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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에 활짝 열린 숭례문] ["숭례문 기둥 살아있어... "]

뚝섬 2024. 7. 4. 08:16

[장마에 활짝 열린 숭례문] 

["숭례문 기둥 살아있어... 국보가치 충분해"]

 

 

 

장마에 활짝 열린 숭례문

국보 서울숭례문./윤주 대표

 

장마철이다. 비와 무더위가 연일 이어진다. 올해 장마가 유난하다는데, 집 마당에서 서두르며 어설피 한 비설거지가 영 마땅치 않다. ‘칠 년 가뭄에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옛말이 있는데 가뭄보다 장마 피해가 더 두렵다. 그래서 그러는지 장마를 ‘고통스러운 비, 고우(苦雨)’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장마가 순하게 지나길 바라는 마음은 같다. 조선 시대에는 도성 사대문에서 비를 멈추게 해 달라는 기청제(祈晴祭)도 지냈다. 음의 기운이 넘치는 장마 땐 남대문인 숭례문을 활짝 열고 북대문인 숙정문을 폐쇄했다. 남쪽에서 양의 기운을 들여오고 북쪽의 음 기운을 막아 음양의 조화를 맞추고 가뭄엔 정반대로 했다.

 

장마에 활짝 열려 있는 숭례문은 여전히 ‘국보 서울 숭례문’으로 위풍당당하다. 비오는 날 풍경 속에서 도심의 전경과 소음을 휘두르고 투두둑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도 귀하다. 숭례문은 온갖 사연을 들여보내고 내주며 역사의 순간을 마주한 채 별칭인 남대문으로 친숙하게 불리고 있다.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 1398년에 완공되었고 세종과 성종 때 크게 개건되면서 전해 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들어 좌우 성곽이 해체되어 성문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전쟁으로 풍파를 겪다가, 2008년에는 어이없는 방화로 활활 타 부분 소실되었다.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2013년 5년에 걸쳐 복원되어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했다. 경복궁 낙서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시련을 겪은 뒤 더 강해지는 것처럼, 귀중한 유산을 잘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었고, 이제는 국가유산 현장에서 미리미리 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지만, 외양간을 고치지 않으면 영영 소를 키울 수 없다.

 

장맛비 걷히면 햇살과 바람이 문을 지나며, 비를 부르는 이름도 고우에서 단비로 바뀔 것이다. 장마를 지나는 사이에 비가 좀 순해지면 마당도 다시 손봐야겠다. 그러고는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며 숭례문을 지나 고궁으로 우중 산책을 하고 싶다.

 

-윤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 조선일보(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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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재 복원 전문가 인터뷰 

 

일본이 문화재 보호 선진국이 된 것은 1949년과 50년 대표적 국보를 연이어 잃은 것이 계기였다.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던 나라(奈良)의 호류지(法隆寺) 금당(金堂), 화려한 금박으로 유명했던 교토(京都)의 긴카쿠지(金閣寺) 사리전(舍利殿) 등이 불탔다. 아쉽게 담징의 금당벽화는 사라졌지만 금당 건물만은 '국보(國寶)'로 복원됐다. 반면 긴카쿠지 사리전은 복원됐으나 국보에서 제외됐다.

일본 목조 문화재 복원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구보데라 시게루(
窪寺茂)나라문화재연구소 건조물연구실장은 "지금 한국의 숭례문은 화재 직후의 호류지 금당보다 상태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서두르지 않으면 충분히 국보로 복원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호류지 금당은 국보로 남았고 긴카쿠지 사리전은 남지 못했다. 무슨 차이였나?

"호류지 금당의 경우 수리하는 방법, 긴카쿠지는 완전히 재건하는 방식으로 복원했다. 그것은 불타고 남은 부분이 얼마나 되냐에 달려 있다. 긴카쿠지는 전소됐다. 그래서 새로 만든 것이다. 호류지는 남은 목재가 있었다. 그것을 남기는 방법으로 복원했고, 국보로 남을 수 있었다."
 

 

―숭례문은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가?

"최대한 남길 것을 남겨 국보를 유지해야 한다."

숭례문 화재가 호류지보다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단정할 수 없다. TV가 비춰준 잔해로 볼 때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히 남아 있다. 숭례문은 절대로 긴카쿠지와 같은 상황이 아니다. 훨씬 상태가 좋다. 먼저 숭례문은 기둥이 살아 있는 듯하다. 1층 부재(
部材)도 상당량 살아 있고. 숯처럼 보여도 내부 목재가 살아 있으면 복원할 수 있다. 남은 부재를 수리해서 사용하면 일본의 기준에서 볼 때 국보 유지가 가능하다."

―거의 타버린 목재는?

"호류지 금당엔 복원을 못 시킨 타고 남은 목재를 영구 보존하고 있다. 지금 기술로 안 돼도 미래 기술로 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에서 숭례문보다 더 심한 경우에도 문화재로 되살린 경우가 있나?

"야마구치(
山口)현 하기()시에 있는 '구마야케(熊谷家)'라는 민가가 대표적인 경우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었다. 30년 전(1977) 화재로 거의 전소에 가깝게 탔지만 수리를 거쳐 되살렸다. 지금도 중요문화재다."

―복원 때 지켜야 할 원칙은?

"조급해 하면 안 된다. 타고 남은 목재를 철저히 조사해 가급적 살릴 수 있는 목재를 살리고 이전 모습에 최대한 가깝도록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원까지 2~3년 걸린다는 얘기가 있다.

"일본이라면 4~5년은 걸린다. 더 걸릴 수도 있다. 서두르면 안 된다."
 

 

-선우정 도쿄특파원, 조선닷컴(0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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