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이 대등한 이웃이 될 적기]
["韓·日 갈등 여론 잦아들고 타협 기회 생길 때,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한일이 대등한 이웃이 될 적기
[특파원 리포트]

지난 2021년 7월 20일 2020도쿄올림픽을 사흘 앞 둔 도쿄의 상징 시부야에서 BTS(방탄소년단) 앨범 홍보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이태경 기자
일본 시사 프로그램에는 ‘일필(一筆·잇피쓰)’이라는 아날로그적인 코너가 있다. 방송이 끝나기 직전, 토론자가 화이트보드에 붓으로 한 단어나 짧은 문장의 메시지를 적고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한 달 전 ‘일·한은 진정한 이웃 나라가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진행된, 두 시간짜리 생방송인 BS후지TV 프라임뉴스에 토론자로 참가했다. 일필 코너에서 다른 토론자인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전 차관과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는 각각 ‘합의는 구속한다’와 ‘신뢰’라고 썼다. 국가 간 약속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져야 하며 결국 신뢰만이 진정한 이웃의 조건이란 뜻이었다.
기자는 막간 중간 광고의 빈틈에 화이트보드를 받고 고민하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라고 썼다. “많은 일본 사람이 서로 닮은 외모와 언어 덕분에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러다가 ‘전혀 다른 한국’을 발견하곤 상처 입는 것을 봤다”며 “한일이 전혀 다른 나라라는 대목을 오해하면 좋은 이웃으로 오래 있진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BS후지TV의 생방송 시사프로그램인 프라임뉴스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라는 잇피쓰를 쓴 성호철 조선일보 도쿄특파원/BS후지TV의 유튜브 캡쳐
한국 드라마·음악을 즐기고 한국어 한두 마디 배운 일본인들은 ‘닮은 한국’에 빠져들곤 한다. 지금 같은 ‘한국 붐’이 없던 시절에도 적잖은 일본인이 그랬다. 20여 년 전, TV 드라마 겨울연가는 40~60대 일본 여성의 ‘쇼와(昭和) 감성’을 자극했다. 자신이 20·30대를 보낸, 1970~80년대 일본 드라마에 흔했던 ‘운명적인 사랑과 순애보’의 향수를 한국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다 독도나 야스쿠니신사 같은 돌출 갈등에 당황한다. 최근 도쿄에서 만난 ‘지극히 사적인 일본’의 저자 나리카와 아야는 “친한 한국인 태권도 사범님이 ‘독도는 어느 나라 땅이야?’ 물어봐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배신자라는 반응이 돌아와 당황했다”고 했다. 한국을 좋아하는 나리카와라면 ‘독도는 한국 땅’이라 답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주권국가 한국과 일본은 각자 국익을 추구한다. 일본 정부가 한국인을 위한 정책을 고민할 리 만무하며, 우리 정부 또한 한국인의 행복을 추구한다. ‘슬램덩크’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한국을 사랑하는 것처럼, BTS의 팬덤 ‘아미(ARMY)’인 일본인도 같은 무게로 일본을 아낀다. ‘진정한 이웃 국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일본의 질문엔 “이재명 정권이 다시 반일(反日)로 돌아서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미국·중국·북한·대만·러시아 등 주변을 둘러보면, 현재 한국에 일본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꼭 필요한 이웃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집권 자민당의 강경 우파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재에게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반일’이 걱정되면 반일이 안 되도록 움직이는 게 일본 외교에도 상책이다. 한일엔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같아진 지금이 미래를 함께 걸어갈 대등한 이웃이 될 적기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조선일보(25-10-11)-
_________________
"韓·日 갈등 여론 잦아들고 타협 기회 생길 때, 놓치지 말고 잡아야"
난세가 닥쳤을 때 현자(賢者)들은 종종 역사에서 해법을 찾는다. 동서 냉전에 균열을 낸 데탕트의 설계자였던 헨리 키신저는 19세기 유럽 외교사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제2의 히틀러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전쟁을 결심했다고 했다.
2019년, 한국에 난세가 닥쳤다. 북한은 언제나처럼 몽니를 부리는 중이고, 최대 우방인 미국과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이웃 나라 일본과 경제 전쟁에 돌입했다. 책사(策士)라 자처하는 이들이 안갯속을 헤매는 동북아시아 정세를 두고 앞다퉈 책략을 내놓는 요즘, 라종일(79) 가천대 석좌교수는 조용히 책 한 권을 내놓았다. 제목은 '세계와 한국전쟁'. 6·25전쟁 당시 미국뿐 아니라 중국, 소련, 영국 등 열강의 복잡한 국제정치를 분석한 역작(力作)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1차장,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주일 대사 등을 지내며 외교·안보 책사 역할을 했던 그는 6·25전쟁 당시 국제정치사에서 어떤 교훈을 길어 올리려고 하는 걸까. 한·일 갈등이 점점 고조되던 지난 7월부터 인터뷰와 전화 통화 등을 통해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는 “앞으로 10년을 목표로 여러 각도에서 6·25 전쟁을 조명하는 시리즈를 집필할 것”이라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만큼 깊이 있게 6·25와 거기에 얽힌 인간 군상을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고, 한국도 보복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사실상 경제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요.
