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謝過가 있어야 한다
破顔大笑 짜파구리 식탁 半地下 국민, 더 아래 大邱 잊었나
國難 때 백성 버린 宣祖·仁祖, 倭兵·胡兵보다 백성 두려워해
우한(武漢) 코로나가 온 나라를 삼킬 기세다. 진격 속도가 병자호란 때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내달았던 호병(胡兵)의 말발굽 소리보다 빠르다. 1월
20일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37일 만에 1000명
선을 넘더니 단 이틀 만에 2300명을 돌파했다. 28일
하루 확진자가 571명 폭증했다. 완전히 둑이 터졌다. 감염·전파 속도가 하도 빨라 한 시간 전 숫자는 벌써 구문(舊聞)인 터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금 어디를 유린(蹂躪)하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대구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문명국(文明國) 소식이
아니다. 6·25 전란(戰亂)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2월 18일
첫 확진자가 확인되고 나서 열흘 만에 1500선을 넘었다. 지역발생으로
우한 다음이 대구다. 확산을 막는 바리케이드는커녕 과속 주행 방지턱도 없다. 음압병실은 넘치는 환자로 바닥났고 중증(重症) 환자조차 병상(病床)이
없어 집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환자들과 전투하는 의료진의 기력(氣力), 그들이 입는 방호복, 심지어
비(非)접촉 체온계마저 동났다. 대구 시민 244만명이 코로나에 갇혔다.
사실은 대한민국 전체가 코로나에 포위됐고 세계로부터 격리(隔離)됐다. 28일 시점에 세계 27개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했고, 25개국이 입국 절차를 강화했다. 자국민
철수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라도 여럿이다. 몇몇 나라는 민항기(民航機)의 한국편(便)을 줄이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여행 여부를 재고(再考)해야 하는 국가'로
분류했고, 여차하면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할 태세다. 미국의 조치는 유럽 각국의 연쇄 조치를 불러올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는 중국에서 벌어졌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중국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느낀다. 대통령 사람들은 '한·중 운명공동체론'을 편다. 한국에서 품절(品切)되거나 희귀품이 된 방호벽·라텍스 장갑·보호경·마스크도 중국 각지에 막대한 양을 보냈다. 중국은 우한 코로나 발원지(發源地)다. 그 중국이 한국에서 온 여행객을 맨 먼저 격리했고 한국 다녀온 교민들 집에 출입 통제 딱지를 붙였다. 한국과 '전염병 공동체'가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야박하고 표리부동(表裏不同)한 것 같지만, 그게 중국이 제정신을 아주 잃은 건 아니라는 표시다. 제 나라 국민과 남의 나라 국민 조차 구분 못 하는 나라가 넋빠진 나라다. 외교장관은 무슨 밀명(密命)을
받았는지 이 마당에 유럽을 방랑하다 돌아왔다.
한국은 의료 선진국이다. 의료진의 수준·장비·병원 시설 면에서 세계 선두 그룹에 속한다. 의료산업을 미래의 성장 산업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실제 서울대학은 2014년 유럽 국가들과 경쟁해 아랍에미리트 병원의 위탁 경영권을 따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대한민국 국민이 어쩌다가 하루하루를 전염병의 공포 아래 떨며 내일을 모르는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됐는가.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섬나라도 코로나 발생 직후 발생 국가 국민의 입국을 차단했다. 그렇게 갈퀴로 긁어간 세금은
도대체 어디다 써버렸기에 막상 일을 당하자 음압병실부터 방호복·장갑·마스크·체온계 등 기초장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게 없는 불량(不良) 국가 꼴이 드러나고 말았는가.
삼성·LG·현대차·SK 등 대기업을 비롯, 기술 입국(立國)·기술
자립(自立)의 꿈을 안고 수많은 중소기업인이 수십 년 쌓아
올린 '첨단(尖端)의
나라 한국'이란 국가 이미지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사람들이 누군가. 역병(疫病)의 악몽에 짓눌린 국민 가슴을
'무심한 말' '험한 말' '태평한 소리'로 후비고 쑤시고 있는 무리가 누구인가.
답(答)은 대통령과 대통령 사람들이다. 그들의 무지(無知)와
판단력 결핍과 무신경(無神經)이다. 국민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할 줄 모른다. 권력에 취(醉)한 몽롱증(朦朧症)이다.
