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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아이누'와 쿠릴열도] [일본도 상대를 만났다]

뚝섬 2022. 8. 7. 05:43

[소수민족 '아이누'와 쿠릴열도]

[일본도 상대를 만났다]

 

 

 

소수민족 '아이누'와 쿠릴열도

 

1만년 전 쿠릴열도 정착한 원주민, 러·일 국민과 인종·언어·문화 달라
아이누족 만난 18세기 조선인 이지항 "얼굴 검고 수염 길어… 쌀 모르더라"

 

최근 미국이 일본에 육상배치형 미사일 요격 시스템 '이지스어쇼어'를 판매하기로 확정했어요. 일본이 수년간 공들여 추진해 온 방위력 증강 계획의 일부랍니다. 그런데 이 계획에 러시아가 발끈하고 있어요. 일본 정부는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러시아 입장에선 러시아 코앞에 이지스어쇼어가 설치되는 게 마땅찮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러시아도 지지 않고 일본 북쪽에 있는 러시아 영토 '쿠릴열도'에 레이더 기지를 지었어요. 이번엔 일본이 골을 낼 차례지요. 일본은 안 그래도 쿠릴열도 일부가 자국 영토라며 돌려달라고 러시아를 설득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땅을 내놓긴커녕 그곳에 레이더 기지를 세웠거든요.

소수민족 '아이누' 땅이었던 쿠릴열도

지금은 이렇게 일본과 러시아가 쿠릴열도를 놓고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사실 이 땅의 원래 주인은 일본도 러시아도 아닌 '아이누'라는 소수민족이었어요. '아이누'는 아이누어로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이들에겐 "태양의 아이들(일본인)이 오기 10만년 전부터 우리가 이곳에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와요. 물론 10만년은 '전설'이고, 고고학계에서는 아이누족이 약 1만년 전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어요.

아이누족은 러시아 사할린, 일본 홋카이도, 쿠릴열도 일대에서 살면서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위키피디아

 

아이누족은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부족 생활을 했어요. 일본 혼슈의 도호쿠 지방, 홋카이도,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열도, 캄차카반도 등지에 흩어져 살았지요. 이들은 외모가 독특해요. 백인처럼 눈·코·입 윤곽이 뚜렷하고, 동남아 사람들처럼 피부색이 어두운 편이거든요. 남자들은 턱수염을 길게 기르는 전통이 있었고요. 일본인들은 과거에 그런 아이누족을 '에미시(毛人)'라고 낮춰 불렀어요. 일본인에 비해 몸에 털이 많은 아이누족의 특징을 얕잡아보는 말이었지요.

 

조선 지식인들도 어렴풋이나마 아이누족의 존재를 알았어요. 영조 때인 1756년 선비 이지항이 홋카이도로 표류했다 돌아와 '표주록'이라는 책을 쓰면서, 아이누족에 대해 기록했어요. "(아이누는) 검푸른 머리칼에 긴 수염에다가 얼굴은 검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자) 물고기탕(魚湯)을 작은 그릇에 담아줄 뿐. 배 안에 있던 쌀을 보여줬지만, 이들은 그게 뭔지 알아보지 못했다." 아이누족이 농사보다는 고기잡이와 사냥으로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죠.

◇일본과 러시아에 정복당한 아이누

일본은 군주국이지만 실권은 사무라이들의 우두머리인 '쇼군(將軍)'이 쥐고 있었어요. 쇼군의 정식 명칭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지요. 아이누 같은 '오랑캐'를 정복하는 게 쇼군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어요. 15세기 이후, 일본 역대 쇼군들이 차근차근 북쪽으로 세력을 넓혔어요. 19세기에는 일본 혼슈 동북부와 홋카이도까지 모두 일본 중앙정부의 지배 아래 들어왔어요. 아이누족도 자연히 '일본인'이 됐죠.

문제는 아이누족이 용모도 언어도 다른 '이민족'이라는 점이었어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일본인은 단일민족'이라고 강조했어요. 아이누족은 그런 주장이 빛바래게 하는 존재였지요. 결국 일제는 1899년 아이누 민족의 고유 풍습을 금지하고 일본어 사용을 의무화했어요. 전통적인 수렵 생활을 금지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압박했지요. 전후에 이런 차별 정책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일본 사회에 차차 높아졌어요. 아이누족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고요. 아이누족을 억지로 동화시키던 법이 1997년에 정식으로 폐지됩니다. 지난 15일에는 아이누족이 국유림에서 나무를 베고, 강에서 연어 같은 물고기를 잡는 것도 일부 허용한다는 내용의 법안도 나왔습니다.

