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경상 흑자인데 환율 최악, 위험한 기현상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78.82포인트(5.54%) 내린 8,160.59에 장을 마감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529.7원)보다 9.4원 오른 1539.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힘입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기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어제 환율은 전날보다 9.4원 오른 1539.1원으로 마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17년여 만의 최고치다. 환율은 지난달 15일 1500원 선을 넘은 뒤 14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간이다.
올해 1~4월 경상수지 흑자는 1026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240억달러)의 4.3배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렇게 달러를 많이 버는데도 환율이 고공 행진하는 것은 중동 전쟁 불안으로 글로벌 달러 강세 현상이 나타나는 데다 올 들어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110조원 넘게 순매도한 영향이 크다고 한다. 경상수지 흑자로 번 달러의 70%가 외국인 순매도로 빠져나간 셈이다.
여기에 기업들이 수출 대금을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바꾸지 않고 해외에 재투자하려고 쌓아두는 것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 관세 압박으로 기업들이 해외 현지 투자를 늘린 영향도 있지만, 노란봉투법 등 반기업·친노조 정책이 국내 투자를 가로막은 측면도 있다.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원화 가치 하락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한다.
과거 환율이 1500원을 넘었던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국가 부도 위기가 고조돼 나라 전체가 패닉에 빠졌지만 지금은 위기감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닌 데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수출 호조로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환율은 방심해선 안 된다는 신호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고물가와 고금리라는 악순환을 낳고,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환율 상승의 혜택은 일부 수출 기업에 집중되는 반면, 고환율의 비용은 모든 국민이 나눠지게 된다. 특히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 등 취약 계층이 물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1% 올라 26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고물가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이 역시 고환율 부작용이다.
정부는 고환율 불안이 더 커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환율·고물가를 심화시킬 수 있는 재정 확장은 신중해야 한다. 수입 물가 급등이 인플레이션으로 번지지 않게 물가를 관리하고, 다가올 금리 인상이 한계 기업과 자영업자 연쇄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노동·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한다. 마침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음 총선까지는 2년 가까운 시간이 남았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유혹에서 벗어나 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사용했으면 한다.
-조선일보(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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