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타도야말로 백두의 혁명정신]
[그렇게 김씨 왕조가 된다]
[김정은은 지금 ‘괴뢰말찌꺼기’와의 전쟁 중]
[‘존귀하신 자제분’]
[어느 核가족의 경사]
[北 병사들, 어머니날 편지 썼다가…]
[유부녀 성혜림과 정일이 몰래 낳은 손자 처음 본 김일성은.. ]
세습 타도야말로 백두의 혁명정신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영하 수십 도의 강추위 속에 백두산에 오르는 북한 주민들. 북한은 ‘백두의 혁명정신을 따라 배우라’며 매년 수십만 명씩 강제로 백두산에 보내고 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이달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군인들은 주석단에 오른 김주애를 향해 ‘백두혈통 결사보위’라는 구호를 열심히 외쳤다. 열병식에서 백두혈통을 결사보위하겠다는 구호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습 체제의 노예로 전락한 청년들이 10세 어린애를 향해 충성을 맹세하는 씁쓸한 장면을 보면서 북한 땅을 인질처럼 타고 앉아 4대째 향락을 누리고 있는 지긋지긋한 ‘백두혈통’에 저주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만민 평등의 사회주의를 만든다는 사기에 속아 반세기 넘게 살았더니 혈통을 결사보위하라는 노골적인 협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백두혈통이란 것은 알고 보면 순전히 운발로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 연변에 김일성의 부대였던 항일연군 2군 6사 출신의 여영준이라는 사람이 1990년대 초반까지 살았다. 광복 후 북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연변에 남았던 항일연군 출신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생전에 회고록도 남겼는데, 자신을 찾아온 작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번은 김일성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김 정위(정치위원의 줄임말), 우리가 이렇게 먹을 것도 못 먹고 입을 것도 못 입으면서 일제와 싸우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언젠가 왜놈을 다 몰아내고 해방이 되면 공산당에서 우리한테 무엇을 시킬까요?’ 그랬더니 김일성이 이렇게 대답하더라. ‘나는 안도(중국 연변 백두산 인근의 현) 사람이고 안도에서 많이 활동해 왔는데 최소한 안도현장쯤이야 시켜주겠지.’ 그래서 우리 몇은 김일성의 주변에 모여 앉아 ‘너는 김 정위 밑에서 안도현의 공안국장을 하고, 나는 안도현의 위수사령관을 하마’ 하고 말장난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까지 김일성도 북조선에 돌아가 이렇게 한 나라를 세울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광복 후 안도현장이 되는 게 꿈이었던 김일성은 상관들이 전사하거나 투항하는 바람에, 또 싸우라는 지휘부의 명령을 묵살하고 맨 먼저 소련으로 도망간 덕분에 끝까지 살아남아 북한을 타고 앉았다. 광복 후 78년 동안 북한은 왕이 된 김일성과 그의 부하들, 그들의 자손들을 위한 나라였다.
운 없이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출신성분이라는 55개의 씨실과 사회성분이라는 4개의 날실로 구성된 계급 사회에서 꼼짝달싹 못 하고 살아야 했다. ‘혁명가 가족’으로 태어나면 바보라도 간부가 됐지만 ‘지주, 자본가, 종파, 종교인’ 등의 출신성분으로 태어나면 아무리 똑똑해도 힘든 육체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농민이라는 사회성분이면 평생 농촌을 벗어날 수 없었다.
백두혈통 결사보위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이 성분이라는 바둑판 위에서 결정되는 이런 사회를 대대손손 목숨을 걸고 지키라는 뜻이다. 지키라는 것이 어디 백두혈통뿐인가. 김정은은 집권 이후 백두의 혁명정신을 따라 배우라며 겨울마다 사람들을 백두산에 내몰았다. 백두의 혁명정신을 내세워 수혜 본 자들은 뜨뜻한 곳에 앉아 채찍질을 하고, 노예가 된 자들이 칼바람 속에서 백두산에 오르고 또 올랐다. 영하 40도의 기록적 한파가 찾아온 지난달에도 수천 명이 깃발을 들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며칠 동안 백두산에 오르다가 동상을 입었다.
