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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폴 뉴먼의 스테이크·햄버거·베이컨] [폴 뉴먼]

뚝섬 2022. 8. 9. 08:52

[배우 폴 뉴먼의 스테이크·햄버거·베이컨]

[폴 뉴먼(Paul Newman)]

 

 

 

배우 폴 뉴먼의 스테이크·햄버거·베이컨 

 

‘내일을 향해 쏴라’로 명성을 날린(rise to fame) 폴 뉴먼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말런 브랜도, 제임스 딘과 함께 미국 청년 문화를 상징했고, 여배우 오드리 헵번과 1960년대 할리우드의 자웅(雌雄)을 겨뤘다(vie for supremacy). 2008년 폐암으로 타계한(die of lung cancer) 그는 자상한 남편(attentive husband)이자 다정한 아빠(friendly dad)로도 유명했다.

 

무명 시절 첫 결혼에 실패한 후 동료 여배우 조앤 우드워드와 재혼해 50년 동안 금슬 좋은 부부로 살면서(live in conjugal harmony) 할리우드의 유례 없는 원앙부부(unparalleled lovebirds)로 불렸다. 자신은 절대 아내를 속이고 바람을 피우지(cheat on his wife) 않는다며 “집에 스테이크가 있는데 왜 햄버거를 사먹으러 가겠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의 가족 증언을 바탕으로 최근 제작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be completely different in reality). 뉴먼은 지독한 술고래에 바람둥이(awful tippler and womanizer)였다. 아침에만 맥주 6캔을 마셨다. 매일밤 만취해 의식을 잃었고(get dead drunk and pass out), 침대에서 떨어져(fall out of bed)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의식불명으로 널브러져 있기(lie insensible with his head bleeding) 일쑤였다.

 

아내인 우드워드는 걸핏하면 ‘햄버거’를 먹으러 다니는 그의 엽색 행각을 혐오했다(loathe his philandering). 뉴먼이 언론을 상대로 “집에 스테이크가 있는데 왜...”라고 말할 때마다 자신은 그의 한 끼 고기 조각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feel like a piece of meat). 세 아이를 낳은 첫 부인을 속이고 자신과 바람을 피웠던 뉴먼이 언젠가 자신도 버리고 또 다른 바람을 따라갈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live in the anxiety).

 

그랬던 뉴먼의 바람기가 사그라든 건 첫 부인과 사이에 낳은 외아들(only son)이 돌연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세 남매 중 맏이(eldest child)였던 어린 아들은 부모의 이혼(parents’ divorce)에 충격을 받아 불과 12세 때 접착제를 흡입하다 적발되는(be caught sniffing glue) 등 일탈을 거듭했고, 끝내 1978년 28세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die in 1978, aged 28 from a drug overdose).

 

아들의 죽음 이후 뉴먼의 연기는 더 어두워지고 깊어졌다(become darker and deeper). 아들에게 속죄하는(atone for his wrong) 마음으로 약물 재활 센터(drug rehabilitation center), 중병 환자 어린이용 캠프(camp for desperately ill children), 자선 활동을 위한 식품 회사를 설립하는 등 술고래·바람둥이에서 할리우드의 대표적 박애주의자로 변신했다(turn into the most representative philanthropist).

 

뉴먼은 ‘내일을 향해 쏴라’가 개봉된 1968년엔 낸시 베이컨이라는 여기자와 염문을 뿌려 “이번엔 햄버거가 아닌 베이컨을 먹으러 다닌다”는 비아냥을 들었었다. 외아들이 죽기 10년 전, 자신이 죽기 40년 전이었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11085621/A-documentary-Paul-Newman-reveals-truth-fidelity-wife-writes-TOM-LEONARD.html

☞ https://www.barrypopik.com/index.php/new_york_city/entry/why_go_out_for_hamburger

☞ https://www.biography.com/news/paul-newman-joanne-woodward-hollywood-golden-couple

☞ https://www.biography.com/news/paul-newman-joanne-woodward-hollywood-golden-couple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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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뉴먼 Paul Newman (1925–2008)

 

한국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던 고전 배우중 한명인 폴 뉴먼은 1960-70년대까지 헐리우드 최고의 스타였다.  1954년도에 영화배우로 데뷔한 폴 뉴먼은 1956년 복싱 선수 로키 그라지아노의 일대기를 그린 "상처뿐인 영광" 으로 스타로 올라서기 시작하였다.

