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한민국 쇠망史
정신 파탄나 멸망한 로마처럼 북한 동요 흥얼거리고 건국 가치 외면하는 대한민국
제국이 멸망하던 서기 476년, 로마는 평화로웠다. 게르만족 용병 오도아케르가 그해 소년 황제 아우구스툴루스를 조용히 폐위했을 뿐이다. 로마인은 이민족 지배자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4년 뒤 암살당한 율리우스 네포스가 마지막 황제라는 견해도 있다. 지중해 세계를 제패했던 대제국이 멸망 연도조차 헷갈릴 정도로 흐지부지 소멸했다. 이유가 있다. 로마는 마지막 20년 동안, 황제가 9번 바뀌는 혼란 속에 천천히 죽었다.
에드워드 기번은 명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로마 멸망의 이유로 파탄 난 로마 정신을 꼽았다. 멸망을 설명한 절(節) 이름이 '로마 정신의 쇠락'이다. 이렇게 썼다. '로마인은 자유와 영광에 대한 자긍심을 상실했고, (…)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도아케르와 그 야만족 후계자들의 왕권을 승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이 땅에서도 대한민국의 자유와 영광에 대한 자긍심을 상실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전쟁 7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그 자유를 빼앗으려 한 이들의 국가를 빼다 박은 듯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장군님'이란 표현이 나오는 북한 동요를 흥얼거렸다. 우리가 돈 들여 지은 건물을 북이 '보복'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폭파했는데, 이 나라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북한 영토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도발이 아니다"라는 해괴한 주장을 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민주주의를 '인민'이 지배하는 통치 행태라고 가르친다. '인민'은 '민중'과 함께 계급적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인민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은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가 누리는 가치'임을 천명한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다. 전북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 블로그에 '북한은 민주주의 국가' '우리와 비슷한 (선거) 원칙을 가졌다'는 글을 무려 2년이나 실었다가 최근 지운 사실도 드러났다. 3대 세습을 위한 허울에 불과한 북한 선거를 민주주의로 포장했다. 이런 주장이 세를 얻으면 국민의 지지를 정통성의 근거로 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설 땅을 잃는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국가적 자부심은 허물어지고 있다. 김정은을 '위인'이라 부르는 정신 나간 청년 무리는 이 모든 행태의 산물이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다.
"한미 연합군의 훈련이 부족하다"고 대북 대비 태세를 걱정한 한미연합사령관의 최근 발언은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조차 최선을 다한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그 반대다. 북한 동요를 부른 송영길 의원은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 군사력의 오버캐파(overcapacity·과잉) 아닌가"라고 남 걱정해주는 말을 했다.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북한보다 50배 잘사니 남북 체제 경쟁은 끝났다"고 승리를 선언했고, "함께 잘살고자 한다"는 말로 국민의 경계심을 허물었다. 인구 2000만의 대국 로마가 고작 100만명인 게르만족에 무너진 역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북한은 패배를 인정한 적이 없다. 우리에게 평화를 구걸한 적도 없다. 오히려 위축되고 두려워하는 쪽은 우리다. 대북 전단을 빌미 삼아 공격하겠다는 말 폭탄에도 두려워 떠는 대한민국을 북한은 비웃는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표현의 자유조차 내동댕이친 우리는 승자가 아니라 패자다.
이 모든 징후가 명백히 드러내는 사실은 단 하나, 대한민국 정신의 쇠락이다. 기번이 되살아나 한반도 역사를 쓴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쇠망사'가 될 게 분명하다. 자유·민주·공화를 내걸었던 건국 정신을 버리고 한낱 저질 왕조의 협박 따위에 굴종한 정신의 쇠퇴가 그 원인이다.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조선일보(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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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선거 압승에 취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몰락한다
헝가리·필리핀·터키 등 20세기 末 민주 권력이 민주주의 파괴
'보수'와 '진보'는 '역사라는 수레'의 두 바퀴다. 이 수레가 계속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즉 한 나라 역사가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두 바퀴가 비슷한 크기를 유지해야 한다. 한쪽 바퀴가 너무 쪼그라들면 이 수레는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국민으로 하여금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베네수엘라의 저 비참한 운명은 그 나라에서 '보수'라는 바퀴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버린 데서 시작됐다. 반대로 히틀러 독일 역시 '진보'라는 바퀴가 심하게 쪼그라들면서 비극이 싹텄다.
대한민국이 계속 발전하여 이렇게 선진국에 도달하게 된 건 다행히도 이 역사의 두 수레바퀴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그런대로 비슷한 크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을 통해 진보가 입법·사법·행정권은 물론 지방 권력까지 다 장악한 '수퍼 권력'이 됐다. 상대적으로 보수는 처참하게 쪼그라들면서 대한민국 역사라는 수레가 과연 어느 쪽으로 갈지 알 수 없는 걱정스러운 상황이 닥쳤다.
베네수엘라 비극, 총선 압승에서 시작
순식간에 이 나라에 닥쳐온 보수와 진보 간의 이 거대한 불균형을 보면 2000년 6월 30일 있었던 베네수엘라 총선이 떠오른다. 이 선거에서 차베스의 좌파 정당은 국회 의석 3분의 2를 장악하는 압승을 거뒀다. 불행히도 이 승리가 이 나라의 파멸적 붕괴를 가져온 도정(道程)의 출발이었다. 한마디로 차베스는 이 승리에서 나온 힘을 민주주의를 파괴해 나가는 데 썼다.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을 임의로 파면하는 권한을 주는 등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온갖 희한한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이 나라 역사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파멸의 길을 걸었다. 하버드대 레브츠키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쓰인 나라가 20세기 후반에만 해도 10곳이 넘는다고 했다. 헝가리, 니카라과, 페루, 필리핀, 폴란드, 러시아, 스리랑카, 터키,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이다.

