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예, 또 논다~" "왜 장난하듯 막 던져?" 두쪽 난 민심]
[추석에도 자영업자는 울고 싶다]
"오예, 또 논다~" "왜 장난하듯 막 던져?" 두쪽 난 민심
정부의 깜짝 선물
임시공휴일 논란
거의 매년 정부의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지정되는 임시공휴일. 올해는 설연휴 전인 1월27일이냐 연휴 뒤인 31일이냐를 두고도 논란이 있었다. 임시공휴일을 두고 국민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린다. /일러스트=김영석
놀고 먹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놀 기분이 아닌데 억지로 놀라고 할 때, 먹을 게 없어 일해야 하는데 하릴없이 놀아야 할 때, 노는 사람 뒤치다꺼리하느라 무늬만 휴일일 때, 노는 건 번잡스러워지고 고통이 된다. 임시 공휴일이 딱 그렇다. 오는 1월 27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설까지 6일의 긴 연휴가 생겼다. 앞뒤 주말을 붙여 31일 금요일까지 연차를 내면 최장 9일간 황금 연휴가 된다. 그런데 바닥 민심은 썩 좋지 않다. “정부가 시혜 베풀듯 던져주는 임시 공휴일이 반갑지 않다” “이젠 임시 공휴일 소리만 들어도 화가 난다”는 말까지 나온다.
즐기는 자 vs. 못 즐기는 자
서울에 사는 미혼 직장인 이모(36)씨는 지난 8일 ‘27일이 임시 공휴일이 된다’는 뉴스가 뜨자마자 동남아 휴양지행 항공권을 검색했다. 애초 설 연휴가 28~30일 사흘일 때는 아무 계획을 못 세웠지만, 연휴가 두 배로 늘자 25일 토요일부터 4박 5일 해외여행을 하기로 한 것. 남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24일 금요일 밤부터 27일 사이 떠나는 외국행 비행기표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시시각각 급등했다. 50만원대였던 비행기표가 반나절 만에 80만원으로 뛰었다. 간신히 70만원대 표를 잡은 이씨는 “갑자기 결정돼 혼란이 있긴 했지만 ‘겨울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 마지막날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이 해외 여행에서 돌아오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임시공휴일 지정 등으로 연휴가 길어지면 국내 소비도 늘지만, 중산층을 중심으로 해외 여행 수요가 급증해 관광 적자가 커진다. /뉴스1
같은 날. 충남 태안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고모(53)씨는 “또야? 장사 망쳤네” 하며 허탈해했다. 그는 “임시 공휴일마다 돈 있고 시간 있는 사람들은 해외로 나간다”며 “공단·상업 지구나 국내 여행지 상권은 여느 휴일보다 매출이 떨어진다”고 했다. 택시 기사와 대리 기사들도 “설 연휴에 더해 공치는 날이 하루 늘어나게 됐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라며 울상이다.
경기도 용인의 워킹맘 정지연(44)씨도 “하루 더 논다고 좋아하는 아이들 앞에서 표정 관리가 안 된다”고 말했다. 부부는 27일 출근하는데, 초등학생 첫째는 학원에 못 가 학원비를 날리게 됐고 둘째도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돌봐줄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것. 27일 보려던 병원·은행 업무도 일정을 바꿔야 한다.
정씨는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해 가족 해외여행은 부담이 너무 크다”며 “공휴일을 이렇게 장난처럼 막 던져도 되는 거냐. 임시 공휴일 지정하면 경제가 살아나는 건 맞느냐”고 했다.
안산시의 제조 업체 대표 이모(57)씨는 “업무일이 줄어 1월 납기를 못 맞출까 걱정인데, 그날 출근하는 직원에겐 휴일 보상 수당도 150% 줘야 한다”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떠맡아야 하는 손실 비용을 정부가 지원할 거냐”고 반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임시 공휴일 때문에 생긴 각종 고민과 함께 “고물가에 살림이 팍팍한 서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 “안정적 대기업·공무원과 부자만 마음 편히 노는 날”이라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내수 진작’의 유혹 10년
선진국에선 예정에 없던 공휴일을 갑자기 정해 나라 전체가 쉬는 일이 극히 드물다. 반면 한국에선 임시 공휴일 논란이 거의 매년 불거진다. 임시 공휴일은 독재 정권 시절 대통령 생일과 장례식, 혁명 기념일과 개헌 투표일 등에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남발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과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때 지정한 적도 있다. 지금처럼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임시 공휴일이 시작된 건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올해가 10년째다.
