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양자경 네 번째 전성기는 한국] [아카데미 주요 부문 석권.. ] ....

뚝섬 2023. 3. 14. 10:04

[양자경 네 번째 전성기는 한국]

[아카데미 주요 부문 석권, 한국 문화의 역사적 성취]

[결혼비디오 찍던 알바생, 어릴적 우상 스코세이지를 뛰어넘다]

[봉준호의 당당한 콩글리시]

[아카데미 최종 후보 봉준호]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에는 번역가 달시 파켓의 완벽 번역 있었다]

[첫 황금종려상]

 

 

 

양자경 네 번째 전성기는 한국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인 양자경(楊紫瓊·양쯔충)의 첫 꿈은 발레리나였다. 십대 중반에 영국 왕립 무용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삶은 순탄했다. 척추 부상으로 첫 꿈을 접었지만 딛고 일어나 연기로 진로를 바꿨다. 1983년 미인 대회에 출전해 미스 말레이시아가 된 것을 계기로 홍콩으로 옮겨 영화에 뛰어들었다. 훗날을 대비해 무술도 익혔다. 2년 뒤 기회가 왔다. ‘예스 마담’ 주연을 맡아 단숨에 아시아 최고 여성 배우로 발돋움했다. 첫 전성기였다.

 

▶1987년, 사업가와 결혼하며 은막을 떠났다가 5년 만에 갈라서고 돌아왔다.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간 줄 알았는데 경쟁하던 배우들이 그 사이 사라진 덕에 다시 일어섰다. ‘중경삼림’의 임청하도 ‘천녀유혼’의 왕조현도 1990년대 초 영화계를 떠났다. 다른 배우들도 해마다 10여 편씩 출연하는 다작을 남발한 끝에 대부분 이른 은퇴를 맞았다.

 

▶그렇다고 안주하지는 않았다. ‘동양의 할리우드였던 홍콩이 쇠퇴 기미를 보이자진짜 할리우드행을 택했다. 007 시리즈 ‘네버 다이’에 본드걸로 출연했다. 이전 본드걸은 악당에게 붙잡혔다가 본드에게 구출되는 수동적 미인들이었다. ‘본드걸 양자경’은 달랐다. 본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역 없이 격투신을 소화했다. “본드걸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두 번째 전성기였다.

 

▶양자경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올해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 앞서 윤여정이 조연상을 받았지만 아시아 출신 주연상은 남녀 통틀어 처음이다. 허리 부상, 결혼 실패, 홍콩 영화의 몰락 등으로 쓰러질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도전을 거듭한 끝에 오른 고지다. 영화계는 “환갑에 세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지만 아카데미 단상에 선 그녀는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양자경은 쿵후 스타로 알려졌지만 호쾌한 발차기는 태권도에서 배웠다. 한국 배우들과도 가깝게 지낸다. 지난 2월 골든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받았을 땐 “나처럼 생겼고 나보다 먼저 이 자리에 선 분께 감사한다”는 소감과 함께 ‘미나리’로 같은 시상대에 먼저 섰던 윤여정 사진을 자기 SNS올리기도 했다. ‘미나리’와 ‘에브리씽’에서 두 사람이 맡은 배역도 비슷해서 이민자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 여성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을 거듭해 최고 권위 영화상을 받은 인생 역정도 닮았다. 양자경의 다음 목표 하나가 한국의 봉준호 감독 작품 출연이라고 한다. 그녀의 네 번째 전성기는 한국 작품과 함께 맞았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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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주요 부문 석권, 한국 문화의 역사적 성취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을 휩쓸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 관객을 놀라게 했다.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네 개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으뜸을 다투는 문화적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스마트폰과 자동차, TV뿐 아니라 영화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 콘텐츠가 있음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아카데미를 두드려 온 일본과 중국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봉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수준과 위상, 평판을 드높인 주인공이다.

