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박근혜' 녹슬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 '천막 당사' 이래 가장
현명한 정치적 판단
친박의 소멸과 안철수 세력 퇴색으로 야권 변환 일으킬 것
4·15 총선에서 야권의 승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향배에 달렸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도 그가 실제로 야권 단합에 기여하리라는 기대는 접었다. 그가 과거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에 대한 원망, 배신감을 드러내며 '친박'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행태를 보이는 것을 보고 그것이 정치인 박근혜의 한계인가 실망하며 4·15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는 것은 무망하다고 봤다.
그런 나의 생각은 틀렸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주 옥중 서신을 통해 '기존 거대 정당'(미래통합당을 지칭)을 중심으로 단합해 여권을 심판해줄 것을 친박 세력 등에 당부했다. 이제
그는 영어 생활을 하는 불운의 탄핵 대통령에서 분열된 야권을 단합시켜 거대 집권 세력에 도전하게 만드는 막후 실력자로 변신한 것이다. 어쩌면 박 전 대통령의 결단은 '천막 당사' 이래 가장 현명한 정치적 판단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단합을 도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친박으로 대표되는 탄핵 반대 세력이 자유한국당을 대체(代替)하고
야권의 주류가 될 것을 기대하고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박 자체가 내부적으로 분열하고 태극기
세력이 좀처럼 동력을 얻지 못하는 데다 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치적 방랑자들이 서로 야합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친박을
매개로 한 정치적 부활의 기대를 접은 것이다. 차라리 '기존
야당'에 힘을 실어 그쪽으로 야권을 통합시키는 것이 보다 실효적이라고 판단했음 직하다. '정치인 박근혜'의 머리는 아직 녹슬지 않은 것이다. 그가 권력을 잃기 전 이처럼 실효적이고 실체적이며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면 탄핵은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그의 옥중 서신 이후 미래통합당의 한 중진은 야권의 일대 변환을 전망하며 그 특징을 친박의 소멸과 안철수 퇴색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했다. 앞으로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보수·야권에서 친박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우선 공천에서 탈락하자 미래통합당을 떠나 '박근혜'를 업고 출마하려던 친박 주자(走者)들의
이탈 행렬이 단절될 것이다. 나가봤자 그들이 기댈 언덕이 없어진 셈이다. 안철수 퇴락의 직접적 원인이 박근혜 옥중 서신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철수계(系) 인사들이 박근혜 서신으로 흡인력이 강해진 미래통합당으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삼투현상이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이미 지역구 출마를 포기한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의 정치적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친박의 존재가 의미가 없어지고 안철수 세력이 희미해진 이상, 4·15 총선은 더불어민주당과 그의 위성 세력으로 간주되는 범여(汎與), 그리고 단일화된 미래통합당의 양파전으로 갈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동안 '4+1'이라는 괴상한 정치 괴물을 만들고 야권의 사분오열을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보던 민주당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우한 코로나 사태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야권 분열의 카드마저 놓쳐버린 여권은
이제 선거 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공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은 총선전략 보고서에서 이대로 가면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미래통합당을 이기더라도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 정당의 비례대표 득표로 미래통합당이 원내 제1당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미래통합당이 제1당이 돼 탄핵을 추진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여권 내부의
요청과 위기의식의 결과로 민주당은 '비례대표용(用) 연합 정당'을 만들기로 했다. 미래통합당의
위성 정당을 '꼼수'라고 맹비난해 온 집권 세력이 오죽 급했으면
안면몰수하고 스스로 흙탕물을 뒤집어썼겠는가.
이런 상황들이 반드시 박 전 대통령의 야권 통합 메시지로 인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은 정치 프로들이 서로 이심전심으로 느끼는 것이며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는 교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볼 때
박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은 4·15 총선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문 정권의 입지를 압박할 위치까지 득세하면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커질 것이고 그것은 야당 내에 또 하나의 분파 요인으로 잠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야당으로서 중요한 것은 총선에서 이기는 것이다. 총선에서 이겨 문 정권의 좌편향
질주에 제동을 거는 것이며 2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김대중 고문, 조선일보(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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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서신
넬슨 만델라 "옥중 서신"
지난 4일 공개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필 메시지는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던 국민에게는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그리고 국민의 기대를 능가했다. 우선, 그 글씨는 소박하면서 순수함과 진정성이 배어나는 글씨였다. 신뢰를
고취하고 공감이 우러나게 하는 글씨가 명필이라면 박 대통령의 서체가 바로 명필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억울한 옥살이의, 필설로 표현 못 할 불편함과 괴로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이 이 국가적 위기에서 나라를 바로잡아 달라는 대국민, 대야권 호소만 담았다. 그것도 지극히 절제된 완곡 화법으로. 그동안 받은 흉악한 모욕과
모략과 극도의 신체적 고통이 박 전 대통령의 영혼을 부식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고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근대사의
가장 유명한 수인(囚人)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시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난은 어떤 사람은 망가뜨리지만 어떤 사람은 승화시킨다. 어떤 도끼도, 최후에 마침내 자신을 극복하고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은 찍어 넘기지 못한다고.
