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마포(麻浦) 주변에는 상인들의 우두머리인 객주(客主)가 있었지만 중국에는 객가(客家)가 있다.
황하 이북에 살던 사람들이 사회 혼란기 때마다 호남성, 광동성, 복건성과 같은 중국 남쪽으로 이주하였다. 먹고살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이 실향민들을 가리켜 '객가'라고 불렀다.
객가는 떠돌면서도 자신들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4, 5층의 성벽 높이로 둥그런 원형의 토담을 쌓고 그 안에서 수십 가구가 집단 거주하는 특유의 주택인 '토루(土樓)'가 그렇다. 아래층인 2, 3층까지는 창문도 없는데다가
흙벽 두께만 해도 1미터가 넘게 만들었다. 외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토루가 바로 객가인들이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전투주택'이었다. 객가는
그만큼 기존 토착 세력으로부터 핍박과 천대를 받는 밑바닥 계층이었던 것이다.
밑바닥에서 물건이 나온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도 광동성의 객가 출신이고, 중국 혁명의 아버지 손문도 역시 광동성 객가 출신이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난 등소평도 객가이고 이번 대만 선거 총통 당선자도 객가라고 알려져 있다. '태평천국의
난'과 '아편전쟁'의
세부 상황에 정통한 역사소설가 진순신(陳舜臣)은 홍수전을 따랐던 태평천국 초기의 추종자들은 대부분 객가인들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지 인생이었던
객가들의 유토피아가 태평천국이었던 것이다.
토박이들이 쓸모없다고 버려두었던 황무지를 객가인들이 몇 년 동안 열심히 개간해서 쓸 만한 땅으로 만들어 놓으면 다시 토박이들이 이
땅을 빼앗아 버리는 일이 빈번하였다. 객가인들은 피땀 흘려 일군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토박이들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를 계투(械鬪)라고 불렀다. 계(械)는 무기를 가리킨다. 광동, 광서 일대에서 계투를
벌이던 객가들이 모여 대규모 혁명으로 발전시킨 것이 바로 '태평천국의 난'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차별과 소외받던 집단이 모여서 반란과 혁명을 일으킨다. 한국 사회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객가' 집단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조용헌, 조선일보(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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