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욕설 연구개발
북한에도 언어 예절이 있다고 한다. 웃어른에겐 존칭어를 쓰고 직장 동료에겐 '동무', 상사에겐 '동지'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 얼마 전 김여정이 관장하는 노동당 기관지가 간부 덕목으로 '언어 예절'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선 욕을 해도 속담을 비틀거나 우스개를 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갈비뼈 순서를 혁명적으로 바꿔 놓겠다" "낯가죽이 소발통(소발굽) 같은 X"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한·미를 향해선 말 폭탄을 퍼붓는다. 한국 전 대통령을 "쥐새끼" "박쥐"라고 부른 건 양반이다. 다른 대통령에겐 "정치 창녀" "민족 매음부" "애기도 못 낳은"이라고 했다. "미국 위안부"라고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 원숭이"였다. 인종·성(性)·신체 등 문명국에서 금기로 돼 있는 공격을 골라서 한다. 북 외교관을 지낸 태영호 의원은 한·미 비난 글을 쓸 때는 "불타는 적개심으로 원수의 심장을 찌르는 심정으로 쓰라"는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이 욕설들은 김일성대 역사·어문학부 등을 나온 엘리트들이 만들어 낸다. 대남 막말은 통일전선부, 대미는 외무성, 군 관련은 정찰총국이 맡는다고 한다. 부서마다 100명 이상 욕설 전문 인력들이 '신박한' 표현을 매일 궁리한다. 김씨 일가가 선전·선동을 직접 챙기는 만큼 눈에 띄면 고속 출세할 수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북측 주역이던 송호경 통전부 부부장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제 북 선전 기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미 선순환 관계 구상을 "달나라 타령"이라고 비난했다. 고위 탈북민은 "문(Moon) 대통령을 빗대려고 지어낸 표현일 것"이라고 했다. "더러운 개무리" 같은 욕도 평소엔 잘 안 쓴다고 한다. 전문 인력들이 개발한 표현일 것이다.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면 반복 사용한다. 작년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노릇"이라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도 했던 말이다.
▶북한이 욕설 개발 인력까지 운영하는 것은 김씨 일가가 좋아하는 데다 말 폭탄도 중요한 무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욕설 무기가 안 통하는 상대에겐 조심한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회담을 앞두고 외무성 부상이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이후 북은 트럼프와 펜스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못하고 있다. 2015년 북 지뢰 도발 때 우리 군이 자주포 29발을 한꺼번에 북한 지역에 퍼붓자 먼저 협상을 제안해와 유감을 표시했다. 북은 그런 집단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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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동원해 우리 국민들 대북 전단 살포 제압하자는 발상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탈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계획에 대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찰과 군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가 강력히 저지하고 막는 그런 모양새를 비치면 (북한도) 좀 조용히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북 김여정이 "전단 금지 법이라도 만들라"고 엄포를 놓자 즉각 "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 대한민국 군대를 동원해 우리 국민들을 제압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민간인을 상대로 군을 투입하는 것은 '계엄'을 떠올리게 한다. 평통 수석부의장은 대통령의 대북 멘토라는 사람이다. 결코 개인적 주장이라고만 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 아들인 여당 의원은 "탈북민 단체 중 회계가 불투명한 곳들이 있고, 일부는 후원금을 걷기 위해 (전단 살포를)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거 제시는 하지 않았다. 회계 부정을 말한다면 정의연 문제를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여당 중진은 "대북 전단 살포는 위험천만한 소동이자 평화통일 정신을 거역한 반헌법적 망동"이라고 했다. 북한 노동신문에 나온 말로 착각할 정도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원 구성이 완료되면 대북 전단 살포 금지 입법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 극복 등 현안이 쌓여있는데 '김여정 하명법' 만드는 게 최우선인가.
대북 전단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김정은 정권이 이토록 발끈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북한 주민에게 외부 소식이 흘러들어 가게 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결국 그것이 북한의 야만적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정부·여당은 접경지역 국민 안전을 핑계로 대지만 결국 김정은 남매 '진노'를 달래고 북 정권 안정을 위해 우리 군을 동원하려는 것이다. 탈북민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도 느껴진다. 탈북민을 '배신자' '인간쓰레기'라고 하는 김여정 인식과 얼마나 다른가. 그렇지 않고서는 '군대 동원' '망동' 같은 말이 나올 수 없다.
-조선일보(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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