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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자유 전파한 '20세기 십자군'… ] [스위스의 .... 국민투표]

뚝섬 2026. 6. 19. 05:45

[세계에 자유 전파한 '20세기 십자군'… ]

[스위스의 ‘인구 1000만 상한’ 국민투표]

 

 

 

세계에 자유 전파한 '20세기 십자군'… 

 

루스벨트 "美는 민주주의 무기고"

1·2차 세계대전 참전
고립주의 버리고 유럽 전쟁 개입
1차 대전 후 민주 국가 두 배로…
나치·日 물리치고 민주주의 회복
공산 진영에 맞선 단독 패권국가

 

‘폭풍이 온다’ ‘질서 없음’ ‘다가오는 서태평양 전쟁’ ‘21세기 지정학’ ‘질서의 소멸’ ‘무극화 시대’…. 세계 질서와 패권의 변화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제목들은 모두 비장하고 불안하며, 거대한 변화와 혼돈을 예언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주체, 세계 질서를 유지해 온 주역이 바로 미국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승리,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확산이 역사적 필연은 아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것을 만들어 왔다. 그 역사의 첫 장은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이 열었다. 

1944년 6월 6일 아침,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미 육군 제1보병사단 병사들이 독일군 진지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 16만명이 상륙 작전을 개시했고, 이날 전투에서 미군 2500여 명을 포함해 연합군 4400여 명이 전사했다. /미 국립공문서관(NARA)

 

윌슨,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다

 

미국은 건국 이래 고립주의를 국시(國是)로 삼았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도 이를 당부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은 그 고립주의를 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둘러싼 이해관계로 잦은 대립과 갈등을 빚었다. 20세기 들어선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자기편을 늘리고자 하는 외교적 노력을 강화했고, 유럽은 삼국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과 삼국동맹(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으로 양분됐다. 1914년 6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후계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되며 유럽은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전쟁 발발 초기에 윌슨은 철저한 중립을 선언했으나 사실상 불가능했다. 다수의 미국인이 독일보다 영국에 우호적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영국은 중요한 교역 상대였다. 미국은 점차 영국과 프랑스의 군수공장 역할을 했다. 1916년 재선된 윌슨은 전쟁 개입을 모색했는데,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멕시코와 손을 잡으려 한 ‘치머만 전문(電文)’ 사건이 명분을 제공했다. 1917년 4월, 윌슨 대통령은 상하 양원 합동 회의에서 전쟁 선포를 요구하며 “우리는 세계의 민주주의, 자유,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생명과 재산을 바칠 수 있다. 신이 우리를 도울 테고 그 길밖에 없다”고 연설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선언이었다. 

1917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미 양원 합동 회의에서 1차 대전 참전 연설을 하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

 

전쟁 선포안은 의회에서 통과됐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버리고 개입주의로 나아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미국의 참전은 전쟁의 양상을 뒤집었다. 1918년 11월, 독일이 연합군에 사실상 항복하면서 1차 세계대전은 종료됐다. 전쟁 전 10여 개에 불과했던 민주 국가는 전쟁 후 두 배로 늘었다. 민주주의는 점점 확산됐다.

 

경제 공황 후 독재자들 전성시대

 

그러나 윌슨의 이상은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다. 승전국인 영국·프랑스·일본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더 불태웠다. 패전국 독일·오스트리아는 절망과 분노에 휩싸였다. 미국 의회가 국제연맹 가입을 거부함에 따라 윌슨이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틀로 구상한 국제연맹은 허수아비가 됐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공황은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을 파산 위기로 몰아넣었다.

 

1922년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권력을 손에 넣었다. 신생 민주 국가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에서도 독재정권이 들어서며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권력을 장악하자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차례로 점령했다. 스페인에서는 프랑코 장군의 파시스트 정권이 민주정부를 전복시켰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서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위기의 시대에 사람들은 허약한 민주주의 대신 강력한 독재자들에게 환호한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932년 만주를 정복하고 1937년 중국 본토로 진군을 시작했다.

 

히틀러가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을 휩쓸었다. 처칠이 이끄는 영국만이 나치에 맞서 싸우며 버텼다. 엄혹한 시기에 미국인 대다수는 다시 고립주의를 원했다. 루스벨트(1882~1945) 대통령은 기다렸다. 1940년 대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한 직후, 루스벨트는 “미국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무기고(the great arsenal of democracy)’가 돼야 한다”고 선언하며 중립을 포기하고 개입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여론도 변하기 시작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이 참전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다음 날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 의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미 국립공문서관(NARA)

 

루스벨트,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다

 

