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색]
[도시 상징 곡(曲)]
[서울시장이 하면 안 되는 일]
뉴욕의 색

뉴욕 닉스의 우승을 응원하며 파랑과 오렌지색으로 채색된 매디슨스퀘어가든 지하철 입구.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뉴욕’ 하면 떠오르는 색은 아스팔트와 빌딩의 회색, 그걸 배경으로 달리는 옐로우 캡들의 노랑일 것이다. 하지만 뉴욕의 공식 색상은 파랑과 오렌지다. 뉴욕 이전의 도시 이름인 ‘뉴 암스테르담’ 시절부터다. 맨해튼에 상륙한 네덜란드인들이 자신의 왕족 색이자 17세기 ‘왕자의 깃발(Prince’s Flag)’의 파랑과 주황색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거의 300년이 지난 1915년에 만들어진 뉴욕시의 공식 깃발에도 이 전통을 존중해 같은 색을 입혔다.
신뢰를 상징하는 파랑과 열정을 상징하는 오렌지는 보색이다. 얼핏 어색하고 명도나 채도에 따라 촌스러울 수 있지만, 세련되게 잘 적용하면 오렌지의 강한 밀도와 따뜻함이 파랑의 차가움을 보완하며 대비와 조화를 이룬다. 오렌지색 꽃이나 과일을 파란색 화분이나 접시에 담으면 잘 어울리는 이유다.

뉴욕 닉스(Knicks)의 선수들 유니폼. 맨해튼에 처음 상륙한 네덜란드인들이 선택한 파랑과 주황색을 팀의 공식 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농구팀 닉스, 야구팀 메츠 등 뉴욕을 연고로 하는 스포츠 팀들도 구단의 공식 색으로 이 조합을 사용한다. 특히 메츠는 뉴욕에 있다가 캘리포니아로 옮긴 야구팀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색인 파랑과 오렌지를 섞어 또 다른 뉴욕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지난주 뉴욕은 오랜만에 NBA 챔피언 등극을 즐겼다. 닉슨 대통령 시절인 1973년 이후 무려 53년 만의 우승. 결승 리그 기간 동안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비롯한 뉴욕의 마천루들은 파랑과 오렌지색으로 조명을 밝혔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경기장”이라는 매디슨스퀘어가든 앞 지하철 입구<사진>도 같은 색으로 채색됐다. ‘가든’(한국에서는 갈빗집의 대명사지만, 뉴요커들에겐 매디슨스퀘어가든을 뜻한다)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설렌다는 뉴요커들은 자랑스럽게 닉스의 파랑과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도시가 특정 색으로 정의되는 건 힘 있고 멋진 일이다.


뉴욕 닉스의 우승을 응원하며 파랑과 오렌지색으로 채색된 매디슨스퀘어가든 지하철 입구.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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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상징 곡(曲)
발전·분단·자유… 도시 대표하는 노래엔 역사 담겼죠
일본 가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가사를 쓴 하시모토 준이 8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이달 초 전해졌어요. 요코하마는 일본 수도인 도쿄 근교의 항구 도시인데요. 1968년 발표된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지금까지도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노래로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일본인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항구의 야경을 떠올린다고 해요.
이처럼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은 저마다 자신을 상징하는 노래를 갖고 있어요. 한순간 인기를 끌다 사라진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대를 이어 시민들과 함께한 노래도 많습니다. 공연에서 노래를 들으며 함께 즐거워하고, 옛 추억에 빠지기도 하죠. 노래가 이들에겐 ‘정체성’인 셈입니다. 그럼 오늘은 세계 대표적 도시들을 상징하는 노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요코하마, 개항의 역사
일본 가수 이시다 아유미(1948~2025)가 부른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2009년 요코하마항 개항 15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노래’ 1위에 올랐죠. ‘당신과 함께라 행복해요’ ‘여느 때처럼 사랑의 말을 불러봐요’라는 낭만적인 가사가 나오는데요. 하시모토 준은 요코하마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바라본 야경과, 프랑스 도시 칸의 밤 풍경을 떠올리며 작사했다 해요. 그래서 노래 속 ‘블루 라이트’는 단순히 푸른 불빛을 뜻하는 게 아니라, 바다와 항구, 이국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진 요코하마의 밤을 상징하는 표현이랍니다. 그렇다면 요코하마는 어떻게 이런 도시가 됐을까요?
요코하마의 역사는 일본의 개항(항구를 열어 외국 선박 출입을 허가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당시 증기로 움직이는 신식 군함을 이끌고 일본에 도착해 개항을 요구했답니다. 이에 일본은 여러 항구를 열어주게 됐는데, 요코하마는 1859년 개항했지요. 개항으로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이곳은 무역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일본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비단, 차(茶) 등이 요코하마를 통해 외국으로 나갔어요. 외국 상인, 외교관도 몰려들었어요. 미국·유럽인들은 이곳에 서양식 건물을 세웠습니다. 지금도 요코하마의 야마테 언덕에는 서양식 건축물이 보존돼 있는데, 이 때문에 요코하마는 일본 도시 중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진 곳으로 유명하죠. 요코하마는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일본이 세계와 만난 장소이자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지는 곳이었던 겁니다.
요코하마는 오늘날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항이에요. 밤이 되면 항구와 바다가 아름다운 조명으로 물들어요. 많은 사람이 이 풍경을 보며 자연스럽게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떠올립니다.