"전쟁까지는 모르겠고, 갈등이 심각한 것은 틀림없지요. 한·일 양국의 집권 세력 모두 이 갈등을 일종의 돌파구로 보는 건 아닐지 걱정입니다. 근대 국제정치사를 보면 정책 결정자들이 전쟁을 매력적인 정책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전쟁을 통해 국내외의 분쟁을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6·25전쟁(라 교수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본지 표기준칙상 6·25전쟁으로 표기)도 그런 생각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6·25와 당시의 국제정치사를 다룬 책을 썼습니다. 왜 지금 6·25전쟁인가요?
"지정학적으로 보면 6·25전쟁은 태평양을 넘어 서쪽으로 진출하는 미국과 동쪽으로 혁명을 확대하려는 소련이 충돌한 거죠. 한반도의 위치가 딱 그랬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여전하고 소련의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는 거죠."
―책을 보면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전쟁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합니다. 스탈린의 노림수는 무엇이었나요.
"스탈린은 처음엔 허락해주지 않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죠.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문서들을 검토해보면 두 가지 노림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고 미국이 개입하면 그 사이 서유럽에서 공산주의 혁명 세력을 확장할 수 있겠단 계산이었죠. 그다음은 마오쩌둥에 대한 견제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마오쩌둥이 대만까지 침공해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는 걸 방해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겁니다."
―마오쩌둥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결국 미국과 직접 전쟁을 벌인 건 중국이었는데요.
"마오는 전쟁 결정에선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압록강까지 밀고 들어오자 '우리는 지더라도 참전해야 한다'며 전쟁에 뛰어들었죠. 마오는 한반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면 중국 안팎의 반공 세력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체제를 흔들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결국 그 판단이 옳았고, 지금의 중국 지도부 역시 그런 판단을 계승하고 있는 겁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마오쩌둥처럼 한반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저는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냉전의 지정학이 되살아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그 시작이 지난 6월 시 주석이 방북한 것이라고 봐요. 그동안 중국은 뒤로는 북한을 지원했는지 몰라도 외교적으로는 북한과 거리를 뒀습니다. 국제적으로 불량국가로 찍힌 북한과 가까이하는 것 자체가 중국 위상에 금이 가는 행동이거든요. 그런데 무역 전쟁으로 미국에 몰리기 시작하니 시진핑 주석이 북한에 처음으로 간 겁니다. 북한까지 자기의 말로 쓰겠단 속셈이죠."
―미국은 어떻습니까? 6·25전쟁 땐 피를 흘리며 우리를 지켜준 혈맹인데 지금도 그 관계가 유효하다고 보시나요.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와 달리 확전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38선을 유지하는 선에서 전쟁을 끝내려고 했죠. 그 판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주한 미군의 역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한 미군의 존재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연히 북한에 대한 억지이고, 나머지 하나는 한국군을 자제시키는 겁니다. 아웅산 테러 같은 북한 도발에 한국군이 보복을 하지 못한 것도 미군이 자제시켰기 때문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일 생각은 전혀 없을 겁니다.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한반도의 남북 갈등을 억제하는 게 미국의 최대 전략적 목표지요.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 바로 한·미·일 삼각 동맹이고요."

지난 2005년 6월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라종일(사진 오른쪽) 당시 주일한국대사가 마치무라 노부타카 당시 일본 외무상과 환담을 나누는 모습.
―하지만 지금 한·일 갈등으로 그 동맹 체제가 흔들릴 거란 우려도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가까운 곳에 일본이 없었다면 6·25전쟁에서 졌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후방 기지로서 역할뿐 아니라 주일 미군이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주력이기도 합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한·일 갈등이 장기화하면 그 체제가 흔들리고 안보도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에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 한국과 일본이 직접 외교적으로 이 갈등을 풀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해법이 보이지 않더라도 갈등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 기업들의 피해가 가시화되고 양국 내의 반일·반한 여론이 잦아들면 타협과 화해의 기회가 열리는 순간이 올 겁니다. 그 기회를 잘 포착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걸 놓치면 갈등이 길어지고 그만큼 피해도 커집니다. 사드 배치 때처럼 외교적으로 실기를 하면 안 됩니다."
―사드 배치 때의 외교적 실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실 사드 배치는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사드는 미군이 군사적 필요에 따라 도입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무기 도입 문제에 개입을 한 적이 없어요.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박근혜 정부가 중국에 빌미를 줬어요. 중국에 사드 배치를 안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모호하게 말을 하다가 결국 갑자기 배치를 해버리니 중국에서 반발한 거죠. 지금 상황에서 그런 종류의 실수를 다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종종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으로 전락한다. 전체는 모르면서도 각자의 소견과 주관으로 목소리를 높일 뿐. '세계와 한국전쟁'은 우리만의 시각을 넘어, 강대국의 장기판이었던 한반도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조감(鳥瞰)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라 교수는 또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10년간 6·25전쟁에 관한 연구 저작을 시리즈로 펴내겠다"면서 "과거에서 오늘의 답을 찾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권승준 기자, 조선일보(19-08-10)-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올해의 인물'에서 "가장 해로운 정치인"으로] .... (1) | 2025.10.12 |
|---|---|
| [병력 절벽만큼 심각한 軍 사기·명예 추락] .... (0) | 2025.10.12 |
| [日 희토류 자립하는 동안 韓 정권 따라 '자원 자해'] .... (6) | 2025.10.11 |
| [북·중·러 밀착 앞, 혼돈 더해가는 한·미·일 공조] .... (4) | 2025.10.10 |
| [체 게바라처럼 해보든가] [공산주의는 왜 실패했나] (1) | 2025.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