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笞刑)]
[고려·조선의 노역형]
태형(笞刑)

범죄자를 매질하는 태형(笞刑)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에 나올 만큼 오래된 형벌이다. 전근대 시기 태형은 가벼운 형벌로 간주됐다. 한나라 문제는 “코를 베거나 발뒤꿈치를 끊는 것은 너무 잔인하니 매질로 대체하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가혹하기 그지 없는 형벌이다. 조선시대에는 직경 0.5~1㎝, 길이 116㎝ 회초리로 최소 10대에서 최대 100대까지 때렸다. 말만 회초리일뿐, 있는 힘껏 때리기 때문에 불구가 되기 십상이었다. 맞을 때 지린 대소변으로 인한 2차 감염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사극에 주로 나오는 노처럼 생긴 몽둥이는 곤(棍)이다. 그 중에도 길이 173㎝, 너비 16㎝인 치도곤에 잘못 맞으면 골반이 부러졌다.
▶오늘날에도 가혹한 태형을 집행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다. 엉덩이가 드러나는 하의 차림으로 형틀에 묶고 길이 1.2m, 두께 1.27㎝의 등나무 회초리로 최대 24대까지 때린다. 형 집행자가 도움닫기로 달려와 무자비하게 때린다. 내려치는 속도가 시속 160㎞ 넘어서 석 대만 맞아도 살점이 터지고 피가 흐른다. 집행자는 세 번 때리고 수형자의 눈을 확인해 눈동자가 풀려 있으면 쇼크사를 막기 위해 집행을 중단한다. 다 맞지 못한 매는 최대 12개월까지 징역형으로 대체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혼외 성관계와 음주 혐의로 적발된 남녀가 지난 주말 각각 140대의 태형을 받았다.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혹하게 때리는 싱가포르와 달리 견딜 수 있는 강도이고 때리는 곳도 엉덩이가 아닌 등이다. 중동의 사우디·아랍에미리트처럼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으로 처벌하는 나라들이 이런 방식을 쓴다. 싱가포르는 불임 우려 때문에 여자를 태형에서 제외하지만 이 나라들은 남녀 불문하고 매질한다. 실질적 고통보다는 대중 앞에서 매맞는 치욕을 안기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태형은 공포심과 수치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교정 효과를 낸다. 리콴유 총리 시절, 18세 미국인 청소년이 싱가포르 도로 표지판을 훼손했다가 태형을 선고받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비를 호소했지만 리콴유 총리가 “말썽꾸러기는 맞아야 한다”며 형을 집행했다. 매를 맞고 풀려난 청년은 그 후 비행 청소년에서 벗어나 무사히 대학까지 마쳤다고 한다. 반론도 있다. 많은 범죄행동학자가 태형은 단기적 효과가 있지만 상습범에게는 오히려 공격성을 키우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한다. 매로 죄를 다스린다는 발상이 여전히 통한다는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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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의 노역형
조선시대 노역형 받은 죄인, 종일 소금 굽거나 쇠 달궈
고려시대에 五刑제도로 형법 세워
곤장·노역·귀양·사형으로 형벌 내려
지난 15일 홍콩산 금괴를 밀수한 일당 8명이 모두 유죄판결을 받고 1인당 669억~1조3000억원, 총 4조원을 벌금으로 물게 됐어요. 우리나라 사법 사상 최고액 벌금 기록입니다.
이 일당은 벌금 낼 돈이 없다며 '몸으로 때울' 가능성이 높아요. 우리나라 법은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벌금을 내지 못하면 노역장에서 일해 벌금을 갚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노역장에서 일하는 기간은 최장 1000일로 정해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 벌금 액수를 노역한 일수로 나눴을 때 하루 일당이 터무니없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금괴 밀수 일당 주범은 벌금 1조3000억원을 내야 하는데, 1000일 동안 꼬박 노역해서 갚으면 일당이 13억원이 돼요. 이런 걸 '황제 노역'이라고 하죠.
