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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死를 함께 품은 예술] [춤도 공공재가 될 수 있을까]

뚝섬 2026. 7. 1. 06:49

[生死를 함께 품은 예술]

[춤도 공공재가 될 수 있을까]

 

 

 

生死를 함께 품은 예술 

 

덥다. 그러고 보면 나는 유독 뜨거움과 인연이 깊다. 기상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한 1994년 그해, 나는 말 그대로 불구덩이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요리를 다루던 콜드 키친에서 핫 키친으로 자원해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하필 기절할 만큼 덥던 그해였다.

 

3년 차 초보 요리사이던 내가 옮긴 곳은 펍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두 곳을 한꺼번에 책임지는 주방이었다. 주방장의 오더가 떨어지면 번개처럼 준비해야 한다. 그 순간의 나는 ‘주방장의 신경세포’였다.

 

그땐 더운 줄도 몰랐다. 전쟁 같은 두어 시간이 지나서야 더위가 실감 났다. 일을 마치면 바지에는 엉덩이부터 밑단까지 하얀 줄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땀에 전 옷이 불 앞에서 마르기를 반복하며 생긴 소금 자국이었다. 그걸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샤워실에서 찬 물줄기가 얼굴을 때리고 온몸을 타고 흐르면 그 느낌에 전율했다.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음식이란 생(生)과 사(死)를 함께 품은 모순의 예술이 아닌가!’ 아마도 살아 꿈틀거리는 문어를 찜통에 넣은 날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자고 다른 생명을 거두어야 하는 것이 마음을 짓누른 적이 많았다. 송어 수백 마리를 잡아 훈제한 날 밤에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산 재료를 손질할 때마다 속으로 말을 건넨다. ‘미안하다. 대신 너를 가장 멋진 요리로 만들어 줄게. 부디 좋은 곳으로 가거라.’ 예(禮)란 어쩌면 상대보다 나 자신을 위해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동학의 지도자 최시형에게 한 신도가 물었다. 사람도 만물도 모두 한울님이라면, 돼지나 닭을 죽여 먹는 것은 한울님을 죽이는 일이 아니냐고. 그가 답했다. 한울님이 한울님을 먹고 한울님으로 한울님을 기르는 것이니 괜찮다. 다만 풀 한 포기라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그렇다! 세상에 하찮은 음식은 없다. 나의 한 끼를 위해 어느 생명은 자신의 육신을 온전히 내놓는단 말이다.

 

-유재덕 파불루머, 조선일보(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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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도 공공재가 될 수 있을까 

 

이제는 플레이어도 없지만 여전히 소장중인 무용영상자료들. /정옥희 무용평론가

 

교수님의 보물은 VHS 무용 테이프였다. 조교 시절 나의 중요한 업무는 수업 시작 전에 비디오를 정확한 장면에 맞춰 놓았다가 수업이 끝나면 서둘러 회수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엔 그럴 만했다. 작품 영상은 귀했고, 무용 이론 수업은 영상 없이 성립하기 어려우니까.

 

세월이 흘러 VHS는 DVD로, DVD는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영상의 홍수 속에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질 낮은 영상과 짧은 홍보용 클립이 넘쳐나지만 정작 동시대 중요한 작품의 영상은 드물다.

 

이유는 분명하다.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무용은 오랫동안 저작권이나 재산권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어렵게 만든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를 빼앗기는 일을 겪고 나면 영상 공개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만난 한 안무가는 아이디어를 도용당한 후 소셜미디어에서 한 장면을 15초 이상 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사이 공공의 영역은 황량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작품 영상이 개인의 하드디스크와 비공개 링크 속에 머문다.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접근할 수 없다. 자료관에 기증된 자료들조차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춤의 초원은 푸르지만 이를 가로막는 울타리가 점점 높아지는 기분이다.

 

최근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이 뜻밖의 선언을 했다. 내년부터 웹사이트를 열어 자신의 작품 영상과 인터뷰 등 각종 자료를 공개하고 자유로운 활용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자료를 공개한다고 해서 저자성이나 저작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며, 웹사이트를 일종의 작품으로 제시했다. 중요한 것은 창작물이 개인의 소유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 예술가의 작업은 수많은 사람의 도움 위에서 가능해진다. 선후배 및 동료와의 교류, 관객의 관심, 공공 지원 제도와 사회적 인프라가 없다면 작품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벨은 오랫동안 공공의 지원을 받아 작업했으니 그 성과의 일부를 시민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의 선택은 예술 작품이 보호받아야 할 사유재산인 동시에 공동체를 풍요롭게 할 공공재일 수도 있음을 제시한다.

 

춤에는 소유하려는 욕망과 나누려는 욕망이 공존한다. 무용계는 오랫동안 전자의 부족을 경험하며 저작권 확립에 몰두해왔고,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후자의 빈곤 또한 고민해야 한다. 나누지 않는 춤은 사라진다. 공유되지 않는 작품은 하드디스크나 클라우드 속에서 잊히고 다음 세대의 상상력에 닿지 못한다. 내가 벨의 웹사이트를 기다리는 것도 영상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작업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의 공지문. 자신의 작품 영상과 인터뷰 등 자료를 무료로 다운로드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

 

-정옥희 무용평론가, 조선일보(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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