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PC방'에 열광하는 외국인들
젠슨 황도 방문한 PC방
문화 체험 코스로 급부상

프로 e스포츠 구단 ‘T1’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지하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외국인 모습.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9일 오후 3시쯤, 서울 홍대입구역 9번 출구 근처 PC방. 머리에 히잡을 두른 외국인 여성 3명이 좌석에 나란히 앉아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모니터 앞에는 깨끗하게 비운 라면 그릇과 주먹밥 접시가 놓여 있었다. 옆줄 좌석에서는 대만에서 온 여성 관광객 2명이 분홍색 게이밍 헤드셋을 착용한 채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위(26)씨는 “저녁에는 인근에 있는 다른 콘셉트의 PC방을 찾아 ‘PC방 투어’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 PC방이 외국 관광객 사이에서 이색적인 문화 체험 코스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 게이머나 일부 마니아층의 관심사에 머물렀다면 최근 들어 일반 배낭여행객까지 일정표에 ‘PC방 방문’을 추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깜짝 PC방 방문은 한국 PC방의 존재감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목 베개 지참하고 밤샘까지
PC방 인기는 글로벌 관광 플랫폼이나 여행 커뮤니티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외 유명 여행 상품 검색 사이트에는 “현지 한국인처럼 게임 문화의 중심에 푹 빠져보라”며 ‘서울 전통 PC카페 체험’ 등의 이용권이 판매되고 있다. 이용 시간 2시간에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포함한 상품이 6~10달러(약 9000~1만5000원)에 팔리는 식이다. 해외 가이드북에서는 비가 오거나 무더운 날 한국에서 즐기기 좋은 ‘최고의 실내 활동 공간’으로 PC방을 추천한다.
틱톡에서는 각국 관광객이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며 촬영한 방문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PC방 투어를 하며 시설을 비교·분석한 한 외국 유튜버 영상은 조회 수 302만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PC방에 외국인도 출입이 가능한가”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는데 진짜인가” 같은 질문이 꾸준히 올라온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외국인 관광 소비 중 PC방 등 ‘K놀이’ 소비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5.8% 늘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미국·일본 등 4개 국가 관광객의 국내 카드 소비 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7월 이들의 PC방 이용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명소를 도는 기존 관광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일상과 문화를 그대로 경험하는 ‘데일리케이션(일상 여행)’이 늘어난 결과라고 분석한다.
PC방의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가 꼽힌다. 우선 저렴한 비용 대비 훌륭한 인프라. 고사양 컴퓨터와 개인용 독립 좌석을 시간당 1000~3000원 수준으로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데다 냉난방까지 완비돼 있다. 외국인이 많은 홍대 거리나 이태원 등에서는 1만원 안팎인 PC방 밤샘 정액권을 끊어 헤드셋과 목 베개를 하고 잠을 청하는 외국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흐름에 안마 의자까지 설치했다는 한 PC방 직원은 “아예 대형 캐리어를 끌고 들어와 구석 자리에서 자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다양한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도 과거 ‘인터넷 카페’가 있었지만, 대부분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한 기능적 공간에 불과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확산 이후에는 그마저 자취를 감췄다. 한국 PC방에서는 좌석에 앉아 모니터 화면 클릭 몇 번으로 ‘소떡소떡(소시지·떡)’, ‘짜계치(짜파게티·계란·치즈)’ 등 간단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미국인 루카스(22)씨는 “떡볶이나 치킨 같은 한국의 ‘로컬 푸드’를 자리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 매력적”이라고 했다.
◇외국 관광객 PC방 소비 늘어
이 같은 PC방 열풍의 배경에는 높아진 한국 e스포츠의 위상이 있다.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세계 대회를 휩쓸면서 세계 게이머에게 한국은 e스포츠 ‘성지’로 인식되고 있다. 젠슨 황은 지난 5일 SK스퀘어의 프로 e스포츠 구단 ‘T1’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지하 PC방(T1 베이스캠프)을 찾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황제로 꼽히는 ‘페이커’ 이상혁 선수 등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e스포츠 발상지”라고 말했다.
9일 돌아본 T1 베이스캠프에서는 이상혁 선수의 대형 캐릭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T1 유니폼을 입어 보며 게임을 즐기는 외국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T1 관계자는 “금요일 밤 시간대에 특히 외국인이 많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국인에게 PC방은 한국 특유의 초고속 인터넷과 고사양 PC, 다양한 먹거리가 결합한 일종의 복합 문화 공간”이라며 “시각적 경험과 현지 밀착형 체험을 중시하는 최근 소비 성향과 맞물려 이 같은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조유미 기자, 조선일보(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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