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헌법 수호하는 軍 통수권자이지 민족 지도자 아니다] [제갈량의 간신 식별법]

뚝섬 2020. 2. 5. 08:25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강자 편에 서야 한다면 미국이 정답… 그렇다고 경제 의존 높은 중국도 멀리 못 해
우리의 길은 경제는 중국 의존도 낮추고 미·중 외에 우방 많이 갖는 것

 

다음은 고종이 1890 6월 양어머니인 조대비가 서거했을 때 청나라 황제에게 보낸 서신이다. "당신의 신하 조선의 왕 이희는 어머니 조씨가 서거했음을 공손히 알립니다. 저는 폐하 앞에 큰 걱정과 슬픔에 잠겨 무릎을 꿇습니다. 종은 폐하께서 자비롭게 배려해주시기 청합니다." 이 정도면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시진핑의 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외에도 조선은 왕이 부임 시 중국 황제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매년 엄청난 공물을 바쳤다. 중국 사신이 황제의 친서를 가지고 오면 왕이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네 번 절했고, 사신이 떠날 때는 백성들이 길에 나와 황제의 은총을 기뻐하며 춤을 춰야 했다. 청나라 황제는 "주변국 중 이희만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없다"고 칭찬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선조들의 행위가 창피하기 짝이 없지만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중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나라이다. 주변 55개 민족을 병합했고 특히 티베트와 위구르는 무력으로 잔혹하게 짓밟은 전력이 있다. 우리가 이 정도 살아남은 것은 조상들이 비굴하게나마 목숨을 부지한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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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우리가 근세에 들어 중국보다 잘살게 된 것은 기적이었다. 조상들이 환생해서 지금 우리가 중국에서 발 마사지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중국과 관계를 끊고 서구 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진작 이렇게 해서 세계 대국으로 굴기했는데, 우리는 한발 늦어 수모도 많이 당했지만 그나마 이 정도 살고 있다. 여기에는 외세를 막아주고 엄청나게 큰 자유 시장을 내준 미국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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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들어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과거 영화를 재현하려는 중국몽을 키우고 있다. 그 속내는 칭화대 옌쉐퉁 교수가 밝혔듯이 주변국들이 다시 중국의 신하 국가로 복귀하는 것이다. 특히 가장 충성스럽던 우리에게 미국과 관계를 끊고 중국 편에 서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어 우리로서는 갈수록 난감한 상황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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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 편에 서는 것이 안전하다면 미국이 답이다. 셰일 혁명으로 미국산 원유는 중국이 수입하는 중동산보다 배럴당 5~10달러 이상 싸졌다.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힘도 막강하고, 세계 모든 혁신이 미국에서 일어날 만큼 과학기술도 최고 수준이다. 인구 구조도 중국은 생산가능 인구가 2016년부터 계속 감소하지만 미국은 향후 100년간 튼튼하게 늘어난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에서 보듯이 중국은 사회 시스템도 취약하여 이변이 없는 한 현 세기 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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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는 미국 편에 서는 것이 맞겠지만 현실적으로 경제 의존이 높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을 멀리할 수도 없다. 미국이 고립주의가 심화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도 꺼림칙하다. 그렇다고 중국 편에 서는 것은 더 절망적이다. 미국이 떠나는 순간 경제 폭락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속국 신세가 되면서 겪어야 할 수모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되니 묘안이라고 나온 것이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지만 이것 역시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의 뜻대로 움직인 사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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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하나? 대전환기에는 역사에서 답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역사의 교훈은 '힘이 약한 나라는 결국 당한다'는 것이다. 조선 역시 힘을 키울 생각은 안 하고 중국만 믿고 있다가 망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부국강병하는 길 외에는 없다. 경제는 중국 의존도를 완화하고, 외교에서는 한쪽에 편향되지 않게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싶다. 외국 석학들은 미·중 외에 우방을 많이 가질 것을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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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은 전혀 반대이다. 부국강병은커녕 국민은 분열되고, 경제는 이념화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으며, 북한만 바라보는 외교로 국제사회에서는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우방인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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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지나친 친중 편향도 우려스럽다. 여권 인사들이 중국몽을 칭송하고, '주한미군 철수해도 된다' '중국의 핵우산으로 들어가자'는 등 주장하는 것은 가볍기 짝이 없다. '미국, 일본이라는 원심력이 없으면 중국의 구심력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노무현 정부 시절 동북아 전략 책임자의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현란한 수사(修辭)보다 미래 생존을 위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조선일보(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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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헌법 수호하는 軍 통수권자이지 민족 지도자 아니다