 

영화속에서 탄탄한 근육질의 육체와 반항어린 연기로 단숨에 청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폴 뉴먼은 이후 탄탄대로의 길을 걸으며 "영광의 탈출" "허슬러" "쿨 핸드 루크"로 1960년대 미국 영화 흥행을 주름잡았으며,  1970년대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대작 "스팅"과 "타워링" "내일을 향해 쏴라"로 한국은 물론 전세계 극장가를 석권하였다.

 

이런 모든 것을 가진 그였지만 최악의 비극을 맛 본 사람도 바로 폴 뉴먼이었다. 그건 바로 그의 외동 아들인 스콧 뉴먼이 약물 과용으로 28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콧 뉴먼은 오토바이 사고 휴유증으로 진통제를 과용하였으며 여러 약물과 알코올 남용으로 1978년도에 급사하였고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망연자실한 폴 뉴먼의 슬픔은 주위 지인들까지도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아들의 죽음 이후 폴 뉴먼은 자신이 만든 샐러드 드레싱 회사인 뉴먼스 오운을 설립하여 전 수익금을 기부하는 등 선행에 앞장 서기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 폴 뉴먼이 기부한 액수는 무려 3억3000만불이라고 한다. 또한 나이가 50대 중반이 넘어선 1980년대 부터는 과거 같은 화려한 영화속 주인공을 자주 맡지는 못하였지만 여전히 멋진 카리스마를 뽐내었으며 "컬러 오브 머니"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연예병사로 2차 대전에 참전하기도 하였던 폴 뉴먼은 월남전에 반대하는 의식있는 영화배우이기도 하였고 잘난체 하는 다른 헐리우드 톱스타들과는 겸손함과 친절함으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으며 사생활면에서도 너무 건전하였다.

 

첫번째 부인과 이혼한후 영화 촬영중 만난 영화배우 조앤 우드워드와는 1958년도에 결혼하여 무려 50년간 해로한 잉꼬 부부였으며 영화외에 카 레이싱에도 흥미가 많아 직접 카레이싱 대회 참가는 물론이고 카레이싱 팀의 구단주이기도 하였다. 비교적 건강하게 80세가 될때까지 연기 생활을 이어온 폴 뉴먼 이었지만 2008년도에 갑작스런 폐암 경고와 함께 83살의 나이에 사망하였으며, 수많은 동료 배우들은 헐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이 떠났다며 안타까워 하였고 미국인들의 추모 열기도 대단하였다.

 

남자 배우로는 드물게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폴 뉴먼은 헐리우드 배우중 가장 매력적인 배우로 매년마다 뽑일 만큼 여성팬들에겐 환상의 대상이었고, 남성팬들에게도 폴 뉴먼은 인기 만점 이었다. 하지만 멋진 외모에 버금가는 빛나는 연기력을 가졌기에 폴 뉴먼은 할리우드에서 오래동안 사랑받을수 있었으며, 컴퓨터 그래픽으로 도배하고 무조건 부수고 파괴하는 요즘 헐리우드 영화의 홍수세례를 맞다 보면 폴 뉴먼 이라는 배우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새삼 느끼곤 한다.

  

폴 뉴먼 히트작 퍼레이드      배경음악 : Love is a Wonderful Thing

 

폴 뉴먼 & 록키 그라지아노

 

-[출처] 폴 뉴먼-푸른 눈의 헐리우드 신사/작성자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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