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 사모으는 이병장, '하닉' 저점 매수 노리는 김여사]
[수조 원대 갑부 철학자의 '행복론']
'삼전' 사모으는 이병장, '하닉' 저점 매수 노리는 김여사
주식투자자 1442만 시대
새로운 '세력'은 누구일까

전업주부 김수진(57)씨 가족은 모두가 ‘투자자’다. 김씨와 남편은 2016년쯤 주식 투자를 시작했고, 코로나 사태 때 본격적으로 자산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주식으로 채웠다. 기록적인 상승장인 요즘 김씨 가족 단톡방의 주요 대화 주제 역시 주식 투자다. 특히 재작년 제대한 아들(25)이 핵심 멤버로 합류했다. 김씨는 “아들이 군대에서 받은 월급과 그간의 용돈 등을 모아 주식 투자에 나섰는데, 빅테크와 기술주 등 요즘 뜨는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아 꽤 괜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며 “각자 공부한 내용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일종의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온 국민이 주식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31일 기준 주식(상장법인)을 소유한 개인은 1442만명으로 집계됐다.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주식 투자에 뛰어든 셈이다. K주식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의 경우 461만명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대략 국민 10명 중 1명꼴이다.

코스피 지수가 8800선을 돌파하며 최고치를 경신한 지난 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종가가 나오고 있다. /뉴스1
5~6년 전까지만 해도 주식 시장은 4050 남성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투자자층에서 성별·연령별 경계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일찌감치 투자에 눈을 뜬 ‘이대남’과 높은 수익률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김여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대남과 김여사의 유입은 대한민국 주식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운 핵심 요소로 꼽힌다.
투자 사관학교 된 요즘 군대
퀴즈 하나. 요즘 군인 월급이 얼마나 될까. 가족 중에 군인이 없다면 정확한 액수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병 75만원, 일병 90만원, 상병 120만원, 병장은 150만원쯤 된다. 최저시급에는 못 미쳐도 징병제 국가 중에는 최고 수준 급여다.
여기에 제대한 청년들의 목돈 마련을 돕는 ‘장병내일준비적금’ 제도도 있다. 매월 최대 40만원을 납부하면 정부가 55만원을 추가로 적립해준다. 18개월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다면 전역할 때 수중에 약 3000만원의 ‘시드머니’를 쥐는 게 가능해졌다. 참고로 20년 전 이병 월급은 5만4300원, 병장은 7만2000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투자 열풍에 동참하는 이른바 ‘병정개미’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2020년부터 휴대폰 사용도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돈과 시간, 휴대폰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셈.

2020년부터 군인들도 휴대폰 사용이 허용됐다. 서울역에서 군인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 /뉴스1
지난 4월 아들이 공군에 입대한 박모(52)씨는 “아들이 입대 전 아르바이트로 모은 용돈 500만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는데 벌써 50%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며 “군대에서도 틈틈이 투자 공부를 하면서 계속 돈을 불려가고 있다”고 했다. 군대에서는 주식 시장이 끝난 일과 후에야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휴가 등 가능한 때에 우량주를 사서 묻어두는 방식이 정석처럼 통한다고 한다. 예약 주문 기능이나 해외 주식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전역한 이준범(가명)씨는 “장교들이 적금 대신 미국 주가지수를 따르는 ETF를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식 투자를 시작했는데 군 복무 18개월간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며 “소액이라도 주식 투자를 하는 장병이 많았다”고 했다. 24시간 시장이 열려 있는 코인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서로 종목과 수익률 등을 물으며 주식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리딩방의 큰손 된 김여사들
이런 군인 아들 뒤에는 주식 투자로 노후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김여사’들이 있다. 주식 투자자 커뮤니티에는 ‘우리 아들이 곧 입대하는데 어떤 주식을 사놓고 가라고 할까요’, ‘군인 아들 계좌를 대신 굴리려고 하는데 어떤 종목이 좋을까요’ 같은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보험사에 다니는 김지영(44)씨는 최근 일흔이 넘은 친정 엄마와 주식 이야기를 하다 깜짝 놀랐다. 금융과 가까운 일을 하는 자신보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어머니의 수익률이 훨씬 좋았던 것. 김씨는 “엄마가 때때로 나는 들어보지도 못한 미국 주식 종목을 추천하기도 했고, 주식 용어를 사용하시는 걸 더러 보긴 했지만 이 정도로 ‘고수’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저녁마다 그날의 주식 시장과 이슈를 분석해 주는 라이브 방송을 듣는데, 강의료만 매달 1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김씨는 “엄마 친구들도 유튜브를 통해 주식을 공부하고, 이른바 ‘리딩방’이나 ‘정보방’ 같은 데 들어간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 했다. ‘아줌마가 애 업고 증권사 객장에 나타나면 끝물이더라’는 주식 시장의 격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셈이다.
중장년 여성들의 화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지난해 말 기준 거주지·성별·연령대별로 주식 투자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경기도 수원에 사는 50대 여성(4만6672명), 용인시 50대 여성(4만5838명), 수원시 50대 남성(4만3570명) 순으로 많았다. 5년 전만 해도 수원시 40대 남성(3만4463명), 서울 강남 40대 남성(3만4187명), 용인 40대 남성(3만3167명) 순으로 많았고, 상위 7위까지가 모두 남성이었다. 전체 주식 투자자 중 여성 비율은 2020년 42.7%였지만 지난해는 48.5%로 절반에 육박했다. 여성 투자자 비율은 계속 증가 추세다.
이른바 ‘그랜마 버핏’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익률도 좋은 편이다. 지난해 1~9월 주식 투자자 중 60대 이상 여성의 수익률이 26.9%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이어 40대 여성(25.9%), 50대 여성(25.7%) 순으로 중장년 여성이 상위권을 싹쓸이했다(본지·NH투자증권). 반면 30대 남성(19.8%)과 20대 남성(19%)은 하위권이었다.