서양에서 발명된 영화가 1900년대 초 구한말에 처음 들어왔을 때 황성신문은 "귀신의 조홧속 물건"이라며 "우리는 어느 때나 이런 묘술을 배워 익힐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제 대한민국은 세계 50조원 영화 시장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북미 최고 영화제에서 주요 트로피들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제의 92년 역사를 새로 쓰는 장면을 지켜본 많은 국민이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미국 문화의 자존심 같은 상징적 이벤트다. 그만큼 '백인이 만든 영어 영화'에 집착해 왔다. 이 영화제가 비영어권 영화나 흑인 영화, 여성 영화에 개방적 태도를 취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렇기에 한국인이 한국어로 말하는 영화가 오스카 트로피를 받는다는 것은 노벨 문학상 수상보다도 더 어려운 일로 여겨졌다. 봉 감독은 이런 높은 벽을 넘고 우리 문화사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계와 할리우드의 역사까지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한국적 상황을 한국어로 담아낸 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생충'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빈부격차 문제를 틀로 삼아 인간 본성을 말하는 블랙 코미디 스릴러다. 문화 콘텐츠는 인간 보편의 문제와 가치를 말할 때 큰 공감을 얻는다는 사실을 '기생충'은 입증했다. 그런 문화 콘텐츠는 어떤 글로벌 제품 못지않게 한국 브랜드의 세계적 위상을 높인다. 제2, 제3의 봉준호가 등장하기를 바란다.
 

 

-조선일보(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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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비디오 찍던 알바생, 어릴적 우상 스코세이지를 뛰어넘다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1인치 장벽을 넘어 세계로] [1] 봉준호의 4가지 키워드
시대성 - 생활고 시달렸던 영화광, 시대의 아픔을 영화에 녹여
대중성 - 심각한 주제인데 웃음이 나오게, 스릴러 형식에 담아
고유성 - 트로트·막걸리·반지하… 한국적 풍경을 자기 스타일로
혁신성 - 할리우드 배우 쓰고 넷플릭스와 손잡고, 다양한 실험
 

 

"어릴 때부터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우리의 위대한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한 말입니다."

그의 첫 소감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감독을 향한 고백이었다. 소심한 영화광이었던 소년이 자라나 9일(현지 시각) 아카데미 감독상 트로피를 쥐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객석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쏠렸고, 순간 뜨거운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향한 경배도 잊지 않았다. "제 영화를 미국 관객이 모를 때부터 좋아해 줬던 쿠엔틴 타란티노 형님, 정말 사랑한다. 같이 후보에 오른 분들 모두 멋진데, 오스카 주최 측에서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를 5등분 해서 나누고 싶다"고 했다. 카메라가 쿠엔틴 타란티노와 샘 멘데스 감독 등의 얼굴을 비췄고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할리우드 감독들을 동경하며 자란 한국의 '비디오 키드'가 아카데미 무대를 정복한 순간이었다.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아… " 무대 뒤에서 털썩 - 시작은 각본상이었다. 9일 아카데미 시상식 초반 봉준호 감독은 각본상 트로피를 거머쥐고 환히 웃었다. 국제극영화상(왼쪽서 둘째)을 받았을 땐 트로피를 치켜들었고, 감독상(왼쪽에서 셋째)을 받고 나선 입을 틀어막았다. 작품상(왼쪽서 넷째)까지 받았을 땐 그의 얼굴에도 충격과 전율이 감돌았다. 네 번이나 무대에 오른 뒤 봉준호 감독은 결국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였다(맨 오른쪽). /AFP연합뉴스·EPA연합뉴스·로이터연합뉴스·기생충 페이스북

 

◇시대성을 품다

작년 5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봉준호는 "저는 어린 시절 너무 소심한 나머지 집에서 TV 영화를 밤새워 보며 감독 꿈을 꿨던 아이였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스크린' '로드쇼' 같은 영화 잡지를 보며 감독을 꿈꿨던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연세대 사회학과)해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의 첫 단편 '백색인'은 동아리 시절 그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것이다.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로 활동했다. '살인의 추억'을 찍기 직전까지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결혼식 비디오를 찍거나 사다리차 같은 제품 사용 설명 비디오를 찍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 대학 동기가 쌀을 가져다줄 때도 있었다.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바라보는 눈이 이때 싹텄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는 흥행엔 실패했지만 지금의 '봉준호 월드'의 뿌리가 된다. IMF 직후 붕괴된 중산층의 불안과 우울이 이 영화에 녹아 있다. 당시 영화를 제작했던 차승재 전 싸이더스 대표는 "봉준호는 개인의 문제를 사회 구조 문제로 끌어올려서 풀어내는 일관된 시선과 블랙 유머로 꼬집어내는 감각이 있었다"면서 "봉준호가 놀면서 천재 된 거 아니다. 인생 전체를 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다. 그 노력으로 아카데미에서 노하우나 기술에 주는 상이 아니라 창작력에 주는 상을 휩쓴 것"이라고 했다.

