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에 새겨진 한미동맹 역사]
[육사 배제]
육사에 새겨진 한미동맹 역사

6·25가 발발하자 태릉에서 교육 중이던 육군사관학교 1, 2기 생도 539명도 전선에 투입됐다. 1기 262명은 임관을 보름 앞두고 있었고, 2기 277명은 입교 25일밖에 되지 않았다. 포천·태릉·수원 전선에 소총수로 투입된 이들 중 151명이 북한군 탱크에 맞서다 전사했다. 생존 생도 중 94명도 이후 다른 전장에서 전사했다. 6·25 기간 중 전사한 육사 1, 2기는 모두 245명으로 전체 생도의 45% 수준이다.
▶북한군은 육사 생도들뿐 아니라 서울 진입로인 태릉의 육사 교정을 유린하고 불태웠다. 1954년 6월 생도들이 태릉으로 돌아왔을 때 교정은 쑥대밭이었다. 교실도 숙소도 없었다.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제대로 된 국가가 되려면 정예 장교를 양성해야 한다”며 미국 웨스트포인트의 시스템을 육사에 이식했다. 그는 미국 본토와 주한 미군을 상대로 모금 운동을 했고 그 돈으로 도서관을 건립해 기증했다.
▶그는 1955년 육사 11기 졸업식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나는 육사의 최적지를 찾기 위해 전국 여러 곳을 찾아다녔고, 이곳이 모든 것을 갖췄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방어와 공격의 골든라인이다. 한국 청년들은 이곳을 조국 통일을 위한 ‘황금 같은 기회(Golden opportunity)’로 생각하길 바란다”고 했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도 6·25 중 전사했다. 1960년 육사 교정에는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미국 웨스트포인트의 1945~1951년 졸업생 중 다수가 한국전에 투입됐다. 1945년 졸업자 25명, 1946년 14명, 1947년 12명, 1948년 17명, 1949년 30명, 1950년 41명, 1951년 11명 등 150명이 한국에서 전사했다. 소총수로 전장에 투입됐던 육사 1, 2기처럼 소위로 갓 임관했던 미 육사 졸업생들도 6·25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육사 교정에는 웨스트포인트 졸업생들의 추모비가 기수별로 세워졌다.
▶태릉 교정에는 피지도 못하고 산화했던 육사 1·2기 생도들의 영령과 이국 땅에서 목숨을 바친 웨스트포인트 생도들의 투혼과 밴 플리트 장군의 헌신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역대 주한 미군 사령관들이 육사를 방문해 밴 플리트 동상에 헌화하는 것은 이런 동맹의 역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육사 교정에 피로 새겨진 한미 동맹의 역사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육사 이전을 지금 같은 방식으로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우상 논설위원, 조선일보(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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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배제
공군 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육군 소대장과 함께 훈련한 적이 있다. 공군 부대로 소대를 이끌고 온 육군 소대장은 산불 진화에 나섰다가 곧바로 훈련에 투입된 탓에 전투 장구가 온통 숯검정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소대 냉장고에서 꺼낸 물 한 잔을 권했다. 그는 "병사들이 수통에 든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데 나만 냉수를 마실 수는 없다"며 사양했다. "물 한 잔인데 어떠냐"고 하자 "육사에서 배운 FM(야전 교범)대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행군 때 다른 장교들은 군장을 가볍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육사 출신들은 그렇지 않았다.
▶국가관과 원칙에 투철한 사람을 가리켜 흔히 "사관생도 같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4년 군사훈련과 정신교육을 받는 생도는 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육사는 그 사관생도의 전형으로 통했다. 육사는 1946년 문을 열었는데, 1·2기 생도 539명이 6·25 때 최전선에 투입돼 151명(28%)이 전사했다.

▶휴전 뒤에는 똑똑한데도 집안이 어려운 청년이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는 육사를 택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군의 앞선 군사 행정 기술을 접하면서 부족한 게 많던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했다. 비(非)육사 출신 군단장·사단장들도 참모는 육사 출신을 선호했다. 육사 출신 소대장·중대장이 이끄는 부대는 무언가 달랐다. 육군 전역자들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육사는 5·16 후 호국의 간성(干城)이라기보다는 '정치군인'으로 더 많이 각인됐다. 불행한 일이었다. 결국 민주화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육사 출신들의 이너 서클이었던 하나회 소속 장군들의 옷을 벗겼다. 이것으로 '정치군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는 오히려 군의 권력화가 아니라 샐러리맨화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육사 출신을 군 주요 보직에서 배제하는 기류가 뚜렷해지고 있다. 첫 국방장관부터 '육사 배제'가 제1 기준이 됐다고 한다. 두 번째 장관도 육사 배제였다. 군 서열 1위인 새 합참의장에도 육사가 배제됐다. 군 인사의 기준은 지휘 역량이어야 한다. 육사 출신이라고 우대받아도 안 되지만 육사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배제돼서도 안 된다. 육사 출신 정치군인들이 횡행하던 시대는 26년 전에 끝났다. 그런데도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제하는 인선이 세계 군대에 유례가 있을까 싶다. 육사 배제는 우리 군 전투력을 위한 것인가, 30년 전 한풀이를 지금 하는 것인가.
-최경운 논설위원, 조선일보(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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