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김정은의 황당한 현실 인식 ‘20×10 정책’] [북한의 전기 사정]

뚝섬 2024. 1. 29. 09:32

[김정은의 황당한 현실 인식 ‘20×10 정책’] 

[북한의 불(전기) 사정]

 

 

 

김정은의 황당한 현실 인식 ‘20×10 정책’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지방 발전 20×10 정책’ 추진을 위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23∼24일 열렸다. 참가자들이 “정책 수행 평가를 진행해 간부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김정은을 향해 환호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새해 벽두부터 대외적으로 ‘동족·통일’ 개념을 지우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한 김정은이 내부적으로는 ‘지방 발전 20×10 정책’으로 인민생활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구체적으로 “매해 20개 군에 앞으로 10여 년간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전국의 모든 시군과 전국 인민들의 물질문화 생활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북한에선 이를 ‘20승10 정책’이라고 읽는데, 노동신문은 “80년을 가까이 하는 우리 당의 역사, 75년을 경과한 공화국의 장성 발전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거대한 변혁, 거창한 혁명”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정은은 23일부터 이틀간 평북 묘향산에서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간부들을 강하게 질타하면서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담당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김정은의 발언을 보면 현실 인식이 너무 황당해 회의장 간부들이 ‘자다가 잠꼬대를 하는 것 아닐까’라고 속으로 의심했을 것 같다. 보도를 접한 주민들도 기가 막혀 당황하지 않을까 싶다. 김정은은 “반드시 하겠다”고 결의했지만, 그게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것은 김정은만 빼고 모두가 안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면서 “목을 내놓으라”고 하니 무서워서 말을 못 할 뿐이다.

김정은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하려면 책 하나도 모자랄 판이지만, 그의 연설을 듣고 북한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를 가장 원초적 반박이라도 대신 해주고 싶다. 
김정은은 말했다. “지방 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식료품, 소비품을 비롯해 초보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당과 정부에 있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다.”

북한 사람들은 묻고 싶을 것이다. “그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고는 있을까. 된장, 간장, 칫솔, 치약 등을 공급하지 못한 것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30년이 훌쩍 넘었는데, 긴 세월을 모르는 척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니. 자다가 깬 것인가? 그나마 드디어 이밥에 고깃국, 기와집 타령을 하지 않으니 다행스러운 건가?”

공장 200개를 짓는다고 주민 생활이 얼마나 좋아질지는 알 수 없다. 정작 주민들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다. 그들은 워낙 반세기 넘게 시달려서 이럴 때마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공장 건설 인력은 군인들을 동원한다 해도, 건설비는 누가 대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산설비, 자재, 원료는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돈도 안 주고 책임을 묻겠다면 또 우리 주머니를 악착같이 털겠다는 말이구나.”

공장을 지어도 문제다. 이미 있던 공장들도 전기, 생산설비, 원료, 경쟁력 등 각종 문제 때문에 망가진 지 오래인데, 새로 또 짓는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될 리도 만무하다. 그들의 궁금증 몇 개는 이미 김정은이 대답을 주었다. 건설자재, 설비, 원료 기지를 해당 지방 당 간부들이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국책사업으로 해결해야 할 전기, 철도 문제까지 간부들에게 책임을 전가했으니, 그들도 기막힐 것이다.

“차라리 정찰위성, 미사일에 빠져 있을 때가 그립겠군. 어차피 앞으로도 돈이 생기면 무기 만드는 데 탕진할 거면서, 자기가 못 한 일을 최강의 대북 제재 와중에 우리보고 해결하라니.” 실제로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다가 망친 사례는 부지기수다. 폐허로 방치된 원산갈마관광지구, 껍데기만 완공된 평양종합병원, 파리만 날리는 마식령스키장, 준공식을 성대히 열고도 5년째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순천인비료공장….

돈을 다 틀어쥐고도 실패만 거듭한 지도자가 권한 없는 부하들에겐 실패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니 간부들도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전기와 사료가 없다”고 말했다가 조건타발을 한다며 처형된 자라공장 지배인 신세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몇몇 공장이 돌아가도 생산 지속 가능성과 품질은 또 다른 문제다. 그때 가서 모든 생필품을 중국산에 의존해왔던 주민에게 조악한 품질의 북한산을 쓰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할지도 궁금하다.

시장경제만 도입해도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누구나 아는데, 김정은은 앞으로도 사회주의 채찍을 10년 더 휘두르겠다고 선언했다. 간부나 백성이나 머릿속에 공통으로 떠오를 말은 이것밖에 없다.