[19세기 시작된 쿠릴열도 문제]

 

쿠릴열도는 크고 작은 섬 56개가 늘어선 열도예요. 최북단 아틀라소프섬(일본명 아라이도토·阿頼度島)은 러시아 캄차카반도, 최남단 쿠나시르섬(일본명 구나시리토·国後島)은 일본 홋카이도 코앞에 있지요.

18세기까지는 일본도, 러시아도 이곳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요. 19세기 들어 두 나라가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며 충돌이 시작됐어요. 남진하는 러시아와 북진하는 일본이 쿠릴열도에서 맞닥뜨린 거죠.

두 나라는 1855년 쿠릴열도에서 가장 큰 섬 이투루프섬(일본명 에토로후토)을 기준으로, 이 섬 남쪽은 일본 땅, 북쪽은 러시아 땅으로 삼기로 했어요. 쿠릴열도 옆에 있는 큼직한 섬 사할린은 양 국민의 공동 거주지가 됐지요.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년)에서 러시아를 꺾은 뒤, 쿠릴열도는 물론 쿠릴열도 옆에 있는 사할린섬도 절반을 차지했어요.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런 판세가 뒤집힙니다. 일본이 미국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소련이 일본을 침공해 쿠릴열도 전체를 점령한 거예요.

전후에 일본은 소련에 "1855년에 정한 대로 이투루프섬 남쪽에 있는 4개 섬은 돌려달라"고 요구했어요. 소련은 "2개만 돌려주겠다"고 했지요. 긴 협상 끝에 두 나라가 합의 직전까지 갔지만, 1960년 일본이 미국과 미·일 안보조약을 맺자 소련이 격분해 약속을 취소했어요. 이후 수십 년 동안 일본은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러시아에 약속하며 4개 섬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하지만 러시아가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작다고 합니다. 

 

-안영우 명덕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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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상대를 만났다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빚는 남쿠릴 4개 섬을 일본은 '북방영토'라고 한다. 2월 7일 '북방영토의 날'은 일본 정부가 정한 국가 기념일이다. 지방 기념일에 머무는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이름)의 날'과는 일본 정부가 다루는 수준이 다르다.

남쿠릴 4개 섬은 일본이 지배하는 센카쿠열도와 달리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다. 일본은 북방영토에 대해선 '시끄럽게', 센카쿠에 대해선 '조용하게'란 원칙으로 대응해 왔다. 상대가 지배한 땅은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내가 지배한 땅은 기정사실로 만든다는 전술이다. 독도의 경우 교묘한 자극을 통해 한국 스스로 소란을 떨도록 유도하는 전술로 대응했다. 북방영토와 독도는 경우가 다르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다. 한국이 일본의 안보를 책임진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안보 역학의 관점에서 분쟁의 순서를 뒤로 미룬 것뿐이다.

일본이 이들 지역에서 똑같이 적용하는 원칙이 있다. '역사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과거 일본이 강했을 때 상대국의 의사에 반하면서 지배한 영토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는 역사문제로 보고 있다. 중국은 센카쿠를 중국이 정신없던 19세기 후반에 일본이 중국 동의 없이 점령했다고 보고 있고, 러시아는 남쿠릴 4개 섬에 대해 러시아가 약했던 때 내준 땅을 2차대전 승전으로 얻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센카쿠나 남쿠릴을 독도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 분쟁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역사에 대한 일본의 의도적 외면이다. 일본은 중국에서 일어나는 반일(反日) 시위를 빈부 격차, 청년 실업, 정치 혼란 등 중국 내부 문제로 해석한다정치 후진국에 대한 조롱에 가까울 정도다. 중국의 반일 정서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근원을 찾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 대한 시각도 그렇다. 일본이 2008년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교육을 명기하면서 반일 감정이 비등하자 '쇠고기 파동으로 균열된 국론을 통합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쏟아졌다. 마침 세계적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곧 일본에 손을 벌릴 나라가…'란 조롱까지 신문 칼럼에 실렸다.

 

1일 러시아 대통령이 쿠릴열도를 방문했다. 중·일간 남방 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일본 열도의 북방에 불을 지른 것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일본은 패권주의의 부활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경제력이 강해진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을 상대로 대국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러 패권주의 못지않게 일본의 역사 외면도 악성이다. 센카쿠와 남쿠릴에 대한 중·러의 도전이 국민적 반일 정서를 등에 업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는 먹고살기 바빠 행동하지 않던 과거의 늙은 대국이 아니다일본이 역사를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일본은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동북아 안정도 흔들릴 것이다. 일본은 드디어 상대를 만난 것이다.

 

-선우정 도쿄 특파원, 조선일보(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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