퇴직금 날리고… 군장병 대부업체 신용대출 444억
하지만 투자 열기가 높아질수록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학자금·주거 독립·창업 준비금 등으로 요긴하게 쓰여야 할 김 병장의 돈이 애먼 데로 새어나가거나 사건·사고에 휘말리기도 한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조직 사회의 특징을 노린 ‘상관 사칭’ 보이스피싱 사건이 빈발하고, 자기 명의 계좌를 넘겨줬다가 불법적인 투자나 사기에 연루된 사례 등이 적발되기도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군 장병이 대부업체에서 빌린 신용 대출 잔액은 444억원으로 집계됐다. 현역병 대출이 242억원으로 장교·부사관 등 직업군인(158억원)보다 많았다.
군 관계자는 “빚투나 코인, 심지어 온라인 도박으로 빚을 지거나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들이 늘어 군대에서도 금융 교육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교육단체협의회에 따르면 2024년에 29만명, 작년엔 45만명의 군 장병을 대상으로 자산관리·재무관리·보이스피싱 대처 등을 다루는 금융 교육을 실시했다. 심재학 경교협 사무총장은 “군 복무 중 많게는 2~3번의 금융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며 “현장에 가보면 조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수업 참여도가 높다”고 했다.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중장년도 사기 위험에 노출된다. 올해 1~4월 금감원에 접수된 ‘핀플루언서(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금융 인플루언서)’ 관련 사기 17건 중 5060의 피해가 12건으로 70.6%를 차지했다. 1인당 평균 피해 금액은 약 1억8000만원, 많게는 3억8000만원으로 은퇴 자금을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 규모가 컸다. 유명 핀플루언서를 사칭해 불법 리딩방으로 유인하는 등의 수법을 썼다.
상승장이라고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코스피는 5월 기준 28.45% 치솟았지만 코스피 948개 종목 가운데 오른 종목은 12%(111개)에 불과했다. 86%(811개)는 이 대세 상승장에도 하락했다. 증시 활황의 단물은 ‘삼전닉스’ 계열의 소수에만 집중됐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장기 불황과 경제 침체에 따른 고통이 더 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쏟아지는 달달한 수익률 자랑은 언젠가는 끝날 ‘그들만의 잔치’라는 것. 안정적이고 건강한 자산 관리와 투자 마인드부터 무장하는 게 ‘금융 문해력’의 핵심일 것이다.
-김경화 기자, 조선일보(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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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원대 갑부 철학자의 '행복론'
지혜는 가난해야만 하는가
돈에 얽힌 세네카의 가르침

