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양서의 국내 범람을 우려한다]
[독서교육 집중 학년]
일본 교양서의 국내 범람을 우려한다
[朝鮮칼럼]
日 사회 진단서들이 공공 담론 되기도 하는데 한국 현실에 유효한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우리 시각으로 진단하는 지적 기반이 약해진다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이태경기자
지식과 정보의 원천으로서 책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평이 언론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신문은 뉴욕타임스다. 매주 일요일 독립 섹션으로 발행되는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출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막강하다. ‘신문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 메이저 신문들은 토요일마다 대형 서평란을 배치하는데 전통적으로 공론장 형성과 시민 교양 증진이 주목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 신문의 서평 지면이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한국 저자들의 신간이 큰 비중을 차지할 때가 드물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본 책 한국어판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2024년의 경우, 우리나라의 신간 도서 가운데 번역서가 16%를 차지했는데, 그중 절반 정도는 일본어 원서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었다. 분야별로는 만화나 실용, 문학 계통이 가장 많고 순수 학술 쪽이 가장 적다. 그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 중간 난이도의 교양서적인데,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 이런 책이 신문의 서평 대상으로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의미가 있으면서도 너무 어려워 독자를 잃어버리지도 않고 너무 쉬워 권위를 잃어버리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본 출판물이 우리나라 서점가에서 활황(活況)을 누린 지는 오래되었다. 그것이 “일본 식자(識者)들이 우리의 지식 전반을 깔보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김원우 ‘일본 탐독’). 우리나라는 양질의 교양 도서를 자체 생산하기보다 외국, 특히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학문적 성과를 보통 사람과 공유하려는 저술 문화가 일찍부터 발전해 왔다. 여기에는 대학교수나 연구자, 언론인과 평론가, 재야의 고수 등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문제는 번역을 통해 일본에서 건너온 교양서적들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부작용이다. 2000년대 이후만 해도 ‘지방소멸’ ‘하류사회’ ‘격차사회’ ‘무연사회’ ‘저성장시대’ 등의 제목이나 부제를 단 일본 사회 진단서가 국내에서 잇따라 큰 반향을 일으켜 왔다. ‘잃어버린 10년’이나 ‘잃어버린 30년’을 말하는 책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단순한 번역서를 넘어 공공 담론을 만들기도 하고 학술어나 정책어(政策語)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두 나라가 닮았다고 해서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 더욱이 이런 류의 위기 서사는 한국의 미래와 관련하여 부정적 예언 효과를 낳을 위험성이 없지 않다.
또한 국내에서 잘나가는 일본의 교양서는 사회 현상을 설명하면서도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중시하고, 사회 문제에 직면하기보다 삶의 기술을 강조하며, 세상을 향한 공분 대신 조용한 체념이나 건조한 관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사회의 거시적·구조적 측면을 외면한 채 ‘자기 계발’ 관점이나 ‘관계·소통’ 프레임에 빠지기 일쑤다. 이러한 미시적 발상이 작금의 한국 사회 분석에 과연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일본식 교양서 특유의 감각적·미학적 접근이 우리 나름의 현실 인식에 도움을 줄까, 아니면 방해가 될까?
오리지널 자국산 인문·사회 교양서가 많지 않다는 사실, 설령 있더라도 국내 독서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지 않다는 사실, 책을 멀리하는 전반적 풍토 속에 그나마 존재하는 교양 독서의 수요를 일본을 위시한 외국산 도서 번역물이 대신 충족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우리 고유의 시각에서 고민하고 진단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을 약하게 만들기 쉽다. 영향력 있는 교양서가 사회적 담론의 의제를 촉발하거나 매개한 적 자체가 우리에게는 거의 없다.
선진국일수록 수준 높은 자국어 교양서가 출판 생태계의 핵심 축을 이룬다. 어차피 독자 수가 제한적인 학술서 시장과 별개로 일반 독자를 위한 광범위한 교양 도서 시장이 존재한다. 대중과의 거리두기를 학자의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없거니와 사회 저변의 독서 문화도 뿌리가 깊다. 교양서의 가치는 개인적 차원의 지적 성장이나 인격 함양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사회 역량과 더불어 한 나라의 문화적 주체성과 자신감을 가늠할 수 있는 국격 지표라는 점에서도 중요하기 그지없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조선일보(2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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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육 집중 학년

성공한 창업가들은 대개 책벌레들이다. 일론 머스크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하루 10시간씩 독서에 몰두했다. 9세 땐 브리태니커 같은 백과사전류 두 세트를 정독했다고 한다. 젠슨 황은 하루도 읽기를 거르지 않는데 그의 자서전 작가는 “비범한 사업 전략은 모두 지독한 독서에서 나온 것”이라고 썼다. 하루 600∼1000쪽을 읽는 워런 버핏은 “지식은 복리(複利)와 같이 쌓인다”고 했다.
▷독서에도 ‘마태 효과’, 즉 빈익빈 부익부 법칙이 적용된다. 어릴 적부터 많이 읽은 아이들이 문해력이 빠르게 발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교과 지식을 쉽게 습득한다. 반면 독서량이 부족하면 갈수록 배움에 흥미를 잃고 ‘국포자’ ‘수포자’ ‘영포자’가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선 자발적 독서(reading for pleasure)량이 많을수록 읽기뿐만 아니라 수학과 과학 성적도 높게 나온다. 독서량은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보다 성적에 더 큰 영향을 주는 변수다.
▷얼마나 읽으면 될까. 미국의 9∼11세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2023년)에서는 자발적 독서 시간이 길수록 지능지수, 언어능력, 학업 성적이 높았고, 주의력 결핍이나 스트레스 같은 정신 질환 발생률은 떨어졌다. 그런데 독서 시간이 일주일에 12시간을 넘어가면 이 같은 증감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사회적 교류, 수면, 운동 같은 다른 중요한 활동에 할애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적정 독서 시간으로 주당 12시간을 제안했다.
▷지난해 정부 조사 결과 한국 성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8분, 초중고교생은 70분이었다. 국영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늘고 있는데 문해력 저하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PISA에선 한국 학생들의 사실과 의견 식별 능력이 OECD 회원국 평균을 한참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급 문해력이 떨어져 왜곡된 정보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2일 ‘매일 아침 10분 책 읽기 운동’을 펼치고, 초 3·4학년과 중1, 고1을 독서교육 집중 학년으로 지정해 읽기, 토론,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독서교육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배경이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베스트셀러 ‘시적 정의’에서 독서, 특히 문학을 읽는 것은 타인의 삶을 경험함으로써 그를 나와 같은 인간적 품격과 취약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공감적 참여’이며, 이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고 했다. 자극적 디지털 콘텐츠로 물렁해진 지적 근력뿐만 아니라 공감 근육을 키우는 데도 책 읽기는 필수라는 뜻이다. 요즘 학생들의 말과 행동이 거칠어진 배경에도 배움의 근본인 읽기의 소홀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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