어린애를 새 주인으로 내세운 지금 북한 사람들은 백두 혁명정신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노예의 정신이 아니다. 그 본질은 ‘혈통 뒤집기’ 정신이다. 백두혈통이란 것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묘지기 혈통이 나온다. 묘지기의 증손자 김일성과, 비슷한 처지의 까막눈 소작농들은 총을 잡고 타고난 팔자를 바꾸었다. 그들은 권력을 잡은 뒤 자신들이 섬기던 부자들을 죽이고, 그 자손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들이 부자가 돼서 80년 가까이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백두산에서 그런 정신을 배워 가야 한다. 콘크리트처럼 굳은 신분 세습, 계급 사회를 목숨 걸고 뒤집어 버리고 운명을 바꾸는 것이 바로 혁명이고, 백두의 혁명정신이다.
백두혈통에게 반항하면 일족을 멸족시키는 연좌제 속에서 무장투쟁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탈북하는 것도 백두의 혁명정신이다. 목숨 걸고 남쪽에 온 보상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 노예의 굴레를 벗고 행복하게 살게 할 수 있다. 혈통이란 것을 섬기지 않고, 내가 주인이 돼 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북한 인민이 따라 배워야 할 백두의 혁명정신이다.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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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씨 왕조가 된다
[오늘과 내일]
‘숨겨진 자식’이던 김정은의 후계 시동
물려줄 ‘위험한 유산’ 핵무기와 굶주림
“아이는 비밀 노출을 엄단하느라고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서만 자랐다. 합법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봉화진료소뿐이었다. 천으로 차창을 전부 가린 ‘수인차’를 타고…. 제네바에 가서도 어울리지 못했다. 쉬는 시간 종이 치면 아이들은 다 밖으로 뛰어나가는데 그 애만 교실에 앉아 그림만 그렸다. 그리는 것은 평양 만화에서 본 ‘미국놈 대가리’였다.”
북한 김정일의 동거녀 성혜림의 언니로서 1996년 탈북한 성혜랑이 회고록 ‘등나무집’에서 묘사한 조카 김정남(2017년 피살)의 어린 시절이다. 성혜랑이 보모 겸 가정교사를 맡아 보살피던 김정남은 4m 넘는 담장 위에 고압선까지 쳐진 동평양 관저 안에 갇혀 살았다. 온갖 장난감과 놀이기구로 채워진 300평짜리 전용 오락실에다 “예예, 대장동지” 떠받드는 어른들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로, 하지만 가장 외로운 아이로 자라야 했다.
김정남과 같은 ‘숨겨진 자식’ 처지였던 김정은의 삶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김정은에겐 친형과 여동생이 있었으니 그나마 나았을까. 경호원들과 어울려 대장 노릇도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외부와의 단절, 주변의 떠받듦은 더 큰 인정 욕구를 키웠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승부 근성과 뭐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편집증적 성향도 거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과 자축 행사에 아홉 살짜리 둘째로 추정되는 딸과 함께 잇달아 나타났다. 북한 매체는 그 딸을 ‘사랑하는 자제분’ ‘존귀하신 자제분’이라 칭했고 “백두의 혈통만 따를 것”이라는 충성맹세도 쏟아냈다. 딸의 출현은 세계의 호기심을 불렀고 그 관심도는 ‘괴물 ICBM’의 공포심을 압도할 정도다.
일각에선 그 딸이 후계자로 낙점됐을 것이란 때 이른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의 여덟 살 생일 때 열린 축하파티에서 고위 간부들이 보천보전자악단 연주에 맞춰 ‘척척 척척척 우리 김대장 발걸음∼’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 이미 후계자로 정해졌다는 일본인 요리사와 김정은 이모의 증언도 새삼 주목받는다. 하지만 김정은에겐 남아를 포함한 두 자녀가 더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젊으신 청년대장’ ‘친애하는 대장동지’가 깜짝 등장할 수도 있다.
북한이 3대에 걸친 폭압적 약탈정권이 된 지 오래지만, 이제는 4대 세습이 당연시되고 관심사는 후계자가 누구냐가 됐다. 김정은은 권좌에 오른 지 7개월 만에 아내 리설주를 공식석상에 대동하고 나왔다. 리설주 띄우기는 두 사람의 공인된 결합을 과시하고 그 자녀가 대를 이어 통치할 것임을 예고하는, 즉 세습군주제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첫 기획이었다.