각본을 쓰고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데 능한 것은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박태원(1909~1986)이다. 아버지 봉상균(작고)은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뼛속 깊이 새긴 오락성

오락성은 봉준호에게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DNA다. 심각한 주제를 어렵게 다루지 않았고, 쉽고 날카로운 웃음을 추구했다. 모든 이야기는 스릴러 같은 철저히 상업 장르 영화의 틀에서 썼다. 흥행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살인의 추억'은 관객 550만명을, '괴물'은 1091만명을 모았다. '기생충' 한국 관객도 1009만명이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9일까지 '기생충'의 북미 수입은 3547만달러(약 420억원)이다. 1일 가디언지는 "웃기고 정치적이며 뼈 때리는 한국의 영화가 세계 최고가 됐다"고 썼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한국적 풍경에서 고유한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봉준호만의 특이점이다. 가령 '마더'는 대학 시절 농활에서 만난 농촌 부녀자들과 함께 막걸리를 걸치고 트로트 음악을 틀고 춤을 추던 기억을 영화 미학적으로 구현한 작품. '기생충' 역시 반지하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공간을 통해 계급 갈등을 기호학적으로 비췄다.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그 안에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을 뽑아낸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의 톰 퀸 대표가 "나는 미국에 살고 봉준호 감독은 한국에 사는데도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모두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혁신은 계속된다

다양한 기술의 변주, 플랫폼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 혁신성도 지금의 봉준호를 만들었다. '설국열차'로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고, '옥자'로 넷플릭스와도 손잡았다. 미국 드라마 명가인 HBO와 손을 잡고 '기생충'을 드라마로도 만들 예정이다. 봉준호 감독은 9일(현지 시각) 시상식 직후 간담회에서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다룬 한국어 영화와 2016년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영어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송혜진 기자, 조선일보(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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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당당한 콩글리시 

 

해외무대서 거침없이 토종 영어… 할리우드 스타도 귀 기울여
영어 스킬보다 내용이 더 중요, 언어는 문화에 기생한다
 

 

"SKY(스카이)가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대학이로다/ 점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갈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노력하고 SKY 못 간다 하더라."

영어 학원 전단에 적힌 글귀를 보고 쓴웃음 지었다.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가 어쩌다 학원 광고 문구로 전락했나. 가슴은 세속적 패러디에 거부반응 일으켰지만, 조급함에 잠식당한 학부모 머리는 쉽게 투항했다. 방학 특강에 아이를 욱여 넣었다.

영 마음이 찜찜한데 요즘 영어로 화제인 인물이 떠올랐다. 봉준호 감독의 통역 담당 최성재(영어명 샤론 최)씨. 디테일까지 한 올 한 올 살려내 통역하며 러닝메이트처럼 봉 감독과 함께 '아카데미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봉 감독이 지난달 8일 전미비평가협회(NBR)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자리에서 영어로 감사를 표할 정도였다. "I don't know how she can do this.…She really destroyed the language barrier(어떻게 이걸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진짜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렸어요)." 통역하려던 최씨가 당황했다. 신선한 탈선이었다.

최씨 통역 못지않게 영어를 대하는 봉 감독의 자세가 눈에 띄었다. 당당하고 거침없다. 주저 없이 한국말과 토종 영어를 휙휙 오간다. 미국 배급사인 '네온' 톰 퀸 대표에게 영어로 설명하다가 꼬이자 넉살 좋게 한국어로 말해 버린다. 그것도 반말로. "당신이 얘기해봐. 내가 내 입으로 말하려니 잘 모르겠어." 평생 영어 울렁증 달고 살다 대물림까지 하는 한국 사람에겐 쾌감마저 준다.

센스 넘치는 콘텐츠 앞에서 언어 장벽은 맥을 못 춘다는 것도 증명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화비평가협회(AAFCA) 외국어영화상을 받고는 대학 시절 친구들끼리 자막 단 경험을 영어로 말했다. "The movie I did subtitle was 'Jungle Fever' and 'Do The Right Thing'(내가 자막 단 영화가 '정글 피버'와 '똑바로 살아라'였어요)." 어색한 콩글리시였지만 박장대소가 터졌다. 아프리카계 미국 감독 스파이크 리의 작품을 콕 집은 게 웃음 포인트였다. 한국말로 "영어에 다양한 욕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스파이크 리 감독 덕에 공부 많이 했다"는 위트도 잊지 않았다. 할리우드 비평가협회(HCA) 각본상을 탔을 땐 "조용한 커피숍을 찾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썼는데 영화 개봉 때 가보면 거의 문을 닫았더라"며 망한 커피숍 주인들에게 상을 바쳤다. TPO(time· place·occasion, 시간·장소·상황) 딱딱 맞춘 화술은 언어의 허들을 뛰어넘어 할리우드 톱스타도 귀 쫑긋 세우게 했다.

