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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1년 1책' 속사정] [책 읽는 사무라이, 日 근대화를 이끌다]

뚝섬 2026. 7. 10. 10:20

[영국인 '1년 1책' 속사정]

[책 읽는 사무라이, 日 근대화를 이끌다]

 

 

 

영국인 '1년 1책' 속사정  

 

1813년에 발표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아름답고 당당한 성격의 엘리자베스, 그리고 부와 교양을 갖춘 다시(Darcy)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들의 주변 인물들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국인들 사이에 휴가 이야기를 할 때 등장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무슨 책 가져갈 건데?” 휴가 중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사진으로 남기느라 바쁜 한국인에게는 영국은 독서광으로 가득한 나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 현실은 반대에 가깝다. 여러 설문조사에 따르면 꾸준히 책을 읽는다고 응답한 영국인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최소 한 권은 읽는다고 한다. 바로 여름휴가 때 읽는 한 권일 가능성이 크다. 선베드에 기대앉아 읽는 책이 빠지면 영국인의 여름휴가는 완성될 수 없다. 영국 서점가는 크리스마스 직전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간은 대체로 침체돼 있지만 6~8월엔 지중해의 태양 아래 독서하는 사람들 덕분에 매출이 소폭 오른다.

 

그렇다면 영국인은 휴가 중 어떤 책을 읽을까? 셰익스피어와 디킨스를 배출해 낸 나라이니 고전 문학을 읽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여름에 디킨스 작품들보다는 스릴러·서스펜스·로맨스 같은 가벼운 장르를 선호한다.

 

실제로 휴가철 영국 공항 서점들을 둘러보면 패스트푸드 맛을 닮은 자극적인 내용의 책들이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도서 판매량이 매년 2.5%씩 꾸준히 감소하는 영국에서 이런 현실은 영국 문학의 슬픈 미래를 보여준다. 대다수 영국인이 고작 1년에 한 권 읽는 책이 말초 신경을 건드리는 현대소설이라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흐름에 역행하는 영국 작가가 있다. 서점가에서는 여름철 제인 오스틴의 작품 판매가 반짝 증가하는 현상을 ‘서머 시즐(Summer Sizzle)’이라 부른다. ‘오만과 편견’은 여전히 인기를 끈다. 아마도 영국인들은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 깊게 파인 엠파이어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가 미스터 다아시에게 사랑을 고백받는 아름다운 장면을 꿈꾸며 달콤한 상상에 빠지는 시간을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Why Most Brits Still Read One Book a Year?

 

-팀 알퍼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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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무라이, 日 근대화를 이끌다

 

[미이케 다카시 '할복']
250년 평화 누린 에도 시대
사무라이, 칼 대신 책 읽으며 난학 등 세계 최신 학문 접해… 메이지 유신은 '독서광' 덕분
日근대화는 험난한 과정 거쳐… 우리는 '한 사람'이 이끌었다
 

 

공감 능력이 과다하게 발달한 사람은 이 영화를 보지 않는 게 좋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할복’이란 영화다. 에도 시대(도쿠가와 막부), 한 다이묘(지방 영주)의 집에 젊은 사무라이가 찾아온다. 용건은 할복하고 싶으니 댁 마당을 좀 빌려 달라는 것이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광언할복[狂言切腹]으로 자해 예고 공갈이다. 피도 닦아야 하고 뒷일이 많다. 해서 이런 요청 받으면 귀찮아서 몇 푼 쥐여 돌려보내는 게 통례다. 그런데 “알았소, 하시오” 대답이 나와 버린 것이다. 젊은 사무라이, 당황하더니 어쩔 수 없이 칼을 꺼내는데 보니까 진짜 칼이 아니라 대나무 칼이다. 인간의 살은 두부가 아니다. 칼도 잘 안 들어가는 게 사람 몸인데 그걸 대나무로 찔러 난도(亂刀)질 효과를 내려니 오죽하겠는가. 그 고통의 시간을 영화는 줄임 없이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는 그 대나무 칼의 이유와 복수극이다. 일본인들이 배를 가른 것은 인간의 영혼이 복부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슨 어이없는 발상이냐고? 우리도 이런 말 종종 하지 않는가. “거참, 속을 보여 줄 수도 없고.” 그들은 보여줬을 뿐이다.

