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라는 작자는 정치와 전쟁 구별이 안 되는가"
‘고지전’
계획서만 놓고 보면 북한의 6·25 남침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독소(獨蘇) 전쟁 영웅 바실리예프 중장이 꼼꼼하게 설계한 이 전쟁에서 그러나 북한은 초기 기습 말고는 제대로 성공한 게 하나도 없다. 원래 계획은 38선에서 부산까지 거리를 480㎞로 잡고 일일 평균 10㎞를 진격해 50일 만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게 딱 8월 15일로 해방 5주년 기념식을 서울과 부산과 평양에서 동시에 진행할 생각이었으니 참으로 가슴 뭉클한 설정 아닌가.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명언은 이 전쟁을 비껴가지 않았다. 1950년 10월 1일 맥아더는 김일성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다. 해주에서 아침, 평양에서 점심, 신의주에서 저녁 따위 허언이 아니었다. 너희의 무력 도발이 군사적으로 무의미하게 되었으니 나의 아량에 호소하라는 사실상 패전 통보였다. 계획은 대체 어디부터 틀어진 것일까.
6·25 남침은 기본적으로 소련군의 교리에 따른 기동전이다. 빠른 공격을 통해 최소 전투로 결정적 승리를 달성하는 것, 이게 기본이다. 같은 기동전이라도 소련과 독일의 기동전은 살짝 다르다. 소련군은 철저한 중앙 통제에 적 부대 격멸이 목표다. 반면 독일군은 현장 지휘관의 재량을 일부 허용한다. 북한군은 중앙 통제에는 충실했지만 적 격멸에는 부실했다. 6월 27일 북한 제105 전차 여단은 한강교 점령을 앞두고 있었다. 이어지는 절차는 양익(兩翼) 포위에 따른 국군 주력 박멸. 이 상황에서 김일성은 황당한 명령을 내린다. 전차 여단 목표를 변경해 한강교 대신 중앙청, 서대문 형무소 그리고 방송국을 점령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점령 지역을 통제하고 방송으로 공산주의를 선동하겠다는 이 발상으로 결국 북한군은 사흘 동안 서울에 발이 묶인다. 소식을 들은 스탈린은 긴급 전문을 보냈다. "조선 군사 당국은 전진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 문장을 의역하면 이렇게 되겠다. "김일성이라는 작자는 정치와 전쟁 구별이 안 되는가." 가까이 있었으면 아마 때렸을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 /일러스트=이철원
북한군의 전쟁 수행을 어렵게 만든 또 한 요인은 군 지휘관과 정치위원이라는 소련식 이원 조직 체계였다. 영화 '고지전'이나 '포화 속으로'를 보면 북한군 지휘관에게 툭하면 태클을 거는 장교가 등장한다. 흔히 정치장교라고 부르는 이 인간들의 임무는 지휘관 감시다. 가뜩이나 중앙 통제로 융통성 발휘가 어려운 상황인데 시어머니까지 들러붙어 잔소리를 해대니 전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리 없다. 영화에서는 군 지휘관이 태연하게 정치위원 의견을 깔아뭉갠다. 전쟁을 모르니까 그따위 멍청한 소리를 하는 것이라며 훈계까지 하신다. 현실에서 그렇게 간 큰 지휘관은 없었다. 기개는 잠시지만 감당은 오래다.
전쟁으로 한반도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20세기에 세워진 두 성공적인 나라가 있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이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전쟁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선언과 동시에 주변 아랍국들이 축하한다며 선물을 보내준다. 북쪽에서는 레바논과 시리아, 동쪽에서는 요르단과 이라크, 그리고 남쪽에서는 이집트가 한꺼번에 침공한 것이다. 다음 해 3월까지 이어진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국가의 틀이 잡힌다. 다른 점은 이거다. 이스라엘은 이후로도 1973년까지 피 말리는 전쟁을 세 번 더 치러야 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이스라엘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3년짜리 하나 끝내고 이후로는 전쟁 걱정 없이 경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새우가 고래를 물고 늘어진 끝에 얻은 한미 동맹 덕분이다.
종전이 아니었기에 모병은 계속되었다. 60년대 대한민국 군대는 65만명으로 국군의 모태인 경비대 시절 6000명에 비하면 100배가 늘었다. 당시 우리보다 인구가 많았던 필리핀은 2만명 안팎이었다. 군인 많은 게 뭐 좋은 일이냐고? 공교육이 확대되기 전 군대는 20대 청년들의 교육 훈련 기관이었다. 1970년대 대기업 건설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그 기술 어디서 배웠냐 물으면 답은 하나였다. "군에서 배웠습니다." 6·25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나라 지키다 다치고 죽은 병사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냐 물으실 수 있겠다. 그래서 호국 뒤에는 보훈이라는 말이 따라오는 것이다. 보훈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나라는 절대 호국 같은 소리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것 같다.
