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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회고록] "문재인 대통령 주변이 좀 복잡한 사람".. "민주당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국민들도 잘 알아"...

뚝섬 2020. 3. 20. 15:19

[김종인 회고록] "민주당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국민들도 잘 알아"

[김종인 회고록] "문재인 대통령 주변이 좀 복잡한 사람"

‘마스크 대통령’ 문재인 심리 탐구

[문재인 대통령 당선] 문재인 대통령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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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회고록] ② "민주당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국민들도 잘 알아"

 

김종인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문 대통령 비판
"당이 위기일 때는 무릎까지 꿇으며 도와달라 하더니…"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20일 민주당에 대해 “그들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이제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출간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19대 총선과 대선에선 정치인이 변해가는 모습을 봤고, 20대 총선에선 정당이 변해가는 모습을 봤다”며 이같이 말했다. 각각 박근혜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한 비판으로 해석됐다. 김 전 대표는 2012년 총·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을, 2016년 총선에선 문 대통령의 민주당을 도와 선거 승리에 기여했었다.

 

김 전 대표는 2016년 총선 당시 정치권 대다수가 새누리당의 압승, 심지어 ‘보수정당 영속 집권론’을 거론했던 분위기를 소개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106석을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하자 “모두 노골적으로 비웃었다”고 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60~80석을 예측했고, 희망적인 전망도 100석이었던 상황에서 민주당은 123석을 얻어 1당이 됐다.

 

2016년 총선 당시 김 전 대표가 비례대표 2번에 오르자 친문 지지층은 ‘셀프 공천’이라고 비난했었다. 김 전 대표는 “나는 평생을 살면서 누구에게 자리를 얻기 위해 잘 보이려 노력해본 적이 없다”며 “민주당을 계속 책임지고 바꿔나가겠다는 나름의 각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 손으로 제도와 정책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상징적 의미를 갖는 비례대표 최고순위에 내 이름을 올리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자신에게 비례대표를 직접 제의했던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하며 “모멸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밤늦게 우리 집까지 찾아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달라’ 부탁했던 사람, 선거 승리만을 위해 민주당에 가지는 않겠다고 하니까 ‘비례대표를 하시면서 당을 계속 맡아달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이 그런 일이 발생하자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나 몰라라 입을 닫은 채 은근히 그 사태를 즐기는 태도를 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총선이 끝나고 민주당은 이른바 친문(親文) 세력이 당권을 장악하고 급격히 그런 방향으로 분위기가 쏠렸다”며 “나에게 ‘셀프 공천’ 모욕이라니, 물에 빠진 사람 살려줬더니 보따리 내놓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파렴치범 취급하는 모양 아닌가”라고 했다. 결국 김 전 대표는 20대 총선 승리 후 1년도 지나지 않은 2017 3, 민주당을 탈당하며 의원직도 사퇴했다.

 

김 전 대표는 “그동안 어려울 때 도와달라 하소연하다 정치적으로 재기하면 본인이 잘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태도가 돌변하는 정치인을 여럿 만났다”며 “당이 위기일 때는 무릎까지 꿇으면서 도와달라 호소하다 막상 선거가 끝나면 국민은 아랑곳않고 호의호식하고, 다음 선거에서 또 도와달라 호소하는 염치없는 정당도 여럿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가리켜 “그들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이제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원선우 기자, 조선닷컴(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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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회고록] "문재인 대통령 주변이 좀 복잡한 사람"

 

김종인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문 대통령 비판
"
에워싸고 있는 그룹이 권력 휘두를게 뻔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20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주변이 좀 복잡한 사람”이라며 “그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휘두를 게 뻔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측근 386·운동권 그룹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됐다

 

김 대표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당시 “박근혜 후보와 완전히 결별하고 나를 도와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그 말을 듣고 약간의 모욕감마저 느꼈다”며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보다 나아 보이지도 않았다”며 “그동안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문재인 후보는 주변이 좀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그룹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결국 그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했다”며 “문재인은 뚜렷한 정치적 비전이나 소신이 없어 보이고, 여러모로 나라를 이끌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고 했다. 이어 “그의 제안은 당연히 거절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2016년 문 대통령이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제의하려 ‘삼고초려’했던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김 대표는 “문재인은 수줍은 사람이었다”며 “밤중에 연달아 세 번이나 찾아왔는데 혼자 오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매번 누군가와 함께 김 대표를 찾았는데, 그들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의 요직을 맡았다고 김 대표는 밝혔다. 김 대표는 “배석자가 주로 이야기하고 문재인은 거의 말을 하지 않다가 ‘도와주십시오’라는 말만 거듭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를 배반했지만 나는 경제민주화를 꼭 이룰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정치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그저 묵묵히 들으면서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원선우 기자, 조선닷컴(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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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대통령’ 문재인 심리 탐구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3 6일 경기도 평택의 마스크 제조공장인 우일씨앤텍을 방문해 생산공정을 시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0여년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가적 대()위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연일 ‘마스크’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2 26일 “마스크 공급물량은 충분하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가 막상 현장에 마스크가 없자 이튿날 홍남기 부총리(27), 정세균 총리(28), 문 대통령(3 3) 사과로 이어졌다. 이후 문 대통령은 마스크 생산업체를 찾아가 “남은 물량은 전량 정부가 구매하겠으니 생산량을 늘려 달라”고 호소하고 △마스크 구매 5부제 시행 △대리수령 범위 확대 등을 일일이 지시하고 나서고 있다
.
   
