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이미지 인공지능] [대원군의 光化門, 박정희의 광화문] ....

뚝섬 2023. 3. 7. 09:08

[이미지 인공지능] 

[대원군의 光化門, 박정희의 광화문] 

[수난의 광화문 현판 또 바뀐다, 이번이 4번째] 

 

 

 

이미지 인공지능

 

기존 이미지 활용해 새 작품 만들고 흐릿한 사진도 高해상도로 되살려

 

인공지능 기술로 컬러 복원한 독립운동가들 흑백 사진. /국가보훈처

 

지금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外壁) 전광판에는 김구·김좌진·안중근·유관순·윤동주 등 친숙한 독립운동가의 영상이 나오고 있어요. 국가보훈처가 3·1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15인의 흑백 사진을 컬러 이미지로 복원해 영상으로 제작했거든요. 이번 작업에는 흐릿하거나 망가진 얼굴을 고해상도로 복원하는 이미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했다고 해요.

이미지 인공지능은 작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그 시작은 작년 4월 미국의 오픈 AI가 발표한 '달리2(DALL-E2)'입니다. 오픈 AI는 출시 2개월 만에 사용자 1억명을 돌파한 대화형 AI 서비스 '챗GPT'를 만든 곳이에요. 달리라는 이름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월리(WALL-E)'의 캐릭터에서 가져왔죠. 달리2는 2021년 발표한 달리(DALL-E)의 후속인데요. 이미지 인공지능 생태계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이미지 인공지능을 이용해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자세히 입력해야 합니다. 결과를 만드는 텍스트 명령어를 '프롬프트'라고 해요. 달리2 이전만 하더라도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그 뒤로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큰 단어들로 텍스트를 완성한 후 이와 관련한 이미지를 만들었지요. 인공지능이 프롬프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정확도가 떨어지고,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참고하니 상상력에 한계가 있다는 게 약점이었죠.

그런데 이번 모델은 멀쩡한 이미지를 점점 왜곡해 노이즈 상태로 만들었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을 학습했습니다. 그래서 참조할 이미지가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도 아무 픽셀이나 고른 후 이미지를 왜곡하며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이런 이미지를 텍스트로 해석한 다음, 처음에 입력한 프롬프트와 비교해 차이점을 최대한 좁히는 게 달리2의 원리입니다. 덕분에 이용자가 원하는 결과와 최대한 비슷하면서도 기존에 없던 느낌의 이미지가 탄생했습니다. 특히 사실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이미지에 강점을 보였습니다.

이에 자극받아 작년 여름 나온 이미지 인공지능 서비스가 '스테이블 디퓨전'입니다. 영국의 AI 연구소 '스테빌리티 AI'에서 만든 스테이블 디퓨전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서비스인데요. 달리2만큼 사실적인 이미지를 잘 뽑아내면서도, 서비스를 오픈소스로 공개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업데이트 버전을 내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달리에서 허용하지 않는 유명인, 만화 캐릭터 등 저작권에 민감한 이미지도 학습할 수 있어서 표현의 범위가 훨씬 넓죠.

이미지 인공지능이 주목받자 저작권 문제도 불거지고 있어요. 올 초 일러스트레이터 3명이 스테빌리티 AI 관계자를 고소했어요. 원작자 동의 없이 약 50억개의 이미지를 학습시키며 수많은 예술가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입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조선일보(23-03-07)-

_____________

 

 

대원군의 光化門, 박정희의 광화문 

 

원형 찾는다는 광화문 현판 교체, 결국 박정희 흔적 지우기
태조·대원군·박정희의 광화문… 시대별로 나름의 역사이고 문화
문화재 原形 강박 벗어나 당대 재료·기법 과감히 활용해야
 

 

광화문 현판이 내년 상반기에 다시 바뀐다. 이유는 현판 색상의 오류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되어 있는 지금 현판은 1902년과 1916년에 각각 촬영된 도쿄대 및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 건판 사진을 근거로 제작됐다. 그런데 작년 초 1893년 무렵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광화문 고사진이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발견됐다.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문화재청은 광화문 현판이 본래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라고 결론 내렸다.