옛날에도 형벌의 한 종류로 강제 노역을 시키는 경우가 있었어요. 과연 어떤 노역을 시켰을까요?
◇강제로 노역을 시키는 '도형'
조선 세종 때인 1435년, 한성부 한 관리가 임금께 아뢰었어요.
"도성 안에서 부모가 길거리에 아이를 버리는 일이 빈번한데 이는 아이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를 명백히 다스리소서."
세종은 법규나 법전을 만드는 기구인 상정소에 이 일을 의논하게 했어요. 상정소는 "장형(杖刑) 70대와 도형(徒刑) 1년으로 벌을 주도록 하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이는 '세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인데, 몽둥이로 볼기를 치는 '장형'과 강제 노동을 시키는 '도형'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대목이죠. 도형은 조선왕조실록에 수백건 이상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강제 노역형을 처음 시행한 것은 고려가 중국 당나라의 법률을 받아들여, 오형(五刑) 제도를 시행하면서부터랍니다. 형벌을 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 등 다섯 가지로 구분한 것이죠. 뒤로 갈수록 무거운 형벌이에요.
태형은 비교적 가벼운 죄를 지은 자를 작고 가벼운 몽둥이로 때리는 벌, 장형은 크고 무거운 몽둥이로 때리는 벌입니다. 도형은 1년, 1년 6개월, 2년, 2년 6개월, 3년 다섯 가지로 구분해 장형과 함께 실시했어요. 매를 때린 뒤 노동을 시킨 거죠. 유형은 그보다 무거운 형벌로 먼 섬이나 외딴곳에 귀양 보내는 것으로, 역시 장형과 함께 실시했지요. 사형은 말 그대로 목숨을 끊는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고요.
도형에는 '치욕을 준다'는 의미가 있대요. 당나라 법률을 해석한 '당률소의'에 따르면 "도(徒)'라는 것은 '노(奴)'를 뜻하는 것으로, 대개 종으로 삼아 치욕을 주자는 것인데, 죄를 지은 남자에게 노역을 시키고 옥에 가둬 교화한다"고 했어요.
◇종일 소금 굽거나 쇠 달궈

세종은 "도형을 받아 노역하는 사람이 일이 날마다 일정하게 없어 아무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면 죄를 벌하는 뜻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어요.
이후 조선시대에 도형을 받은 죄인들은 소금을 굽거나 쇠를 달구는 힘든 일을 하게 됐습니다. 염전에 간 죄인은 매일 소금 세 근을 구워야 했어요. 당시 소금 굽는 일은 한번 불을 지펴 반나절 이상 계속 불을 때면서, 소금이 타지 않도록 불 세기를 조절해야 했어요. 또 계속 주걱으로 바닷물을 저으며 졸여야 했기에 잠깐도 눈을 뗄 수 없는 힘든 노동이었지요.
야철장에 간 죄인은 뜨거운 불 앞에서 오랜 시간 정신을 집중해 쇠를 달궈야 했지요.
◇돈 있으면 노역 안 해도 돼
요즘은 벌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강제 노역을 하지만, 고려·조선에서는 반대로 강제 노역을 선고받고 벌금을 내면 노역을 피할 수 있었어요.
조선은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을 번역한 '대명률직해'를 기준으로 삼았어요. 여기에 도형을 면하고자 내는 돈인 '속전'에 대한 기록이 나와요. 도형 1년을 면하려면 무명(오승포) 60필, 1년 6개월은 75필, 2년은 89필, 2년 6개월은 105필, 3년은 120필을 내야 했어요.
조선 후기 법전인 '속대전'에는 도형 1년은 면포 2필과 대전(代錢) 7냥, 도형 3년은 면포 6필과 대전 21냥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도형에는 귀휴, 병가 제도도 있었어요. 죄인이 부모상을 당했을 때 역모에 관계된 죄인만 아니면 말미를 줘서 다녀올 수 있게 했어요. 복역 중 병이 나면 병가를 줬다가 나중에 완쾌되면 쉰 날을 계산해 그만큼 벌충하게 했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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