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생긴 일]
[피아트의 도시 토리노]
도쿄에서 생긴 일

일본 서점에서 책을 사면 꼭 듣는 말. “커버를 씌워 드릴까요?” 어릴 때 신학기에 교과서를 받으면 동생이랑 열심히 커버를 씌웠던 기억이 나는데, 일본에서는 서점 직원이 놀랍도록 빠른 손놀림으로 그 정성을 대신해 준다. 백 년 넘는 전통이 있는 의식이다. 손님의 책이 집에 가는 길에 더러워지지 않도록, 독서하는 동안 자신들의 손길로 보호받는 느낌이 들도록. 대형 서점에 입사하면 한 달 내내 책 싸는 교육을 받는다고 하니, 과연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나라답다. “네, 씌워주세요” 하고 호텔로 돌아와 새로 산 책을 꺼내자, 단아하게 얼굴을 가리고 앉은 모습이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같다. 독자가 한 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책이라는 꽃은 진정한 개화를 시작하는 것이리라.
어제는 도쿄의 한 서점에서 신간 출간 기념 북토크가 있었는데, 일본 독자를 직접 만나는 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이러다가 심장이 멎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가슴이 뛰고 긴장되었다. 그런 나를 환하게 웃게 만들어 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은 사인할 때 다가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요, 우연히 문학관에 갔다가 작가님이 2014년에 쓴 글을 봤어요. 근데 그게 너무 좋아서 자다가도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날 다시 가서 전부 필사를 해왔어요.”
그러면서 글씨가 빼곡한 종이를 내미신다. 그 글이 12년 전 내가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친구 부탁으로 작은 소식지에 쓴 에세이였다. “그 후로 쭉 좋아했습니다. 내일도 오고 내일모레도 오겠습니다.” 긴자, 진보초, 시모키타자와에 사흘 동안 예정된 행사를 모두 예약하신 모양이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오래전, 내가 뿌린 꽃씨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뿌리내려 조용히 자라고 있었구나. 나는 이 한 분을 위해서라도 평생 글을 쓸 수 있겠다, 싶어 울컥했다. 우린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물을 주고 햇빛이 되어 꽃을 틔워주는 존재다.
-정수윤 작가·번역가, 조선일보(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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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의 도시 토리노

피나코테카 아그넬리(Pinacoteca Agnelli) 미술관 옥상. 차의 생산라인을 아래서부터 위로 올리면서 진행, 마지막 완성품을 옥상에서 시험주행하는 공정의 ‘수직공장(Vertical Factory)’ 구조물이 남아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의 주도(州都)는 토리노(Torino)다. 국토를 동서로 관통하는 포(Po)강의 시작점으로 알프스 풍경과 18세기 건축, 잘 포장된 광장들로 경관이 멋진 도시다. 무엇보다 1899년 지오바니 아그넬리가 창업한 피아트(FIAT)로 유명하다. 자동차 이름 자체가 ‘토리노에서 생산한 이탈리아 국민차(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의 약자다. 오늘날 이탈리아에서 1위, 세계 6위의 자동차 기업이다.
1900년 첫 피아트 공장이 지어지고 기술자 35명이 자동차 24대를 만들었다. 피아트 생산이 시작되면서 도시는 몇 배 성장했고, 이탈리아 남부로부터 많은 인력이 이주해 왔다. 그 역사를 반영하듯 토리노 시민들은 지금도 노동자의 옷으로 대표되는 청바지를 많이 입는다. 패션에 진심인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피나코테카 아그넬리(Pinacoteca Agnelli) 미술관 내부. 피아트의 목재주형이 전시되어 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1930년 피아트는 포드자동차의 기술적 도움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수직 공장(Vertical Factory)’을 지었다. 차의 생산 라인을 아래서부터 위로 올리면서 진행, 완성품을 옥상에서 시험 주행하는 공정이다. 건물 구조도 이에 맞추어 짜여 있다. 혁신의 상징이던 이 건물은 세월이 지나 공장으로서 수명을 다하고, 1990년 렌조 피아노의 디자인으로 쇼핑몰, 영화관, 레스토랑 등이 포함된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 안에 있는 피나코테카 아그넬리(Pinacoteca Agnelli) 미술관은 건물의 역사를 반영하듯 피아트의 목재 주형을 전시하고, 차를 지상 층으로 내리던 램프를 이용, 공간에 적합한 설치미술을 순회 전시하고 있다.
이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옥상공간이다. 과거 신차를 시험 운행하던 트랙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정원을 조성했다. 여기서 몬테 비소(Monte Viso) 봉우리를 중심으로 알프스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도시의 배경이 된다. 청바지 입은 토리노 시민들은 이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산책을 즐긴다.

피나코테카 아그넬리(Pinacoteca Agnelli) 미술관 옥상. 과거 신차를 시험운행 하던 트랙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다양한 식물과 허브가 심겨진 정원을 만들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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