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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보수] [모진 겨울을 이기고 매화를 만날 수 있을까]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다하겠다'.. [자유민주 진영의 희망 만들기]

뚝섬 2020. 1. 7. 06:45

젊은 보수

 

한국당 전신 한나라당에 미래연대가 만들어진 게 1999년이다. 34세 남경필, 35세 원희룡 등 '남원정'이 주축이었다. 20년이 흘렀는데도 '남원정'은 여전히 젊은 보수를 상징하는 말처럼 통한다. 이미 그들은 5060이 됐는데도 말이다.

▶한국당의 청년 기준은 45세다. 당규상 청년 최고위원 선거인단 나이 기준이다. 얼마 전 "수명이 늘었으니 청년 기준을 50세로 올리자"는 웃지 못할 논의도 있었다. 보수정당의 현실이다. 한때 젊은 보수 활동이 활발했던 적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뉴라이트 운동이었다. 여러 청년 단체도 만들어졌다. 이들은 보수가 정권을 되찾는 데 소중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당시 활동했던 젊은 보수 가운데 제대로 성장한 이들을 찾기 어렵다. 젊은이는 보수에서 '○○○ 키즈'라는 소리를 듣는 장식품, 뒷배경이었다.


 

▶정치권에 젊은이와 보수의 연결고리가 아예 없지는 않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지지자 평균 연령이 60.3세였는데 유승민 지지자 평균 연령은 42.9세라고 한다. 안철수(52.3)보다도 열 살 젊다. 기존 보수의 낡음과 완고함을 거부하는 어딘가에 젊은이와 보수의 접점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유승민의 새보수당이 지지율 한 자릿수지만 한국당이 우선 통합 대상으로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젊은 보수가 꿈틀댈 조짐도 보인다. 조국 사태 당시 20대 남성 7할이 "장관 임명이 잘못됐다"고 답한 여론조사가 화제가 됐다. 60세 이상과 비슷했다. '문재인 왕 시리즈' 등 정권 비판 대자보를 게재했던 우파 청년 단체 전대협이나 30여개 대학에 퍼진 트루스포럼의 활동도 활발하다. '조국 퇴진' 서울대 집회를 주도한 김근태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이대로 가면 20년 뒤 자식에게 사회를 잘못 만들어 미안하다고 할 것 같아 행동에 나섰다"고 했다. 청년 정당을 만들겠다는 그는 "광화문에서 아무리 반()문재인을 외쳐도 한국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 한국당은 이미 생명력을 잃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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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수당이 13년간 총선에서 3연패하는 암흑의 터널 끝에서 찾은 해법은 젊은 보수 데이비드 캐머런이었다. 캐머런은 22세에 보수당에 들어가 차근차근 훈련을 받았다. 한국 보수 진영은 그런 꿈이라도 꾸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한국에서 젊음과 보수는 상극의 개념이고, 젊은 보수는 동년배들 앞에서 자기 성향을 드러내지 못한다. 장식품이 아닌 근간으로 생각하고 차근차근 젊은이를 키워야 보수가 살아난다.

 

-이동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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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겨울을 이기고 매화를 만날 수 있을까

 

牧隱 이색

 

새해 업무 첫날이 밝자마자 추미애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은 '권력기관이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법적·제도적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 이를 위해 자신은 '대통령의 헌법에 따른 권한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의 말은 완전 반어법 구사 연습 같아서 해석이 필요하지만 사실 우리 국민 중에 해석 못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권력기관이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개혁을 하겠다 함은 검찰이 완전 허수아비가 될 때까지 패고 조이고 목 자르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다하겠다'는 말은 앞으로도 계속 청문 보고서 없는(즉 국회가 부적임자라고 판정한) 인사를 국무위원으로 임명하고,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 남하한 북한 주민을 흉악범으로 몰아 북한으로 돌려보내 잔인하게 사형당하게 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수처법' 등 편법 통과와 '법원 조직법' 개정을 통해 삼권분립을 무너뜨려 삼권을 모두 장악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대통령에게 이런 짓을 허용한 헌법 조항이 있단 말인가? 이런 행위들은 오히려 헌법이 대통령의 재임 중에도 기소 이유가 된다고 한 내란·외환죄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문 대통령이 자신의 '헌법적 권리'라고 행하는 것은 대부분 위헌적 월권이다. 안보를 허물어 나라와 국민을 북한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고, 잘못된 경제 정책과 기업 옥죄기로 국가 경제를 병들게 해서 국민의 생계를 빼앗고, 자사고 폐지 등 사악한 교육 정책으로 다음 세대를 무식, 무능력한 세대로 만들고, 동맹국에는 적대감을 배양하고 위협적인 대국에는 굴욕 외교로 경멸을 자초한다. 버닝썬 수사 지시 등 대통령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 사안에는 개입하고 인헌고 사태 등 대통령이 개입해야 할 사안은 냉혹하게 외면한다.