“희망 없네. 망했군.”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4-01-29)-

_____________

 

 

북한의 불(전기) 사정

 

⊙ 전구는 개당 강냉이 1~2kg을 줘야 살 수 있는 高價品… 전구 사느니 차라리 밥을 한 끼 더 먹자는 사람도 많아
⊙ 지하철 停電되면 性추행 빈발… 전기 잘 들어오는 金 父子 동상 주변 집값 비싸
⊙ “김정일, 희천발전소 건설해 김정은 업적으로 삼으려 했으나, 김정은이 발전소 건설용 시멘트 빼돌렸다는 보고에 격노, 사망”(마이클 리 前 CIA요원) 

 

2010년 4월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 현장을 돌아보는 김정일. 희천발전소에 큰 기대를 걸었던 김정일은 이듬해 12월 죽었다. 사진=뉴시스/신화

북한에서 ××라는 욕으로 불리는 3대 직종이 있다. 보위부 ××, 안전부 ××, 배전부 ××다. 보위부는 사람을 자꾸 잡아가서, 안전부는 장사를 못 하게 해서, 배전부는 불(전기)을 안 줘서 사람들이 욕을 한다.
 
소련이 망하기 이전만 해도 북한의 전력(電力)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만 전기가 나갔다. 지금은 다르다. 1980년대 말부터 전력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불이 들어오는 데는 사정이 나은 곳이다. 3일 만에 1시간 전기가 공급되는 지역도 부지기수다. ‘배려전기’ ‘명절공급 전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평양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정전(停電)이 되면 평양 시내 대부분이 암흑이 된다. 가장 심한 소동이 벌어지는 곳은 지하철 안이다. 사람들은 일단 차 밖으로 나와 승강장에서 다시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이때 성(性)추행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이때 남자들이 젊은 여성을 막아선다. 그러고 손 건사를 하지 못한다. 여성들의 대응책은 옷핀이다. 일명 벌침이라고 한다. 정전이 되면 옷핀을 양손에 쥐고 사방에서 들어오는 손들을 사정없이 찌른다. 비명을 지르면 들통나기에, 찔린 사람은 끙끙거리며 참는 수밖에 없다.  


전기 사용이 권력과 능력의 상징
 
고층 아파트도 문제다. 퇴근 후 바로 집에 안 들어가고 아파트 1층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20층을 걸어서 올라가느니, 잠깐이라도 전기가 올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려고 대기하는 것이다. 과학자거리에 있는 50층 아파트는 더 문제다. 어쩐 일인지는 모르지만, 전기가 와도 엘리베이터는 20층까지만 운행하고 그 위층으로는 다니지 않는다. 맨 꼭대기 층인 50층에 거주하는 주민은 30층을 걸어 오르느냐, 50층을 걸어 오르느냐의 선택밖에 할 수 없다. 평양 시내 한복판에 사는 노인 가운데, ‘땅 한번 밟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분이 많다.
 
어쩌다 전기가 와도 문제가 있다. 전압(電壓)이 고르지 않으니 전구며 가전(家電)제품이 많이 상한다. 백열전구가 하얗게 빛나다 붉은색으로 변한 뒤 폭발하듯 깨지곤 한다. 북한식 표현으로 ‘수수떡 전구’다. 깨진 전구를 기울여서 꽂아놓으면 텅스텐 선이 이어지며 3~4일은 더 버틴다고 한다. 전구는 개당 강냉이 1~2kg을 줘야 살 수 있는 고가품(高價品)이기에, 전구를 사느니 불 없이 살고 차라리 밥을 한 끼 더 먹자는 사람들도 많다. LED 전구라고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 소자 있는 부분이 까맣게 타며 축포처럼 터져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TV나 컴퓨터 모니터는 들어오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전압이 변하는 것에 따라 화면 양옆에 까만 줄이 생기거나 상하좌우로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전기에도 품질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생활한 탈북자(脫北者)들의 입에서 “220V 전기가 하루 종일 만땅으로 들어오네!”라는 감탄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터져 나오는 이유다.  
 
전기 自力更生
 
북한에서는 전기를 쓰는 것이 능력과 권력의 상징이다. 중앙당 아파트나 전력공업성 간부가 사는 지역에는 전기가 24시간 끊이지 않는다. 김 부자(金父子) 동상 주변도 전기가 잘 들어온다. 일반선이 아니라 기념탑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낡았어도, 동상 주변 집값이 비싼 이유다. 배전부선, 무선국 방송선도 비교적 전기를 잘 받는다.
 