이로써 우리는 2010년 경복궁 복원 이후 10년 가까이 엉뚱한 현판을 쳐다본 꼴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년에 등장할 검정 바탕, 금박 글씨는 과연 원형일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광화문 현판에 대한 새로운 물증이 언제, 어디서 또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조선 왕조 정궁의 정문 현판을 반신반의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광화문 현판이 '뜨거운 감자'로 처음 부상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그때까지 걸려 있던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광화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격 교체하려던 시도가 발단이었다. 대원군의 지시로 광화문 중건(重建)을 지휘했던 임태영의 글씨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2006년에 시작된 광화문 복원 사업이 일단락되면서였다. 지금의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 한문 '門化光'(문화광)이 그것이다. 훈련대장이었던 그는 천주교 박해에 앞장선 인물이다.

1395년 조선조 개국 직후에 창건된 광화문은 자신의 원형을 스스로 기억하지 못한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된 광화문은 19세기 말까지 약 270년 동안 황폐화되어 있었다. 대원군이 광화문을 다시 세웠지만 60년 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건설하면서 경복궁 동문 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그나마 6·25전쟁 때는 2층 누각이 모두 불탔다. 광화문이 지금 자리에 그나마 형상을 회복한 것은 1968년 박정희 정부에 의해서이다.

박정희는 광화문의 원형을 완벽하게 복원하지 않았다. 창건 과정에 대한 실증적 자료가 남아 있지 않기에 대원군의 광화문 공사에도 한계가 많았다. 박정희는 '영구미제'(永久謎題)일 수밖에 없는 광화문의 원형에 집착하는 대신 1960년대 후반 근대화 시대의 한국사회 상황을 적극 반영했다. 대표적인 것이 콘크리트조(組) 복원과 친필 한글 '광화문' 현판이다. 이 대목이 훗날 박정희 정권의 문화적 '야만'과 정치적 '독재'를 비판하는 빌미가 됐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목조 문화재의 콘크리트 건축이 시대적 유행이었다. 비슷한 시기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 시텐노지(四天王寺)도 시멘트 콘크리트로 복원되었다. 그 무렵 특히 우리나라는 산림 자원을 보호하느라 목재를 극도로 아꼈다. 이를테면 전신주나 침목이 콘크리트로 바뀌던 시대였다. 1968년은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의 원년이기도 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한글 현판 자체가 발상의 전환이었는데, 서예에 조예가 있던 당시의 무인 출신 대통령이 직접 붓을 든 것이다.

작금의 광화문 현판 논쟁은 겉으로 원형 타령이지 결과적으로는 박정희 흔적 지우기의 일환이다. 최근에는 현충사의 박정희 친필 현판 철거와 도산서원 내 '박정희 금송'(金松)' 이전 문제까지 불거져 있다. 물론 명분은 하나같이 문화재의 제 모습 찾기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문화재 복원과 관련하여 전통이나 원형을 유난히 앞세운다. 하지만 10년 전 화재로 전소된 숭례문 복구 과정이 보여준 것은 총체적 위선과 부실, 그리고 사기였다. 원형 복원이랍시고 제막식까지 거행한 현재의 광화문 현판조차도 두 달 만에 균열되었다.

문화재 보존에 관련된 국제적 규범, 베니스헌장에 의하면 '추정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은 멈춰야 한다.' 선진국들이 원형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당대의 재료와 기법을 문화재 복원 과정에 과감히 활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나 오사카성의 엘리베이터도 언젠가는 역사가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만큼 태조의 광화문, 대원군의 광화문에 이어 박정희의 광화문도 나름의 역사고 문화다. 그럼에도 박정희의 현판이 여전히 못마땅하다면 밑도 끝도 없는 원형을 쫓아다니는 대신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신소재 현판을 21세기 한류(韓流)의 힘으로 새로 만들면 어떨까. 걸핏하면 떼었다 붙였다 하느니 저간의 경과와 쟁점을 사실대로 밝힌 채 판단과 감동은 국민 각자에게 맡기면서 말이다.
 