내수 진작을 명분으로 임시공휴일이 지정된 건 2015년이 처음으로, 올해 10년째다. 이중 예외는 2017년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인한 5월 대선이 치러진 때다. /그래픽=송윤혜
초반 몇 번은 괜찮았다. 갑자기 지정돼 혼란은 있었지만 국민은 신선하게 받아들였고 경제에 일부 활기가 돌았다. 첫 번째인 ‘광복 70주년 경축과 메르스 유행으로 인한 경기 침체 회복’을 내세운 2015년 8월 14일의 임시 공휴일은 대성공이었다. 사흘 연휴에 각종 할인 행사가 더해져 유통·외식 업계와 지역 관광 업계를 중심으로 지출이 확 늘었다. 이듬해 따뜻한 5월의 임시 공휴일도 호평받았다. 2017년 들어선 문재인 정부도 그 유혹에 이끌려 그해 열흘간 추석 징검다리 연휴를 채우는 임시 공휴일을 선포했다. 이때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연 2~3%였다. 당시 정부는 공급 부족보다 수요 부족이 문제라고 봤다. 임시 공휴일로 소비를 촉진하면 생산이 다소 줄더라도 경제 전체 플러스가 크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과 부동산 폭등,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심리 악화, 실업 증가, 수출 둔화로 1%대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과거 같은 관치(官治) 경제 공식은 들어맞지 않게 됐다. 소비 여력부터 떨어졌는데 휴일로 생산력까지 하락하니 마이너스가 더 커졌다. 임시 공휴일에 대한 볼멘소리가 커진 게 이때다. 대기업 임원 김모(55)씨는 “경제가 팡팡 돌아가고 물가도 안정되면 임시 공휴일이 좋겠지만, 지금은 불황에 계엄·탄핵 사태, 항공기 참사로 인한 불안한 시국까지 겹쳐 마음의 여유가 없지 않으냐”며 “경제 전체가 얼음장인데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고 했다.
지난 2016년 어린이날과 주말 어버이날을 연결하는 5월6일에 임시공휴일이 지정됐을 당시 서울 명동 거리의 모습. 나흘간 황금연휴로 상당한 내수 진작 효과를 봤다. /조선일보DB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인한 내수 진작 효과는 4조원대로 추산되지만, 수출·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 분야는 8조원대 타격을 받는다고 한다. 연휴가 길면 국내보다는 해외로 가는 수요가 늘어 관광 적자가 커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흘 연휴가 생긴 2016년 5월 국내 카드 결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1% 늘었지만 해외 결제액은 10.9% 증가했다. 이 격차는 점점 커진다. 지난해 국군의날 임시 공휴일 덕에 10월 출국자 수는 여행 성수기를 뛰어넘는 300만명에 달했지만, 추석 자금을 40조원 풀었는데도 국내 소매 판매는 되레 감소했다. 임시 공휴일이 ‘동네 살리기 아닌 해외 살리기’ ‘임시 공휴일도 빈부 격차’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연말 계엄과 탄핵 정국, 항공기 참사 등으로 불황이 깊어진 가운데 연말 대목을 누렸어야 할 서울 남대문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상훈 기자
혼란 비용은 누구 몫?
임시 공휴일에 돈을 더 쓰게 되는 건 사실이다.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비와 약국 약제비에 휴일 할증 30%가 붙고, 응급실 이용료는 50% 오른다. 음식 배달료도 외식비도 숙박비도 뛴다. 서울 강남의 은퇴자 최모(75)씨는 “27일 골프 약속을 잡아놨는데 갑자기 주말 요금이 적용된다며 그린피를 7만원 더 내라더라. 불쾌해서 그냥 취소했다”고 했다. 부산 회사원 하모(49)씨도 “27일 캠핑·카라반이나 펜션을 알아보니 죄다 가격이 두 배 뛰었다”며 “임시 공휴일마다 물가가 예측 불가능하게 오른다”고 했다.