뇌물을 주면 따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도 있다. 이것을 ‘독선’이라고 한다. ‘독선 끌어다 쓰는 집’ 주변에서는 ‘코걸이’를 통해 몰래 전기를 훔쳐 쓰는 사람이 생긴다. 전기 주인은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선을 따라 누가 도둑인지 찾는다. 돈을 내고 쓰라는 뜻이다. 독선은 ‘비(非)사회주의’다. 뇌물을 통해 이뤄지는 범법(犯法) 행위다. 그래서 독선 주변에서 갑자기 전기소비량이 늘어나면 위에서 눈치를 채고, 여러 사람이 처벌을 받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집마다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장비가 있다. 먼저 발동발전기다. 디젤용은 소음이 심하고, 휘발유용은 유지비가 많이 들지만 소음은 덜한 편이다.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기계다. 지방에서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이 많기에 자력갱생(自力更生)을 하는 것이다. 다음은 변압기다. 아랫동네 제품(220V)과 본산제(일제·110V)용 변압기를 따로따로 장만하는 것이 좋다. 공급되는 전기의 양(量)이 제한적이기에, 어쩌다 전기가 올 때는 변압기 용량이 큰 집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어느 집 변압기 성능이 좋은지는 금방 표시가 난다. 창문마다 비치는 불빛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불빛이 흰색에 가까울수록 잘사는 집이다. 이런 집에서 전기밥가마를 켜면 우리 집으로 오는 전기가 줄어들며 전구의 색깔이 수수떡 색깔로 변한다.
 
그래서 정전 때 불을 켜거나 전기 뺏어가는 집은 질투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 몰래 한국 드라마를 보지는 않는지, 중국과 한국에 전화질은 안 하는지, 가족 아닌 여자가 드나들지는 않는지, 혹시 양담배질은 안 하는지를 주변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신고한다. 프라이버시가 없는 북한에서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은 흉이 아니다. 특히 지방에는 울분에 찬 젊은이들이 많기에, 사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전기 사용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전압(過電壓)차단기도 필수 장비다. 전구가 깨지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전자제품이 망가지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사용자에게는 UPS(Uninterruptible Power Supply)도 필수품이다. 안정된 교류(交流)전력을 공급하는 장치로, 갑자기 정전이 되더라도 15분간은 컴퓨터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도구다. ‘삐~삐’ 하는 경보음이 올리는 동안, 서둘러 자료를 백업해야 한다. UPS는 단속을 피하는 데도 유용한 장비다. 한국 드라마 보는 집을 찾는다고, 아예 아파트 배전반을 내려놓고 집마다 들이닥쳐 수색하는 놈들이 있다. CD 알판이 기계 안에 남아 있으면 꼼짝없이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UPS가 중요하다.  
 
김정일의 야심작 희천발전소
 
북한의 전기 사정이 이른 시일 안에 획기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평양의 전기 사정을 일거에 해결하겠다며 야심적으로 추진한 희천댐 발전소 프로젝트가 사실상 크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2001년 착공 후 경제난으로 방치되었다가 2009년 3월에 공사를 재개하고 2012년 4월에 ‘완공’한 희천발전소는, 김정일이 생전 여덟 차례나 공사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각별하게 신경을 썼던 곳이다. 10년 정도 걸려야 정상인 일을 3년 만에 마쳤기에, 북한은 자강도의 희천발전소를 ‘희천속도’와 ‘단숨에 기상’이라는 말로 선전한다. 2011년 5월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현지 방문을 했을 때 감격한 인민군대의 건설자들이 장비도 없이 다투어 물속에 뛰어들며 ‘단숨에’ 일을 해치웠다고 한다. 무리한 공기 단축은 필연적으로 안전문제를 부른다. 2013년 6월, 희천발전소 용림댐이 비상 방류(放流)를 하고 있는 것이 위성사진에 잡혔다. 갈수기(渴水期)도 아니고 홍수 예보도 없었기에 의아한 상황이었다.  
 
김정은, 후계자 교체 검토?
 
전 CIA 요원 마이클 리(한국명 이명산) 선생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희천댐은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한 뒤 김정은의 업적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시설이다. 대규모로 군(軍)부대를 투입해 발전소를 완공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김정은이었다. 평양 전 지역이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김정은의 지도 역량 덕분이다’라고 선전하는 것이 원안(原案)이었다.
 
문제는 공사기간 동안 이 사업의 실패가 예견되었다는 점이다. 공사 중인 댐에서 물이 샌다는 비밀보고가 올라갔다. 조사결과 김정은이 고강도 시멘트 1000t을 빼돌린 것이 드러났다. 제대로 콘크리트 양생도 하지 않고 정량도 채우지 않은 것이 부실공사의 원인이었다. 희천댐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격노했고, 숙소가 아니라 본처의 딸인 김설송의 집으로 갔다. 김정은에게 지도자 자질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가 아니라 다른 아들로 후계자를 세우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분이 좋아진 김정일이 김설송의 집에서 와인을 마시다 그날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 내가 가진 정보다. 지방 현지 지도를 나가다 기차 안에서 사망했다는 북한의 공식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
 
현재 희전댐의 저수량은 당초 설계용량의 30%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붕괴 위험이 적지 않은데도 북한이 이를 쉬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정은이 시멘트를 빼돌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것보다 고향 원산의 스키장 건설사업이 더 급했다는 뜻인지, 훗날 역사가 밝혀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정은의 가상(假想) 사과문 한 줄로 글을 마무리한다.
 
“오지 않는 전기를 평생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인민들이여!”⊙

 

-글: 장원재  배나TV 대표, 월간조선(19-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