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드골의 항전(抗戰) 연설
1940년 6월 18일 드골이 영국 BBC 방송국에서 항독(抗獨) 연설문을 읽었다. 총리 폴 레노가 사임하자 그것을 '항복'이라고 본 드골은 영국으로 떠나 전날 도착했다. 레노는 "파리를 지키는 것이 몽상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드골은 "비록 전투는 졌으나 전쟁은 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관과 함께 런던 하이드 파크 부근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뒷날 처칠은 "드골이 작은 비행기에 자신과 프랑스의 명예를 싣고 왔다"고 기록했다.
▶드골은 '6월 18일 호소문' 원고를 들고 오후 6시 BBC 본부 건물 4층 스튜디오 4B에 들어섰다. 연설은 4분쯤 진행됐다. 직원들은 드골 방문을 불과 한 시간 전에 알았고, 녹음 준비도 없었다. 오늘날 그날 육성을 다시 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하는 호소문 원본은 남아 있다. "몇 년간 프랑스 군 수뇌 지도자들이 정부를 꾸렸습니다. 그 정부는 우리 군대가 패배했다는 구실로 전투를 그만두려고 적과 결탁했습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제4기갑사단을 지휘했던 드골은 아이 머리통만 한 마이크 앞에 군복 차림으로 앉아 있다. 한 BBC 간부는 그를 이렇게 회상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부츠를 신은 거대한 남자로, 성큼성큼 걷고, 무척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게는 다른 남자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자유 프랑스'란 망명정부를 꾸린 드골은 국민에게 끝까지 싸우자고 용기를 북돋우면서 레지스탕스에 가담해달라고 호소했다. "우리가 마지막 유언을 했습니까? 희망은 사라져야 합니까? 패배가 확실합니까? 아닙니다!"
▶80년이 흘렀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런던을 찾았다. 존슨 영국 총리와 함께 버킹엄궁 앞 광장에서 드골이 연설했던 그날을 기렸다. 마크롱은 "런던은 '자유 프랑스'를 탄생시킨 요람이었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희망의 마지막 요새가 됐던 곳"이라고 했다.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런던시에 헌정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첫 해외 방문이었다. 대유행병을 겪으며 누구보다 드골이 생각났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드골은 국부(國父) 대접을 받는다. 공항에도, 항공모함에도, 광장에도, 다리에도 그의 이름은 붙어있다. 마크롱은 사회당 출신이지만 우파인 드골 사랑이 유별나다. 엘리제궁 로고에 항전과 드골을 상징하는 로렌 십자가를 넣었을 정도다. 우리는 70주년을 맞는 6·25와 그때의 용사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대접하고 있나.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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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딴판인 북한 가르치는 교과서, 정권 선전물 아닌가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우리 정부와 국민을 향해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얼굴 사진에 담배꽁초와 담뱃재를 뿌린 대남 전단 살포를 예고하고, 우리 군(軍) 등을 상대로 '큰 경을 칠 것' '조선반도(한반도) 전쟁' 운운하면서까지 협박하고 있다. 그런데 올 3월 전국 고교에 배포돼 140만 학생이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는 완전히 딴세상이다. 8종 검정교과서 모두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다루며 남북 화해 무드를 강조한다. 대통령과 김정은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거나 함께 걷는 사진을 교과서 한 페이지에 가득 싣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면서 남북 관계가 개선" "고조되던 한반도의 긴장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전환점을 맞이하였다"는 식이다. 140만 고교생이 남북 관계가 경색된 현실을 뉴스를 통해 매일 보고 듣는데 교과서에선 현 정권에서 남북 화해가 달성된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독재국가가 아닌 한 세계 어느 국가도 집권 중인 정부의 중간 성과를 교과서에 넣어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건 미래 세대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선전, 선동이다. 특정 사실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작년 11월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을 시점에 현 정권 찬양 내용이 담긴 교과서를 기어코 검정에서 통과시켰다. 정부가 지금은 입에 올리지도 않는 소득 주도 성장을 추켜세운 교과서도 있다.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정권 선전물 아닌가.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같은 국제사회의 합의 사항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삭제했다.
이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편향된 역사 기술, 특정 이념 강요를 집요하게 밀어붙여왔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탄생은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김일성 왕국에 대해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천안함 폭침은 중·고교 교과서 대부분이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 중학 검정교과서 6종에선 북한 3대 세습 문제를 찾아볼 수조차 없다. 전 정권의 국정교과서를 적폐라며 범죄행위로 몰아간 사람들이 그보다 더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치운다.
-조선일보(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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