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10년, 英 총리 잔혹사]
[싸우다 정든 영국·프랑스]
브렉시트 10년, 英 총리 잔혹사

마거릿 대처 11년 반, 토니 블레어 10년…. 과거 영국 총리들은 장기간 집권하며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의 회전문은 훨씬 빨리 돌아간다. 2024년 7월 집권한 키어 스타머 총리가 전격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이제 영국은 지난 10년 사이 7번째 총리를 맞게 됐다. 단명(短命) 총리 릴레이의 출발점은 10년 전 영국을 집어삼킨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였다.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가결한 이후 영국 총리직은 ‘독이 든 성배’가 됐다. 국민투표에 부쳤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곧장 사퇴했고, 후임 테리사 메이는 유럽연합(EU)과의 이혼 합의서를 들고 의회와 씨름만 하다 2019년 물러났다. ‘브렉시트 완수’를 외치며 등장한 보리스 존슨은 파티 게이트와 거짓말 논란 끝에 2022년 사퇴했다. 압권은 리즈 트러스였다. 대책 없이 대규모 감세안을 던졌다가 44일 만에 물러나 영국 최단명 총리의 오명을 썼다. 영국 최초의 인도계 총리 리시 수낵도, 14년 만에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스타머 총리도 브렉시트의 멍에를 극복하지 못했다.
▷브렉시트는 보수당 내부의 계파 갈등과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결합해 낳은 ‘실패한 기획’이었다. 당내 강경파들을 달래고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는 계산으로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의 승부수를 던졌는데, 판이 열리자 선동이 활개를 쳤다. 나중에 총리가 되는 보리스 존슨 당시 런던 시장이 이끈 EU 탈퇴파는 빨간 버스에 “우리는 EU에 매주 3억5000만 파운드를 보내고 있다”는 문구를 내걸고 영국 전역을 돌았다. 이후 거짓 뉴스로 밝혀졌지만 복잡한 진실은 가려졌고, ‘통제권을 되찾자’는 감성적 구호가 표심을 낚아챘다.
▷‘브렉시트 10년’을 맞은 영국의 현실은 암울하다. 통상·규제 정책의 자율성을 찾았지만 저성장, 무역 감소, 이민 증가, 정치적 혼란 등 잃어버린 것이 훨씬 많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브렉시트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6∼8% 깎였고, 투자도 EU에 잔류했을 때 예상치보다 12∼18%나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영국인 56%가 “EU 재가입을 원한다”고 답할 정도로 후회만 남았다.
▷핵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다. 10년 전 영국인들은 “경제가 힘드니 지긋지긋한 EU를 벗어나자”고 외쳤고,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제발 EU로 돌아가자”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포퓰리즘 처방은 결국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신중해야 할 국가 대사를 광장 여론의 도박판에 무책임하게 던져버릴 때, 한 국가가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는지 영국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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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다 정든 영국·프랑스
축구 열기가 가득한 한국과 영국에서 월드컵은 언제나 국가적인 관심사다. 모든 월드컵 경기가 충분히 흥미롭지만 양국 팬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는 따로 있다.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경기가 한일전이라면, 영국인에게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경기가 그렇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흐르는 적대감의 뿌리에는 피비린내 나는 오랜 전쟁사가 있다. 1차 세계대전으로 동맹국이 되기 전까지 두 나라는 유럽의 패권을 놓고 수없이 충돌해 온 앙숙이었다. 이제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하고 있지만, 양국 사이에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나는 영·프 관계를 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영국인에게 겸손은 최고의 미덕이다. 그들은 영국이나 영국 문화에 대해 자랑하는 것을 속물적이고 유치하게 여긴다. 속으로는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칠지언정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영국의 음식·대중교통·날씨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푸념하는 것을 즐긴다. 반면 프랑스인은 음식·예술·자연 등 프랑스의 모든 것이 우월하다고 믿는다.
이 차이는 작은 실험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인에게 “영어가 듣기 거북한 언어”라고 말하면 그들은 진심으로 맞장구칠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인에게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자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는 답이 보태질 것이다.
하지만 영·프 관계를 적대 관계로만 단정 짓기에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영국인은 그 어느 문화보다 프랑스 문화에 끌린다. 영국에서 교양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과 프랑스 문학에 대한 조예가 필수다. 반면 프랑스인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 그들은 영국인의 좋은 매너, 팝 음악, 낯선 이에 대한 친절에 매료돼 있다. 이렇게 양국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서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애증이 뒤섞인 부부처럼.
What Do the English and the French Really Think About One Another?
-팀 알퍼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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