여러 여성과의 사이에 여러 자녀를 둔 아버지의 숨겨진 아들 중 한 명으로 자란 김정은. 그에게 후계 체제의 확립은 미뤄둘 수 없는 숙제다. 창업 군주는 일찌감치 장남을 후계자로 정해 20년간 권력을 물려주기 위한 길을 닦았다. 반면 2대 군주는 후계 준비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뇌졸중을 맞아 서둘러 막내아들을 내세워야 했다. 이제 3대 군주는 그런 권력의 불안정과 궁정 암투를 막기 위해 왕가의 상속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마침 후대에 물려줄 유산 ‘절대병기’도 완성 단계에 있다. 김정은에게 핵무기와 후계자의 기괴한 조합은 21세기 세습군주정의 완성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인민들이 겪는 굶주림과 빈곤, 그것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가장 위험한 유산임을 그는 정말 모를까.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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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지금 ‘괴뢰말찌꺼기’와의 전쟁 중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최근 북한에선 반동사상을 퇴치한다며 거리 곳곳에 규찰대가 늘어서 주민들의 휴대전화를 검열하고 옷차림 등을 통제한다. 사진은 평양에 거주했던 크리스 페테르센클라우센이 2016년 찍어 공개한 것이다.
최근 북한에서 44만여 어휘가 수록된 ‘조선말대사전’ 신규 편찬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최신 증보판은 2017년에 발행됐지만 ‘괴뢰말찌꺼기’를 소탕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하달됨에 따라 10∼15년마다 진행하던 증보판 발행이 황급히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입수된 김정은의 2020년 6월 19일 비준 방침 ‘괴뢰들의 말투를 본따거나 흉내내는 쓰레기들을 철저히 소탕해버리기 위한 대책과 관련한 제의서’에는 김정은이 한국 말투에 어떤 분노를 느끼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은 그해 5월 13일 “청년들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 괴뢰 말투를 본뜨거나 흉내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국가적인 문제”라며 “괴뢰말찌꺼기들을 몽땅 불살라버리기 위한 저격전 추격전 수색전 소탕전을 전 당적, 전 국가적, 전 동맹적으로 강도 높이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또 “청년들 속에서 손전화로 말하거나 통보문을 주고받을 때 괴뢰들의 말투를 본뜨거나 흉내내는 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괴뢰들의 문화에 오염된 쓰레기들로 단정하면서 시대적으로 배척당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2020년 5월은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퍼지고, ‘니가 장군님이네’가 유행어로 뜨고 있다”는 보도가 한국 언론에 나올 때다. 김정은이 이걸 보고 분노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해 12월 공포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한국의 영상물 도서 노래 그림 사진을 유입 유포한 경우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남조선식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고 남조선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면 최대 노동교화형 2년을 언도할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엔 긴급하게 ‘괴뢰말찌꺼기 자료’라는 것이 전국에 배포됐는데, 내용이 경악스럽다.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면 괴뢰 문화에 오염된 쓰레기가 된다. 오빠는 친인척 간에만 부를 수 있다. ‘친구, 여친, 남친’은 물론이고 기존에 잘만 쓰던 ‘정상회담, 수교’ 같은 단어도 괴뢰말찌꺼기로 분류돼 ‘최고위급회담, 외교관계 수립’ 등으로 써야 한다. ‘올케, 이례적, 파격적, 차원, 퍼센트, 전전긍긍’ 등도 괴뢰말찌꺼기로 분류됐다. ‘…세요 …게요 …거야 …드립니다’로 말을 끝맺어도 처벌 대상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 출생자가 한국이나 중국 드라마에 나왔던 이름을 쓰면 개명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세나, 채린, 자영 등 수십 개의 이름이 금지됐다.
