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의대 보낸 집"… 부동산 시장에서도 잘 나가네
대한민국 욕망의 총체
부동산 매물에 담겼다
“의대 진학.” 대한민국 모든 맹모(孟母)를 자극하는 강렬한 문장. 며칠 전 경기도 분당의 한 구축 아파트가 매물로 나왔다. 설명란에 “층간소음 없고 공부 잘되는 집”이라는 소개와 함께 “의대 진학”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해보니 “아들이 여기서 서울 소재 의과대학에 합격해 현재 졸업반”이라며 “집 잘 나가라고 써놨다”고 했다. 이 동네는 학업 성취도 높은 학교가 밀집해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큰 학군지로 분류되지만, 실제 성공 사례까지 내세워 확실한 이사의 명분을 부추기는 차별화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성적의 꼭대기, 의대가 이제는 부동산 마케팅의 주요 수단이 돼가고 있다. 이달 초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에도 비상한 관심이 쏟아졌다. “매도인의 남편 분은 의대 교수님이고 자녀 분도 학생 때부터 여기서 자라 지금은 의사”라는 부동산 중개인 측의 부가 설명 때문이었다. “그만큼 복 있는 집”이라고 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얼마 전 대구 수성구 오피스텔을 내놓은 한 집주인은 “분양받고 아내가 의대에 임용된 기운 좋은 집”이라며 “이 지역 수능 최고 득점자가 배출된 단지인 만큼 입시생에게 최고의 집터”라고 했다.
수월한 거래를 넘어 고가의 ‘프리미엄’이 형성되기도 한다. 사교육의 상징,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아파트 한 채를 둘러싸고 지난 2월 부동산 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저층인 데다 급매로 나온 물건임에도, 똑같은 면적의 옆집보다 4억원 정도 비쌌기 때문이다. 중개인은 해당 매물을 “자녀 둘 스카이 의대 보낸 기운 좋은 집”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의대 보낸 집’으로 이사한다고 해서 똑같이 의대에 간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다. 한 학부모는 “철학관 가서 자녀가 ‘의대 갈 팔자’인지 묻는 부모도 있는 나라이니 가능한 현상 아닐까”라고 말했다.
다만 그 집이 명당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는 시각도 있다. 다른 요인은 차치하더라도 최소 동일한 공부 여건은 보장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현직 의사도 솔깃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올해 초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울 노원구의 한 학군지로 이사했다는 40대 의사 A씨는 “근처 아파트 매물을 살펴보다 매도인의 자녀 둘이 모두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중개인이 집터가 좋다고 하니 기분 좋게 계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년 연속 수능 만점자를 배출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일대의 경우 신흥 학군지로 급부상하면서 집값 상승세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교육과 아파트와 풍수지리가 결합한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 일종의 ‘개운(開運) 소비’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는 “가게를 차릴 때에도 전 주인이 잘돼서 나갔는지 여부에 따라 임차료가 달라진다”며 “원래 실력도 있고 의지가 강한 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아니면 집만 바뀌었다고 갑자기 성적이 올라가겠어요?”
씁쓸하지만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는 한 주택이 지난해 뜨거운 주목을 모았다. “2017년 재건축 이후 모든 집주인의 자녀들이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에 진학해 더 큰 성취를 이뤄냈다”는 소개 문구 때문이었다. 실리콘밸리 중심지답게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동네. 조롱과 비아냥이 빗발치기는 했지만, 온라인 부동산 중개업체 레드핀에 매물로 올라온 지 단 하루 만에 3만5000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그해 ‘최고 인기 매물’로 선정됐다. 결국 약 560만달러(86억원)에 팔렸다. 처음 호가보다 11억원이나 비싼 가격이었다.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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