1592년 4월 14일 왜병(倭兵)이 부산포에 상륙하고 임금 선조(宣祖)는 4월 30일 도읍(都邑) 한양을
버렸다. 1637년 1월
3일 청 태종 홍타이지의 선봉대가 압록강을 건너고 1월
9일 홍제동에 진출하자 인조(仁祖)는 황급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두 임금이 진짜 두려워한 것은 왜병과 호병(胡兵)이 아니었다. 백성을 버린 임금은 백성이 두려웠다. 청와대 짜파구리 파티에서 파안대소(破顔大笑)하던 식탁 아래 반(半)지하에
국민이, 더 아래에는 대구가 있었다. 국민은 기생충이 아니다. 대통령의 사과(謝過)가
있어야 한다.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2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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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봉준호표 위트
탁월한 위트로 세계무대 휘어잡은 봉준호 감독
'청와대 오찬'에선 오히려 네티즌의 촌철 위트가 빛났다
잘생긴 남자, 똑똑한 남자는 세상에 널렸어도 위트 있는 남자는 드물다. 위트란 여유와 지력, 자신감을 모두 갖췄을 때만 구사할 수 있는
고난도 인격이기 때문이다. 유머는 그저 웃기지만, 위트엔
촌철이 있다. '티끌 모아 봐야 티끌' '성공의 비결은 1% 재능과 99%의 빽' 같은
우스개처럼 세태를 풍자한다. 위트남(男)이 소통에 실패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은 영리한 남자다. "계급투쟁을 호러와 풍자로 버무린 현대판
우화로 세계 일류 감독으로 도약했다"는 뉴욕타임스의 상찬처럼,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예술과 오락을 다 잡은 코미디 스릴러다. 그 유명한 "1인치
장벽" "오스카는 로컬!"뿐 아니라
평소에도 위트가 넘친다. 마블 같은 영웅물을 만들 생각 없느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몸에 딱 붙는 옷 입는 걸 못 견딘다. 마음이 막 질식하는
것 같아서. 음… 가죽옷 말고 펑퍼짐한 의상을 입는 영웅이 있다면 시도해 보겠다."
한데 이 탁월한 봉준호표 위트가 청와대 식탁에선 빛을 보지 못한 모양이다. 김정숙 여사가
직접 장 봐 요리했다는 '돼지목심을 얹은 짜파구리'에 말문이
막혔을까. 그래도 7분간 이어졌다는 대통령 찬사에 봉 감독이
내놓은 답변은 의외다. "대통령님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는 그는 "저도 한 스피치 하지만 너무나 조리 있게
또 정연한 논리적인 흐름과 완벽한 어휘의 선택을 하시면서 기승전결로 마무리하시는 걸 보고 충격에 빠졌다"고
화답했다.
그로 인한 파안대소로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건 국민이다. 오찬 한 날이 코로나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고 첫 사망자까지 나와 나라 전체가 패닉에 빠진 날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봉 감독이 감탄한 "대통령님의 논리정연한 스피치" 때문이다. "기생충이 보여준 사회의식에 깊이 공감한다"는 대통령은 "불평등 해소를 최고의 국정 목표로 삼았는데, 반대도 많고 성과가 나지 않아 애가 탄다"고 했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은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을 온몸으로 보여준 조국 전 장관을 떠올렸다. 로이터통신마저 "한국 사회 불평등을 반영한 '기생충'은 조국 스캔들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조 장관 사퇴에 "마음의 빚을 졌다"며 안타까워한 대통령과 한국의 반지하 풍경으로 불평등의 민낯을 세계에 보여준 감독이 한자리에서 웃는 모습은 기묘했다.
'권력과의
오찬'에 날 선 위트를 쏟아낸 건 오히려 네티즌들이다. "(기생충) 박 사장네 막내아들 생일파티 장면과 닮았네" "폭우로
반지하엔 물난리가 났는데 공기 좋아졌다고 웃는 부잣집 사람들!" "당신들은 맛보기로 (짜파구리) 먹지만 국민들은 살려고 먹어요. 그마저도 대구는 동나서 못 삽니다."
그나마 오찬의 성과가 있다면 "영화 산업의 융성을 위해 확실히 지원하겠다"는 대통령 약속이다. 봉준호는 우뚝 섰지만 한국 영화 100년의 현실은 참담하다. 수출 실적은 매년 뒷걸음질치고 작품의
질도 바닥을 치고 있다. 한 평론가는 "저변의 창작자들이
영화 한 편 만들려면 CJ, 쇼박스를 찾아가 영혼을 팔아야 하는 현실에서 '포스트 봉준호'가 나올 토양은 기대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영화계 큰 손 이미경 CJ 부회장이 할리우드 종사자들 환호 속에 아카데미 마이크를 잡은 모습과 교차하는 대목이다.
'오찬 소동' 이후 봉 감독은 코로나와 전쟁 중인 고향 대구에 1억을 기부했지만, 기생충 팀이 선물한 '눈가리개'를 쓰고 재밌어하는 김 여사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쇠고기는 느끼할까 봐 돼지고기와 대파를 얹었다"는 그 유쾌한 목소리도 함께.
-김윤덕 문화부장, 조선일보(2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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