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00대 기업이 삼전만도 못하다?]
[삼성전자 주식을 살까, 압구정 현대를 살까]
日 100대 기업이 삼전만도 못하다?
“일본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스타 기업이 없다.”
최근 모임에서 만난 일본인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주식에 투자 중이라면서 한탄했다. 일본엔 요즘 뜨는 AI·반도체·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선도 기업이 없단 얘기였다. 한때 세계 반도체를 호령한 일본이 현재 그 자리를 꿰찬 한국을 바라보는 열패감이 묻어났다. “삼전닉스에 노후가 달렸다”는 그의 말에 ‘국뽕’이 차오른 것도 잠시,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불안감이 스쳤다. 삼전닉스가 있다고 한국 산업 전체가 일본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나. ‘그렇다’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2028년 이익 전망치(490조원)가 일본 100대 기업의 2024년 이익(400조원)을 넘는다는 온라인 글이 화제였다. 삼성의 숫자는 놀랍지만, 일본의 성장이 반영되지 않은 비교는 넌센스다.
일본엔 ‘조용하고 강한’ 기업이 많다. 최근 닛케이 지수도 사상 최고를 경신 중인데, 삼전닉스에 ‘몰빵’ 중인 우리와 달리 다양한 기업이 수혜를 보고 있다. AI에 집중 투자해온 소프트뱅크, 낸드 반도체 강자 키옥시아는 도요타를 뛰어넘을 일본 대표 기업으로 떠올랐다. 도쿄일렉트론·무라타·신에츠화학 같은 반도체 소부장뿐 아니라 사업 전환에 성공한 히타치·소니·후지쓰 등 전통 기업, 워런 버핏이 절대 팔지 않겠다는 3대 상사, 글로벌 3대 메가뱅크 등이 골고루 성장세다.
일본엔 포토레지스트(반도체 소재)처럼 세계 시장을 독점한 ‘급소’ 기술이 많다. 자동차 세계 1위 도요타는 중국 전기차 공세를 뚫고 어느새 판매량 1100만대를 넘겼다. 1만개가 넘는 매출 1000억원 이상 중견 기업은 대학생 취업률 98%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동안 ‘모노즈쿠리’(장인정신)에만 몰두해온 제조 기업은 자본 효율화, 디지털 전환, M&A로 더 강해지고 있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반도체·배터리·우주·바이오 등 전략 산업을 파격 지원 중이다. 현재까지 정부 돈 28조원을 태운 라피더스는 내년 첨단 2나노 반도체 양산을 준비 중이다. 수율이 문제겠지만, 반도체 공급망 분산을 위해 미국이 돕고 있어 전망은 어둡지 않다.
무엇보다 일본의 산업 경쟁력은 안정된 노사 관계 위에 축적되고 있다. 1990년대 장기 침체에 접어들며 ‘투쟁보다 협력’ 문화가 정착됐다. 경영난에 고용 유지가 어려워진 회사에 노조가 임금 동결을 제안하는 ‘운명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대기업 귀족 노조의 로또 쟁취 투쟁과 분배 논쟁이 번지고 있는 한국과 모두가 한곳을 보며 조용히 내공을 다지는 일본. 손흥민 같은 몇몇 스타 선수에 의존하는 한국 축구와 수십 명이 유럽 리그를 뛰는 일본 축구. 어느 쪽이 더 강할까. 훗날 삼전닉스가 중국에 추격당할 때, 우리는 일본 기업이 그랬던 것처럼 과감한 사업 전환에 나설 기술과 체력을 갖고 있나. 이런 생각들이 겹쳐 불안이 엄습했다.
-도쿄=류정 특파원, 조선일보(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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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주식을 살까, 압구정 현대를 살까

삼성전자 주식을 살까,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살까. 한국인에게 이 질문은 오랫동안 답이 정해져 있었다. 아파트였다. 외환 위기 때 수많은 기업이 한순간에 쓰러졌고,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며 주식으로 전 재산을 잃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반면 아파트는 어떤 위기에서도 결국 가격을 회복했다. 자녀 교육, 노후 보장, 신분 상승까지 해결해 주는 수단이었다. 주식 투자보다 아파트 투자가 더 믿을 만하다는 믿음은 세대를 거치며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도성장, 산업화, 도시화, 인구 증가가 동시에 압축적으로 진행되며 그 믿음이 더 굳건해졌다. 경제성장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금융시장은 충분히 성숙할 시간이 없었다.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는 부족했고, 기업 지배구조 같은 고질적 문제도 많았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기업 반열로 올라서는 동안에도 평범한 투자자는 대부분 손해를 보는 부정적 경험을 누적했다. 기업 성장의 과실은 오너 일가와 기관투자자만의 몫이었기에 자본시장은 기초적인 신뢰가 전제되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부동산이 차지한 것이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으며 학군과 입지라는 실물 가치로 설명되는 자산은 결국 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식 계좌보다 등기부등본이 더 믿을 만한 시대였다.