 

국가가 민족 문제를 푸는 것이지, 민족이 국가 문제 해결 못해
지식인은 논리 수호자, 때로 위험에 처하고 비난도 감수해야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 동일시는'내재적 접근법'만큼 비논리적

 

시민이나 국민 자격으로 사는 우리가 가진 착각이 하나 있다. 착각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임은 맞는다. 그것을 분명하게 자각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비롯되는 하부 단계 일에 많은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독립하고, 우리 힘으로 대한민국을 세웠다고 하는 맹목적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외부 힘으로 독립했고, 외부 힘이 작용하여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북한도 다르지 않다. 주요 국가는 대부분 내부의 정치 사회 변동을 극복하며 자신의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우리는 주변 환경이 오히려 주도적 역할을 했고 우리 내부 자체의 정치적 변동은 대한민국 건국에 중심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 독립적 능력으로 나라를 세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인 인식이 두텁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일부에서는 여전히 대한민국을 1인칭으로 여기지 않고, 3인칭으로 대할 뿐이다. 이 근본적 토대 인식을 어떻게 지키는가가 내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통일 실현 주체는 민족이 아닌 국가다

 

국가에 대해서는 아직 근대적 관념을 따라잡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느 집단에서는 국가보다는 민족이나 진영을 자신들의 1인칭으로 삼는다. 대통령마저도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는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이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다. 헌법은 국가를 통제하지 민족을 통제하지 않는다. 국가가 민족 문제를 푸는 것이지, 민족이 국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한민족 관념이 통일의 가장 중요한 기반인 것은 틀림없지만, 통일을 실현하는 주체는 민족이 아니라 국가다. 민족은 근대 민족국가를 지나오면서 제도가 아니라 상상과 감성의 공동체로 남았다. 공동체 의식을 민족에서 찾으면 감성적이고, 국가에서 찾으면 논리적이다. 국가는 감성의 지배를 배격하고 ''()의 지배를 요구한다. 민족은 ''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나 습성이나 막연한 전통의 대상이다. ''은 논리다.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말은 중세적 사고로 근대적 조직을 떠맡고 있다는 말과 같다. ''을 감성으로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것과도 같다. ''보다 '말씀'이나 '집단의식'이나 '진영'을 앞세우는 것은 근대를 지나는 일이 아니라 중세로 회귀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중세로 회귀하는 기괴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내재적 접근법은 그저 운동 구호일 뿐

 

국가가 아니라 진영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찾는 사람들은 집단의식이나 진영의 이익이나 감성을 앞세우느라 논리를 파괴한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냉철하고 희생적인 지성으로 자처하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논리 가운데 북한에 대한 인식 방법으로 쓰던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을 북한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도 이론도 아니다. 그저 운동 구호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론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보편성이나 객관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을 대할 때만 선택적으로 쓰고, 대한민국을 대할 때는 쓰지 않았다. 대한민국에는 내재적 접근법이 아니라 '인권' '민주' 등 보편적 잣대를 적용하였다. 소위 학자들도 이것을 '논리'라고 사용하면서 대한민국을 논하였다. 이런 '거짓 논리'를 사용하던 진영이 여전히 국가 권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논리를 파괴하면서 법도 파괴한다.


우리는 국가에 대해 아직 근대적 관념을 따라잡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마저도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국가는 감성의 지배를 배격하고 법()의 지배를 요구하는데, 우리 사회에선 ‘법’보다 ‘말씀’이나 ‘진영’을 더 앞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대가 아닌 중세로 회귀하는 기괴한 상황이다. 사진은 ①1945 8월 해방 직후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 ②6·25 전쟁 때의 우리들의 자화상 ③6·25 전쟁 때 전사한 국군 유해를 합동 봉안하는 장면 ④전쟁으로 헤어졌던 이산가족이 상봉 행사에서 다시 만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지식인, 소위 많이 배운 사람들은 감성을 소비하기보다는 논리를 수호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한다. 감성보다는 논리가 제도나 국가에는 훨씬 큰 이익을 제공한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때로 위험에 처하고 비난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논리를 지킴으로써 공동체의 이익을 증가시킨다는 자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논리를 지키는 일이나 법을 지키는 일은 동전의 양면이다. 만약 지식인이면서 논리나 법을 수호하는 대신 진영의 집단의식을 지키는 데 빠진다면, 이는 헛배운 것이 분명하다. 공동체에 끼칠 해악도 크다.