북한 사전 편찬자들은 언제 김정은의 불호령이 또 떨어질지 몰라 밤을 새워 괴뢰말찌꺼기 분리 작업을 해야 하는 처지다. 남쪽에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한다며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18년 동안 450억 원 이상의 세금을 쓰고 있는데, 북한에선 민족 이질성을 목표로 탄압이 벌어지는 것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발표 이후 북한 거리에는 ‘대학생규찰대’ ‘여맹규찰대’ 등 각종 규찰대들이 늘어서서 ‘손전화기(휴대전화)’ 검열을 한다. 불응하면 김정은의 방침에 불응하는 반동이 된다. 학교와 직장에서도 당 비서나 담당 보위원이 수시로 휴대전화를 검열한다. 휴대전화 검열에선 제일 먼저 주소록에 ‘오빠’라고 적힌 이름이 있는지부터 보고, 이어 ‘통보문(문자)’을 검사한다. 이제 북한에선 사생활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의 시선이 북한 미사일 발사나 김정은의 딸 같은 이슈에 머물러 있는 동안 북한 주민들은 2년 넘게 김정은의 화풀이를 받아내고 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고삐를 늦출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지난달 19일부터 23일 사이 평양에선 전국 공안 기관 종사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보위일꾼’ 대회가 열렸다. 장성택 숙청 한 달 전인 2013년 11월에 열리고 9년 만에 다시 열리는 대회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대회에선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들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 이룩된 성과와 경험들이 소개됐다”고 한다. 공안 기관끼리 사람을 잡아들이는 방법을 공유하고,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르면 2018년 4월 평양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뒤늦은 후회’라는 한국 가요를 불러줄 것을 요청한 김정은부터 사형돼야 마땅하다. ‘봄이 온다’는 이름이 붙은 그 공연이 열린 뒤 북한엔 죽음의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 왔다.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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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하신 자제분’

공포정치의 주역 중에 ‘딸 바보’가 적지 않다. 나치 독일의 헤르만 괴링은 자기 딸 모습이 담긴 우편엽서를 전국 문방구에서 팔도록 했다. SS친위대 대장 힘러는 유태인을 처형하던 강제수용소 인근 허브 밭에 딸을 데려가 다정한 아버지 모습을 연출했다. 1000만명 넘는 국민을 학살한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외동딸 스베틀라나를 ‘작은 참새’라 부르며 아꼈다. 북한 김정일도 생전에 김여정을 ‘여정 공주’라고 불렀다.
▶2018년 4월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했다. 김정은은 ‘핵 포기 의지가 있는냐’고 묻는 폼페이오 장관에게 “나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내 아이들이 평생 핵무기를 짊어지고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답했다. 미국은 이 발언을 근거로 북미 회담을 장밋빛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당시 다섯 살이던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요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모두 ICBM 관련 행사다. 18일 ‘화성17형’ 발사에 이어 27일에는 당시 공을 세운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딸을 데려갔다. 지난번엔 앞머리를 내리고 흰색 점퍼를 입어 어린이다운 복장이었지만, 이번에는 검은 코트를 입고 헤어스타일도 어머니 리설주처럼 꾸몄다. 관영 매체는 ‘사랑하는 자제분’에서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호칭을 높였다. 군복 입은 지휘관이 10세 전후의 소녀에게 상체를 숙이며 공손히 손을 내밀었다. 얼굴을 공개한 이상 김주애는 해외 유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얘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은 이날 ICBM 이동식 발사 차량(TEL)에 ‘공화국 영웅’ 칭호를 내리고 메달, 훈장을 수여했다. 트럭에 영웅 칭호를 준 것은 어린 딸을 대량 살상 무기 행사에 데려간 것만큼이나 일반인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버지 김정일도 공장의 15톤 망치, 20미터 선반 기계에 영웅 칭호를 내린 적이 있다.
▶김씨 일가의 이런 행동은 상식을 뛰어넘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정은은 고모부를 고사총으로 쏴 죽이고 이복형을 독살하는 광기로 권력을 공고하게 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ICBM 행사에 딸을 ‘미래 세대의 상징’으로 동원했다고 본다. ‘핵만이 북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백두 혈통에 끝까지 충성하라’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한국을 겨냥한 ‘핵 선제타격법’까지 만들었다. 김정은이 연출하는 온갖 기괴한 행태는 핵보유국으로서 바깥세상을 향한 공포 마케팅도 겸하고 있을 것이다.
-황대진 논설위원, 조선일보(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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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核가족의 경사
2009년 4월 27일 북한 TV를 보던 정보 당국자들이 눈을 의심했다. 김정일의 원산농업대학 시찰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서 ‘놀라운’ 사진이 방송을 탔다. 나머지 32장엔 김정일이 등장했는데 이 사진에만 그가 없었다. 대신 젊은 남녀 3명과 노인이 서 있었다. 김정일의 세 자녀 정철·정은·여정이 김기남 선전비서와 찍은 사진이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 김정은이 공식 등장했다.