이번에 여론이 확 나빠진 데는 ‘며느리들의 가사 노동이 길어진다’는 설왕설래도 작용했다. 설 준비를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는 것. 맘카페마다 “시댁에서 주말부터 내려오라고 성화다” “이 정부는 항상 여성들 의견은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밀어붙인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야당이 이런 분위기에 올라타지 않을 리 없다. 민주당 소속 정원오 성동구청장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설 연휴 다음인 31일 쉬어야 한다”며 불을 질렀다. 정부는 31일은 월간 업무 마감일인 데다 귀성길 교통 분산 등을 고려할 때 27일 쉬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설 연휴를 보름여 앞둔 12일 세종시 대전공원묘원을 찾은 이들이 조상에게 성묘를 하고 있다. /세종=신현종 기자
혼란의 기회 비용이 곳곳에서 늘어난다. 학원마다 학부모들에게 “27일 왜 수업을 강행하느냐. 우린 여행 갈 거니까 그날 쉬고 보충 강의를 잡아라” “학원 측이 제시한 보강 날짜엔 못 보내니 그냥 27일 수업을 하라”는 상반된 항의가 빗발친다고 한다. 근무표를 다시 짜고, 진료 예약이나 관공서 방문 계획을 바꾸고, 휴일에 일할 사람 구하느라 난리다.
이전 임시 공휴일은 한 달여 전 발표됐다. 이번엔 촉박하게 19일 전 정해져 혼란이 가중됐다. 문제는 발표 시기라기보다는 임시 공휴일 그 자체다. 벌써 “올 추석에 10월 10일 임시 공휴일이 지정돼 열흘 연휴가 생길 것”이란 말이 파다하다. 그리고 그게 즐겁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서프라이즈도 너무 자주, 매번 똑같이 하면 재미없다.
-정시행 기자, 조선일보(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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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도 자영업자는 울고 싶다
"대한민국 치킨집 3만6000개, 퇴직 후 나는 치킨집 창업에 뛰어들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모바일 게임은 이런 멘트로 시작된다. 은퇴 후 창업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인기 메뉴를 개발하고 영업 전략을 잘 세워 매출을 올려야 생존한다. 그러나 한 달 임차료 내기도 버겁다. 인터넷엔 '대출금 갚다 파산했다'는 게임 사용자들 후기가 잇따른다. '대끝치'(대기업의 끝은 치킨집)가 유행어인 세상이다. 현실만큼 게임 속에서도 치킨집 주인은 고달프다.
▶두 달 전 정부가 공공기관 이력서에서 사진란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외모로 불이익 받지 않게 하려는 '블라인드 채용'이었다. 여기에 사진사들이 들고일어났다. 전국 사진관 주인들이 궐기 대회를 열고 삭발식까지 했다. 안 그래도 스마트폰 카메라 때문에 사진관은 힘들다. 수입의 70%를 증명사진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마저 없애면 굶어 죽는다는 하소연이다. 청년들을 위한 선의(善意)의 제도가 사진관 생존권으로 불똥 튀었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악명 높은 자영업자의 '무덤'이다. 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꼴로 자영업자다. 그렇게 많이 생겨도 대개 몇 년을 못 버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 평균 수명은 3.7년이었다. 음식점은 3.3년, 편의점은 2.8년에 불과하다. 직장에서 밀려난 중장년층이 호구지책으로 창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많이 생기고 금방 죽는다. 하도 빨리 간판이 바뀌어 인테리어 업자만 호황이다. 업계에선 '십중팔사(十中八死)'라고 한다. 10곳이 생기면 8곳이 죽는다는 뜻이다.
▶요즘 자영업자들은 "정부가 도와주진 못할망정 망하라고 한다"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 16.7% 인상이 도화선이었다. 근로시간 단축 계획도 기름을 끼얹었다. 안 그래도 소비 부진으로 힘든데 설상가상이라고 한다. 어떤 업종은 이대로 가면 자영업자보다 고용한 알바생 월급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한다. 정부가 노동 약자(弱者) 위하려다 같은 약자인 자영업자를 절망케 한다.
▶열흘까지 늘어난 추석 연휴에 자영업자들은 더 죽을 맛이다. 그만큼 영업 날짜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휴일이라고 임차료 깎아주는 건물주는 없다. 월세가 아까워 손님도 들지 않는 가게 문을 하염없이 열어둔다. 정부는 임시 공휴일을 지정하면서 내수(內需) 진작 효과를 말했다. 정작 돈 쓸 사람은 다 해외로 나가고 거리는 텅 비었다. 자영업자들은 차라리 연휴가 짧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상 최장 연휴, 울고 싶은 심정으로 거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박정훈 논설위원, 조선일보(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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