이쯤 되면 영어 스킬이 능사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기생충'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자막을 극도로 싫어하는 미국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이끌었듯 대체 불가능한 내용이 있으면 아쉬운 쪽에서 언어 장벽을 걷어내고 다가온다. 통역사 지인이 말했다. "발음이 후지니 영어 하기 두렵다는 사람은 많아도 콘텐츠가 빈약해 영어 하기 겁난다는 사람은 드물다. 정작 듣는 사람은 발음보다 콘텐츠를 따지는데."

'기생충'이 세계적 붐을 일으킨 데는 역설적으로 한국어의 힘이 컸다고 본다. 전작 '설국열차' '옥자'에선 영어와 한국어가 삐걱거리며 낸 엇박자가 거슬렸지만 기생충은 모국어로 일상의 미세 주름, 모공까지 살려내 자연스럽다. 언어는 문화에 기생하고, 문화는 언어에 기생한다. 오는 9일(현지 시각) 봉 감독이 '로컬 행사'라고 뒤튼 아카데미는 '로컬 언어' 한국어를 최고봉에 세울까.

 

-김미리 주말뉴스부 차장, 조선일보(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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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종 후보 봉준호 

 

아카데미 트로피는 높이 34㎝, 무게 3.85㎏이다. 위는 브리타늄 재질에 금박을 입혔고, 아래는 검은 대리석으로 돼 있다. 순수 제작비는 우리 돈 40만~50만원쯤이다. 하지만 수상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 생애 첫 후보로 지명되는 감독이나 배우는 몸값이 크게 치솟는다.

▶아카데미는 회원 8469명이 투표로 수상작을 정한다. 워낙 선망받는 상이다 보니 '아카데미가 좋아하는 작품' 분석이 나돈다. 회원 상당수가 영화 제작자, 배우, 성우처럼 영화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 은퇴한 중산층 백인이어서 그 취향을 저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백인 배우와 작품을 선호하며, 외국어 자막을 관람 장애물로 여긴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이 올 초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뒤 현지 언론에 "자막의 장벽을 1인치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한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흔히 '세계 3대 영화제'는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만 수상하는 아카데미상을 빼고 칸, 베네치아, 베를린에서 치르는 유럽 영화제를 꼽는다. 이곳은 10명 안팎 전문가를 심사단으로 위촉한다. 우리 영화는 1960년대 이후 이 영화제들로부터 경쟁·비경쟁 부문에서 끊임없이 초청받아 왔다. 수상 실적도 나쁘지 않다. 1987년 배우 강수연이 '씨받이'로 베네치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창동 감독의 '밀양', 김기덕 감독 '피에타' 등이 작품·감독·주연배우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상은 1963년 신상옥 감독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처음 문을 두드린 이래 57년간 쉼 없이 도전했지만 수상은커녕 본선에 오른 적도 없다. 이창동의 '버닝'이 지난해 외국어영화상 부문 예비후보에 포함된 게 유일한 성과다. 한국인 중 아카데미 레드카펫을 밟은 이는 2016년 외국어영화상 부문 시상자로 나섰던 이병헌뿐이다.

▶영화 '기생충'이 작품·감독·각본·국제극영화·미술·편집 등 6개 부문에서 올해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으면 비영어권 영화로는 첫 수상이 된다. 감독상은 두 차례 상을 받은 대만의 이안 감독에 이어 아시아인으로서 두 번째가 된다. 어느 분야든 상을 받으면 한국인으로선 첫 기록이다. 일부에선 이 영화의 줄거리와 설정에 찬성할 수 없다며 비판하지만 해외에서는 크게 인정받고 있다. 한국영화가 올해로 101년째다. 지난해 칸영화제 대상을 받은 '기생충'이 새로운 100년을 여는 한국영화에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길 기대해본다.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조선일보(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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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에는 번역가 달시 파켓의 완벽 번역 있었다 