▶”조선인민군에게 영광 있으라.” 1992년 4월 25일 김정일의 열병식 연설로 외부에 공개된 유일한 육성이다. 김정일의 비밀주의·신비주의는 강박에 가까웠다. 후계자로 내정된 게 1974년인데 1980년 공식 등장 때까지 ‘당중앙’이란 별칭으로만 불렸다. 가족사 노출도 극도로 꺼렸다. 출생지, 출생연도, 이름까지 조작해 쌓아올린 우상화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했다. 처조카 이한영이 탈북해 김씨 왕조 치부를 자꾸 드러내자 암살조를 남파해 살해했다.
▶김정은은 다른 스타일이다. 육성 신년사를 비롯해 공개 연설을 자주 한다. 농구광인 김정은은 전직 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5차례나 초청했다. 로드먼은 평양을 다녀올 때마다 보고들은 것을 외부에 떠벌렸지만 김정은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김정은이 유일하게 공개하지 못한 게 모친 고용희다. 북에서 3등 시민 취급받는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인 탓이다. 김정은 집권 10년이 지나도록 생일도 공개하지 못하는 속사정이다.
▶김정은은 지난 18일 신형 ICBM 발사 현장에 딸을 데려갔다. 로드먼이 2013년 방북 때 안아봤다는 둘째 주애일 가능성이 크다. 10세 전후일 어린 딸과 아버지가 놀이공원이 아니라 기립한 미사일 앞에서 손잡고 걸어가는 장면은 기괴했다. 유학 중이라는 2010년생 장남, 2020년생 막내 딸도 공개할지 모른다. 금수저가 아니라 ‘핵수저’ 자녀들이다. 미사일 발사가 성공하자 리설주는 손뼉을 쳤고, 김여정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평소와 달리 군 수뇌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김씨 일가 보위를 책임지는 조직비서, 우상화 총책인 선전비서가 만세를 불렀다. ICBM 성공이 김정은의 집안 경사란 얘기다. 4대 세습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할아버지·할머니 없이 부모와 자녀만으로 구성된 가족을 핵(核)가족이라고 불렀다. 대가족의 반대였다. 그런데 한자도 똑같은 ‘핵가족’이 평양에 등장했다. 북한 주민은 헐벗고 굶주렸다. 그런데 김씨 핵가족은 핵미사일로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지킨다고 한다.
-이용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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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병사들, 어머니날 편지 썼다가…
북한에서 ‘어머니날’은 11월 16일이다. 한국은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의 날’로 제정했다가 1973년에 ‘어버이날(Parents’ Day)’로 바꿨다. ‘어머니의 날’은 5월 둘째 일요일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기념되는데(be most commonly celebrated around the world), 다른 날짜에 오도록(fall on other dates) 한 나라들도 있다.

북한의 어머니날은 김정은 정권 첫해인 2012년 처음 도입됐고, 2015년에 공휴일이 됐다(become a public holiday). 11월 16일은 김일성이 1961년 ‘자녀교양에서 어머니들의 임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한 날짜를 기념해 정해졌다(be chosen in remembrance of the speech). 그런데 북한에는 어머니날은 있지만, 어버이날은 없다. 어버이나 아버지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가문을 지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은 지난 16일 어머니날을 앞두고(ahead of the Mother’s Day) 모든 병사에게 편지를 쓰라고 명령해 놓고는 절반 이상을 폐기 처분했다(destroy more than half of the letters). 그리고 그런 편지를 쓴 병사들에게 사상적 이유로 처벌을 내렸다(punish them for ideological reasons). 내용을 검열해 문제 병사들을 가려내는 수단으로 삼은(use the contents to identify problematic soldiers) 것이다.
편지는 두 단계의 검열을 거치도록(pass through two rounds of censorship) 했다. 먼저 중대 단위 보위군관들에 의해 개봉돼 검열을 받는다(be opened and censored by the company security officers). 그리고 연대 본부에 집결시켜 보위사령부 요원들이 다시 검열한다. 여기에서 따로 분류된 편지들(the letters sorted out)을 통해 사상적 의지가 약한 병사들 명단을 작성한다(make a list of soldiers with weak ideological wills).
