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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우승에서 우리가 놓친 진실] [청군·백군 경쟁이 사라졌다.. ]

뚝섬 2024. 9. 4. 09:29

[고시엔 우승에서 우리가 놓친 진실 ]

[청군·백군 경쟁이 사라졌다...요즘 어린이들 운동회]

[0교시 아침운동]

[학교 운동장이 빈 나라의 미래]

 

 

 

고시엔 우승에서 우리가 놓친 진실

 

[조선칼럼]

고교의 축구·야구팀 보유 비율
일본은 축구 80%, 야구 76%
한국은 각각 8%, 4%에 불과
단순히 스포츠만의 문제 아냐
유년시절 운동과 팀의 경험은 신체 넘어
사회적 역량 발전의 장
입시만 올인한 우리, 제정신인가
 

 

열흘 전쯤 도쿄 출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온통 고시엔 결승전 얘기뿐이었다. 호텔방에 돌아와서 본 하일라이트는 드라마 자체였는데, 거기서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라는 타이틀이 민망할 정도로 초특급 해설자들이 나와서 경기 분석을 하고 있었다. 고시엔은 그 자체가 일본 국민의 축제 같았다.

 

한국 언론이 이웃 나라 고교 야구 결승전을 대서특필한 이유는 우승팀인 교토국제고가 재일교포들이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고시엔은 매 경기가 끝나면 이긴 팀이 도열한 가운데 그들의 교가를 틀어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데, 마침 교토국제고의 교가가 한국어 가사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한국 고교팀이 우승을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일본 고교야구대회가 한국에서 크게 조명된 것은 바로 이 교가 때문이다.

 

사실 놀라운 것은 교가만이 아니다. 전교생 160명의 작은 학교가 어떻게 3715팀이 참여한 토너먼트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할 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었는지는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다. 일본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역사도 매우 뭉클하다. 게다가 진짜 고시엔 우승이라니! 출장 중에 만난 일본 교수들도 이번 우승은 일본 사회에서도 기적 같은 일이라며 축하의 악수를 청했다.

 

어깨가 으쓱할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 고교의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고시엔 본선에는 47지역의 총 3715팀의 치열한 예선을 거친 49교만이 참가했다. 엄청난 규모다. 반면 한국은 100개 정도의 고교야구팀이 활동 중이니 일본에 비해 37배 작은 수다. 인구 차이를 감안해도 규모는 15배 정도 작다. 축구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교 중 구기 종목 팀을 보유한 비율이다. 2021년 통계로 보면 일본 고교 축구팀은 3962개(우리는 190개)다. 일본 고교 수가 4887개이니 일본 고교 중 80%가 축구팀을 보유하고 있고, 76%가 야구팀을 꾸리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단 8%만이 축구팀을, 단 4%만이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한일 양국의 고교팀 스포츠 격차이다. 즉 우리 고교에서 팀 스포츠는 하나의 생활이나 문화가 아니고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다시 고시엔. 이렇게 많은 자기 지역 고교팀들 중 우승팀만이 고시엔 본선에 나서니, 가령 여름 고시엔 본선이 치러지는 8월은 모두가 자기 지역 공동체의 치어리더들이 된다. 실제로 이번에 교토국제고를 응원하기 위해 온 교토의 이웃 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의 열띤 응원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의 축제가 된 것이다. 축제가 되는 순간 경기의 승패는 보너스가 된다.

 

팀 스포츠는 말 그대로 팀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장이다. 청소년기에 크고 작은 팀에 속해서 함께 경기를 뛴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 기량을 발전시킨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협동과 배려심과 같은 사회적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승리와 패배에서 오는 기쁨과 슬픔, 응원과 비난에서 오는 안도감과 좌절감, 잘함과 못함 때문에 느끼는 자존감과 열등감을 경험하는 감정 조율의 장이다. 게다가 자기 팀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상대팀에 대해서까지 역지사지를 해볼 수 있는 공감의 연습장이다.