"‘기생충’은 워낙 한국적인 영화다. 해외에서 100% 이 영화를 이해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출국 전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은 수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봉 감독의 예상과 다르게 ‘기생충’은 제 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최고상)을 수상했다. 이에 서양 문화를 고려하면서도 한국인 정서를 잘 반영한 영어자막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생충’의 번역을 맡은 달시 파켓. / 페이스북 캡처 

 

‘기생충’의 영어 번역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이 맡았다. 그는 미국 출신의 영화평론가로, 현재는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과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파켓의 번역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한국에 대한 이해도다. 1997년부터 한국에 살고있는 그는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와 유머코드를 완벽히 이해하고 이를 다시 서양 문화의 맥락에서 일일이 번역, 검수한다. ‘기생충’의 공식 상영에 참석한 김효정 영화평론가는 "한국어 단어를 서양문화 맥락을 반영해 완전히 다른 영어 단어로 바꾸는데 있어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파켓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와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등의 번역을 맡으며 유명 감독들의 해외 영화제 출품을 도왔다. 특히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2003)부터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까지 쭉 호흡을 맞췄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파켓은 "올해 2월 미국에 있을 때 초벌 번역을 했고, 이후 한국에 들어와 봉준호 감독과 투자배급사 CJ ENM과 함께 수정 작업을 거쳤다"며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리듬감과 느낌을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봉 감독은 이번에도 번역에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미리 메모해서 줬고 번역 초본이 나온 후 둘이서 꼬박 이틀 동안 함께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파켓은 ‘기생충’을 "굉장히 유니크한 영화"라고 평가하며 관객 입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인 ‘기생충’은 30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예매율이 54%에 육박하며 흥행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혜림 인턴기자, 조선일보(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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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황금종려상

 

프랑스 취재를 마치고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던 후배가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던 순간이다. "시상식 생중계를 지켜보다 기자들도 소리 지르고 얼싸안고 뛰어올랐어요. '월드컵 4강' 때는 저리 가라였죠." 외국 기자들도 "유일하게 재미있는 영화였다"며 '엄지 척'이었고, 그곳 현지인들도 봉준호 얘기만 하더라고 했다.

▶유럽서 열리는 '3대 영화제'를 생긴 순서로 꼽으면 베네치아(1932), 칸(1946), 베를린(1951)이지만, 우리와 친밀도나 이름값을 매기면 아무래도 칸영화제가 먼저 떠오른다. 프랑스가 영화 발상지일 뿐 아니라, 이 영화제에 세기적 걸작이 많았고, 상을 운영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방식, 스타급 심사위원 진용에서 앞섰다. 더구나 한국 감독이 경쟁·비경쟁 부문 포함, 80년대부터 이번까지 열두 번이나 문을 두드린 상이다.

 

▶러닝타임 131분 영화 '기생충'은 양극화와 빈부 격차를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다. 가족 모두 실직자인 반(半)지하 방 기택씨네가 고급 저택에 사는 박 사장네와 얽히고설킨다. 기택네 큰아들이 박 사장 집에 고액 과외 면접을 하러 들어가고, 속임수와 계략이 엇갈리며 '기생(寄生)'하려다 실패한다. '오락 요소'와 '신선함'을 갖추고 '정치적 메시지'까지 담아낼 때 칸은 좋아한다. "한 꺼풀만 벗기면 본전 나오는 영화 말고, 벗길수록 새로운 '양파 영화'를 원한다"고 했다.

▶후배가 말을 이었다. "무게만 잡는 예술 영화를 연달아 보면서 짜증이 날 대로 나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생충'을 보는 순간 너무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거예요." 봉 감독은 스스로 "나는 장르 영화 감독"이라고 했다. 서부극·공포물·코미디처럼 형식과 줄거리를 분명하게 가르는 영화인데, 요즘은 경계를 부수고 넘나든다. 이번 경쟁 부문의 다른 영화들이 "별로였다"는 일부 분석도 있다. 운도 따랐다는 겸손이다.

▶수십 년 전부터 우리 문화계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을까?" 논쟁을 벌였다. 임권택 영화 '서편제'에서 딸을 한 맺힌 소리꾼으로 만들려고 아비가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스토리를 서양인이 공감하겠는가 하는 식이다. 올해로 한국 영화 100년이다. 이제는 순전한 우리 디테일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일본은 황금종려상을 다섯 번 받았고, 중국은 아직 없다. 빈부 격차를 다룬 이 영화를 정치권에서 이상하게 비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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