다시 말하자면(in other words) 편지 내용 중에 굶주림이나 피로함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complain about hunger or fatigue) 병사들은 곧바로 사상 재교육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군대 생활이 고달프다며(be arduous) 어머니가 그립다는 따위 말을 하는 자도 반동분자(reactionary element)로 분류된다. 설상가상으로(to make matters worse) 편지에 불평불만 한마디 적지 않았는데 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어머니에게 잘 지내시느냐고 묻는 ‘실수’를 했다가(make the ‘mistake’ of asking about their mothers’ wellbeing) 걸려들기도 한다.
RFA 취재원에 따르면, 한 병사는 “집이 최근 홍수에 무너지지는(collapse in the recent flood) 않았는지요? 농사는 잘됐나요?”라고 물었다가 편지는 폐기 처분되고 사상 재교육 시설에 수용됐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이끄시는 당을 믿지 못하고, 당이 모든 주민의 삶을 보살펴준다는(take care of the lives of all citizens) 사실을 신뢰하지 못하는 반동적 소리를 나불댔다”는 이유였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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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성혜림과 정일이 몰래 낳은 손자 처음 본 김일성은..
김일성이 '큰 손자' 김정남을 처음 본 것은 정남이 네 살 때인 1975년쯤이라고 한다. 김정일은 유부녀 영화배우 성혜림과 몰래 낳은 정남의 존재를 아버지에게도 한참 동안 숨기다가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에야 알렸다. 김일성은 처음에는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첫 손자를 품는 순간 화는 봄눈처럼 녹았다. 1997년 암살된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김정남 이종사촌)이 쓴 책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보면, 김일성은 평양에서 어느 외국 정상과 대화하다가 "정남이 토라져 울면서 밥을 안 먹는다"는 김정일의 전화를 받았다. 김일성은 곧바로 외국 정상에게 "우리 손자가 무슨 일로 화가 나서 밥을 안 먹고 있답니다. 내가 가서 달래주고 와야갔시오. 오후에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정남을 주석궁으로 불러 직접 달랬다고 한다.
김정일도 어린 정남에게 꼼짝 못했다. 이한영이 본 비디오에는 "정남이 서너 살 때 '쉬'하고 싶다고 하니 내의 바람의 김정일이 우유병을 들고 아들의 오줌을 직접 받아내는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열 살쯤이던 정남이 이를 뽑지 않겠다고 종일 울자, 김정일은 "어떻게 하면 뽑을래?"라고 물었다. "빠빠(김정일)하고 똑같은 자동차 한 대 달라"는 정남의 요구에 김정일은 정말 자신의 캐딜락과 똑같은 모델을 사줬다고 한다. 정남의 6~12세 생일 잔치를 지켜본 이한영은 "생일마다 조선인민군 원수복이 선물로 왔다"며 "3세 때 소장으로 시작한 계급장은 8세 때는 대원수로 올랐다"고 적었다. 계급장은 김정일이 달아줬다.
정남의 불행은 어머니 성혜림(2002년 사망)이 우울증 등을 앓으면서 시작됐다. '숨겨진 여인'이던 성혜림은 정남을 언제 뺏길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김정일은 이런 성혜림을 두고 1974년 전화교환수 김영숙과 결혼한 데 이어, 1976년쯤에는 무용수 고용희와 동거했다. 고용희는 1981년 정철, 1984년 정은을 차례로 낳았다. 성혜림의 정신병은 날로 깊어졌다. 그녀를 돌보던 친언니 성혜랑은 1996년 서방으로 망명해 정남의 정치적 입지를 흔들었다.
김정은도 특급 대우를 받으며 컸다. 그러나 이복형 정남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을 직접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이 그 증거다.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정은의 존재를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3대 세습' 정당성을 위해 할아버지 흉내를 내야 한다. 할아버지 얼굴도 못 봤던 '셋째 손자'는 결국 할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했던 '큰 손자'를 최악의 독극물(VX)로 제거했다. 김정남 암살은 3대 세습이란 적폐(積弊)의 결과다.
지금 대선 후보 여론 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한민국 적폐 청산"만 강조하고 있다. 이제는 3대 세습이란 한반도의 '진짜 적폐'에 대해서도 "청산"을 이야기할 때가 됐다.
-안용현 국제부 차장, 조선일보(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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