 

어린 시절에 ‘놀이’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겪는다는 연구는 수도 없이 많다. 놀이는 감정의 출렁임을 경험하고 조율해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 왕성하고 호르몬적으로 역동적이며 인지적으로 유연한 시기다. 이 시기에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팀 스포츠를 도려내고 청소년들을 경주마처럼 홀로 달리게 만든 우리 어른들은 제정신일까? 지속적인 단체 체육 활동이 인지 능력과 학습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며 항우울제 기능을 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어른들의 이런 판단은 심각한 오류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오도하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

 

‘운동화를 신은 뇌’의 저자인 하버드 의대의 레이티 교수는 고등학교의 0교시 체육 수업이 학생들의 학습력 향상과 뇌 구조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히며 운동이 신체뿐만 아니라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사실에 깊이 공감한 국내의 모 자사고 교장이 학교의 교육철학을 ‘체지덕’으로 삼고 전교생에게 운동부터 시킨 일이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포기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인생에서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부모들인데도 이런 반대를 하고 있다는 현실이 매우 초현실적이다.

 

-장대익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 · 진화학, 조선일보(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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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군·백군 경쟁이 사라졌다...요즘 어린이들 운동회 

 

어린이 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연지초등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 참가한 5학년 학생들이 대형 풍선 넘기기 경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회가 열리면 면 전체가 떠들썩했다. 지금은 전교생 60여 명인 소규모 학교지만 당시엔 학생 수가 1000명이 넘었다. 주민들까지 차려입고 참석해 넓은 운동장 외곽이 꽉 찼다. 문방구 아저씨도 피에로 가면을 쓰고 운동장 한쪽에 장난감을 늘어놓았다. 청군·백군으로 나뉘어 깃발을 흔들며 펼치는 응원전도 치열했다. 하이라이트인 달리기 계주를 시작하면 동네 사람들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계주 선수로 뛰지 못하더라도 달리기에서 3등 안에 들면 손목에 찍어주는 도장을 자랑할 수 있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운동회가 한창이다. 그런데 운동회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운동회 대행 업체도 등장했다. 초등학교에 여교사들이 많아지면서 만국기, 천막을 설치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들에겐 안전 관리가 최우선이다. 하나같이 귀하게 자라는 아이들이라 안전의 중요성이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학생 수가 줄면서 전교생이 수십 명에 불과한 학교가 늘자 여러 학교가 모여 연합 운동회를 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 중 하나다. 학생 수가 적으면 큰 공 굴리기 같은 단체 체육 활동을 하기 어렵다.

 

▶15년 전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운동회에 갔더니 딸아이가 울고 있었다. 운동회 청·백군 종합 점수에서 자기 팀이 졌다고 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금은 청군·백군으로 나누지도 않지만 나눈다고 해도 따로 점수를 집계하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최근 교육 목표이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자기가 청군인지, 백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초등학교 운동회 풍경 중 가장 달라진 게 경쟁이 없어진 것이다. 순위를 정하는 달리기가 사라졌다. 달리기를 해도 같이 달리는 협력 달리기,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서 달리는 미션 달리기 등으로 순위가 드러나지 않게 만든다. ‘경쟁’은 다 금기 사항이다. 상품이 있으면 모두 같은 것을 주는 것이 기본이다. 전교조 영향과 학부모들 요구가 합쳐졌다고 한다.

 

▶운동(스포츠)은 경쟁이 본질이다. 경쟁이 없으면 스포츠가 아니다. 선진국들은 학생 스포츠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이겼을 때 겸허해하며, 졌을 때도 신사답게 승복하는 법을 가르친다. 경쟁은 힘들고 경쟁하지 않으면 편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 발전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세상은 경쟁이 치열한 무대다. 결국 세상이란 무대에 나갈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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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교시 아침운동 

 

1977년 등장한 ‘국민체조’는 당시 여러 학교의 아침 풍경을 바꿨다. 필자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오전 6시 운동장에서 국민체조 음악을 크게 틀었다. 많은 학생이 모여 체조로 하루를 시작했다. 체조 후 다시 집에 가 아침 먹고 등교했다. 책가방을 메도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학교에선 체육 시간과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철봉에 매달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학생들 운동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입시 경쟁으로 학교 체육이 쪼그라든 것이다.