-남정욱 작가, 조선일보(20-06-2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늘의 대한민국은 70년 전 비극을 기억하고 있는가
오늘은 6·25 남침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김일성 집단의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한국군과 경찰 63만명, 유엔군 15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민간인 희생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리 민족이 겪은 수많은 전란 가운데에서도 가장 처참한 비극이었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전 국토를 피로 물들이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우리 국민은 잿더미로 변한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섰다. 전쟁이 끝난 1953년 13억달러였던 GDP는 작년 1조6000억달러로 1000배 이상 늘어났다. 1인당 소득도 67달러에서 선진국 기준선인 3만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70년 만에 G7 초청장을 받는 위치로 탈바꿈했다. 우리가 압축적으로 이뤄낸 산업화·민주화·선진화가 6·25를 잊힌 전쟁에서 자유를 지켜낸 전쟁으로 바꿔 놓았다. 대부분 90을 넘긴 참전 국가 노병들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국가의 놀라운 성취에 감격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세계지도에서 지우려 했던 그 전쟁에서 패배했다면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김씨 왕조의 폭정 아래서 자유도 인권도 없이 살고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 아슬아슬했던 역사의 갈림길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며 70주년을 맞고 있나. 전혀 알지 못했던 나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국민을 지키기 위해 미군 5만4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희생 덕분에 생존하고 번영해온 나라에서 "미군 떠나라"고 외치는 시위대가 미 대사관저 담을 넘어도 경찰이 막지 않는다. 국토 90%가 적진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마지막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국군 영웅은 친일로 몰려 국립묘지에도 묻히기 어려운 신세가 됐다. 반대로 6·25 전쟁 때 김일성 편에 서서 훈장까지 받았던 사람은 대통령에게서 국군의 뿌리라는 놀라운 칭송까지 받았다. 여론조사에서 '6·25가 북한 책임'이란 20대는 44%에 불과하다.
6·25의 비극은 오판과 방심에서 비롯됐다. 군 수뇌부는 북한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정보 보고를 무시하고 비상경계를 해제했다. 주말을 맞아 절반 가까운 병력이 외출하고 전방 부대 사단장들까지 육군본부 파티에 참석했다. 육군참모총장은 전쟁이 벌어지면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실제 전쟁이 벌어지자 사흘 만에 수도가 함락됐다.
지금은 그때와 얼마나 다른가. 북은 핵탄두 수십개를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싣고 한반도 전역을 때릴 수 있는 탄도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도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3대 한미연합훈련은 모두 중단됐고 휴전선 일대 적의 동태를 감시하던 정찰비행은 금지됐다. 김정은과 벌인 몇 차례 쇼가 한반도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고 한다. 국방일보가 '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사력 아닌 대화'라고 한다. 우리는 70년 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가.
-조선일보(20-06-25)-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김정은 '보류'도 사전 각본, 제재 흔드는 작전에 흔들리면 안 돼
김정은이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 예비 회의에서 김여정이 지시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고 한다. 군사위 예비 회의는 김정은 집권 후 처음이다. 북한은 24일 전방에 설치했던 대남 확성기를 철거했고 문재인 정부 비난 기사도 삭제했다. 4일 여동생 김여정의 말 폭탄을 시작으로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북한군 도발 예고로 고조되던 대남 협박이 김정은 한마디에 숨 고르기 하는 양상이다. 전부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다.
북은 계획적으로 위기감을 끌어올리다 돌연 중단하며 마치 양보하는 듯한 전술을 써왔다. 30년 전 1차 북핵 위기 때는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핵 연료봉 추출을 해놓고 평양에 간 카터 전 대통령에게는 '핵 개발 의사가 없다'며 미·북 협상을 이끌어냈다. 10여 년 전에는 미국 여기자 2명을 납치한 뒤 '인도주의'에 따라 풀어준다고 했다. 그래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했다. 2017년에도 6차 핵실험과 ICBM·SLBM 도발까지 하고는 2018년 평창 올림픽에 참석해 평화 쇼를 벌였다. 그때마다 식량·에너지 등을 얻어내거나 한국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김여정이 청와대를 겨냥해 "저능한 사고" "완벽한 바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 위로 친서를 보냈다. 여동생은 때리고 오빠는 어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을 비난하며 군사 도발을 예고했다. 그러자 김정은이 나서서 '보류'를 지시했다. 김여정이 문 대통령과 싸우면 자기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김씨 남매 속셈은 뻔하다. 내부 경제 위기에 따른 주민 불만을 대남 적개심 고취로 무마하고, 한국 정부에 미국을 압박해 대북 제재를 풀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김정은 '보류' 결정에 "우리 스스로 시행할 수 있는 (대북) 사업을 적극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 번은 속을 수 있다. 그러나 속는 것이 거듭되면 고의다. 북핵이 폐기될 때까지 대북 제재는 한 치도 흔들릴 수 없다.
-조선일보(20-06-25)-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문재인 풍자 대자보' 붙였다가 有罪 받은 20대 청년] (0) | 2020.06.26 |
|---|---|
| [미국은 지원 없이 중국에 맞서라 요구 말아야] (0) | 2020.06.26 |
| [대통령 비판 대자보에 '건조물 침입' 유죄, 민주국가 아니다] [네 번째 함구령] [간신도 못 되는 사람들] (0) | 2020.06.24 |
| [與의 검찰총장 찍어내기, 침묵하는 文] [윤석열 자르려면 대통령이 직접 입장 밝혀야] [정의·공정·평등·민주… 왜 '오염된 언어'가 됐나] (0) | 2020.06.23 |
| [우리만 인내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김여정은 임시 후계자 역할… '자기 정치' 의심받는 순간 장성택 운명 돼"] (0) | 2020.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