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빨이라도 좀 있었으면]
[타오르는 눈빛]
[後天開闢의 역사철학]
운빨이라도 좀 있었으면
인적 없는 새벽, 가방을 메고 관악산에 올라간다. 젊은 애들이 몰려서 낮에는 도저히 등산할 수가 없다. 그놈의 운(運), 운, 운. 운을 산에 맡겨 놨나? 인생 참 쉽게 살려고 한다. 분노를 삭이며 마당바위에 도착한다. 가방에서 노란색 래커를 꺼낸다. 숨을 고르고 바위에 또박또박 글자를 쓴다. “너희에게 줄 관악산 운빨은 없다.” 만족한 듯 웃으며 하나 더 적는다. “메롱.”

지난달 관악산 마당바위에 노란색 래커로 쓰인 낙서. "너희에게 줄 관악산 운빨은 없다 메롱"이라고 적혀 있다. /스레드
최근 논란이 된 ‘관악산 낙서’가 만들어졌을 풍경을 상상해보면 이렇다. 관할 구청은 낙서를 지우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후로도 논란이 계속 커지는 모양새다. 한 유명 연예인은 낙서 범인을 향해 “래커로 그 사람 얼굴에 색칠해 주고 싶다”고 했고, 며칠 전엔 관악산 정상 부근 웅덩이에 라면 국물이 버려진 일과 엮여서 회자됐다. 일련의 사건으로 낮은 시민 의식 수준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올 초 한 역술가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운이 안 풀리면 관악산에 가라”고 말한 게 발단. 관악산은 몇 달째 소원을 빌려는 2030으로 붐비고 있다. 많은 이에게 기운을 나눠주느라 정작 관악산은 지치고 몸살을 앓는 중이다.
다소 황당한 사건을 보며 2030이 느끼는 분노의 본질은 낙서 문구가 다큐라는 데에 있다. ‘운빨은 없다’는 말은 현실에 가깝다. 운이 없는 현실에서 티끌만 한 운이라도 기대했는데, 그마저도 조롱받은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2030을 ‘삼포 세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 세 가지만 포기했으면 다행이다. 취업, 내 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성장이 정체되고 작은 과실마저 기성세대에게 집중되는 사회에서, 2030은 자연스레 많은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됐다. 기댈 곳이 없기에 운이라도 있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악산만이 아니다. 운은 2030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왔다. 휴대폰 앱으로 하루 운세를 확인하고, 지인·직장 동료 등 주변 사람과 궁합이 잘 맞는지 확인하는 이가 여럿이다. 일상 속 사소한 결정에 대한 일종의 확신을 얻으려 한다. 변화 속도는 기존 역술가들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한 역술가는 인터뷰에서 “최근 강아지, 고양이 사주는 물론 덕질(취향을 파고드는 것)하는 아이돌과의 궁합을 보는 20대 손님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유가 더 인상적이다. 연애하려고 궁합을 보나 싶었는데, 팬으로서 아이돌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운을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은 100여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현진건 소설 ‘운수 좋은 날’(1924)에서 김 첨지가 겪었듯, 갑작스러운 운은 불행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원 빌려고 산을 찾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런 생각을 구태여 말로 할 필요는 없다. 운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버티기 어려운 절벽 앞에서 ‘운빨’을 바라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이영관 기자, 조선일보(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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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눈빛
에크하르트는 영혼의 본질로서의 지성을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영혼의 작은 성(城), 신적인 빛, 혹은 단순히 빛이라고도 한다.
—종교학자 길희성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성 사상’ 중에서
첫인상이란 정말 중요한가 보다. 때로 그것은 아주 강력해서, 누군가를 아주 오래 만난 후 그 인상이 여러 번 바뀐 후에도 첫인상만은 독립된 생명체처럼 남아 있곤 한다. 대학 시절 나를 종교학과로 이끄신 길희성 교수님의 첫인상도 그러했다. ‘안광이 지배를 철한다’라는 표현이 한낱 과장된 수사가 아님을 나는 그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 허공을 불태울 듯한 그 눈빛이라니! 누군가의 눈빛에서 그 정도의 광도(光度)를 느낀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교수님은 벌써 돌아가셨지만, 나이가 드신 후로는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가끔 들었지만, 적어도 2001년에 봤던 그때 그 눈빛만은 지금도 내 눈앞에서, 내 정신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내가 죽기 전까진 꺼지지 않으리라.
-황유원 시인·번역가, 조선일보(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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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天開闢의 역사철학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혼자 꺼내보는 카드가 후천개벽(後天開闢)의 거대담론이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의 희망이 없던 시절에 민족종교 지도자들이 꺼내 들었던 낙관적 역사철학이다. 선천(先天)의 5만 년 세월은 지나갔고, 후천(後天)의 5만 년 역사가 새로 시작되고 있다는 게 후천개벽설이다.
일제강점기에 춘원 이광수와 같은 당대의 지성들은 일본의 지배가 적어도 1백 년은 계속될 줄 알고 친일에 나섰다. 그러나 계룡산과 모악산에서 토굴 파 놓고 보리밥 한 그릇으로 연명하던 민족종교의 '도꾼'들은 일본이 곧 물러갈 것으로 보았다. '후천의 5만 년 대운이 시작되는 시점이므로 일본이 사경(私耕·품 팔은 대가)도 못 받고 곧 물러갈 것이다. 조금만 참자'고 예언하였다.
결과를 놓고 보면 당대의 식자층은 앞일을 몰랐고, 계룡산, 모악산의 미신 종사업자(?)들이 미래를 내다보았다. '영발(靈發)' 앞에 가방끈은 무력한 경우가 많은데, 일제강점기에 가방끈과 영발의 승부가 분명하게 갈렸던 셈이다.
후천개벽을 영어로 표현하면 'Great Open'이다. 무엇이 오픈된다는 말인가? 우선 양반·상놈의 신분 차별이 없어질 것이고, 광대가 대접받는 사회가 오고, 애를 못 낳는 시대가 온다고 보았다. 남녀차별이 사라지고 남녀동권(同權)이 된다고 예언하였다. 증산교를 창시한 모악산의 강증산(姜甑山)은 자신의 아내이자, 천하의 여자를 상징하는 고수부(高首婦)에게 자기의 배를 올라타서 앉으라고 시켰다. 남자를 뉘어 놓고 깔고 앉아서 부엌칼로 남자를 찌르는 퍼포먼스도 하였다. 5만 년 동안 남자에게 당한 원한을 해소하는 해원상생(解寃相生) 굿이었다.
전남 영광에서 도를 통했던 소태산(少太山)은 '물질이 개벽 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을 걸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는 장면을 보면서 정신개벽의 문제를 실감하였다. 소태산은 한국의 운세를 어변성룡(魚變成龍·잉어가 변해서 용이 됨)으로 낙관하였다.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의 미래를 낙관한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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