 

▶인간은 뛰어난 던지기 선수로 태어난다. 영장류 중에서도 최고다. 침팬지의 악력은 인간의 3배를 넘지만 공 던지는 구속은 시속 30㎞에 불과하다. 온몸을 활용해 탄성을 응축했다 일시에 풀면서 멀리 던지는 능력은 오직 인간만 지녔다. 그런데 요즘 공 던지는 법도 모르는 학생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한 체육교사는 “학생들이 운동을 너무 안 해 몸 쓰는 법을 모른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공부를 잘하려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운동 시간을 확보하라고 한다. 공부 잘하려면 몰입을 해야 하는데 운동이 주는 몰입 경험이 공부에도 도움 된다는 것이다. ‘몰입 전문가’로 알려진 황농문 전 서울대 교수는 저서 ‘몰입,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에서 운동이 두뇌 활동과 직결된다고 설명한다. 산책 같은 저강도 운동은 몰입 효과를 내지 못한다. 테니스나 달리기, 샌드백 치기처럼 땀 흘리는 강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부산 지역 초·중·고교에서 올 초 시작된 ‘0교시 아침운동’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부산 지역 600여 학교 중 벌써 300곳을 넘었다. 아침에 몸을 움직여 땀 흘린 학생들은 “체력과 공부 집중력뿐 아니라 교우관계까지 좋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학부모들도 반색한다. 밤늦도록 스마트폰이나 만지던 아이들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활기차게 등교하니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몇 해 전 호주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쉬는 시간에 교실에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담임 교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학생은 수업 시간 외에는 나가서 뛰어놀아야지 교실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영국 이튼스쿨 교과 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체육 시간이다. 체육 시간 비중이 전 교과의 25%인 학교도 있다. 미국 사립 명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0교시 체육’이 변화의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선진국 학교들처럼 샤워장과 탈의실도 갖춰졌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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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이 빈 나라의 미래

 

캐나다 초등학교 점심시간은 밥 먹는 데 20분, 노는 데 40분으로 나뉘어 있다. 아이는 밥 먹은 뒤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마음껏 뛰논다. 축구·야구·하키·배구 같은 운동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스웨덴에선 점심시간에 아예 교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모두 운동장에 내보낸다. 프랑스 중학교에선 체육 수업이 주 4시간으로 프랑스어·수학과 함께 가장 많다. 선진국에선 거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놀지 못하게 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아이가 다치면 학부모 항의를 받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한 초등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아이가 넘어져 찰과상을 입자 학부모가 교사를 고소했다. 초·중등 교육은 아이들 책 읽히고 운동시키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아이 무릎 까졌다고 교사를 고소하고, 그게 무서워 체육을 안 가르치면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다. 
 

 

▶요즘 교사는 별의별 민원을 다 받는다. 운동장에서 노는 대신 복도에서 마음껏 뛸 수 있게 해달라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모기에 물리면 "애 모기 물릴 때 뭐했느냐"고 성화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 몸에 상처가 있는지부터 살핀다고 한다. 책임을 면하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는 체육 수업 하지 말라는 민원이 들어온다. 공부할 아이들 왜 피곤하게 땀 빼느냐는 거다. 올해 서울대 건강사회정책연구실이 조사해보니 고등학교 체육 수업 권장 기준인 주 3시간을 지킨 학교는 25%에 그쳤다.

▶그러나 각종 연구 결과는 '뛰어놀아야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재작년 실험해 보니 일주일에 한 시간 마음껏 뛰어논 아이는 공부에 대한 흥미와 태도가 6%포인트 올랐다. 특히 하위 10% 학생은 21%포인트나 올랐다. 정상 수업한 아이는 변화가 없었다. 존 레이티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작년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운동 기반 교육이 강화되는 추세인데 한국은 역행하고 있다"며 "매일 최소 40분 운동을 해야 피와 산소가 뇌로 많이 공급되면서 학습 능력이 좋아진다"고 했다.

▶스포츠는 신체를 단련하는 동시에 인간관계를 비롯한 사회성 훈련에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은 스포츠를 통해 규칙과 명예, 승복, 협동과 희생의 가치를 깨닫는다. 선진국에서 다른 어떤 과목보다 체육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 청소년은 안경 쓰고 휴대폰으로 게임하는 것이 표본적인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학교 운동장이 빈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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