박 전 대통령은 적절한 시점에 긴 침묵을 깼다. 물론, 나라는
운동권 정권의 마구잡이 국정 농단으로 하루하루 망가져 가고 있어서 계속 위기였지만 이제 중국발 역질에 대한 정부의 의도적 무대책으로 온 국민이
감염 위험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 위에 합법적으로 정국 주도권을 탈환할 유일한 기회인 총선을
앞두고 보수 야권의 힘겨운 통합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수적 가치와 대척점에 있는 듯한 인사들이 속속 합류하는 등, 총선 승리와 선거 후 국정 주도 능력이 불확실해 보이니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박 전 대통령은 판단했을
것이다. 더구나 사멸하다시피 했던 야권을 소생시켜 준 태극기 시민들의 뜻이 통합 야당에서 배제될
듯하니 풀뿌리 기반과 유리되려 하는 보수 야당의 행보가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여당과 주변 세력들이 박 전 대통령의 품위 있고 절제된 호소에 대해 옥중 정치를
하느냐, 자신의 죄를 참회나 하라 등의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우리나라는
수인에게도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박 전 대통령 재임 중에는 소통 부족 등 이런저런 불만이 있었지만
형사적 책임을 물을 불법행위는 전무했다. 현 정권의 말 못 할 국정 농단과 무수한 실정과 비교하면
박 전 대통령 수감의 부당성은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죄스러워해야 할 여당 인사들이 꼭
김여정 수준의 어휘로 박 전 대통령 서신을 비난한다. 김여정 팬클럽 회원으로 커밍아웃하는
것인가?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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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십니까
정당·후보자가 유권자 속일 수단 무궁무진… '골목 국회의원'
양산
국가적 담론 없고 공약은 기초의원 수준… 권력 의지·공명심만 가득
균형감각과 책임감 없는 당신께 하는 부탁 "제발 내려오십시오"
21대 총선이 36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자들 입장에서 보면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시간일 것이다. 여기서
물어보고 싶다.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십니까?" 매몰차게 분류해 본다면 대략 이런 이유일 것이다. 첫째, 배운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젊어서부터 정치판에 뛰어들었거나 운동권 출신들에게 해당하는 사례이다. 둘째, 오랫동안 해 오던 일이 지겨워서. 주로 교수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해당하지만 대부분 후보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유이다. 셋째, 가진 것을 지키려고. 재산가들의 경우이다. 넷째, 쉽게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주위에 보니까 별것 아니던 사람이 선거에 당선되고 신분이 달라진 것을 보고 뛰어든 경우이다. 다섯째,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려고. 누구나 입으로 말하는 매우 교과서적인 이유이다.
그러면 기존 국회의원들이 선거에 계속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 생활에 익숙해서. 국회의원이 누리는 여러 가지를 버릴 수가 없는 경우이다. 둘째,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서. 한번 국회의원이 되면 다른
직업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호환성이 부족한 직업이다. 셋째, 더 큰 자리를 위해서. 재선만 되면 시·도지사, 3선이면 대통령 자리를 꿈꾼다는 사례에 해당한다. 넷째, 공동체를 위해 시작한 일을 계속하고 마무리하기 위해서. 교과서적인
명분이다.
물론 이 중 한 가지 이유만으로 출마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출이란 그 집단을 가장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대표를 뽑는 과정이다. 집단을 잘 이끌어간다는 것은 정치를 잘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무엇인가? 데이비드 이스턴(D. Eastern)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선출된 대표는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효율적인
배분을 하려면 대표는 가장 현명하고 사익보다는 공익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 많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현대 대의민주주의 위기의 본질 가운데 하나다.
/일러스트=이철원
정치인의 덕목으로 막스 베버(M. Weber)는 열정, 균형
감각, 책임감을 들었다. 정치인에게서 우리는 열정을 자주
본다. 그러나 그 열정은 대부분 권력의지와 공명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막스 베버 식으로 말하면 '비생산적 흥분상태'이다. 여기에 균형 감각과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결국 공동체에 대한 고민 없이 임기를 마치게 된다. 아니 유일한 고민은 '다시 선출'이다.
국회의원은 선출직 공직이다. 선출은 형용사이고 본질은 공직이다. 그러나 많은 후보는 공직에 대한 객관적 성찰보다는 선출에 대한 주관적 확신으로 정치판에 뛰어든다. 각 정당도 공직을 담당할 능력과는 상관없이 얼굴 알려진 사람부터 내세운다. 정치의
본질을 전혀 모르고 사명감도 없는 인물을 출마시켜 자신은 물론 국회와 나라마저 망쳐놓기 일쑤다.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성과 국민 대표성을 동시에 갖는다. 핵심은 국민 대표성이다. 많은 후보는 국민 대표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공약도
시·군·구 의원들과 차이가 없다. 지역 유권자를 겨냥한 것으로 이해는 가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적 담론을
고민하지 않거나 고민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골목 국회의원들의 양산이다.
국회의원은 입법부 구성원과 정당 구성원이라는 이중 역할을 가지고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입법부 구성원 역할이다. 그럼에도 능력이 없으면, 특히
균형 감각이 없으면 당론에만 충실히 따르는 정당 구성원 역할에 매몰된다. 정치 양극화, 전투 국회의 중요한 원인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를 자주 하는 것은 자질 없는 대표를 걸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결과가 매번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균형 감각과 책임감보다는 권력의지와 공명심의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들이 무대의 중심에 선다.
'선출된 자는 선출한 자의 수준을 대변한다.' 유권자들에겐 매우 섭섭한 정치학의 명제이다. 유권자만 탓할 바는 아니다. 현대 미디어 정치에서 정당과 후보가
유권자를 속일 수단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리고 후보들에게 묻자. "출마의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능력이 국민의 대표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제발 내려오십시오."
-안형환 한양대 특임교수 정치학 박사, 조선일보(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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