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함성이 '소음'?]
["데모 좀 그만 하라"는 데모]
아이들 함성이 '소음'?
한 아파트 단지 옆 초등학교에서 운동회 시작 전 아이들이 입을 모아 사과하는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였다. 운동장 한가운데 모인 아이들은 운동회 시작 전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죄송합니다”라고 입을 모은 다음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운동회 때문에 시끄럽다는 민원이 잦자 사과부터 하고 운동회를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대한 민원은 일본에서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가노현에서는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 목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 때문에 2023년 공원을 철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은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다. 당시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국회에서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를 계기로 법에서 명시한 ‘소음’에 어린이 소리는 제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독일 베를린도 아이들이 ‘떠들 권리’를 인정했다. 독일은 법적으로 ‘조용해야 하는 시간(루헤차이트·Ruhezeit)‘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평일엔 야간에, 일요일은 하루 종일 이웃을 방해할 정도의 소음을 낼 경우 벌금을 물린다. 원래 교회 종, 구급차 사이렌 소리 등만 예외였다. 그런데 베를린에서만 아이들 소음 민원이 연간 수백 건 들어오고 일부는 법적 소송으로까지 비화했다. 그러자 베를린시는 2010년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소음으로 분류하지 않는 조례를 개정했다.
▶역발상으로 아이들이 떠들 권리를 CF로 제작한 회사도 있었다. KCC건설은 2022년 화면 가득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풍경을 채우면서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만 내보내는 TV 광고를 선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조용히 클 수 없다’는 문구를 담았다. 이 광고는 유튜브에서만 수천만 회 조회 수를 기록했고 어린이가 뽑은 ‘올해의 영상상’까지 받았다.
▶운동회가 시끄럽다는 민원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운동회 날 인근 빌딩에서 소음에 항의하며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2022년 전북 전주와 2019년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선 인근 아파트 주민의 민원 때문에 운동회를 줄여서 치렀다고 한다. ‘초품아(초등학교 품은 아파트)’가 집값 오르는 데 좋다고 선호하면서도 초등학교에서 나는 소리는 싫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학생 수가 줄면서 전교생이 수십 명에 불과한 학교가 늘자 여러 학교가 모여 연합 운동회를 해야 하는 나라에서 너무 각박한 민심이다. 아이들 노는 소리를 요즘 유행하는 ‘ASMR(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없나.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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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궂은일 싫다는 급식 조리사 노조, 로봇이 대신하는 것도 반대.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누가 하나요?
-팔면봉, 조선일보(2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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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좀 그만 하라"는 데모
1960년 9월 11일 자 조선일보 사회면은 기상천외한 데모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M초등학교 6학년 6반 학생 24명이 담임선생을 규탄하는 데모를 했다는 것이다. 학생 둘이 싸움을 했는데 담임이 한쪽 편을 들었던 모양이다. 이를 부당하다 여긴 아이들이 반장을 중심으로 스크럼을 짜고 교무실과 교장실로 쳐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이해 6월 15일 영등포구 D초등학생 200여 명은 "잡부금이 너무 많아 학교 못 다니겠다"며 시위를 벌였다.
▶4·19혁명 후 들어선 민주당 정권은 "데모로 해가 떠서 데모로 해가 진다"는 말을 들었다. 자유당 시대 데모는 1년에 50건 정도였다. 민주당 정부에선 열 달 동안 시위가 1000여 건 벌어졌다. 낡은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공로가 있다고 생각한 학생·시민들은 날마다 데모하고 정부에 뭔가를 요구했다.
▶대학생들은 남북통일 협상 같은 문제부터 '하숙비 인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경찰과 군인들도 데모를 벌였다.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대학생 데모대가 맞붙어 폭력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급기야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은 데모 좀 그만하라"고 시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민심에 빚을 진 정부는 데모대에 무력했다. 오히려 장면 총리가 대학생 대표들을 만나 정치 잘하라고 야단을 맞고 국방·외교 문제에 관한 훈수를 듣는 일도 있었다.
▶어제 청와대 옆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집회 시위 제발 그만!"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이 지역은 지난해 촛불 시위 이후 온갖 민원이 분출하는 데모의 온상처럼 됐다. 요즘도 한 달에 300건 정도 시위가 벌어진다고 한다. 주민들은 "소음과 대규모 행진, 천막 농성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지경"이라고 했다. 얼마 전 효자동 일대를 걷다가 시위대가 종로소방서 앞을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는 걸 보았다. 소방대원들은 "소방차가 드나들어야 하니 좀 비켜달라"고 통사정하고 있었다. 이 일대는 국립 맹학교·농학교와 장애인 복지관이 있어 시위로 인한 혼잡으로 자칫 안전사고도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지난달 양심수석방위원회라는 단체는 이석기·한상균씨 석방을 요구하며 죄수복을 입고 시위했다. 그들은 "촛불이 없었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마치 '혁명이 진행 중'인 상황으로 보는 것 같다. 정부가 그들을 '촛불 혁명'의 우군(友軍)으로 보는 한 '시위 좀 그만하라'는 시위를 아무리 해도 시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조선일보(1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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