도대체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언급하고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사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그런데 그 권한이 터무니없는 월권, 정상적 대통령이라면 생각해서는 안 되는 권리이니 국민은 계속 휴일을 반납하고 국민 저항권을 발동하느라 고난이 막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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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대한민국의 존망이 달렸는데, 하늘에는 도무지 서기(瑞氣)가 비치지 않고 먹구름만 가득하다. 고려 말에 목은 이색 선생은 왕조의 황혼을 이렇게 한탄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우리도 이 모진 겨울을 이기고 매화를 만날 수 있을까?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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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 진영의 희망 만들기

 

공수처법 강행 처리는 체제 변혁의 본격 관문… 헌법 체제 타파 시작될 것
권력 맞서는 소수파 있지만 자유민주 진영은 총선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공수처 법안 강행 처리는 체제 변혁으로 가는 본격 관문이었다. 1948년에 세운 대한민국 자유민주 헌법 체제가 타파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후에 올 체제는 3권을 거머쥔 '민중주의적 권위주의'일 것이다.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이 사태의 본질부터 정확하게 인지하고 정의(定義)해야 할 일이다.

혁명은 폭발의 짧은 흥분기를 거쳐 새로운 권위주의로 가곤 한다. 새 권위주의는 또 다른 폭발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먼동이 다시 트기까지는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깊더니…". 이 역사의 과정엔 배역이 세 종류 등장한다. 힘의 대세에 따르는 사람들, 그것에 거역하는 사람들, 그리고 양쪽 다 아닌 사람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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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대세에 따르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힘센 권력에 편승하는 유형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밀어붙인 민주당과 '4+1'의 흥정을 한 군소 정파가 바로 그 유형이다. 역대 정권을 거치며 그런 꽃놀이패는 항상 있어 왔다. 반면에 힘의 대세에 대드는 용기 있는 소수파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제3 유형도 물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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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정치에선 힘의 대세에 편승하는 유형과 제3 유형이 톱니처럼 맞물려 체제 변혁을 연동시키고 있다. 유권자 41%는 이미 문재인 후보를 편들었다. 3 유형도 반체제는 아니어도 체제 수호에 합세하진 않는다. 광의의 비()좌파 계열이 세() 불리 처지에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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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양상은 2차 대전 후 동유럽 체제 변혁 과정에서도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그곳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일당 독재를 하진 않았다. 사회민주당과 군소 정파를 끌어들여 '무늬만 연립 정권'을 세웠다. '허수아비들+1'이었다. 그러다 1~2년 사이 공산 독재로 갔다. 라디오 방송을 장악해 대중을 세뇌하고 선동했다. 비밀경찰과 억지 재판으로 '혁명의 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부정·관권 선거로 선출직도 장악했다. 공포에 질려 일부 종교인마저 스탈린을 찬양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정치인·대학인·문화인·언론인도 투항·저항·침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대다수는 투항하거나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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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독한 저항의 표상도 있었다. 폴란드의 비톨트 필레츠키(Witold Pilecki) 같은 사람이 그랬다. 그는 나치하 레지스탕스 전사이자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 정보 요원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일부러 잡혀가 학살 자료를 수집하고 탈출했다. 1944년엔 반()나치 바르샤바 시민 봉기에 앞장섰다. 그러나 1948년엔 폴란드 전 정부에 충성한 이유로 공산 정권에 처형당했다. 그는 히틀러와 스탈린 두 악마에게 굴하지 않은 자유의 화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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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시절에 누구나 다 필레츠키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 세상의 희망을 위해선 그런 모델이 있었다는 게 감격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자유민주 국민에겐 그런 희망의 그루터기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다수에 포위된 소수 이견(異見)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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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 단체 '사실과 과학 네트워크'는 지난해 말 '대한민국 발전 기원 호남인 선언'이란 문건을 발표했다. "좌파 정책과 탈원전으로 경제가 벼랑에 밀렸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남인들의 묻지 마 지지는 그들의 오만과 독선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해선 찬반이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게 다수에 포위된 '소수 이견'이었다는 점이다. 용기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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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의 '교사 사상 독재'에 대한 반발도 같은 사례다. 이에 대해서도 찬반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것도 갑()에 대한 을()의 반발이었다는 점이다. "교사들의 일방적 의견 표출이, 민주 의식이 높은 10대들에겐 반발만 살 뿐"이라는 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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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신년사도 골리앗 공수처에 대한 다윗의 정당방위였다. "진행 중인 수사와 공판은 자유민주·시장경제를 지키려는 것, 권력으로 국민 선택 왜곡할 땐 엄정 대응해야"란 그의 말은 침통했다. 송경호 판사가 전광훈 목사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드문 소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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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를 돌아보면 희망은 있다. 공수처가 이를 노리고 벼를 것이다. 운동권 단체가 사법부 인사, 행정권을 장악할 법도 만든다고 한다. 이래서 희망의 그루터기만 있어선 안 된다. 4월 총선에서 그것이 많은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자유민주 진영이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없으면 그땐 날개 없는 추락이다.

 

-류근일 언론인, 조선일보(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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