전시 동원 체제가 가동됐다. 루스벨트는 자유를 기초로 한 세계 질서를 제시하며 “고귀한 이념(자유)을 위한 승리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고 했다. 참전한 미국의 막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해 1945년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일본 제국주의는 패배했다. 다시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를 회복했지만 반쪽 승리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히틀러의 동맹이었다가 전쟁 도중에 적으로 돌아선 스탈린이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여러 나라에 독재를 수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고립주의로 회귀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진영을 결집해 공산 진영에 맞섰다. 냉전의 시작이었다. 이 기나긴 대결에서 미국이 이끄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승리했다. 냉전의 상징인 독일 베를린 장벽이 1989년 무너졌고, 소련은 1991년 해체됐다. 동유럽에서, 구(舊)소련에서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를 시작했다. 단독 패권국가가 된 미국은 세계화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세계화는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켰고, 미국 중남부의 많은 중산층을 빈곤으로 몰아갔다. 전쟁으로 악화된 재정적자가 미국 경제에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이런 불만과 경제 불안이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불러왔다. 2024년 재선도 이런 배경에서 이뤄졌다. ‘자유의 십자군’을 부르짖으며 세계 문제에 개입하던 미국은 이제 초창기의 고립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움츠러들고, 권위주의 정부와 포퓰리즘 정치가 위세를 떨치는 이유다. 경제적으로도 세계화 시대는 막을 내렸다. “겨울이 오고 있다”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슬로건이 현실화된 것이다.

 

누가 겨울을 견뎌내고 다시 봄을 맞이할 것인가? 냉철한 이성으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리더십, 신중하지만 위기에 단호히 맞서는 용기 있는 국민, 끊임없는 개혁으로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국가만이 그럴 것이다. 

 

프랑스 북동부 뫼즈-아르곤 미군묘지에 있는 비석. /송동훈 제공

 

[미국은 군인의 희생을 잊지 않는다]

 

“Time will not dim the glory of their deeds(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업적이 빛나는 영광은 희미해지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역의 미군 묘지와 기념비 여러 곳을 답사했다. 첫 방문지인 샤토티에리의 미군 기념비에는 위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으로 불린 격전지를 따라 늘어선 미군 묘지들마다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말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미 파견군 사령관이었던 퍼싱 장군이 전후 유가족들에게 전한 약속이었다. 동시에 미국의 굳은 맹세였다.

 

미국은 1923년 ‘미국 전투 기념비 위원회(ABMC)’를 세우고, 퍼싱 장군을 초대 의장으로 임명했다. 그때부터 미국이 참전한 전쟁이 끝날 때마다 전사자들의 묘지를 조성하고 기념비를 세워 그들의 희생과 헌신, 용기와 충성을 기렸다. 대부분의 묘지는 유럽과 태평양의 1·2차 세계대전 격전지에 세워져 있다. 이렇게 미국은 세계 곳곳에 군인들의 묘역을 보유한 유일한 나라다. 이는 오늘날의 세계 질서가 미군이 흘린 피 위에 세워졌음을 상징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송동훈 문명탐험가, 조선일보(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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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인구 1000만 상한’ 국민투표

 

스위스는 이민의 문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난민 수용이나 저숙련 노동자 유입에 관대한 이웃 나라들과 달리 스위스는 유럽연합(EU) 시민이 아닌 제3국적자의 경우 대체 불가의 고급 인력이 아니면 취업 비자를 받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외국인을 채용하려는 기업은 스위스와 EU 안에선 뽑을 인재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것도 연간 쿼터 내에서만 채용할 수 있다. 그런 스위스에서 이민 억제를 위해 인구 상한을 두는 극단적인 제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져 화제다.

▷우파 성향의 스위스국민당이 주도한 이 발의안은 910만 명인 스위스 인구를 2050년까지 1000만 명이 넘지 않도록 난민 수용과 이민을 통제하자는 내용이다. 스위스는 외국인 비중이 28%인데 이민자 증가로 2040년대 초엔 외국인 비율이 더 늘고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민자가 스위스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집값을 끌어올리며, 의료 교육 교통 시스템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 이 안건에 찬성하는 쪽 주장이다.

▷정부와 재계는 의료 관광 금융 등 산업 전반이 이민자 없인 돌아가지 않는다며 부결을 독려했다. 스위스는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여서 숙련된 노동력과 납세자 확보는 더욱 절실하다. 스위스는 자국 제품의 절반 이상을 EU로 수출하는데 EU 시민의 이동을 제한할 경우 EU 시장 접근이 어려워진다. 결국 이민 규제 강화는 스위스판 ‘브렉시트’로 자해적 행위라는 주장이 도시에서 먹히면서 농촌 지역의 압도적 찬성 여론에도 이 안건은 55 대 45로 부결됐다.

 

▷이번 국민투표 소식에 유럽은 초긴장 상태였다. 유럽 각국에선 반(反)이민 정책을 내건 우경화 세력들이 지지세를 넓혀 가고 있는데 스위스에서 인구 상한제가 채택됐다면 다른 나라에선 이보다 더 과격한 고립주의적인 정책들이 도미노 격으로 제기됐을 것이다. EU 시민에 대한 이민 규제 강화는 ‘단일 시장’과 ‘이동의 자유’라는 EU 체제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서는 10만 명이 서명하면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연간 약 4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데 이민 규제는 2000년대 들어 국민투표 단골 의제로 가결과 부결을 오가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트럼프 관세로 미국과 틀어진 스위스가 EU와의 관계를 해칠 정책을 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스위스는 이민자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덜한 편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빗장을 열고 닫으며 반이민 정서와 경제적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온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 인구 상한 제한이라는 전례 없는 안건에 45%가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이민 문제가 유럽의 화약고가 돼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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