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과 東道西器]
[남원 예향론(藝鄕論)]
미술시장과 東道西器

김병종 화가의 작품 ‘화홍산수’. 전통적 의미의 산수화는 아니지만 실제로 보면 산수화를 체감할 수 있다. /김병종 화가 제공
재다호색(財多好色)이다. 재물이 많으면 ‘색(色)’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색은 여색(女色)이 아니라 그림과 미술품을 가리킨다. 인간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 가운데 눈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서 월등히 많다. 색계(色界)의 이미지를 인간에게 어필하게 만든 예술 장르가 바로 그림이고 미술인 것이다. 그래서 부자들이 색계를 좋아한다.
미국의 20세기 부자를 대표하던 록펠러 집안과 JP모건이 대표적이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소장하고 있던 그림들을 기부하기 위하여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다는 뉴스가 기억에 남는다. 홍보 사진 속 붉은 카펫과 자단목 책상이 놓여 있는 록펠러 사무실 벽면에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소녀’가 떡 하니 걸려 있는 모습은 미국 부자의 품격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자본주의 정점에 ‘그림’이 놓여 있구나! 록펠러 집안은 뉴욕에 MoMA(뉴욕현대미술관) 설립을 주도하면서 이제까지 프랑스 파리가 쥐고 있던 미술 시장의 중심을 뉴욕으로 옮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목민이 양떼를 따라 이동하듯, 미술 시장은 돈을 따라 움직이는 ‘색계의 유목민’이다. 미·중 패권 경쟁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미술 시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경제력을 키우면서 치바이스, 우창숴, 쉬베이훙, 리커란, 우관중, 장다첸 등 전통 화가들 작품이 경매에서 수백억 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그림은 돈이 말한다. 홍콩, 대만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화교 재벌들도 중국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중국 화가들의 작품이 비싸게 팔려야만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중국 그림값에서 피카소, 샤갈, 마티스에 대적할 정도가 되었다.
6월 중순부터 중국 광저우(廣州) 미술관에서 그림을 전시하는 김병종(73) 화백에 의하면, 중국 미술계의 최근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고 한다. 전통 산수화 화풍에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요소를 가미한 그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짬뽕’이 아니라 ‘하이브리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동도서기(東道西器)이고 중체서용(中體西用)이다. 시진핑 주석이 그의 그림을 선물 받았다고 해서 점수를 따고 들어간 김병종은 서울대 미대 교수 시절부터 ‘동도서기’의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다. 광저우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화홍산수(花紅山水)’ ‘풍죽(風竹)’이 그렇다. 20년 전 처음 만나 동도서기 논쟁을 하면서 그의 후반 운을 보았는데 ‘필야녹재기중(筆也祿在其中)’의 팔자였다.
-조용헌 동양학자, 조선일보(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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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예향론(藝鄕論)
화가 김병종(69)은 별호가 쌍권총이다. 왜 쌍권총이냐, 그림 그리는 화가이면서 글도 잘 쓰기 때문이다. 필야녹재기중(筆也祿在其中) 팔자다. ‘강호 동양학’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가 그의 그림을 놓고 가타부타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가 쓴 글은 나의 사정거리에 들어와 있다. 그가 예전에 쓴 책 ‘화첩기행’도 그렇고, 이번에 낸 ‘시화기행’을 읽다 보니까 대목 대목 통찰이 담긴 섬광이 번쩍거린다. 섬광이 없는 글은 글이 아니다.
또 하나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인생의 덧없음을 수시로 느끼는 자가 품어내는 페이소스가 묻어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다가 쌍권총을 차게 되었는가?” “내 고향 남원이 색향(色鄕)이다. 색은 풍요와 풍류를 가리킨다. 춘향전, 흥부전이 그 색에서 나왔다고 본다. 남원 바로 밑의 곡성에서는 심청전이 나오지 않았는가. 판소리도 식후사(食後事)다. 내가 그림 그리고 글을 쓰는 원동력은 남원에 배어 있는 컬러풀한 토양에서 배태되었다”.
미국의 재즈 음악이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되어 시카고에 가서 틀을 잡았고, 뉴욕에서 만개하였다. 판소리의 뉴올리언스가 남원이고 시카고는 전주인 셈이다. 대원군의 운현궁은 뉴욕이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메카가 남원이다. 그 이유는?” “남원은 지리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명창이 소리를 한번 토(吐)해 놓으면 ‘3년을 흩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폭포 밑의 공간이 항아리처럼 되어 있어서 소리를 연습하기 딱 좋은 지형이 많다. 그래서 명창들이 남원으로 모여들었다”.
어렸을 때 김병종 집 근처에는 명창 안숙선 누님이 살았다. 김병종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소리를 배워 보려고 도통동에 있었던 동편제의 강도근 명창 집을 찾아갔다. “너는 안 되겠다. 눈이 커서 안 되겠어.” 강도근은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공연 요청이 들어오면 옷을 깔끔한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파란 보리밭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중절모에 겨자색 명주 머플러를 휘날리는 장면이었다.

“어디 가세요?” “나 굿(소리)하러 가네.” 회갑 잔치나 집안 잔치를 할 때 소리꾼들을 불렀던 것이다. 김병종은 판소리가 토해 낸 예술혼의 연장선상에서 BTS를 바라다본다. BTS 창업자 방시혁의 뿌리가 남원 주생면이다. 방시혁의 아버지 방극윤(83)은 DJ 정권 때 차관급을 지냈고, 남원 주생면 태생으로 여기에서 수백 년간 세거하던 방씨다. 넷마블의 방준혁도 주생면 방씨 집안으로 알고 있다. 남원은 뿌리 깊은 나무였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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