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와 '환경'은 소신 접었고 '기후' 하나 남았다
[한삼희의 환경칼럼]
'호남 반도체' 계기
원전 추가 건설로 선회
댐 건설 중단도 번복
"이념 파묻혀선 안된다" 반성까지
'탄소 53% 감축' 기후 목표도
결국 노선 수정하지 않겠는지

남부 지방에서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4일 전남 화순 동복댐 주변으로 바닥이 드러나 있다. /김영근 기자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하루 65만㎥의 용수를 공급하겠다면서 내놓은 방안의 핵심은 기존 동복댐의 제방을 올려 짓겠다는 것이다. 동복댐은 섬진강 지류인 동복천의 상류에 있는 댐이다. 여기서 광주로 하루 25만㎥씩 상수원수를 공급해왔다. 댐 증고(增高)와 여유분 활용으로 동복댐 용수 공급을 55만㎥까지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임 윤석열 정부에선 동복천 하류 쪽에 동복천댐을 신규로 짓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른바 ‘기후대응댐’ 14곳을 짓는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2022년 극한 가뭄을 겪고 나서 마련한 대책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에 와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맡은 김성환 장관은 작년 9월 ‘14개 신규댐 중 7개는 중단, 7개는 공론화 거쳐 재검토’를 발표했다. 장관 취임하자마자 두 달간 10개 댐 후보지를 돌아본 후 결정을 내렸다. 김 장관이 좌파 정부의 정체성을 걸고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랬던 김 장관이 지난달 30일 호남 반도체 용수 공급 방안으로 동복댐 증고를 제시했다. 김성환 장관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하류 쪽 동복천댐 신설보다) 사업 기간이 단축되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그보다는 댐을 안 짓겠다고 해놓고서 불과 아홉 달 뒤 그걸 뒤집기는 정책 체면상 어려워 ‘기존 댐 증고’로 방향을 비튼 것이 아닐까. 김 장관은 작년 9월 하류 동복천댐 신설 중단을 발표하면서 ‘주민 반대’를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보도를 보면 동복천댐 신설은 수몰 가구가 80가구 생기는데, 동복댐 증고는 130가구라고 한다. 동복댐 증고로 수몰될 주민들 입장에선 느닷없는 정책 변경으로 대신 희생되는 것이니 더 억울할 것이다.
기후부는 호남 반도체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상황 전개 아니냐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홍수나 가뭄도 미리 예고하고 닥치는 일이 아니다.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때 포항 냉천이 범람해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포항제철소도 물에 잠겨 수천억원, 어쩌면 1조원 이상 피해를 봤다. 냉천 상류에 항사댐을 지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환경단체가 댐 건설을 막는 바람에 참사가 빚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계획에 잡혀 있던 12곳 신규댐 건설을 아예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가 그 결정을 뒤집고 댐 건설에 나섰던 것인데 이재명 정부는 재차 ‘댐 건설 중단’으로 선회했다. 그랬다가 9개월 만에 ‘댐 증고’라는 변칙 대안을 들고나온 것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고 기저 전원을 안정화하기 위해 전문가 의견 수렴과 대국민 공론화를 거쳐 신규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 여부를 결정,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늘리면서 원전과 조화하는 ‘에너지 대전환’의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김성환 장관은 “(호남 반도체 전력 공급에 필요하다면) 전남 영광과 울산 울주에 원전 4기 추가 건설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 장관의 원래 소신이 탈원전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작년 9월 기자회견에서 “원전은 지금 시작해야 10년이 지나도 될 둥 말 둥인데 그게 대책인가… 가능한 부지가 있고 안전성이 확보되면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그랬던 정부가 소신을 뒤집고 노선 수정에 나섰다. 김 장관은 “부지는 있으니 통상 13~15년 걸리는 원전 건설도 7년 정도로 앞당길 수 있다”고 했다. 탈(脫)탈원전 수준이 아니라 친(親)원전에 가까운 경로 이탈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기후, 에너지, 환경의 세 정책 부문을 통합해 새로 출범했다. 김성환 장관은 그 부처 초대 장관이다. 그런데 출범 1년도 못 돼 에너지와 환경 부문의 대표 쟁점(원전, 댐)에서 정책 기조가 돌변했다. 정부가 정책 노선을 수정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실 파악이 달라지거나 상황이 바뀌면 실용 측면에서 정책을 유연하게 바꿔갈 수 있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도 지난 5일 인터뷰에서 “이념에 파묻혀 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필요하다면 원전 신규 건설에 부정적이었던 기존 에너지 정책의 재검토도 할 것”이라고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도 지난달 29일 SNS 글에서 “(AI 혁명의 시대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념 논쟁, 가치 논쟁에 집착해온) 과거를 버리는 것이다… 가치 논쟁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기후 부문 정책 노선이다. 김성환 장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기후 정책은 작년 11월 유엔에 제출한 이른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라는 것이다.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53~61%(2018년 대비) 줄이겠다는 것이다. 기후협약 사무국이 집계한 세계 평균치(12%)보다 4배 이상 엄격한 약속이었다. 그때 김 장관에 대해 ‘기후 탈레반’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목표였다. 결국 기후 노선도 현실을 반영해 수정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본다.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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