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流, 방글라데시 지식인의 원망]
[일본 대중문화 개방 20년]
["일본의 문화식민지 될거란 공포심, 市場에 맡기니 자연스레 극복"]
韓流, 방글라데시 지식인의 원망
1970년대 방한한 외국인에게 한국 청소년 문화(youth culture)가 어떻냐고 물었다. 한마디로 답했다. “양키 문화네요.” 더벅머리에 찢어진 청바지 입고(wear ripped jeans with a mop of hair) 팝송만 따라 부르는 세태가 염려스러웠던 때다. 일본은 불구대천의 원수(sworn enemy)라고 거품을 물면서 일제(日製)라면 사족을 못 쓰며(be mad for Japanese products) 왜색(倭色)을 따라 하는 족속도 많았다.

인구 1억7000만 명인 방글라데시의 한 지식인이 ‘한류: 문화 침공과 그 영향(Korean wave: A cultural aggression and its impact)’이라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젊은 세대에 대한 절박한 심경을 토로했다(pour out his heart of desperation). 간추린 내용은 이렇다.
“음악·드라마·영화에 이어 미용·패션, 심지어 ‘먹방’까지 한국의 다채로운 대중문화에 방글라데시 젊은이들도 탐닉하고 있다(indulge in them). 서양과 아시아 문화가 잘 버무려져 있는 데다, 자식에 대한 헌신(devotion to their children), 연로한 부모 모시기(taking care of their old parents), 형제·자매 사랑(sibling love) 등 가족 간 우애가 방글라데시인들의 정서와 비슷한 이유도 있다. K팝 주제와 가사(themes and lyrics)는 우정, 사랑, 어떤 암울함도 극복해 내겠다는 결의(determination to overcome the depression of any kind)로 차 있어 젊은이들 마음을 사로잡는다(sweep them off their feet).
한국 고유의 기풍(own ethos)에 서양적 요소들을 가미한 한류의 문화적 혼종성(cultural hybridity)은 세계화와 현지화를 결합하는 ‘glocalization’ 과정이어서 방글라데시 젊은이들도 동참하는 기분을 느끼는 듯하다. 문제는 한국 드라마·영화·노래에 너무 집착해(be obsessed with them) 우리 것들 대신에(in lieu of ours) 한류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K드라마 중 상당수는 인간 삶에 대한 비현실적 관점(unrealistic view of human life)을 재미로 삼아, 자칫 시청자들의 기대를 부추겨(augment viewers’ expectations) 불안과 우울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젊은이들은 한국 아이돌 티셔츠, 배지, 반지, 가방, 장신구 등을 사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make frantic efforts).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을 사서 바르느라, 남성들은 아이돌 패션을 따라 입느라 정신없다. 라면조차 국산은 외면하고(turn away from local products) 한국산만 선택한다(opt for the packet of Korean ramen).
한류는 언어적 영향까지 미치고 있다(have a lingual influence on our young generation). 여기저기서 ‘오빠’ ‘친구’가 들린다. 한국말 쓰는 것이 앞서가는 징표처럼 여겨진다. 고유 문화를 잊고 한류만 맹목적으로 따라가는(follow blindly) 숫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금 상태로라면 방글라데시는 결국 끔찍한 결과를 맞게(face horrific consequences in the long run) 될 것이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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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문화 개방 20년
'오랑캐를 물리치자.' 일장기에 '攘夷(양이)' 두 글자를 새긴 현수막이 내걸렸다. 방탄소년단(BTS) 공연이 열린 지난 13일 일본 도쿄돔 앞에서 시위한 '일본 새벽회' 청년들이 내건 구호다. '양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이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일본 침략에 저항하며 내건 구호가 '척왜양이(斥倭攘夷)'였다.

13일 BTS 공연이 열린 도쿄돔 앞에서 ‘오랑캐를 물리치자(攘夷)’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하는 청년. /뉴시스
올해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20주년 되는 해다. 1998년 10월 20일 우리 정부는 일본 영화·만화를 전격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2006년까지 방송·음반·게임·애니메이션을 전면 개방했다. '왜색 문화가 우리 문화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것'이란 우려가 높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양이'란 구호가 나올 만큼 극적인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960년대 미국에서 비틀스가 엄청난 인기를 끌자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략)'이라고 했던 것처럼 '21세기 비틀스'라 불리는 BTS를 중심으로 한류 바람이 거세지자 일본 내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잠식 두려워 않고 글로벌 전략으로 질주
'콘텐츠의 역전'은 음악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한국 음악의 일본 수출액은 최신 통계인 2016년 2억7729만달러로 일본 음악 수입액 291만달러의 약 100배에 이른다. 게임 분야도 크게 앞섰다. 수출액은 6억달러로 수입액 5160만달러의 10배가 넘는다. '바람의 나라'(넥슨)에서 배틀그라운드(펍지)까지 한국 온라인 게임이 일본 PC방을 장악했다. 방송도 마찬가지. 수출액이 수입액의 약 12배에 이른다.
