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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저작권] [소녀 이미지와 위안부 피해자]

뚝섬 2020. 5. 29. 06:32

소녀상 저작권

 

'평화의 소녀상'은 수요집회가 1000번째를 맞던 2011년 12월 14일 처음 세워졌다. 애초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비석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조각 작품을 세우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단발머리에 한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모습이 대표적이지만, 손에 동백꽃을 들고 있거나 등에 날개를 단 소녀상도 있다. 조개를 캐다 일본군에 잡혀간 할머니의 사연을 담은 소녀상 옆엔 호미가 담긴 소쿠리 조각이 놓여 있다.

▶소녀상은 현재 전국 120여 곳에 세워져 있으며 여고생들이 30㎝ 크기의 '작은 소녀상' 운동을 벌여 200곳 넘는 중·고등학교 운동장에도 작은 소녀상이 있다. 일본 정치인이 소녀상 앞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쓴 말뚝을 세워둔 사건을 시작으로 일본의 혐오가 심해질수록 소녀상은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울 때는 시민 단체가 구청 허가 없이 불법 설치했다. 구청이 이를 철거하자 시위대는 구청장을 '일본 앞잡이'라고 공격해 항복을 받아냈다.

 

▶2015년에는 광주광역시에서 소녀상 설치 모금을 한 20대 남자가 4200여만원을 기부받아 유용하거나 횡령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봉사 활동으로 유명했던 이 사람은 "큰돈이 생기니 친구한테 술도 한잔 사고 싶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쓰기도 했다"라고 말한 뒤 잠적했다. 개인 계좌로 기부받고 장부 정리도 전혀 들어맞지 않은 게 현재 윤미향씨에게 쏟아지는 의혹과 복사판이었다.

▶강원 태백시에 최근 설치된 소녀상이 제막식도 못하고 헌 이불로 꽁꽁 싸매진 채 천대받고 있다고 한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최초의 소녀상'을 만든 부부 작가가 '저작권법 위반'이라며 폐기 처분을 요구했다. '원조 작가 부부'가 그간 100개 가까운 소녀상을 만들었고 매출액이 30억원을 넘을 것이라는 추산도 나왔다.

▶소녀상을 '예술 작품'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누구든 만들 수 있는 모두의 소유로 볼 것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원조 작가가 저작권 소송을 예고하면서 비슷한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 '범죄 행위'라고 지적한 것을 보고 당혹감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소녀상을 특정 작가가 거의 독점 제작해왔고 저작권 다툼까지 벌인다니 입맛이 쓰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하는 것은 다 같은데 어떤 소녀상은 추울까 봐 목도리를 두르고 어떤 소녀상은 빛도 못 본 채 넝마를 뒤집어쓰고 있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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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이미지와 위안부 피해자

 

90년대 초반 정부의 위안부 신고 접수 당시 제출된 피해자 진술서는 위안부 실상 파악의 기초라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 공론화 초기에 작성된 만큼 당사자의 기억이 외부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비교적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 근무 시절 접한 진술서상의 피해자들의 사정은 다양했다. 세간의 인식과 다른 면도 많다.

전쟁 시기 군 대상 매춘업의 성행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일본군은 도를 넘었다. 전황(戰況)이 격화되면서 위안소를 안전지대를 넘어 전투 지역 가까이 두고 부대의 일부처럼 운용한 것이다. 여성의 존엄과 신체의 안전이 그토록 훼손되는 처지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면 누구도 자기 발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강제성과 자발성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이다.

당시 일본 군부에는 남성은 전장(戰場)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여성은 그 남성들을 위안하는 존재가 되어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발상이 횡행했다. 자살특공대, 옥쇄와 궤를 같이하는 군국주의의 광기였다.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자 하는 일본인들은 그러한 과오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성을 촉구한다. 여성의 성(性)을 국가의 도구로 삼고 비전투 여성을 전쟁터에 투입하는 비인도적 만행을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일본 내에서 꽤 큰 울림이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헌병이 강제로 납치해 외국으로 보내 버린 순결한 소녀가 위안부를 상징한다. 그러한 인식은 의도했건 아니건 정형화된 이미지에 들어맞지 않는 다수의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침묵을 강요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담고 있지도 않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관찰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시선에서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를 도모하는 것이다. 진정한 피해자 중심주의 실현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방해가 되는지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조선일보(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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