뉴욕의 마천루 모습. 가장 높게 치솟은 건물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입니다. 뉴욕을 상징하는 노래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엔 '꿈이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가사가 나오죠./미국 월스트리트역 벽 타일에 그려진 성벽. 과거 원주민의 공격에 대비해 벽이 있던 자리가 지금의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입니다.
기회의 땅 뉴욕
2009년 제이지와 얼리샤 키스가 발표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는 뉴욕을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예요. ‘꿈이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에선 네가 못할 게 없어’라는 가사가 나오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성공과 희망을 찾아 모인, 뉴욕의 역사와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욕의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626년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뉴욕 맨해튼섬에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식민지를 건설했어요. 당시 원주민의 공격에 대비해 마을 북쪽에 성벽(Wall)을 쌓았는데, 이 성벽이 있던 자리가 바로 오늘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Wall Street)가 되었어요.
하지만 뉴암스테르담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벌어진 경쟁에서 영국이 승리하며 이 지역도 영국 손에 넘어갔어요. 이후 도시 이름은 영국 요크(York) 공작의 이름을 따 뉴욕(New York)으로 바뀌었죠. 18세기 들어 뉴욕은 본격적으로 성장했어요. 곡물과 고기를 수출하고, 설탕·코코아를 들여오는 무역이 활발해졌습니다. 조선·목공·금융·보험업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19~20세기 뉴욕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어요. 유럽·아시아에서 수백만 명이 뉴욕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성공을 위해 새 터전을 찾은 사람들이죠. 이들은 공장 노동자, 상인, 예술가, 기업가가 됐습니다. 뉴욕은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세계적인 도시가 됐어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엔 ‘화려한 빛들은 네게 영감을 줄 거야’라는 가사가 있어요. 뉴욕을 자유와 가능성의 공간으로 표현하며, 뉴욕을 찾은 이들의 희망과 도전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사람들이 장벽 위에 서 있는 모습이에요./1996년 독일 우표에 실린 파울 링케. /위키피디아
역사와 함께한 베를린의 노래
독일 베를린을 대표하는 노래는 파울 링케(1866~1946)가 작곡한 ‘베를린의 공기(Berliner Luft)’지요. 파울 링케는 ‘베를린 오페레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곡가입니다. 오페레타는 주로 희극적인 내용을 다루며 중간에 연극처럼 대사를 하는 부분도 있는 ‘가벼운 오페라’를 가리키죠. 그는 1899년 오페레타 ‘루나 부인’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 속 행진곡인 ‘베를린의 공기’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이 노래는 밝고 경쾌한 리듬이 특징인데요. 당시 베를린 시민들은 이 노래가 활기찬 도시 베를린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대요.
당시 베를린은 급격히 성장 중이었거든요. 1871년 프로이센의 수상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하면서 베를린은 독일 제국의 수도가 됐죠. 공장이 들어서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베를린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는 냉전의 상징이 됐지요. 도시에 장벽이 세워지면서 동서로 갈라진 가족과 친구들은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가야 했죠. 독일이 통일된 1990년이 돼서야 베를린은 다시 하나의 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 베를린은 독일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부활할 수 있었답니다.
이처럼 도시가 갈라지고 다시 합쳐지는 동안에도 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던 노래가 ‘베를린의 공기’입니다. 지금도 매년 여름 베를린의 야외 공연장에서 열리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시즌 마지막 공연은 거의 예외 없이 이 곡으로 마무리됩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통해 베를린의 역사를 떠올리고, 도시의 활력과 시민으로서의 자부심도 느낀다고 합니다.
-정세정 옥길새길중 역사 교사/기획·구성=김민기 기자, 조선일보(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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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이 하면 안 되는 일
잡지는 개편(改編)을 한다. 개편은 책 따위를 다시 고쳐 편집한다는 의미다. 내가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는 개편이 잦았다. 편집장이 바뀔 때마다 개편을 했다. 판매량이 떨어질 때마다 개편을 했다. 반응 보고 개편을 다듬느라 또 개편을 했다.
출판 잡지 전성기가 끝나가던 시절이다.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자고 했다. 새로운 세대 독자를 끌어들이자고 했다. 누구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그래서 개편을 했다. 자주 했다. 너무 자주 했다. 독자들은 뭐가 개편됐는지도 잘 몰랐다. 어쨌든 개편을 했다.
때로는 10여 년 장수 코너까지 개편을 했다. 장수 코너를 없애면 눈에 띄기는 한다. 반응도 확실히 온다. 비로소 개편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뿌듯하다. 그렇다고 독자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판매량이 오르지도 않았다.
서울도 개편을 한다. 너무 자주 한다. 나는 광화문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데 종종 곤란함을 겪는다. 하도 자주 개편, 아니 재편된 탓이다. 도로는 중앙에 있었다. 양쪽에 있었다. 지금은 한쪽에 있다. 뭐가 더 나은 건지도 이젠 모르겠다.
서울 시장 예비후보였던 전현희 의원이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철거하겠다고 했을 때,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는 DDP를 전시성 행정의 대표 사례라고 했다. DDP는 생경한 디자인으로 호오가 꽤 갈리는 건물이다. 미테랑 대통령 고집으로 만든 파리 퐁피두센터처럼 말이다. 파리는 없애지 않았다. 품었다. 세월이 흐르자 그것은 파리가 됐다.
시장을 뽑았는데 시장은 뽑히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 재선거를 할 것 같다. 누가 되든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전직 편집장이 만든 코너라고 다 없앨 필요는 없다. 도시는 시민의 기억이 축적돼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기 구독자를 존중해야 한다. 차라리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광화문에는 오얏나무를 심자. 갓 끈도 함부로 고쳐 맬 수 없는 오얏나무 아래서는 정치인들도 좀 겸손해질 것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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