이달 데뷔한 국내 첫 한·일 합작 걸그룹 '아이즈원'은 '역전'의 상징적 사례다. 멤버 12명 중 3명은 AKB48 등 일본 인기 걸그룹 출신.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에서 한국 연습생들과 '계급장 떼고' 경쟁해 데뷔했다. 한국 안무가에게 춤 실력 등을 지적받는 등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김용범 CJ ENM 책임 프로듀서는 "일본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모델로 삼아 출발했던 때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개방 초기부터 대규모 시장인 일본을 노려 공격적으로 대응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일본 음악 산업 규모는 57억3100만달러로 미국(195억8800만달러)에 이어 세계 2위. 한국(9억4500만달러)보다 6배 크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일본 걸그룹이 '성장형 국민 여동생' 이미지로 자급자족 수익에 주력했지만 한국은 일찍부터 글로벌 시장에 눈을 돌렸다. 칼군무에 외국어 실력을 갖추며 경쟁력을 높였다"고 했다.
◇혐한 기류도 뚫은 콘텐츠의 힘
유튜브와 온라인 기반으로 바뀐 음원 소비 방식도 큰 날개가 됐다. SM 관계자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곧바로 신곡 음원을 동시에 발매할 수 있게 되면서 활동 제약이 줄고 성과도 커졌다"고 했다. 이제는 일본 프로덕션이나 방송사 홍보에 의존하지 않아도 일본 팬들이 BTS· 워너원·트와이스 등 K팝 아이돌의 신곡 영상에 직접 번역 자막을 달아 소셜미디어로 확산시킨다.
'티셔츠 논란'으로 불거진 혐한 기류에도 BTS 도쿄돔 콘서트에 10만 관객이 몰려든 건 '콘텐츠의 힘' 덕분이다. 이규탁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글로벌 음악 트렌드를 발 빠르게 흡수해 퍼포먼스 실력까지 갖춘 아티스트급 아이돌을 탄생시키는 콘텐츠 측면에서 한국이 압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한·일 간 정치 갈등이 대중문화 교류에 영향을 주지만, 전문가들은 "한·일 대중문화는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라고 입을 모은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K팝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은 여전히 개척 기회가 큰 시장"이라고 했다.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은 세계시장 개척을 위한 교두보다. 일본 대중문화평론가 후루야 마사유키는 "정치는 정치의 사명이 따로 있다. 문화는 이와 별개로 시민 교류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수정 기자/도쿄-최은경 특파원, 조선일보(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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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화식민지 될거란 공포심, 市場에 맡기니 자연스레 극복"
1998년 개방 실무 주도한 오지철 前 문체부 차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이미 젊은이들 사이 일본 록 그룹 X-japan 열풍이 불고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를 열창했지만,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오지철(69·사진) 하트하트재단 이사장은 1998년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실무를 주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중문화 개방을 검토하겠다는 의지가 컸다. "1998년 신년 보고에서 '개방 검토'를 보고하자 대통령은 '두려움 없이 임하라'고 지시했다."
국민 정서를 거스르지 않는 '단계적 개방'이 과제였다. "빠른 속도로 우리 문화를 점령할 것이란 공포심이 있었다." 저급한 일본 문화가 밀려올 것이란 우려도 컸다. 정부는 "좋은 문화만 들여오겠다"며 1차 개방 때 세계 4대 영화제 수상 영화만 개방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가게무샤',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가 그때 들어왔다. 1999년 2차 개방 때는 '철도원' '러브레터' '링' 등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 문화계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1993년 '서편제'와 1997년 '접속'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붙을 무렵이었다. 게임도 그랬다. 일본이 강세인 비디오게임과 달리 일찍부터 온라인 게임에 뛰어들었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나 김범수 당시 한게임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오 이사장은 "대중문화 개방이 우리 문화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공식적으로 수입되면서 몰래 베끼는 문화가 사라졌다." 2002년 3차 개방이 이뤄질 무렵부터는 NHK가 '겨울연가'와 '가을동화'를 수입해 방영했다. 대중음악 산업은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됐다. 오 이사장은 "당시만 해도 가수 육성 시스템을 갖춘 일본 기획사 AVEX와 합작하려고 난리였다"면서 "이수만도 아무로 나미에를 보고 보아를 육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방탄소년단처럼 우리가 더 완벽한 상품을 시장에 내놓게 됐다"고 했다. 그는 "문화 경쟁력은 정부 정책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융합이 이뤄지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지난 20년의 교훈"이라고 했다.
-백수진 기자, 조선일보(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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