왜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건 거의 예외 없이 선거에서 압승한 집권자의 오만 때문이다. 승리에 취해 힘을 과신하고 그 과신이 과욕을 낳고, 그 과욕이 만용을 낳는다. 반면 선거에서 압승한 지도자가 오만을 부리지 않고 그 힘을 정의를 수호해 나가는 데 쓸 때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 32대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1932년 대공황에 신음하는 나라를 넘겨받은 진보 진영 루스벨트 대통령은 재임 중 대공황을 사실상 극복했을 뿐 아니라 2차 대전에서도 승기를 잡는 거대한 업적을 이뤘다. 덕분에 미국 역사상 최초로, 유일하게 네 번 연속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런 거대한 승리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민주적 정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권력을 과시하지 않았고 정파를 위해 위법·탈법을 시도하거나 저지르지 않고 비상 권한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항상 민주적 정의 궤도 안에서 절제하며 나라의 먼 미래를 생각하며 일했다. 그런 절제와 겸손이 위대한 민주국가 미국을 탄생시키는 초석이 됐다.
독재 정권, 제일 먼저 검찰권 사유화
거대한 승리를 거둔 지금 대한민국 진보 정권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의 미래에 관련된 참으로 중차대한 질문이다. 불행히도 조짐이 심상치 않다. 지금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대소동은 수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권의 저의를 의심케 하고 있다.
우리 검찰에 오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검찰권이 너무 거대한데 절제되지 않은 채 행사됐다는 점이다. 둘째, 독립성 문제다. 한마디로 정치권에 너무 휘둘린다는 것이다.
추 장관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은 단순하다. 첫째 문제를 해결하고자 둘째 사안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볼 때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일일까? 첫째 문제는 시간을 두고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성질이다. 둘째는 다르다. 국가의 운명이 달린 일이다. 위에서 열거한, 권력으로 자신에게 권력을 준 민주주의를 파괴한 정권 대부분이 제일 먼저 한 짓이 바로 이런 식으로 검찰권을 정치화하는 것이었다.
만일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이런 작은 일까지 지휘할 수 있게 된다면, 대한민국 모든 검찰은 한마디로 권력의 주구가 되고 말 것이다. 추 장관 '지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시립병원장에게 병원 수술 프로세스를 이런 식으로 고치라고 지시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권이 범한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에 대해 사과하고 당사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면 그는 이 나라에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법치가 영원히 지속될 기반을 쌓은 위대한 지도자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실수 없는 인간은 없고 실수 없는 정치인은 더욱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크게 존경받는 건 바로 그가 생명을 바쳐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제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이 나라에 위대한 유산을 남길 차례다. 그 유산이란 이 나라에 정파적 이익을 위해 정의를 희생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위대한 규칙,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역사라는 수레의 두 바퀴에 항구적 균형을 가져오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될 것이다. 그동안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이란 사람은 원한다면 그런 용감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전성철 글로벌 스탠다드 연구원 회장, 조선일보(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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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불명(仗馬不鳴) 신세 與 의원들
송나라 유학자 진덕수는 '대학연의'에서 "간신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언로를 막아 임금을 저 위에 외로이 혼자 있게 만들어, 맹인처럼 밖을 볼 수 없게 만든 다음에야 그 뜻한 바를 마구 펼쳐냈다"고 했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술책이 그런 경우다. '신당서(新唐書)'에 나오는 일화다.
이임보가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권세를 장악하여 천자의 귀와 눈을 가리고 속였다. 간언 책임을 맡은 관리들은 감히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보궐(補闕·간관) 두진(杜璡)이 글을 올려 잘못된 정사를 논하자 그를 하규(下邽)의 영(令·지방 관리)으로 좌천시켰다.
그런 다음 이임보는 다른 간관(諫官)들을 협박하기를 "밝으신 천자가 위에 계시니 신하들은 그 뜻을 그냥 따르면 되는 것이지 무슨 다른 할 말이 있겠느냐. 너희는 의장대에 줄지어 선 말[仗馬]을 보지 못했느냐. 온종일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3품관의 사료를 먹는데, 한번 소리를 지르면 그놈은 쓰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설사 울지 않는다고 해도 쓰겠는가?" 이 일로 말미암아 간언을 올릴 길이 끊어졌다.
오늘날 간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인과 의원이다. 둘 다 말[言]이 생명이다. 언론계에도 이미 울지 못하는 장마(仗馬)들이 생겨났지만, 더 심각한 것은 명색이 민주화 세력이라는 거대 여당 의원들의 침묵이다. 대표가 이런저런 사안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앞서 '공수처 문제'와 관련해 다른 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이 된 금태섭 전 의원은 영락없이 소리 한번 질렀다가 '의장대'에서 쫓겨난 장마 신세다.
지난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쓴소리 4인방을 가리켜 '조금박해'라고 했다.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금태섭 외에 나머지 전·현직 의원 세 명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은 3품관의 사료만 먹는 데 만족하지 않는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조선일보(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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