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老化)를 극도로 기피하는 시대다. 하긴 고려 말에도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탄로가(嘆老歌)'가 있었으니, '안티 에이징'이 비단 오늘날의 유행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로마 시대에는 노안(老顔)이 미덕이었다. 주름살이야말로 오랜 세월이 준 경륜과 지혜가 얼굴에 남긴 훈장 같은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머리에 주름이 깊고, 양 볼이 푹 꺼진
데다 턱선이 무너져 내린 이 남자〈사진〉는 로마 시대 정치인이었다. 미간의 깊은 골과 완고하게 다문
입술은 그의 인내심과 진지한 성정을 드러내준다. 로마 공화정 시기의 초상 조각은 이처럼 극도로 사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로마 정치가의
초상, 기원전 75~50년경, 대리석, 높이 약 35.5㎝, 로마 팔라초 토를로니아 소장.
로마는 가문(家門)을 중시하는 사회였다. 유력한 가문에서는 죽은 이의 얼굴을 밀랍으로 그대로 본뜬 '데스 마스크(death mask)'를 만들어두었다가, 초상이 나면 장례식에서 선대 조상의 얼굴을 한꺼번에 전시하는 관습이 있었다.
남들에게는 유서 깊은 가문의 족보를 과시하고, 후손에게는 선대의 업적을 되새겨줄 계기가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실적인 로마 시대 초상 조각은 이러한 전통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그 이전 시기인 고대 그리스와 그 이후인 로마 제정 시기에 한결같이 젊고 잘생긴 이상적 인물상이 주류였던
것과 완연하게 대조를 이룬다.
사실적인 초상 조각은 정치 형태와도 관련된다. 공화정이었던 로마에서는 한 사람의 뛰어난
영웅이 아니라, 가문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다수의 의사를 지혜롭게 수렴하며 거친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책임감 있는 어른의 집단, 원로원을 존경했던 것이다. 만약
오늘날에도 이상적 정치인상이 이렇다면, 틀림없이 '노안 성형'과 '대머리 수술'이 등장할
것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1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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