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세네카 동상. 코르도바는 세네카의 고향이다. /위키피디아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는 엄청난 부자였다. 가장 많을 때 그의 재산은 3억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군인 수십만 명의 연봉과 맞먹는 액수로, 오늘날로 치면 수조 원대의 자산가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돈 많은 이들을 부러워한다. 반면, 손가락질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나는 저렇게 되지 못하리라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질투 탓이리라. 세네카에 대한 로마인들의 감정도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철학자’였다. 늘 돈에 매달리지 말고, 검소하고 담담하게 살아가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왜 자신은 이토록 많은 돈을 움켜쥐고 있단 말인가. “입으로만 소박함을 외칠 뿐, 실제 삶은 탐욕에 사로잡힌 여느 사람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이런 공격에 꽤 시달렸던 세네카는 ‘행복한 삶에 관하여(De Vita Beata)’라는 글에서 부자인 자신에 대한 해명을 길게 늘어놓는다.
여기서 그는 “지혜는 가난해야 한다고 선고한 자는 아무도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정신적인 삶을 좇는다 해서 부자가 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돈은 더 많이 착실하게 모이곤 한다. 현자들은 돈을 벌어도 흥분하지 않고, 잃어도 담담하다. 오직 자신이 올곧게 처신하고 있는지,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지에만 신경 쓸 뿐이다. 세네카는 사기 등으로 더럽게 모으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나서서 “저건 내 거야!”라며 자기 몫을 주장하지 못할 정도로 수입과 지출이 정직하다면, 그런 재산은 아무리 많이 모아도 괜찮다고 주장한다. 진실되고 성실한 상인들에게는 절로 손님이 모여든다. 현자들에게도 그렇게 재산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세네카는 “미덕이 앞장서고 쾌락은 동행하게 하라”고 충고한다.
게다가 철학자들이 돈을 멀리해야 할 이유는 없다. 가난하기보다 부자일 때, 자신의 마음을 더 훌륭하게 다듬게 되는 덕분이다. 빈곤할 때는 세상에 주눅 들지 않는 담담한 태도를 갖추기도 버겁기만 하다. 반면, 부자일 때는 절제와 아량, 베풂 등 훨씬 더 많은 미덕을 펼칠 기회가 생긴다. 영혼을 훈련할 ‘운동장’이 한층 넓어지는 셈이다. 게다가 좋은 부자는 나누어 주는 일도 잘한다. 아무에게나 선심을 쓰지 않으며, 선한 이들과 좋은 사람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은 이들에게 공들여 도움을 준다. 도와줘도 낭비하며 더 타락할 뿐인 자들에게는 열어준 지갑이 되레 해가 됨을 잘 아는 까닭이다. 이렇게 현명한 부자들은 돈을 벌 때와 마찬가지로 쓸 때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을 익히며 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이런 부자가 있다 해도, 세상에는 여전히 그들을 욕하는 자들이 많다. “가식 떨고 있네. 결국은 돈을 더 벌려고 저러는 거잖아. 뒤로는 온갖 추잡한 짓들 다 할 거면서.” 이런 식의 막무가내인 빈정거림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네카는 한숨을 쉬듯 말한다. “그대들이 미덕과 미덕을 좇는 자들을 미워한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당신들의 태도는) 병든 눈은 햇빛을 싫어하고, 밤에만 다니는 짐승은 밝음을 피하려고 구멍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과도 같다.” 그들은 다른 이들도 자기처럼 무기력하고 원망 가득한 모습으로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의 못남과 추함이 도드라지지 않게 되는 탓이다. 그래서 뛰어난 이들을 끊임없이 깎아내리며 비아냥댄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서 가장 큰 해를 입는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일 터다.
물론, 철학자들도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기하는 마음은 언제나 현명한 부자들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려고 애쓰는 노력은 보지 않고, 현실의 부족한 모습만 들추어낸다. 그러곤 너희들도 다 똑같이 추잡한 족속들이라는 식의 비난을 그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진창 같은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네카에 대한 시기와 비난은 결국 잦아들지 않았나 보다. 그는 이렇게 푸념한다. “(재산을 모으기 위한) 노력을 차라리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이는 나를 적의의 화살이 쏟아질 표적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세네카의 많은 재산은 결국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 말년에 그는 제자였던 네로 황제가 내린 독약을 마셔야 했다. 가진 것들은 대부분 황제와 국가가 빼앗아 갔다. 세네카가 과연 자기 말처럼 떳떳하게 돈을 모았는지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산가가 아닌 철학자로 역사에 남았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네카는 흔들림 없는 담담함으로 재앙과 죽음을 받아들였다. 미덕을 좇으며 신(神)과 같은 평온한 정신을 갖추려 오랫동안 노력했던 덕분이다. 주식 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이다.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로 갈등을 빚는 회사들도 눈에 띈다. 뭉칫돈이 흘러다니는 시기일수록, 무엇이 내 삶을 온전하고 행복하게 이끄는지를 찬찬히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다. 좋은 삶은 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조선일보(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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