중국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지방정부는 토지 매각 수익으로 재정을 충당했고, 가계는 자산 대부분을 부동산에 집중했다. 헝다 사태 이전까지 부동산 개발은 중국 국민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부동산이 성장 동력이고, 가계 자산이며, 지방 재정이었다. 동아시아의 두 나라는 서로 방식만 달랐을 뿐 실상은 경제의 미래를 부동산에 걸어온 셈이다. 그리고 한동안 그 베팅은 틀리지 않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부동산 베팅
그런데 이제 오랜 성장 동력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 같다. 부동산 중심 성장 모델 자체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은 본질적으로 부채에 기대고 있다. 집값이 오르려면 살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살 사람이 있으려면 대출이 확대돼야 하며, 대출이 확대되려면 인구가 늘거나 소득이 증가해야 한다. 이 연결고리 중 하나라도 끊기면 전체가 돌아가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경제의 생산성 향상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값이 올라도 기업이 성장하거나 기술이 발전하거나 수출 경쟁력이 향상하는 것은 아니다. 부의 이전은 일어나지만, 부의 창출은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높은 레버리지, 세대 간 격차, 소비 위축은 필연적이다. 집을 가진 세대와 갖지 못한 세대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그 간극은 다시 소비와 투자 심리를 억누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서 오늘날 경제성장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엔진은 바로 자본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이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가 그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는 것이 그 메커니즘이다. 자본시장이 살아야 기업이 투자하고, 기업이 투자해야 성장과 고용이 만들어진다. 일례로 미국 중산층이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제도(401(k)), 뮤추얼펀드(회사형 간접투자 신탁), 상장지수펀드(ETF)로 자산을 쌓아온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애플이 성장하면 애플 주식을 담은 연금이 불어나고, 그 연금이 중산층의 노후를 지탱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동안 미국 중산층의 연금도 함께 불어났다. 기업 성장과 국민 자산이 자본시장을 통해 직접 연결된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과 중국의 부동산 중심 경제는 특정 시기와 조건에서만 유효한 방식이었다. 인구가 늘고 도시화가 진행되며 소득이 빠르게 오르던 그 시기에 맞는 모델이었다. 상황이 바뀌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고령화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가계 부채는 GDP를 웃돌고, 잠재성장률은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이자 부담은 소비를 누르고, 청년층의 자산 형성 기회는 낮아지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 논쟁까지 겹치며 “미래를 담보로 자산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헝다 사태 이후 부동산 침체, 소비 둔화,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동시에 불거졌다. 한때 성장 엔진이던 부동산이 이제는 리스크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부동산 하나로 성장과 노후를 동시에 감당하던 구조가 두 나라 모두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경제성장의 핵심 엔진은 자본시장에 있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해 성장하고, 투자자가 그 과실을 공유하는 메커니즘이다. 미국 중산층이 퇴직연금(401(k))과 펀드로 자산을 쌓아온 방식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성장하는 동안 중산층의 연금도 함께 불어났다. 기업 성장과 국민 자산이 자본시장을 통해 연결된 것이다.
자본시장은 단순한 투자판 아닌 미래에 대한 기대감
고령화사회에서 부동산의 단점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가격이 올라도 매달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다. 집을 팔아야만 현금이 생기는 구조는 은퇴 후 20~30년을 버티기에 충분하지 않다. 집은 일부만 떼어 팔 수 없기 때문이다. 20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은퇴자가 매달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결국 집을 통째로 팔거나 대출을 받는 수밖에 없다(cf. 주택연금??). 반면 주식과 연금은 배당과 분할 매도 등 장기 현금 흐름을 구축할 수 있다. 연금도 결국 장기적으로 자본시장 수익률과 맞닿아 있다. 고령화사회에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국민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 것인가는 전 세계 정부의 숙제다.
그래서 지금 밸류업, 중복 상장 규제, 자본시장 선진화 같은 정책이 나오는 건 증시 부양책 차원을 넘어서 기업 성장의 과실이 주주에게 제대로 귀속되는 시장 체계를 만들겠다는 시도다. 대기업이 알짜 신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다시 상장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한, 주식을 사도 투자자가 기업의 미래 성장에 제대로 올라타기 어렵다. 성장은 분리된 자회사에서 일어나고, 소외된 기존 주주는 그 과실을 누리지 못하는 구조다. 중복 상장 금지 정책으로 기업공개(IPO)가 일시적으로 주춤하더라도 시장이 주가 랠리로 화답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투자자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을 원한다. 삼성전자 주식을 사면 삼성의 미래에 함께 올라탈 수 있다는 믿음이 시장에서 형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지금 시장은 단순한 성장성보다 현금 흐름이나 글로벌 경쟁력 같은 가시적인 성장 가능성에 벨류에이션 프리미엄을 준다. 미국의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쏠림도 마찬가지다. AI 붐을 차치하고라도, 어떤 환경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 규모와 현금 흐름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래 불확실성이 클수록 돈은 검증된 자산으로 모인다.
물론 증시 랠리를 남의 이야기처럼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거나 시장과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주식 오르면 뭐 하나, 결국 가진 사람만 돈 번다’ ‘현실 경기는 어려운데 증시만 오른다’고도 한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단순한 투자판이 아니다. 자본시장은 소비 심리이자 투자 심리이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다.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고, 소비자가 지갑을 열고, 가계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결국 ‘앞으로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움직인다. 경제의 본질은 심리다. 사람들이 미래를 낙관할 때 소비가 살아나고, 기업은 채용과 투자를 늘리며, 자본은 다시 위험 자산으로 이동한다. 반대로 경제를 믿지 못하면 사람들은 현금을 쌓고 소비를 줄이며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산’으로 숨어든다.
-엄여진 팔구십(Palgusip) 대표, 연세대 경영학,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대표, 조선닷컴(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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