(
이에 앞서 우리 외교부는 지난 1 28일 마스크 200만개와 방호복 10만벌 등을 중국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고, 문 대통령도 2 20일 시진핑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며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강조했다
.)
   
이런 난국 상황에서 주무 책임자를 제쳐두고 문 대통령이 직접 ‘마스크 문제’에 나서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작 본질적인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선 수십조원의 국가 예산을 투입해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말만 앵무새같이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
   
‘움직이지 않는’ 정부 시스템의 문제인가, 아니면 문 대통령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일까. 위기 상황이 닥치면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온다고 했듯이 지금 문 대통령의 언행을 토대로 그의 성격과 사고, 심리 상태를 예측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
   
현역 기자 시절 몇 번 만나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우선 그의 천성은 착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의 평도 그랬다
.
   
이런 천성을 바탕으로 쌓아진 후천적 성격은 어떨까. 내가 보기엔 한마디로 ‘운동권 범생이’. 대학에 들어가 민주화를 외치는 운동권 세력의 일원이 된 후 당시 그들의 역사관·인식·담론에 착실히 순종하는 ‘운동권 모범생’ 태도를 지금까지 견지해왔기 때문이다.(그의 사상적 스승은 당시 중국공산당을 높이 평가한 좌파 이론가 고 한양대 리영희 교수다
.)
   
나는 17년 전인 2003 5 1, 노무현 대통령 집권 초기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을 사석에서 만나 벌인 토론에서 그가 말한 역사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요지는 이렇다
.
   
·지난 100여년 우리 역사는 반칙과 특권의 역사다
.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이미 민주당(장면 정권) 때 만들어진 것이다
.    
·한국이 독재를 했음에도 지구상 다른 독재국가들과 달리 성공한 이유는 한민족의 우수한 능력 때문이다
.
   
그때 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한국의 국정책임자가 어떻게 저런 답변을 할 수 있지
?
   
세계적 문필가 유발 하라리는 2018년에 발간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파시즘(fascism)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
   
“내 민족이 그저 특별할 뿐 아니라 가장 우월하며, 나의 유일무이한 정체성도 민족 정체성뿐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 민족의 이익보다 다른 어떤 집단 또는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돼서는 안 된다.

   
이쯤 되면 우리는 지금 문 대통령과 그의 측근세력들이 대한민국과 중국, 북한을 어떻게 보고 대하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여기서 보다 객관적인 현대 심리학 분석 잣대를 들이대보자. 스트레스를 비롯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이 대처하는 유형은 크게 △벌컥형(과잉각성) △억제형(감정억압) △회피형(대리표출) △탈진형(와해·번아웃) 4가지로 나뉜다. 그는 대표적인 ‘억제형’이다. 화가 나더라도 참고, 힘든 일이 닥쳐도 ‘난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라며 감정을 숨기고 가장하는 편이다
.
   
한편 미국 의학계에서 통용되는 ‘성격과 사회성과 질병’을 보면 대표적 C형이다
.



상황을 주도하기보다 따라가며, 창의성보다는 충성심(royalty)이 강한 형이다. 조직에선 2인자나 비서실장 타입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인생 이력을 보면 ‘1인자형’은 아니다. 경희대 재학 시절에도 당시 강삼재 총학생회장(신한국당 사무총장 역임) 밑에서 총무부장을 했으며, 인권변호사나 참여정부 시절에도 ‘형님’ 노무현을 잘 보필하는 2인자였다.
   
자서전 ‘운명’에서 밝혔듯이 그는 권력욕도 높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이 된 가장 큰 힘은 민주당 핵심세력인 586세대의 천거에 의해서다. 그들은 자기 의견 내세우지 않고 충실히 운동권 교리를 따르는 인품 좋은 ‘큰 형님’을 대통령으로 앉히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려 했다고 본다
.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왜 건국 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맞아 문 대통령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취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계 어느 나라 대통령이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마스크’ 문제 하나를 놓고 호들갑을 떨 수 있을까
.
   
아마도 문 대통령의 지금 심리는 ‘멘붕’ 상태일 수 있다. 마스크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는 정부 부처를 비롯 여당,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실망이 클 것이다. 평소 습관대로 너털웃음을 지으며 가슴속 분노나 두려움을 삭이려고 하겠지만 상황은 점점 더 수렁에 빠지고 있다
.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진짜 더 큰 문제는 윤석열 검찰이 재판에 회부한 2018년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문 정권에 치명타이다. 시한폭탄과 같다
.
   
