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43년 전 메구미 납북 기억하는 日本] [현충일에 천안함·연평도 유족을 어떻게 '실수'로 빼나]

뚝섬 2020. 6. 8. 06:12

43년 전 메구미 납북 기억하는 日本

 

열세 살 소녀 요코타 메구미는 1977년 일본 니가타시에서 하굣길에 북한 공작원에게 납북됐다. 납치당한 일본인 17명 중 가장 어리다.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씨가 엊그제 여든일곱 살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일본 사회가 슬픔에 빠졌다. TV 방송은 추모 특집을 내보내고, 신문은 사설을 써서 애도했다. 아베 총리는 "전력을 다해왔지만 (메구미의 귀환을) 실현하지 못하는 애끊는 심정"이라며 "죄송함이 가득하다"고 했다.

▶메구미 실종 당시는 북한 소행인지 몰랐다. 1997년 일본에 망명한 북 공작원이 폭로해서 납치 사실이 알려졌다. 메구미는 해안가로 끌려가 40시간 넘게 배 안에 감금됐고, 울부짖으며 선실 벽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바람에 북한에 도착할 즈음 손이 뻘겋게 피로 물들었다고 했다. 딸의 피랍은 평범한 샐러리맨 가정을 너무도 가혹하게 무너뜨렸다. 시게루씨는 이사를 다니면서도 펜으로 메구미의 '메'라는 글씨가 적혀진 종이 상자는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거기엔 딸의 잠옷과 교과서, 좋아하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등으로 꽉 차 있었다고 한다. 

 

▶시게루씨는 납치 피해자 가족회 대표를 맡았다. 아내와 함께 일본 전역을 돌며 딸의 구출을 호소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강연도 1400회 넘게 열었다. 북한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하자 처음으로 납치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메구미는 딸을 낳고 살다가 1994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했다. 10년 뒤 메구미의 유골이라는 것을 일본에 넘겼지만 감정 결과 다른 사람 것으로 확인돼 메구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게루씨는 2014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메구미가 낳은 딸이자 외손녀인 김은경과 상봉했다.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밝고 말을 잘했다. 은경이가 메구미보다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 뒤 시게루씨는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 여러 해를 보냈다. 병실 벽은 메구미 사진으로 덮여있었다고 한다. 메구미가 납치되기 전날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사준 머리빗도 43년간 몸에 지니고 다녔지만 결국 딸을 못 보고 세상을 떴다.

▶6·25전쟁 이후 납북된 한국인은 500명이 넘는다. 메구미가 북한에서 결혼한 남편도 서해안에서 납북당한 고등학생이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도 없다. 세계 최악 독재자가 험한 말을 쏟아내도 심기만 살피고, 탈북 의사를 밝힌 청년을 인신 공양하듯 강제 북송하는 상황이다. 현충일 추념식에 천안함 유족도 초대받지 못하는데, 납북자 송환은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정권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0-06-0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현충일에 천안함·연평도 유족을 어떻게 '실수'로 빼나

 

정부가 천안함 폭침과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도발 관련 유족과 생존자를 현충일 추념식 참석자 명단에서 제외했다가 뒤늦게 포함했다. 보훈처는 언론 보도로 논란이 일자 "코로나 사태로 참석자를 대폭 줄이는 과정에서 직원이 실수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수할 게 따로 있다. 현충일은 나라를 지키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북한의 기습에 희생된 천안함·연평도 용사 관련자 55명은 제일 먼저 참석자로 꼽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이들을 초청 명단에서 빼놓고 실수라고 한다. 실수로 5·18 행사에 5·18 유가족을 안 부르고 실수로 세월호 추모식에 세월호 유족을 빠트릴 수도 있나.

현충일 행사 당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천안함·연평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희생자 가족들은 대통령과 같은 줄에 앉은 반면 천안함·연평도 유가족들은 한참 뒤쪽으로 밀렸다. 마지못해 끼워넣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모든 희생과 헌신에 국가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이날 추념사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 정권 들어 천안함·연평도 홀대·푸대접은 한두 번이 아니다.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문 대통령은 계속 불참하다 총선을 앞둔 올해에만 참석했다. 천안함·연평도 유족을 청와대에 불러놓고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손을 맞잡은 사진을 담은 책자를 나눠줬다. 한 유가족은 "충격을 받아 급체했다"고 했다. 정부는 천안함 폭침 주범 중 한 명인 김영철을 국빈 대우했고,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은 천안함 폭침을 언급조차 않거나 '천안함 사건' 등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국방장관은 천안함 등 북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도 했고, 통일 부 장관은 "우발적 사건"이라고 했다.

정권이 북에 길들여지고 북 눈치를 보다 보니 북한과 맞서 싸운 사람들은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 취급을 받는다. 현충일 행사에 천안함·연평도 유족이 빠진 게 그냥 나온 일이 아니다. 100년 전 일제시대, 40년 전 군사독재 때 행적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겠다는 사람들이 10년 전 천안함·연평도는 없었던 일처럼 외면하고 있다.

 

-조선일보(20-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