 

젊은 사무라이가 그런 소동을 벌인 건 가난했기 때문이다. 도쿠가와의 일본 통일 후 에도 시대 250년의 평화는 사무라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일본은 과거 제도가 없는 나라다. 유일하게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전쟁에서 무공을 세우는 건데 아, 평화라니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칼이 필요 없어진 다이묘들은 사무라이들을 해고했고 이들은 낭인이 되어 빈곤을 벗 삼아 떠돌았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일본 역사에는 행운이었다. 그 250년 동안 사무라이들은 물건을 만들어 팔았으며 심지어 예술가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같은 농업 사회에다 순서도 똑같이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가 있는 조선과 일본의 운명이 확연하게 갈린 것은 이 때문이다(일본 사농공상의 사는 사무라이). 당시 에도 인구는 100만명으로 같은 시기 100만명짜리 도시는 베이징과 콘스탄티노플까지 달랑 셋이다. 에도 시대 사무라이는 전체 인구의 7%에 달했는데(무려 250만명) 이들은 두 가지 공부를 했다. 하나는 중국 고전이고 하나는 네덜란드발(發) 최신 학문이다. 에도에서 독서는 유행이었고 이는 오사카 등 다른 도시로 급속히 퍼져갔다. 18세기 일본은 전 국민이 준(準)독서광이었다. 당시 어지간한 집에는 세계지도가 하나씩 붙어 있었는데 우리의 정조, 순조 때다. 비교, 많이 된다. 이렇게 책 읽은 사무라이들이 성사시킨 게 메이지 유신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메이지 유신을 높게 평가 안 한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에도 시대에는 번(藩·일종의 지방 정부)이 세 종류 있었다. 도쿠가와의 친·인척이 다스리는 번, 도쿠가와의 가신들이 다스리는 번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도요토미 편에 서서 도쿠가와에게 맞섰다가 항복했던 '도자마번'이다. 도쿠가와는 이들을 살려주는 대신 경제 기반을 빼앗았다. 도자마번의 대표 주자가 사쓰마와 조슈였고 이들이 동맹을 맺어 250년 만에 옛 주군의 원수를 갚고 경제 침탈자인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 게 메이지 유신이다(로미오와 줄리엣 뺨치게 앙숙이었던 두 번을 연결한 게 사카모토 료마).

 

이런 단순 복수극이 근대화의 물꼬로 이어진 것은 마침 서양 오랑캐가 밀려와 있었고 일왕이라는 존재가 있었으며 책 읽어 눈 밝아진 사무라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개항(開港)이라는 조건이 없었더라면 이들은 당파를 만들어 조선처럼 사색당쟁 시대를 신나게 열어젖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안에서 지지고 볶다가 서양 열강에 꼴깍. 그래서 운이 좋다는 얘기다(이 운은 2차 대전까지 이어진다. 전쟁에서 진 건 그쪽인데 대체 왜 우리가 쪼개지냐고!). 책 읽은 마지막 사무라이 세대가 이토 히로부미와 그 일당이다. '시경'과 '서경'을 열심히 읽은 조슈 출신 이토 히로부미는 젊은 시절 테러리스트로 출발하여(실제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메이지 시대 유일한 총리) 학연과 지연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역시 인생은 운이고 인맥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뒤 만주에서 사망한다.

 

제반 여건이 좋았다고 메이지 유신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일왕에게 정권을 반환했지만 에도 막부는 까만 속셈이 있었고 수백 년 만에 존재감을 회복한 일왕은 손안에 들어온 권력이 진짜인지 근질근질했으며, 사쓰마와 조슈의 대표 선수들은 근대화 청사진을 놓고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어 나갔다. 책 읽은 사무라이가 죄다 나서고 이렇게 험난한 과정 끝에 겨우 이룩한 근대화를 우리는 한 사람이 거의 다 끌고 갔고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누구일까~요?

 

-남정욱 작가, 조선일보(17-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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