 

최순실 딸과 조국 딸, 논리적 차이 없어

 

지금 우리가 지닌 가장 큰 문제는 논리 파괴다. 논리 대신 진영 결집이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 조국 부부가 교육자로서 정체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일이 정말 없었는가. 크든 작든 말이다. 최순실의 딸과 조국의 딸 사이에 논리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감성적으로만 큰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병우와 조국 사이에도 논리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진영의 감성으로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성숙한 사회는 논리를 지키지 감성을 지키지 않는다. 이것을 '인디언 기우제' '태산명동서일필' 같은 말로 무력화하려 드는 태도는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진영의 강박증이 표현된 것일 뿐이다. 전혀 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조국을 지키는 일과 검찰을 개혁하는 일 사이에 원래는 아무 관련도 없다.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을 일치시키는 논리는 '내재적 접근법'만큼이나 비논리적이다. 논리를 지키는 지적 성숙보다는 진영을 지키는 감성의 결집이 더 강하기 때문에 빚어진 중세적 사건이다. 검찰 개혁은 이미 법을 무력화하는 권력투쟁으로 전락했다. 이번 검찰 인사는 누가 봐도 수사를 저지하기 위하여 권력을 임의적으로 행사한 것이다. 진영의 감성으로는 공정한 인사라고 하면서 눈을 감겠지만, '논리'라는 놈은 그것을 안다. 진영을 지키기 위하여 헌법을 무력화한 사건이다. 한 단계 상승한 더 나은 나라를 꿈꾼다면, 즉 혁명을 원했다면, 우선 진영의 감성을 벗고 국가적 단계의 논리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아직 잘 훈련되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조선일보(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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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간신 식별법

 

소설 '삼국지연의'가 아닌 정사(正史)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陳壽·233~297)는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을 도와 촉한의 안정을 이룬 명재상 제갈량(諸葛亮·181~234)을 이렇게 평했다. "말이 많고 교활한 자는 비록 경죄라도 반드시 벌한다. 선한 일을 하면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상을 준다. 악한 일을 하면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리하여 백성들은 모두 그를 경외하고 사랑했다."

'
제갈량집'에는 사람의 밑바닥 본성을 꿰뚫어보는 '지인성(知人性)'이라는 짧은 글이 있는데 여기서 제갈량은 먼저 사람의 이중성을 이렇게 통찰했다
.

"
사람 본성을 아는 것보다 더 살피기 어려운 것은 없다. 선과 악은 이미 구별되지만 감정과 외모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외모가 온화하고 선량하나 실제로는 매우 간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외관상 공손하지만 속으로는 음험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용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겁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 실은 불충하기도 한다
."

밑바닥을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 속마음이라지만 제갈량은 다음과 같은 7가지 방법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알 수 있다[知人]고 말한다. 대부분 현대에서도 도움이 될 듯하다
.

"
첫째, 어떤 일을 물어[問之] 그 대답의 옳고 그름을 통해 그 속마음을 살핀다. 둘째, 말로 궁지에 몰아넣어[窮之] 그의 임기응변을 살핀다. 셋째, 계책에 관해 말해보게 해[咨之] 그의 식견의 깊이를 살핀다. 넷째, 재난이 났다고 말해주어[告之] 그의 용기를 살핀다. 다섯째, 술에 취하게 해[醉之] 그의 밑바닥 성품을 살핀다. 여섯째, 재물로 유혹해[臨之] 그의 청렴함을 살핀다. 일곱째, 어떤 일을 하기로 약속해[期之] 그의 신뢰성을 살핀다."

7가지는 고스란히 간신 식별법이다. 이 방법을 맨 먼저 적용해보고 싶은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고 다음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조선일보(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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