 오빠라고 불러유’ ‘오빠 사진 한 장 찍어줘’ ‘오빠, 이쪽으로 와바’ ‘그냥 아는 오빠예요’.... 이 정도면 오빠 중독자다. 학창 시절 586 운동권 문화 탓에 여자 후배들에게 오빠 대신 ‘형’이라 불렸던 한을 이제야 푸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오빠들은 이번 논란이 ‘억울’하다. 한 50대 대기업 임원은 “나도 오빠라 불리기 싫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이 나이에 오빠라고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했다. 한 40대 공무원 지인은 “주책맞은 할아버지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까지 다 오빠 소리에 환장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며 열을 냈다. 20대 후배는 “이제 오빠라는 단어도 서로 조심해야 하는 호칭이 된 것 같아 괜히 서글프다”고 했다. 오빠는 죄가 없다. 그놈의 오빠 타령에 목매는 오빠 호소인이 남자 망신 다 시켰다.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26-05-29)-
______________
한·영은 왜 폭군에 집착하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최근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극의 배후에서 영화의 긴장감과 서사를 이끄는 음험한 존재는 세조다.
수양대군과 한명회, 김종서, 살생부 그리고 가련한 단종으로 이어지는 계유정난은 역사 수업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 책의 단골 소재로 다루어져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든 수양대군의 쿠데타 이야기만큼은 재해석되고 여러 콘텐츠로 재생산될 것이다.
내가 이런 확신을 갖는 이유는 영국에도 세조와 견줄 만한 존재 ‘헨리 8세’가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나는 헨리 8세와 그의 부인 여섯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그에 대한 수많은 에세이를 써야 했다. 계유정난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영국의 대중매체 또한 헨리 8세 이야기를 조금씩 각색해 드라마나 영화로 꾸준히 만들어 왔다.
일부 영국 역사학자들은 헨리 8세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록 그가 인생 후반부에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나 훗날 잉글랜드를 황금기로 이끈 발판을 만들어낸 군주임을 주장해 왔다. 한국에도 경국대전의 기틀을 마련하고 경제발전을 이끈 세조의 업적을 강조하는 역사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헨리 8세는 욕망으로 가득한 냉혈한 살인자이자 배신을 일삼는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잉글랜드를 가톨릭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잉글랜드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었지만 그것은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나이 든 부인이 싫증 나면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부인을 참수시켰고 대신들마저도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무참히 죽이고 재산까지 몰수했다.
그 어떤 훌륭한 업적으로도 그들의 악행이 상쇄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국과 한국에서는 이런 포악한 군주들에 대한 배움을 강요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 영화 등으로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왜 한국인들과 영국인들이 좀 더 덕망 있는 군주에 집착하지 못하는 것일까?
Why Sejo Is the Korean Henry VIII..?
-팀 알퍼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5-29)-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얼음 녹지 않는 보온병의 비밀, '진공 상태'에 있다] (0) | 2026.06.03 |
|---|---|
| [미술시장과 東道西器] [남원 예향론(藝鄕論)] (0) | 2026.06.01 |
| [법조인들이 무속인을 찾아가는 이유] [툭하면 “신내림 받았어요”.. ] (0) | 2026.05.28 |
| [빛과 식물] ['다홍치마'는 이제 그만] (0) | 2026.05.24 |
| [카시오 시계.. 본질로 돌아가는 시간.. ] [남자의 시계] (0) | 2026.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