이래저래 문 대통령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많아질 것이다. 주변에 대한 실망과 분노,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 대한 부정적 복기(復碁), 우울적 반추(depressive rumination)로 힘든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
   
문 대통령이 과연 이런 위기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No! 나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
   
문 대통령은 여태껏 ‘운동권 범생이’로서 길을 걸어왔다. 인생의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자기 변신이나 부정, 돌파, 개척해 나갈 유형도 아니고 그런 경험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과는 확실히 다른 유형이다.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주간조선(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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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당선


문재인 대통령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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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가정 23녀 중 장남, 지역 명문 경남고 진학했지만 '문제아'로 찍혀 정학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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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엔 반독재 운동, 구치소서 司試
합격 소식 들어… 사법연수원 차석으로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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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변호사 하다가 청와대로,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 맡으며 노
대통령 마지막까지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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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서거 이후 정치 입문, 민주당 국회의원·
대표 거쳐 대선 再修 끝에 대통령 당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5일 경남 양산 상북면의 부친 묘소를 찾았다. 이틀 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였다.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씨와 함께 묘소를 참배하고 소주를 따라 올렸다. 남들과 똑같이 공동묘지 가운데 평범하게 있는 부친 묘소에는 작은 비석 하나만 있었다. 지난 7일 전국 유세 중 강원도 횡성휴게소에서 육개장으로 식사한 문 대통령은 수행 비서의 빈 그릇을 대신 반납하는 사진이 찍혀 화제가 됐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삶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1953 1월 경남 거제에서 피란민 가정의 2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누나와 여동생들은 주부이고 남동생은 원양어선 선원 생활을 했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 부모는 1950 12 '흥남 철수' 때 월남해 경남 거제에서 문 대통령을 낳았다. 그 당시 모두가 그랬듯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막노동을, 어머니는 문 대통령을 업고 계란 행상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가계는 어려웠지만 머리는 명석해 지역 명문인 경남중·고에 입학했다. 문 대통령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동생들을 위해 돈을 번 누나가 희생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부유층 자제가 많이 다녔던 명문 학교에서 빈부 격차와 세상의 불공정함을 접한 문 대통령은 반항심이 생겼다. 술·담배를 하고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소위 '문제아'로 불렸다. 정학을 네 번 당했다.

서울대 상대 입시에서 낙방한 뒤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반독재 학생운동에 몰두했다. 1975년 대학 4학년 때 유신 독재 화형식을 주도하다 서대문구치소에 4개월간 수감됐다. 실망한 아버지는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감옥을 나왔는데 아버지는 꾸짖는 말씀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석방 뒤 특전사령부로 강제 징집된 문 대통령은 자신이 "뜻밖으로 '군대 체질'이란 걸 발견했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벌 받기 바빴는데 군대 가서는 상을 더 받았다"고 했다. 당시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고 1976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미루나무 제거 작전에 최정예 요원으로도 투입됐다. 선거운동 기간 특전사 부대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총기를 조준하기 전에 하늘을 쳐다보고 동공을 축소하는 군 시절 훈련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1978년 전역했지만 구속 전력으로 복학도, 취직도 되지 않아 낭인(浪人)으로 세월을 보내던 중 부친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문 대통령은 "아들이 잘되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해 회한(悔恨)으로 남는다"고 했다. 49재를 마치고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1980 '서울의 봄' 시위에 나섰다 체포돼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사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1981년 경희대 2년 후배(성악과)인 김정숙씨와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1 1녀를 뒀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 구속 전력으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한 문 대통령은 부산으로 내려가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일곱 살 위인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뒤 문 대통령은 "'같은 과(
)'라고 느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합동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부산·경남 일대 시국 사건을 수임하며 이름을 알렸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자 문 대통령은 "뒷일은 내게 맡기고 정치권으로 가시라"고 했다.

'
법무법인 부산'을 세우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문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내며 임기 내내 노 전 대통령 곁을 지켰고, 격무와 스트레스로 치아 10개가 빠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2010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2011년 자서전 '운명'을 쓰고 현실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2012 4월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됐다. 그해 12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나서 야권 후보 역대 최대인 1469만표(득표율 48%)를 얻었지만 낙선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본격적인 정치에 나섰다. 2015 2월 당대표 선거에서 박지원 의원에게 이겼다. 그는 '혁신'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국민의당 분당(
分黨) 사태로 이어졌다. 안철수 후보와 중도 성향 호남 의원들이 당을 나갔고 새 인물들이 민주당을 채웠다. 문 대통령은 이를 '혁신'이라고 했고, 다른 쪽에선 '분열' '패권'이라고 했다. 그가 뒤로 빠지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데려와 치른 20대 총선 결과는 '민주당 1'이었고, 지난달 3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문 대통령은 재수 끝에 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국희 기자, 조선일보(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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