 

-조선일보(18-02-15)-

_______________ 

 

 

수난의 광화문 현판 또 바뀐다, 이번이 4번째

 

[8년전 복원 때 고증 잘못… 검은 바탕에 금박 글자로 내년 교체]

盧정부때 '박정희 글씨 떼내자' 2010년 광화문 복원하며 黑字현판
당시 균열 일고 "색깔 이상하다" 문화재청 부실복원 논란 못 피할듯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현판이 또 한 번 바뀐다. 광복 이후로만 네 번째 현판을 달게 된 파란만장한 역사다. 문화재청은 30일 "광화문 현판의 원래 색상이 검은색 바탕에 금박(金箔·금빛 나는 물건을 얇게 눌러서 만든 것) 글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현재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된 현판을 떼고 새 현판을 달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2010년 복원한 현재 현판이 균열 현상을 겪은 데 이어 고증 자체가 잘못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 '부실 복원' 논란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門化光'→'광화문'→'門化光'

 

문화재청이 내년 상반기 새로 걸 예정인 광화문 현판의 개념도. 검은 바탕에 금박 글씨다. 아래는 2010년 광화문 복원 때 걸린 현재의 광화문 현판.

광화문은 1395년(조선 태조 4년) 창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현재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는 광화문 현판이 처음 제작된 것은 조선 고종 초기 경복궁 중건(1865~1868) 때 일이다. 훈련대장이자 중건 책임을 맡은 임태영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光化門'이라는 한자 글씨를 썼다. 이 광화문이 경복궁의 정문 역할을 제대로 한 건 60년 정도에 불과했다. 1927년 일제는 총독부 청사를 짓기 위해 경복궁 여러 곳을 헐어내고 광화문을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 제자리를 잃어버린 광화문은 6·25 전쟁 때 폭격을 맞아 소실됐다.

광화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1968년이다.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경제성장기의 분위기를 상징하듯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됐다. 새 광화문에는 박 전 대통령 친필인 '광화문'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렸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정희 글씨를 떼내자'는 주장이 제기됐고, 2006년 시작된 광화문 복원 공사로 콘크리트 건물은 통째로 헐렸다.

8년 만에 "이 색깔이 아니었네"

2010년 복원된 광화문에는 임태영 글씨를 복원한 '光化門' 현판이 걸렸다. 그러나 가로 3.9m, 세로 1.5m에 이르는 이 대형 현판은 복원 2개월 만에 아래위로 균열이 일어나 비위 논란에 휩싸였다. 현재는 갈라진 틈을 보수해놓은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색깔이 이상하다'는 의견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근정전·근정문·흥례문 같은 다른 경복궁 현판은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씨를 썼다"는 주장이다. 당시 문화재청은 "도쿄대(1902년), 국립중앙박물관(1916년) 소장 유리건판 사진을 보면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맞는다"고 맞섰다. 흑백사진에는 글씨가 바탕보다 훨씬 어두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글씨가 바탕보다 밝아 보이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소장 광화문 사진(1893년 무렵)이 나타나면서 다시 논란이 시작됐다. 사진을 촬영한 각도에 따라 검은색보다 밝거나 어두워 보이는 글씨라면, 그것은 혹시 금색이 아닐까?

문화재청은 지난해 뒤늦게 이 현판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뛰어들었다. 중앙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흑백사진과 동일한 광화문 현판 색상을 찾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바탕색 4가지(흰색·검은색·옻칠·코발트색)와 글자색 5가지(흰색·검은색·금박·금칠·코발트색)를 넣은 가설 현판을 만들고 다른 각도와 날씨에서 촬영했다. 1년 만에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라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10년 가까이 엉뚱한 현판을 걸어놓은 셈.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논란이 처음 일었을 때도 '과학'이란 게 있었을 텐데 문화재청이 너무 늦게 대처했다"며 "문화재 복원 문제에선 훨씬 더 정밀하게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28-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